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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5-6: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 풀뿌리 선교 모델 (손창남, OMF)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9 09:42:33]  HIT :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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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 풀뿌리 선교 모델

(선교한국 파트너스 포럼 발제, 2012년 5월 8일) 

손창남, OMF

 

들어가는 말

 

1.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

 

퍼스펙티브스 교재에 있는 “구글 (google) 검색에도 문제없는 투명성”이라는 글 퍼스펙티브스 2, 4th ed. p148

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한적 접근’지역인 한 나라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동안 비신자 한 사람이 내 아내와 2년 이상 성경공부를 해왔다. 2년이 지날 무렵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내 친구들이 당신들은 선교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계속 아니라고 했어요.”

나는 호기심이 생겨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당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니 선교사일 리가 없지요.”

이 대답에 우리는 크게 놀랐다........

 

얼마 전 출간 된 졸저 ‘족자비안 나이트’를 읽은 불신자가 써서 올린 독후감의 일부다. 참고로 이 사람은 아마도 제목을 보고 무슨 나이트에서 생긴 일을 적은 책으로 오해한 것 같다.

 

앞서 밝히지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교? 오..아니다 나는 무교다. 신보다는 자연의 존재, 그리고 운명보다는 우연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 한다 

.......... (중략)

이 책도 실수로 고른 것이다... 그냥 제목이 독특하고 그림이 귀엽고 소설이 내게 거는 말투가 굉장히 친근했기 때문이다... 오 나의 성급함.

하지만 기독교가 아니어도 이 책은 내게 많은걸 알려주고  거부감 또한 잠재워준다

솔직히 선교사하면 나쁜 이미지가 많았다.

약한 의지를 맹목적으로 종교에 쏟아 붓는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국사나 세계지리 시간에 배울 때면 선교사들은 나라마다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대로 해서 원주민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있어 '선교사'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존재라고 의식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손창남 씨는 다르다. .......... (생략)

 

2. 선교하는 사람의 동원

 

위의 예들에서도 보는 것처럼 “선교사”라는 단어는 어떤 극단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용도 폐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OMF에서는 대내외적으로 선교사 (missionary)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저 단체의 회원 (member)라고 한다.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개방된 지역, 창의적 접근 지역을 막론하고 점점 더 작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선교 (mission)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번 포럼의 주제부터도 “어떤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인가”에서 “어떤 선교를 할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선교 동원의 파라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선교사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선교하는 사람들을 동원해야 한다. 본 발제에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에 대한 새로운 조명, 그리고 현재의 선교적 상황과 이에 맞는 선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선교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서 다루었다.

 

I. 성경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 운동

 

1. 선교의 정의 

 

한국 교회가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고, 지난 25년 동안 선교의 붐을 이룬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가 얼마나 파송되었는가 하는 물량적 기준으로 선교를 인식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한국이 2위 선교국가”가 되었다는 이 표현은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로 이야기 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이 말 가운데는 은연중 선교란 ‘전통적 의미의 선교사’들이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여기에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그 선교사를 중심으로 해서 파송교회, 선교단체, 후원자, 이들이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선교인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기저에는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에 파송했다고 하는 사실을 선교의 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모종의 컨센서스에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선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13장의 파송이 진정한 선교의 출발점인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최근 들어 확대되어 가는 선교의 개념을 생각할 때 선교를 정의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하고 세련된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도 결국 “선교란 타문화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하는 정의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대 전제 속에서 사도행전을 다시 본다면 선교는 13장에 나타나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

 

발제자는 성경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사도행전 8장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핍박을 피해서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과 안디옥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선교라는 차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에서 두 번 나타나는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8장 1절: “........ 흩어지니라.”

