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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5-7: 손창남 선교사의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9 09:46:25]  HIT : 146  

손창남 선교사의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사도행전 8장에서 12장을 중심으로”에 대한 논찬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2009년 설악포럼에 참석하여 손창남 선교사의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에 대한 글을 논찬하게 된 것에 대해 우리 주님과 진행 위원께 감사를 전한다. 논찬자는 해외 선교현장에 대한 경험이 없음과 또한 선교학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글의 논찬자로서 한계가 있음을 먼저 밝히고 싶다. 다만 신학교에서 신약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로서 이 글에 대한 이해를 함께 나누면서 선교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토론을 갖고자 한다.

 

1. 글의 목차와 논지에 대하여

손창남 선교사의 글은 아래와 같은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들어가는 말 (p. 1)

1. 문제제기 (p. 1)

2. 발제에서 다룬 두 가지 주제 (pp. 1-2)

 

I. 성경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운동 (pp. 2-6)

선교의 정의 (p. 2)

1.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 (pp. 2-4)

2. 사도바울의 선교 사역의 특징 (pp. 4-5)

3. 세계 선교에 나타난 풀뿌리 유형과 바나바-바울 유형 (pp. 5-6)

 

II. 선교적 상황의 변화 (pp. 6-8)

1. 흩어진 사람들 시대 (pp. 6-7)

(1) 교통과 통신의 발달 (pp. 6-7)

(2) 문화와 언어적 통일 (p. 7)

(3) 팩스 로마나 (p. 7)

2. 선교의 위대한 세기 (p. 7)

3. 21세기 (pp. 7-8)

 

나가는 말 (pp. 8-11)

1. 시대적 요청 (pp. 8-10)

2. 한국 교회의 인식의 변화 (pp. 10-11)

 

글의 제목과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손창남 선교사는 신약성경 사도행전 8장~11장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는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선교 -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 주목함으로써 한국교회가 그동안 실행해 왔던 제도권 내지 형식주의적 선교 유형(전통적 선교사 중심의 선교)으로부터 비(非)제도권 또는 역동적 선교 유형(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중심의 선교)으로의 전환 인식과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즉, 이 글은 “사도행전 8장에서부터 12장[11장?]에 이르는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풀뿌리 선교 운동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오늘날 이러한 풀뿌리 선교 운동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선교 정신인 동시에 따라야 할 모델임”(p. 2)을 제안한다. 그렇기에 이 글은 “한국 교회가 따르고자 하는 선교의 [”제도권 내지 형식주의적 선교 유형“이 전제된] 모델이 과연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며 더 나아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이삼세계의 교회들이 따르고 싶은 선교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강한 의문”(p. 1)의 문제 제기로부터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손 선교사는 글의 본론(pp. 2-8)에서 (1) 초대교회 선교적 맥락에서 “흩어진 사람들”(행 8:1; 11:19)의 정체성과 가치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이들을 “풀뿌리 선교”의 전형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서 손 선교사는 “흩어진 사람들”과 바나바-바울(예수의 사도들 포함)의 선교유형을 각각 비교 대조함으로써 전자의 사역이 후자의 사역에 비해 여러 면에서(선교의 주체, 목표, 지역, 조직, 재정 후원, 성취, 전략, 수용성 등) 선교의 파급효과가 더 효율적이고 지대함을 피력하고 있다. 세계 선교역사에서 나타난 모라비안 교도들과 바젤선교회를 “풀뿌리 선교운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기술하는 것은 이에 대한 예증이기도 하다. 글의 본론에서 (2) “풀뿌리 선교운동”의 당위성은 1세기와 21세기의 시대적 상황의 유사성(교통과 통신의 발달, 문화와 언어적 통일, 평화의 시대)뿐 아니라 21세기가 맞이한 선교적 특수성(창의적 접근지역을 중심으로 한 반기독교적 내지 기독교에 대한 배타적 국제상황 그리고 우수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제 3세계의 사회적 상황, 등)에 대한 진술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끝으로 손 선교사는 “나가는 말”(pp. 8-11)에서 "풀뿌리 선교운동“은 지금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선교전략인 것을 강조하면서,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전환을 다섯 가지로 도전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다섯 번째에 언급한 된 것으로, ”풀뿌리 선교운동“이 기존의 ”바나바-바울 유형의 선교“를 대체하거나 배제시키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풀뿌리 선교운동”은 성경적(사도행전의 “흩어진 사람들”), 선교역사적(“모라비안 교도들과 바젤선교회”), 시대요청적(“1세기의 교훈과 21세기의 시대상황”) 맥락에 근거해서 우리 시대에 (한국)교회가 가장 절실히 회복하고 발전시켜야 할 21세기 최선의 선교전략임을 이 글은 제안한다. 

 

2. 동의하는 부분에 대하여

논찬자(이하 필자)는 손창남 선교사의 글(“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을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이 글에서 주요 논지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깊게 동감하고 있음을 밝히고 싶다. 손 선교사의 글은 “풀뿌리 선교운동”에 대한 성경적, 선교역사적, 시대요청적 근거와 함께 본인의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선교에 따른 “현장경험적” 지식과 체험으로 인해 논지가 더욱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구체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1) 먼저 이 글의 논지라 할 수 있는 “풀뿌리 선교 운동”이 오늘 우리 시대에 교회(성도들)가 절실히 회복해야 될 선교정신이자 선교모델이 된다는 입장.

