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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설악포럼 2019-7: 풀뿌리 선교인의 과제 프린트   
정유미  Email [2019-04-23 15:20:10]  HIT : 75  

풀뿌리 선교인의 과제

 

0. 선교사가 아니면서 국내외에서 문화를 넘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풀뿌리 선교운동에 대한 논의 이전부터 있었다. 일상에서 전도에 힘쓰거나 선교에 관심을 가진 성도가 다문화 환경에 노출되면서 선교적 실천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해외에 나가 일정기간 생활할 기회도 늘어나면서 선교 실천의 필요성을 깨닫는 선교사 아닌 선교자원들도 늘고 있다.

앞으로도 풀뿌리 선교인으로 정의할 수 있는 선교자원들은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인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풀뿌리 선교인들이 그 사명을 깨닫고, 효과적으로 선교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여기에서는 풀뿌리 선교인이 맞닥뜨릴 수 있는 몇 가지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개인적 차원의 과제도 있지만 상당수 과제는 지역교회와 관련되어 있다.

발제를 위해 풀뿌리 선교자원이라 할 수 있는 3명을 전화면접 하였다. 발제자를 포함하면 4명을 심층면접 한 셈이다. (2명은 국내 외국인 사역, 2명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평신도 선교단체 사역 경험. 2명은 말레이시아 / 2명은 인도네시아 거주 중이거나 거주한 바 있음. 이상 중복) 또한, 직접 면접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인 선교단체에서 사역하는 몇몇 직장인들의 사례를 참고하였다. (평신도 직장인 선교사역은 타문화 사역은 아니지만 풀뿌리 선교인이 맞닥뜨리게 될 과제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있어 활용) 면접을 한 풀뿌리 선교자원들이 모두 현 시점에서 모범적인 선교 실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면접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아니다. 본 발제의 목적이 풀뿌리 선교인이 당면할 수 있는 과제를 소개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이들을 면접한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본 발제는 발제자의 제한된 경험과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한 면접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선교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1. 이해의 부족 일반적인 현실에서 선교는 평범한 성도들의 것이 아니다. 선교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헌신되고 훈련받은 사람들의 것이다. 보통의 성도들은 선교사를 보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교사를 도울지언정 선교의 주역은 아니다. 이런 현실 속에 풀뿌리 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이들이 선교를 나의 사명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필요성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하지만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선교적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사가 아니면서 지역교회에서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선교에 관심이 있는 성도들은 교회 선교부에 소속되어 선교 관련 행정을 보조하고 선교사를 돕거나 단기선교여행과 같은 선교 관련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방법으로 선교에 동참한다. 가치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지역교회에서는 선교사가 아닌 이들에게 보통 이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풀뿌리 선교인으로써의 삶에 대해 무관심할 뿐 아니라 그러한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풀뿌리 선교인들이 그 잠재력을 개발하고 실현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다. 선교적 환경과 자극에 대한 노출이 제한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인교회에서도 선교사가 아닌 이들이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면접을 하며 만났거나 주위에서 관찰한 해외 거주 풀뿌리 선교자원 중에는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복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나눌 수 있고,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선교적 삶을 실천할 것을 도전받고 격려받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한인교회 목회자 뿐 아니라 선교사들도 평신도들은 돕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선교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한인사회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라고 해서 선교적 환경에 더 노출되어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는 이해하기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또 글로벌 환경이 변화하는 추세를 보며 풀뿌리 선교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로 면접을 위해 연락한 한 성도는 면접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풀뿌리 선교에 대한 것이라고 답해 주자 많이 묻지 않고도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 차리기도 하였다.

풀뿌리 선교가 운동이 된다면 그것은 어려운 개념을 힘들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이미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던 것을 분명히 해주는 작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 주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말하고 많은 사람이 들으면 이해도가 올라가고 운동에 동의하는 사람도 늘어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풀뿌리 선교라는 이름짓기는 꽤나 적절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지역교회의 구조 - 선교적 실천에 대해 잠재력이 있는 이들은 선교 뿐 아니라 대체로 다른 분야에서도 은사와 열심이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지역교회에서 쓸모가 많은 일꾼이다. 그러면 대체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부서에서 봉사를 요구받는다.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여러 선교회와 위원회 등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지역교회에서 직분과 기능을 맡아 행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모두 중요하고 귀한 일들이다. 문제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풀뿌리 선교인들은 전임사역자가 아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해야 한다. 직업과 사역을 조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인데 지역교회에서조차 많은 기능과 직분을 맡게 되면 선교적 실천에 대한 잠재력은 실현되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교회에서는 지역교회의 틀 안에서 행하는 가시적인 활동만을 평신도의 사역과 봉사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밖에서의 전도와 선교의 삶은 인정받지 못할 때가 않다. 삶 속에서 풀뿌리 선교인으로 살려는 이들이 지역교회에서는 봉사하려 하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교회에서 선교에 관심있는 성도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교의 주역이 되기보다는 선교위원회 등에 속하여 행정을 맡던지, 단발성 행사를 기획하고 치러내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 한인교회에서도 선교는 삶이 아니라 이벤트인 경우가 많다. 1년에 몇 차례 있는 원주민 교회 방문, 단기선교, 지역주민 초청행사, 지역 한인선교사 모임 지원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많은 지역교회에서 선교는 하나의 부서이고, 기능이다. 선교적 지향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역교회는 너무 행정 과잉이다. (공기업에서 17년째 엘리트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교회가 정부보다 회사보다 훨씬 더 회사 같고 관료적이라고 느낀다.)

풀뿌리 선교인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려면 선교가 교회의 여러 기능 중 하나가 아닌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선교적 교회가 필요하다.