11장 19절: “..... 흩어진 사람들이”

 

이들 모두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각지로 흩어진 것이다. 이들이 동일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동일한 그룹에서 나왔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대상을 상대로 복음을 전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8장 5절에서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빌립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7명의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나온다. 5절과 12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은 문화적으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요한 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의 입에서 결국 “그러면 당신이 메시아입니까?”하고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미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11장 20절에서 안디옥의 헬라인에게 갔던 동일한 흩어진 사람들은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kyrios)란 당시 헬라의 신들에게 사용되었던 경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 적절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매우 타문화적인 사람들이면 이런 면에서 이들이 선교를 했다고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타문화 사역을 하기에 적절했다고 하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디아스포라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말씀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흩어졌다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던 이들이었음을 말해주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다. 그들은 외국 문화와 언어에 능통했을 것이며 다른 디아스포라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좇았던 제자들, 즉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리었던 그룹의 사람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이라고 1장과 2장에 걸쳐 두 번이나 지칭되고 있다. 하지만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제자들의 타문화 사역에서의 역할은 미미해 보인다. 

사도행전 전체를 보면 갈릴리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마치 계주의 새로운 주자에게 바톤이 이어지는 것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흔적은 사도행전 11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20장에 가이사랴에서 계속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빌립 집사, 21장의 오래된 제자 나손,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삼관까지 나왔던 다른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고 있다. 

 

3.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의 특징

하지만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바나바와 사도 바울의 선교 팀의 역할은 위에서 언급한 풀뿌리 선교의 모델과는 달라 보인다. 특히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이 흩어진 자들과 현저히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9장 15절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다메석에서 눈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바울에게 안수하도록 하신다. 그 때에 바울이 장차 할 일을 이야기 하는데, “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하고 말한다. 

 

여기에 열거 된 세 그룹이 통일성을 가지는 그룹이 아님은 매우 명백하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종족적으로 말한 것이지만 임금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21장에서 바울이 체포되면서부터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가이사를 포함해서 당시의 총독과 분봉왕들 앞에서 왜 자신이 죄수의 신분이 되었으면 가이사에게 상소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9장 21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로마에 가려고 하는 것이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로마서에서도 그는 그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사도행전 28장에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의 형제들이 아삐아 저자와 삼관까기 마중을 나온 것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 오기 전에 이미 복음은 전파되고 형제들의 공동체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간 것이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닦은 터 위에 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흩어진 사람들에 의한 풀뿌리 선교 운동과 바나바와 바울에 의해서 시작된 선교운동을 아래의 표를 통해서 살펴보면 보다 극명하게 대조를 느낄 수 있다.

 

(첨부파일 참조)

 

4. 세계 선교에 나타난 풀뿌리 유형과 바-바 유형

선교의 역사를 보아도 선교가 진행되는 모든 형태를 풀뿌리 유형과 바-바 유형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일찍이 F. F. Bruce는 2세기 말 초대 영국 선교 사역에서 평신도의 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고올 (Gaul)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날마다 사업장을 통해서 선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 

 

풀뿌리의 유형은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바젤 선교회 등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파송한다면 세계 선교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생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 1732년에서 1760년 사이에 무려 226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10여개 국으로 파송되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세인트 크로이 섬, 수리남, 남아프리카, 북미, 자메이카, 엔티가 섬등으로 파송되어 나갔다. 그들은 에스키모인들과의 교역을 하여 남은 이익으로 선교 사역을 하기도 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후에 바젤 선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회사의 운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면서 선교를 한 풀뿌리 선교 운동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오히려 식민지 국가의 교회들이 자국의 선교사들을 피식민지에 파송하는 형태의 선교가 진행되면서 풀뿌리 유형보다는 바-바 유형이 선교의 전형처럼 나타나게 되었다. 전형적인 선교사의 유형이 바-바 유형과 비슷한 것은 다음 도표에 잘 나타난다. 

 

(첨부파일 참조)

 

II. 선교적 상황의 변화

 

하나님께서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역사 속에서 허락해 주셨다. 특히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나갔던 때와,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도 흡사한 면이 있다. 물론 2세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이 나갈 때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로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1. 흩어진 사람들 시대

 

성경은 흩어진 사람들의 사회적 배경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로마가 지중해를 감싸는 대제국을 이루고 있는 때였다. 누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이사 아구스도 때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를 최대로 확장해 놓았던 율리우스 씨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고, 후에 아구스도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양부가 확정해 놓은 로마를 50년의 치세 동안 잘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확정된 로마 제국은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교통과 통신의 발달