 

(2) “선교”의 개념과 시발점은 사도행전 13장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바울 파송 이전부터 제시되고 있다는 입장.

 

(3)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 언급된 무명(無名)의 “흩어진 사람들”의 복음 전파(선교)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의 기원, 이들의 선교적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입장.

 

(4) “흩어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선교)를 주목하면서 이들이 모두 유대인 디아스포라(헬라파-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타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헬라어와 헬라문화)에 따른 선교적 유용성에 대한 입장.  

 

(5) “나가는 말”에서 제안한 “한국 교회의 인식의 전환”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들에 대한 입장. 특히 네 번째에 언급한 800만의 한인 교포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100만 이상의 이주 노동자와 유학생에 대한 선교는 한국교회의 종말론적 사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3. 고려 및 함께 토론할 부분에 대하여

필자는 이제 손 선교사의 글의 논지가 더욱 강화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 및 토론을 위한 차원에서 몇 가지를 언급하면서 제안해 보고자 한다.

 

(1)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풀뿌리 선교”에 대한 정의가 본문 또는 각주에서 설명되었더라면 더 좋을 듯싶다. 

 

(2) 몇몇 서술된 문장들은 구체적인 참고문헌을 통해 입증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예,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하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1), “풀뿌리의 유형은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바젤 선교회 등의 모습에 잘 나타나고 있다...”(p. 5).

 

(3) 사도행전의 “흩어진 사람들”(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포함)의 선교(“풀뿌리 선교”)와 “바나바-바울”(또는 다른 사도들)의 선교에 대한 묘사가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각 선교운동에서 “극명하게 대조”(p. 5)된다고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좀 더 고려해 보아야 할 듯싶다. 예를 들어 p. 5의 표에서 보여준 대조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난다고 하기 어려우며, 각 경우에 있어서도 그렇게 획일적으로(예, ‘선교의 목표’, ‘재정 후원’, ‘성취’의 영역)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흩어진 사람들”과 “바나바-바울”의 선교운동을 대조함으로써 선교의 두 유형적 모델의 전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또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선교의 두 유형을 염두에 두었는지에 대해서) 필자는 다소 의구심이 있다. 실제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한 안디옥교회는 “풀뿌리 선교”의 열매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흩어진 사람들(빌립 포함)과 바나바-바울의 선교운동은 양편 모두 동일하게 디아스포라(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로서 성령의 주도하심 내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사도)들의 선교 활동은 (그 당시 제도권에 있었던) 유대교 선교(마 23:15 참조)와 비교할 때 “풀뿌리 선교”의 본질적 요소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빌립의 사마리아 복음전도에 증인 역할을 하게 된 베드로는 이 일을 계기로 예루살렘교회의 리더십을 내려놓고 순회전도자로서 사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사마리아 선교본문에서 베드로에 대한 소개가 행 8:25에서 마지막으로 있은 후, 행 10:32 이후부터 베드로가 다시 소개되고 있는데 베드로는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사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 역시 “풀뿌리 선교”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즉, 베드로가 룻다, 욥바를 거쳐 가이사랴까지 가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예루살렘교회의 선교계획이나 재정적 후원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성령에 이끌리어 인도함을 받은 결과였다.

   

(4)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더욱 고려해 볼 때, 로마교회(행 2:9-11 -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회심한 로마 출신의 “흩어진 자들”), 겐그레아교회(롬 16:1에서 언급된 뵈뵈 - 아덴교회 또는 고린도교회의 “흩어진 자들”의 선교?),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교회, 히에라볼리교회(골 4:12; 4:16 - 이 세 교회는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회심한 에바브라의 풀뿌리 선교에 의해 설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아시아 지역의 기타 교회들(행 19:8-10 - 에베소에서 복음을 들었던 자들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음)은 “풀뿌리 선교”의 열매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를 포함하여 롬 16장에 언급된 인물들은 실제로 바울의 “흩어져 있는” 동역자들이다. 

   

(5) “풀뿌리 선교운동” 개념과 관련하여 1세기 유대 및 그레코-로만 사회를 고려할 때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안에서 여성의 존재와 역할은 매우 고무적이라 판단된다(행 1:14; 5:14; 6:1; 8:3, 12; 9:2, 36, 39, 41; 12:13; 16:14; 17:4, 12; 18:2; 21:8-9). 만약 이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오늘날 “풀뿌리 선교운동”에서 차지해야 할 여성의 역할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더욱 확대되고 전문화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손창남 선교사의 통찰력 있는 글과 이 시간의 토론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귀한 동역자들과 교제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것으로 필자의 논찬을 가름하고자 한다. 

     106. 설악포럼 2015-8: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에 대한 논평 (이한수, 총신대학교)
     104. 설악포럼 2015-6: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 풀뿌리 선교 모델 (손창남, O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