 

2. 모델의 부재 - 풀뿌리 선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듣고 나면 총론에서 동의하기는 쉽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 그럼 뭘하지? 뭘 어떻게 하면 되지?’, ‘성경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풀뿌리 선교의 모델은 이해가 되는데,, 그럼 지금 상황에서 풀뿌리 선교는 어떻게 하는 것이지?’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한 마디로 막막한 것이다.

지역교회나 선교사들도 풀뿌리 선교인들의 선교적 실천을 돕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 사역자가 아닌 사람들이 사역의 보조자에 그치지 않고 사역의 주역으로 참여하는 것에 모두가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울 수도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직장인 사역단체에서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전반적으로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의 사역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에도 사역이 평신도들의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이를 지지해 주는 목회자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평신도들이 사역자로서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없다.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이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물론 평신도 사역자들의 입장에선 실제적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지지와 격려만으로도 감사하긴 하다. 국내에서 평신도 사역자들의 상황이 이럴진대 다문화 환경에서 선교적 실천을 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은 더 어렵다. 콘텐츠가 없다. 각론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래도 캠퍼스 선교단체 같은 곳에서의 훈련과 사역 경험이 있는 경우가 시작하기가 쉽다. 이미 받은 훈련이나 사역 경험을 확장해서 다문화 환경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경험도 없는 경우라면 더 막막하다.

면접에서 국내 외국인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던 한 성도도 이런 어려움을 표시하며 적절한 모델, 또는 사례가 소개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미 그러한 삶을 살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의 사례를 발굴하여 소개하면 좋을 것이다.

지난 포럼 논의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풀뿌리 선교라는 개념은 엄밀하게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 ‘풀뿌리 선교인을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도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풀뿌리 선교자체가 엄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고 좀 느슨하게 정의를 해야 하는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막막할 수 있다.

풀뿌리 선교인들의 선교실천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양태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델과 사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면 막연하고 분명하지 않던 풀뿌리 선교 실천이 조금 더 분명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 저렇게 사는 분들도 있었구나’, ‘, 저런 섬김의 방법도 있구나하는 깨달음들도 나오고, 따를 수 있는 모델도 나오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충분히 수집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사역 모델을 유형별로 체계화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사역을 평가해서 보완하거나 수정할 부분들을 찾아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확산이 용이한 사례와 모델이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풀뿌리 선교인들이 선교적 실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구비하는 것을 돕는 훈련 프로그램 개발도 가능하다.

 

3. 타문화 이해 부족 - 풀뿌리 선교인의 선교실천은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과의 접촉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해당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훈련과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다면 타문화권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면접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반면,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풀뿌리 선교 실천에 있어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복음과 선교에 대한 지향점이 올바르면 타문화에 대한 이해는 여러 방법을 통해 쌓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다른 문화를 배워 나가는 과정 자체가 다른 생각과 종교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며 우정을 쌓는 선교의 여정이 될 수 있다.

다른 문화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니라 어떤 시각으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까 하는 관점일 것이다. 어떤 문화를 오래 접하고 배운다고 해도 닫힌 관점으로 그렇게 한다면 편견만 더욱 쌓이게 된다. 아예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못할 수 있다. 특히, 해외 한인교회에서 열린 관점을 가지고 살고 있는 문화를 바라보는 훈련이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지역에 오래 산다고 해서 속해 있는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교민사회에 사는 한계 때문에 세계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적으로 본국에 있을 때보다 다양한 훈련이나 교육 프로그램의 기회도 많지 않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KOSTA처럼 해외에 있는 디아스포라 선교자원들을 깨우고 훈련시키기 위한 노력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 직업과의 조화, 삶의 균형 풀뿌리 선교인들은 전임사역자가 아니다. 직업과 선교적 실천을 조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요즘엔 전반적으로 직장에서 노동강도가 더 높아져서 직업과 가정, 생활을 조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에서 월급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교적 삶이 아니라 그냥 삶도 힘들다.

이런 상황 속에서 풀뿌리 선교인들이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열매를 거두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 선교에 관심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정한 기간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나가지만 그 기간 동안 괄목한 만한 선교적 실천을 이루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에도 주어진 여건 하에서 현지인들과 접촉하며 복음을 소개한다던지 하는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는 사례들도 분명히 있다. ,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있던 시간에 싹튼 비젼을 그 주재기간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난 이후에 이루어 가는 경우도 있다.)

풀뿌리 선교인의 선교적 실천에 대한 성과를 장기적으로,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성과를 보자면 보잘 것 없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지향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선교적 삶을 살아내며 이룬 작은 열매들을 모아 크게 평가해 줄 수 있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풀뿌리 선교인들은 신앙의 여정에서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다문화 환경에 노출될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지금 눈에 띄는 진보가 없다 해도 좋다. 그 과정에서 경험과 실패가 쌓이며 성숙해져 가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임이 인정되어야 지속적인 선교적 실천이 가능하다.

풀뿌리 선교인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잘 배분할 필요가 있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직업인들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뿐 아니라 필요할 때에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사역 뿐 아니라 소속된 조직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조심스럽고 지혜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국내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

풀뿌리 선교인의 삶의 균형에 대한 시각 정립과 멘토링이 필요하다. 지금 직업인들 사이에는 워라벨이 중요하다. 일과 생활, 가정 사이에 균형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건강한 선교실천을 위해선 워라벨을 넘어 일과 사역, 생활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고 이를 넘어 이를 통합하고자 하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직업과 선교적 실천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직업을 사역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삶의 현장과 선교적 실천의 장을 일치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인들은 지역교회에서 삶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선교적 삶에 대한 강조는 더욱 그렇다.

 

5. 멘토링의 필요 - 풀뿌리 선교는 대략은 뭔지 알겠는데, 자세히는 뭔지 잘 모르는 개념이 될 수 있다. 사례가 많은 것도, 사역모델이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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