로마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도로를 만들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것이다. 로마 마일로 일 마일은 굽어지지 않아야 하며, 로마의 전차가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도로를 이용하면 아무리 변방에서도 말을 달려 로마 까지 수일 안에 파발을 전달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로마 제국에서의 교통과 통신은 그 전 어느 시대에도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통과 통신망을 통해서 복음은 로마제국의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2) 문화와 언어적 통일

로마 사람들은 군사적으로는 강대했으나 문명적으로는 헬라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심지어 로마에서 고관들은 자기 자신의 자녀들에게 헬라어를 가르치기 위해 요즘 영어의 열기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로마 제국의 많은 곳에서 코이네 헬라어가 통용되었으며, 신약 성경은 바로 이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어서 많은 지역에서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해될 수 있었다.

 

(3) 팩스 로마나

로마 제국 내에서는 어디나 여행을 위한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여전히 분쟁이 있지만 오늘날처럼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던 때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로마 시대에 종교적 핍박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핍박이 오히려 풀뿌리 선교사들의 이동성 (Mobility)를 높여주었다.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경우

 

2. 선교의 위대한 세기 (19, 20 세기)

 

지난 18세기 말부터 윌리암 캐리로부터 시작된 개신교 선교에 있어서의 황금기는 식민지 개척을 통한 제 2의 로마시대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면서 식민지 국가의 선교사들이 주로 피식민지를 향해 나갔다. 이것은 로마 멸망 이후 거의 1000년 동안 세상이 별다른 대변혁 없이 지냈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선교의 위대한 세기는 15세기 말에 있었던 새로운 지리적 발견과 항해술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항해술이 발달하여 선원들은 근해를 벗어나 원근해로 심지어는 대륙을 넘나드는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육로의 통행이 주는 번거로움이나 방해 (예를 들어 육로 아시아로 가기에는 이슬람 제국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 등이 있었음)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지리적 발견 또한 주로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국한된 세계를 넓혀 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구 세계로 하여금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와 호주 등에 대해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게 해 주었다. 의학적인 진보도 항해에서 발생하는 병들에 대한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거의 미신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의료를 통한 선교는 절대적인 민중의 환영을 받았다. 교육을 통한 선교 또한 매우 효과적이어서 소위 미션 스쿨이라고 하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이 많이 세워지고 이것이 기독교를 소개하는 좋은 교량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선교에 대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 시대에 이루어진 많은 개신교 선교가 식민지와 함께 했다고 하는 오명을 벗기가 어렵다.

 

3. 더 놀라운 21세기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피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선교사들의 선교지 진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Ralph Winter가 말한 “믿을 수 없는 25년 (1945-1969) 사이에 서구 여러 나라들은 비서구 세계의 5%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렸다. 20세기 후반부에 수십 개의 나라가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를 수립했으며, 유엔에 가입했다. 이들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교사들은 더 이상 우월한 지위에서 사역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CAN(Creative Access Nations) 지역은 물론이고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OAN(Open Access Nations) 지역에서조차 선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흩어진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선교사가 아닌 형태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의 폭은 더 커지고 있다.

 

이제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선교의 상황은 매우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인류에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다. 1853년 허드슨 테일러가 영국을 떠나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는 데만 6개월이 소요되었다. 영국 선교사가 운남성으로 가려면 도보로 다시 몇 개월을 소비해야만 했다.

 

최근 들어 통신의 속도는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같은 영화, 같은 음악을 사람들이 감상하고 있다. 분쟁지역을 제외한 몇 나라를 제외하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화로 인하여 세상은 급속도로 좁아지고 있다. 이제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40, 50년 전에 비하면 국내에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싸고, 조금 더 노력을 요하는 일 정도로 생각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통신은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록 진행되고 있다. 

