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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5-8: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에 대한 논평 (이한수, 총신대학교)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9 09:48:30]  HIT : 171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에 대한 논평 

이한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Ⅰ. 기본개요 

손창남(OMF)의 논문은 사도행전 8-1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선교사역의 발자취를 주경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초대교회가 처음부터 교회가 공적으로 개입하여 교회적으로나 어떤 선교단체를 설립하여 선교사역을 진행했다기보다 개인 사역자들이 손수 직업을 가지면서 타문화사역에 뛰어든 '풀뿌리 선교운동'이었고 특히 헬라어를 사용하는 평신도 사역자들이 타문화사역에 더 용이했기 때문에 그들의 '풀뿌리 선교운동'은 언어적으로나 지역적으로 한계에 갇힌 예루살렘 교회보다 훨씬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사도행전 13-28장에 기록된 바울과 그 팀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사역은 교회에 의해 뒷받침이 된 특별한 선교사역인 반면에, 8-12장에 기록된 선교운동은 교회나 선교단체가 조직적으로 개입된 특별한 선교사역이라기보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타문화권 선교에 뛰어든 풀뿌리 선교운동의 전형으로 보고 한국교회는 타문화 선교사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사도행전 8-12장에 나타난 개별 평신도 중심의 풀뿌리 선교운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손창남은 선교단체나 교회에 의해 주도되고 뒷받침이 되는 선교 운동은 비용이 많이 들고 타문화에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선교현장에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여러 지역에서 풀뿌리 선교운동이 오늘날 선교사역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의미에서 손창남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교회니- 선교단체 중심의 선교사역을 주도해온 서구교회의 모델을 '답습'하기보다 이제 새로운 선교운동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Ⅱ. 논문의 장점 

손창남은 사도행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함으로써 오늘날 변화무쌍한 선교사역의 현장 에서 효과적인 새로운 선교사역의 모델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고무할 만하다. 성경신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논지 흐름을 분석하는 실력이 돋보인다. 사도행전 8-12장에 대한 손창남의 분석은 달리 해석되고 분석될 여지는 있지만, 새로운 해석 모델을 제시하고 오늘날 한국 선교사역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크게 기여한 논문이 아닐 수 없다.

 

