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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힌두 선교, 왜 중요한가? (공갈렙) 프린트   
서대한  Email [2021-11-12 14:43:37]  HIT : 1004  

[21세기 힌두 선교, 왜 중요한가?]


 

공갈렙 (인터서브 소속 인도 선교사)


 

인도의 소프트 파워

 

 

 최근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내외신 보도가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경제적으로 세계 Top 10이 되었고, 문화 강국이 되었다. 특히, 한류 문화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위 K-드라마, K-, K-영화, 한국어 등의 열풍이 대단하다. 우리는 한국의 이런 변화된 위상을 문화적인 소프트 파워로 설명하곤 한다. 인도 힌두교에서도 이런 소프트 파워가 존재한다. 전세계에 힌두교의 영향력을 미치는데 이 소프트 파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 문화가 바로 정신세계를 수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나 요가, 가상현실에 적용된 여러 기술과 개념 등이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가 중국 다음으로 부상하는 경제대국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인도가 문화 강국으로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소프트 파워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일단, IT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IT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 중 인도인의 숫자가 독보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가진 소프트 파워를 확인할 수 있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등은 대표적인 인도인 IT 기업가이다. 14억 인구대국 인도에서 배출되는 고급인력은 영미권 국가뿐 아니라 과거 영국 식민지 국가들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골고루 흩어져 경제와 학문, 사상, 문화 등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3천 만 명이라는 인도인 디아스포라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힌두교적인 영향력에서 보면 요가나 뉴에이지 사상이 대표적인 소프트 파워로 작용하고 있다. 종교적인 영역이 아닌 문화적인 영역에서 침투하는 영향력이라 무방비 상태로 이들의 영적 공격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마치 물을 반쯤 채운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가 서서히 물을 데울 때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유사한 영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힌두교 구원(?)의 길
 
 그렇다면, 왜 웰빙 시대 요가와 뉴에이지 바탕의 힐링 추구가 힌두교의 영적인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일까? 먼저, 그 답을 하기 전에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요가를 육체적 건강을 위해 스트레칭으로 활용하는 운동까지 반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도 선교사인 본인도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 동작 중 몇 가지를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요가 자체가 힌두교의 사제가 득도하는 방편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힌두교인 사이에서 수행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궁극의 목표가 도를 깨달아 신과 합일하여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거기에서 영적인 문제를 지적하게 되는 것이다. 힌두교의 구원관은 기독교의 구원관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힌두교는 신앙과 구원을 어떻게 믿고 있을까? 힌두교의 사상은 ‘베다’ 경이라는 종교적인 경전(이 중 리그베다, 사마 베다, 야주르 베다, 아타르바 베다 등 4개의 베다가 유명)과 ‘우파니샤드’라는 철학책에 근간을 두고 발전되었다.
 
 힌두 철학을 살펴보면, ‘우파니샤드’에 “신을 아는 자, 그는 신성을 얻는다. 아니, 그 는 바로 신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종교와 철학 또는 지와 행의 완전한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 사상은 “아트만이 브라흐만(절대자)이며 브라흐만이 바로 아트만(자아)"이라는 선언을 통하여 신과 인간의 합일성을 강조하는 인도 특유의 사상으로 발전했다.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라고 한국에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힌두교 종교 측면에서 요가는 득도하는 세 가지 방법-지식의 도(Gyan Marg), 행위의 도(Karm Marg), 헌신의 도(Bhakti Marg) 중 헌신의 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고행이나 금욕, 요가 수행 등을 통해 표현하는 과정에서 도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흔히 20세기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도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뉴에이지나 인도식 명상은 이러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행자가 요가 명상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절대 진리(브라흐만)에 이르게 되고, 그 절대 진리가 자신이 되는 그래서 일종의 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에서 요가 명상을 하는 지도자들 중에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가 이제는 이것이 일종의 신앙이 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육체의 건강과 정신적, 영적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에 요가 예찬론은 더 강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 요가를 중지하고, 뉴에이지 문화를 멀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우리의 안방에 침투해 있는 힌두교의 영적인 요소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인도를 알아가고, 힌두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이렇게 어느 정도 힌두교 문화와 영적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 무엇이 우리의 영적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분별력 또한 생길 것이다.
 
둘째, 힌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만나는 인도인들 혹은 네팔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멀리하고 정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참 진리를 삶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의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발현된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충만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웰빙 시대에 영적 웰빙이 없으면, 그 자리를 요가 같은 다른 것이 채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힘써 그분을 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을 땐 우리의 신앙이 화석화되어 교리나 원칙, 주장, 힘의 논리 등의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선교는 정복이 아니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힌두 선교 또한 십자군 전쟁과 같은 비본질적인 자세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영성으로 힌두인들을 사랑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힌두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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