 

III. 시대적 요청

 

1. 좁아지는 전통적 선교의 문

 

우선 상당히 많은 선교지에 선교사들이 더 이상 쉽게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몇 십 년 전에도 선교지가 선교사를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들이 세계열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식민 지배를 하던 나라들이었다.) 그리하여 피선교지 정부가 선교사의 자국 체류를 싫어해도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의 정부가 무서워서 선교사를 쫓아내지 못하거나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자국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문이 열려 있다. 더욱이 이슬람 국가들이나 여전히 공산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는 선교사라고 하는 신분으로 입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역을 창의적 접근지역이라 부른다. 하지만 설령 우리가 개방된 나라라고 부르는 일본, 태국, 대만 같은 곳에서도 사실 상황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런 나라에 들어갈 때 선교사 비자를 받아 가기는 하지만 100년 전처럼 혹은 50년 전처럼 선교사라고 하는 외국인에게 현지인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개방된 지역에서 선교사들은 다시 현지인들과의 새로운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만 한다. 태국이나 일본 같은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한다 해도 사람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전도 이전에 태권도를 가르친다든지, 기타를 가르친다든지, 영어를 가르친다든지, 혹은 한국 요리를 가르치면서 접촉점을 만들려고 애쓴다. 

 

또한 전통적인 선교사는 선교지에 갈 때 일반적으로 매우 높은 비용의 지출을 전제로 한다. 선교본부를 운영해야 하고, 여러 가지 멤버 케어를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하면 선교사들이 모금하는 액수는 높아지게 된다. 이런 재정적 운영 형태가 되어서는 한정된 숫자의 선교사 밖에는 파송하기가 어렵다. 한국 교회가 2만 명의 선교를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줄잡아 연간 5억불 가량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를 추가로 더 파송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의 재정적 부담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다.

 

물론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가 모두 자비량 선교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신도 전문인의 경우는 적어도 전통적인 선교사에 비해서 재정의 전부 또는 일부를 벌면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선교방식이 아닌 평신도 전문인의 경우 스스로가 재원을 조달함으로 파송 교회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

 

발제자가 인도네시아에서 교수 사역을 할 때 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어떻게 이슬람이 전파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세 가지 강력한 가설이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둘째, 인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셋째, 중국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발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세 가지 가설 속에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이들이 모두 상인들이라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선교의 모델이야말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2세기 스코틀랜드에 간 풀뿌리 선교사들의 모듭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제 이슬람은 성경에 나타난 모습으로 효과적인 선교를 하는 반면 기독교는 오히려 선교에 있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형상으로 비쳐진다. 

 

2. 인식의 전환 

 

한국 교회들이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지난 2세기의 전통적인 선교사 중심의 선교에서 흩어진 사람들 즉 풀뿌리로 선교가 그 운동력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1) 종교다원주의 사회의 전제 

이 말은 모든 선교지역을 창의적 접근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창의적 접근 지역에 진입할 때는 물론 더 조심을 해야 하지만 개방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종교다원주의 등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고자세적인 태도에 대해서 냉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가 큰 소리 치며 다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인식을 빨리 해야 한다. 

 

(2) 선교사적 삶의 강조 

평신도 전문인으로서 선교지에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본국에 있을 때 자신이 선교사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중국 내지 선교회를 창설하여 중국 선교에 큰 기여를 한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선교지에 간다고 해서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만약 자기의 본국에서 선교사가 아니라면 배를 타고 간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선교지에 가서 직업을 통해 선교를 하려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본국에서 그런 직업을 가져 보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본국에서 익숙한 직업을 선교지에서 그대로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가 직업을 가지고 본국에서 사역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그는 선교지에서 사역을 통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본국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사역을 감당하는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약함으로부터의 선교 

선교는 강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흩어진 성도들처럼 연약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사도 바울 일행은 선교지에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가져다주었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교비를 가져다 선교지에 전달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후진 유대가 부유하고 강력한 로마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4) 새롭게 주어진 기회

두 가지 새로운 기회를 주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고 계시는데, 하나는 800만에 달하는 한국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이며, 또 하나는 100만이 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라고 하는 타이틀보다 타문화 사역이 가능한 지역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5) 바-바 유형의 선교의 필요

대표적인 바-바 유형의 선교라고 볼 수 있는 지난 위대한 세기의 선교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윌리암 캐리로 시작된 해안선 선교 시대, 그 후 허드슨 테일러에 의해서 시작된 내지 선교 시대, 그리고 타운젠드에 의해서 시작된 종족 선교 시대로 나누며 최근에는 마치 종족 선교만이 제대로 된 선교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미전도 종족에 대한 전략의 수립 등이야말로 대표적인 바-바 선교 운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미전도 종족 사역이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3. 직업과 선교와의 관계

 

아래의 표는 선교지에서 직업을 사용할 때 여러 가지 타입을 고려해 볼 수 있음을 나타내준다. 