Ⅲ. 비평적 평가 

①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행전 8장에서 스데반 순교사건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이 발생할 때까지 사도행전 1:8에 있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 아쉽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고 있는 한계는 과연 어떤 한계가 있었을까? 단지 언어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타문화권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사도햄전 8장에까지 이방선교를 시작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유대교에서 성전이 함축하는 배타적인 의미 때문에, 예를 들면,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요 예배의 장소요 모든 종교적 경건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기 때문에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②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아니라는 인식을 처음으로 과감하게 제시한 사람은 스데반이었다 사도행전 「장에 담긴 스데반의 연설은 여러 면에서 혁명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예루살렘 성절 중심의 유대고 경건의 인식을 처음으로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지 않괴 세상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세상 어디나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장소가 될 수 있고 예배의 장소가 될 수 띤다는 스데반의 인식은 성전 중심적 경건생활을 해왔던 유대인들에게 성전의 중심적 중요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로 생각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유데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③ 스데반 순교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핍박은 결국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흩어지게 만들 먼다(8:1; 11:19). 흩어진 이들 중에 유대 지역을 넘어서서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 처음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한 것은 빌립 집사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처럼 어떤 뚜렷한 선교이념이나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선교는 어찌 보면 핍박으로 야기된 우연한,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인도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어떤 정립된 타문화권 선교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의 선교사역은 결국 단회적으로 끝날 밖에 없었다. 후일에 이방 백부장인 고넬료 회심과 연관된 환상 사건(10:1-23)은 아직도 유대인 중심주의의 사고틀을 벗어나지 못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협소한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의 유대인 중심적 사고의 한계는 11:19에서도 나타난다. 스데반 순교사건으로 불거진 핍박 때문에 흩어진 유대 기독교인들이 베니게차 구브로와 안디옥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대인에게만"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는 진술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④ 손창남은 "왜 선교운동이 8장과 11장처럼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까지 연기 되었을까?"고 질문하면서 그 이유는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가 가지는 선교 사역적 제한"(3쪽)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가 말하는 '선교사역적 제한‘이란 표현은 다음 문장에서 부연설명이 된다: "갈릴리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태생적으로 타문화에 노출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주님께서 새로운 그룹을 통해서 복음을 이방에 전하는 준비를 하셨다고 보인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룹이다"(3쪽). 과연 갈릴리 출신이었던 예수님 제자들이 예루살렘떼 내려와 정착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 단순히 타문화권에 접촉한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갈릴리나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팔레스틴에 사는 본토 유대인들이 거의 이중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헹겔(M. Hengel)에 따르면 팔레스틴 유대교도 상당히 헬레니즘화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도행전 6:1에서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을 구분하고 있지만 그들은 한쪽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기보다 주 언어를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을 뿐 사실은 이중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베드로 역시 헬라어로 된 서신을 쓴 것을 보면 팔레스틴 지역을 타문화권으로부터 고립된 지역으로 보는 것은 신빙성이 낮다. 오히려 선교운동이 8장에 이르기까지 지연된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타문화권과 접촉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보다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파 성전 중심에 초점을 둔 민족주의적인 협소한 신학적 세계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인식을 최초로 혁명적으로 뛰어넘은 사람은 스데반이었고, 역설적이나마 한때 스데반을 죽이는 데 공모한 바을이 나중에 회심한 이후에 스데반의 인식을 받아들여 이방선교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웬함(D. Wenham)은 바울이 스데반의 추종자(disciple)라고 하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⑤ 손창남은 사도행전 8-12장에서 흩어진 사람들 중심으로 소위 말하는 '풀뿌리 선교운동"이 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풀뿌리 선교운동은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가 아직 정착된 선교정책이나 이념이 현성되지 않았을 때 스데반 순교사건으로 인해 돌출된 선교사역 형태가 아닐까 판단된다. 사도행전 11:19-23의 보도를 보면 스데반 순교사건으로 흩어진 운대 기독교인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고(19절) 뽀 그들 중의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는데 아주  공적인 사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을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여 그곳의 기독교인들(유대와 이방 기폭교인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게 되었고 이것은 안디옥 교회 설립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처음에 스데반 사건으로 흩어진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우연한 기회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섭리적 인도하심) 유대 지역을 넘어 사마리아와 안디옥에까지 넘어가 전도를 하였지만 이 과정에서도 개인 전도자들은 언제나 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풀뿌리 선교운동'으로 남지 않고 점차 예루살렘 교회가 개입을 하여 바나바를 파송하여 그들의 선교사역을 돕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손창남이 말하는 '풀뿌리 선교운동'이란 예루살렘 교회가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뚜렷한 이념과 정책이 아직 수립되지 않았을 때 잠시 존재할 것일 뿐이며 그러한 풀뿌리 운동은 후에 보다 체계적인 교회 중심의 선교사역으로 발전해간 것이 아닐까?

 

⑥ 사도행전의 보도를 분섞해 보면 개인의 풀뿌리 선교운동은 여전히 교회의 감독권 밖에서 일어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고 개인들의 선교활동도 교회의 보다 폭넓은 선교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아무리 풀뿌리 선교운동의 모델이라고 할지라도 빌립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든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따로 파송하여 사마리아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한 사건을 보면 여전히 빌립의 개인적인 전도 역시 교회의 지도와 지원 아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8:14-lf) 이것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한 '흩어진' 전도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복음 전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곡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여 그곳의 기독교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였다는 사실은(11:22) 개인의 풀뿌리 전도운동도 넓은 의미에 서 교회의 지원과 지도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⑦ 그렇다면 풀뿌리 전도운동이 교회에 의해 주도되는 공적인 선교사역을 대신할 '대체 모델'이라기보다 후자의 지원과 지도 아래 독려되어야 할 보완적 사역형태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교회가 보다 넓은 지역에 확장되면서 점차 순회 전도자들로 위장한 이단과 거짓교사의 폐해에 직면하여 풀뿌리 전도운동은 교회의 감독과 지도를 벗어날 경우 통제하지 못할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손창남이 주장한대로 풀뿌리 전도운동은 더욱 장려되어야 할 좋은 모델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폭넓게 교회의 공적일 선교사역과 연계되어야 하며 그 지도 아래 있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05. 설악포럼 2015-7: 손창남 선교사의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