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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에 의한 소수자 신학 프린트   
한철호  Email [2021-02-22 17:47:24]  HIT : 166  

어제 저녁 아시아 복음주의권 리더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한 발제자가 소수자의 신학(Theology of minority)과 고난의 신학(Theology of Persecution)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시아 교회의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나온 말이다. 두 신학 모두는 현재 한국교회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고난의 신학은 과거 한국교회 안에 있었던 신학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아니다.

그런데 소수의 신학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직면해야 할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는 요즘 한창 논의 되었던 동성애 등 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수적으로 적은 여러 아시아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지칭하는 의미다. 현재 추세로 봐서는 1-2년 내는 아니지만 멀지 않은 시간 안에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소수자(minority) 혹은 변두리인(marginality)이 될 가능성이 많다. 몇 번의 악수를 두었는데,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한번 더 악수를 둔 것 같아 이 속도가 빨라져 보인다.
한국에서 교회가 소수가 되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닐 수 있다. 로마의 복음화는 소수의 초대교인들을 통해서 이루워졌고, 앤드류 웰스라는 선교 역사 학자가 말한대로 선교는 주변부가 중심부를 변화시키는 역사의 반복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의 고민은 “영향력 있는 소수”라는 말이 가진 모순처럼 보이는 개념 때문이다. 영향력있다는 말은 다수의 논리와 연결된다. 영향력 있는 창조적 소수’라는 케치프레이즈 자체가 다수자의 논리다. 적은 수 이지만 영향력을 끼쳐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아무 영향력 조차 없는 사람들이 소수자다. 그냥 소위 말하는 별볼일 없는 소수자를 말하는 것이다.내게 ‘영향력있는 소수’라는 말이 썩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말 그대로 소수자 신학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세미나에서도 ‘소수자의 신학’을 발전시켜 영향력있는 소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자원과 재정을 모우고 사람을 네트웍하여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발제자의 모습에서, 소수자의 논리로 다수자가 되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로 아무 힘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살지만, 그것이 의미 있고 매력적인 삶이 되게 하는 신학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다수자가 되려는 숨은 욕망일 수도 있다. 진짜 소수자, 주변인들은 이런 글 자체도 쓰지 않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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