 

(첨부파일 참조)

 

1, 2, 3 유형은 선교 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를 말한다. 1유형은 직업이 없이 선교사 비자로 선교지에 가는 선교사를 말한다. 2유형은 원래는 1유형에 속하는 선교사이나 CAN지역에 가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직업 비자를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3유형은 1,2 유형과는 다르지만 선교부에 소속되어 있는 멤버라는 면에서 1,2 유형과 같다. 이들은 원래의 직업인이었으나 선교사가 된 경우이다.

 

반면 3,4,5 유형은 전형적인 직업인을 말한다. 3유형은 선교단체의 회원이 되어 재정적 사역적 책무를 이행하는 경우이며, 4유형은 선교지에 있으며 선교를 감당하지만 선교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3유형과 대비된다. 5유형은 국내에 있지만 외국 노동자들이나 유학생, 결혼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감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들 모두가 훌륭한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 최근에 들은 S교회의 전 집사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송우리 지역에서 많은 외국 근로자들을 도우면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의정부 송우리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전 집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교회와 상관 없이 개인적으로 이미 수 년 전부터 홀로 전도해왔으며, S교회로만 베트남인들이 오는 줄로 알았고, 이주노동자는 베트남인만 있는 줄 알고 있던 저에게 그 당시 이미 17개국에서 10만 명 이상이 와 있고, 계속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전 집사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외버스 매표소겸 간이 매점을 하는 사장님과도 친분을 쌓아 놓고, 길을 잃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으면 전 집사에게 연락하도록 하여, 언제든지 달려가서 국적과 상관없이 그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함께 뛰어다녔다는 것을 가게 주인으로부터 듣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복음전도지를 만들어 전하다가, 러시아인과 우즈벡 사람을 만나면 소련선교회에 찾아가서 번역해달라고 졸라 작성한 러시아어판을 자신이 복사하여 나눠주고 다녔으며, 중국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불어 등으로 점점 종류를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자가용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다니고, 눈길을 걸어 다니며 전했다는 말을 들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송우리에는 우리병원이 있습니다.  송우리 장로교회의 장로님이 원장으로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딱한 사정에 처한 한 우즈벡 노동자의 사연을 듣고 전 집사님은 달려갔습니다. 양계장에서 일하다가 감전되어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버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등에 구더기가 생길 정도로 방치되어 있던 사람인데 전 집사는 매일 찾아가서 상처를 닦아 주고 의식이 흐린 환자에게 말을 걸어 고향과 가족을 물었습니다.

 

전 집사는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다른 우즈벡인들에게 이 사람의 사정을 알리고 한국어를 조금이나마 알아듣는 그들에게 통역을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고향이 어디냐? 가족에게 알려 주겠다. 등등을 통역하게 하였더니 통역하던 우즈벡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후 고향에도 알려서 부친과도 통화했으나 가난한 그들은 한국으로 찾아 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우즈벡인 환자는 사망하였고, 그동안 밀린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서 시신도 내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전 집사님은 우즈벡 대사관에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렸고, 새문안교회의 지인들에게도 모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기에 장로이셨던 병원장에게 신앙으로 호소하여 시신인도를 허락받았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화장하여 어렵게 찾아 온 죽은 이의 부친에게 인도해 주었더니 죽은 이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장례를 함께 치루었던 우즈벡 대사관 직원이 한국인들 중에 당신 같은 선한 사람도 있었느냐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시신으로 돌아간 우즈벡인들이 많았기에 한국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노라고 했다고 합니다.

 

전 집사님을 따라 그동안 전 집사님이 친해 놓은 우즈벡인 노동자 숙소에 찾아가니 '천사 전'이 왔다고 하더군요. 우즈벡 말을 못해서 복음을 자세히 전할 수 없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전 집사님이 말하기에 궁리 끝에 새문안교회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파송한 정균오선교사님께 편지를 보내 도와달라고 부탁하였고, 그 후 서울에 출장 나온 정균오선교사님을 강제로 끌고 우즈벡인들 숙소에 데려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모두들 무슬림이었고, 그들 가운데는 이맘도 있었는데, 전 집사님과 제가 눈물로 중보기도하는 중에 복음을 전하는 정균오 선교사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말없이 다 듣고 난 후 10여 명 중에서 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영접기도를 하는 정균오선교사도 울고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 후 그들이 기쁨으로 나눠주는 그들이 직접 만든 우즈벡 빵과 양고기를 먹으며 나눈 저녁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4. 21세기가 요구하는 선교사

 

본 발제에서 강조한 1세기 초대교회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재현될 상황이 무르익었다면 그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선교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흩어진 사람들은 다음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1) 전염성이 강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니는 세력들을 피해 도망가면서도 복음을 전했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경험한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은 어떤 면에서 단순하고 원색적인 복음이었다. 

 

(2) 타문화 사역을 이해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가 아니고 복음을 듣는 수신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확실하게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는 해외에 산다고 해서 저절로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3)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헌신한 사람들

이들은 주님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한 지상명령을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4) 움직이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많은 곳을 다니며 사람들과 접촉하며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근 OMF에서는 CAN지역으로 보내는 회원들에게 MBA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선교사가 된 사람에게 누가 후원을 해서 MBA를 공부할 것인가이다. 

 

(5) 영원한 정체성

선교사가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이 아니다. 제자가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이다. 그런 면에서 CIM을 시작한 허드슨 테일러의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당신을 모든 면에서 최대한 예수님을 닮게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라면,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와 겸손의 삶으로 이끄실 것이고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셔서 결코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따르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른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시는 일인데 당신은 못하게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다른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여 하는 일들을 당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당신이 하려고 시도할 때 일이 잘 안되어 주가 꾸짖으시는 것을 경험하고 깊이 후회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사역, 성공, 자기가 쓴 글을 자랑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는 당신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허락하지 않으시는데 그런 일을 하면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고 당신과 당신이 했던 선한 사역을 혐오스럽게 만들 것이다.

 

   ‘다른 사람은 돈도 잘 벌게 해주시는데 당신은 계속 가난하게 만드실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갖게 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보물 창고로부터 날마다 친히 공급해 주시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주님은 다른 사람에게는 명예를 주시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데 당신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 무명의 사람으로 있게 하실 수 있다. 그늘에서 생산되는 향기로운 열매를 특별히 재림의 영광을 위해서 예비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그분을 위해서 일 하도록 하시고 이름도 나게 하시는데 당신은 애써 일을 하기는 하는데 그 일을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당신의 일을 더욱 소중하게 하기 위해 당신이 한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그 공이 돌아가게도 하신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당신의 상은 열배로 많아질 것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을 특별한 잣대로 관리하신다. 시기하시는 사랑으로, 다른 성도들에게는 그냥 지나치실 일도 당신에게는 사소한 말이나 감정, 약간의 시간 낭비도 지적하며 꾸짖으신다. 그러니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 하나님은 무한하신 주권자이셔서 원하는 대로 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그리고 당신을 다루시는 일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수천 가지 있어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으실 수 있다. 그분은 당신이 온전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할 때 질투하시는 사랑으로 당신을 감싸 안으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아무 갈등 없이 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을 당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다.

 

   ‘당신을 성령께서 직접 다루시도록 해야 한다. 영원히 그렇게 하라. 그분이

 당신의 혀를 재갈 먹이고 손을 묶으며 눈을 감게 하는 권리를 가지셔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대우하지 않으신다. 이제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그렇게 사로잡히면 성령께서 후견인이 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하게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럴 때, 당신은 하늘로 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로마제국 이후 2000년 만에 허락하신 “더 놀라운 21세기 ” 환경에 필요한 선교사들일 것이다.  

 

     105. 설악포럼 2015-7: 손창남 선교사의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103. 설악포럼 2015-5: 초대교회의 풀뿌리 선교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손창남, O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