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통한 선교와 한국교회의 선교 

정용갑

1. 서론

해외 선교지로 가는 한인 선교사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분명하고도 참된 선교 신학을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에 한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선교의 장래를 생각하며 설악포럼이 이와 같은 장을 마련한 것은 특별히 의미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본인은 오늘날 한국교회 및 선교의 갱신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기도하며 친교를 나누는 일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일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바라기는 본인도 이와 같은 모임 속에서 동지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며 시간이 허락하는 한 좋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서두에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글은 원래 본인의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것이며, 한글 소논문으로는 『세계선교와 한국교회』 에 한차례 실린 바가 있는 것으로 최소한의 수정만을 하고 설악포럼의 요청에 의하여 제출하는 것임을 알려둔다.  본인은 다만 이 조그마한 참여가 한국교회의 참된 선교운동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본 소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약함을 통한 선교란 무엇인가? 이는 근본적으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선교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가 궁극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약함을 통한 선교를 통해 완수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의 선교 역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약한 위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새로운 시대에 십자가의 약함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왕국의 숨겨진 성격 (hidden character)으로 드러났다. 십자가의 약함은 사실상 강함이다. 그리고 이 약함으로 나타난 십자가의 능력이 어둠의 세력을 빛 앞에 드러나게 하고 무장해제 시켰다. 그러므로 이 약함은 오늘날 교회가 그 사역을 행하는데 있어 반드시 함께 나타나야 할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약한을 통한 선교는 약함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약한 선교, 열매 없는 사역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이 새로운 시대에 십자가의 약함을 통해서 능력과 힘을 발휘하는 길을 택하셨으니, 그리스도의 교회 역시 주님께 충성스럽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 혹은 겸손해지는 것이 강한 것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다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지면관계상 사도행전, 누가복음과 고린도 전후서를 선교신학적으로 다룸으로써만 이 주제를 보고자 한다.

2. 누가복음에 나타난 약함을 통한 선교

약함을 통한 선교라는 주제는 특별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에 잘 나타나고 있다.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를 다루고 있고 또 어떤 중심에 위치한 인물 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 (people on the periphery)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누가복음을 상권이라고 하고 사도행전을 하권이라 할 수 있겠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 (inbreak-ing)으로 말미암은 역전 (reversal)이 나타나고, 사도행전에서는 섬김 혹은 직무 (dia-konia)라는 단어를 다루면서 복음서의 정신을 시작부터 계승하고 있다. 먼저 누가복음 부터 살펴보자. 

누가복음서를 다룰 때 이 복음서를 분해하여 마치 여러가지 제목별로 손쉽게 분류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쓰여진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서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면이 있다. 다만 이 복음서의 기자인 누가가 복음서 전체에서 약함을 통한 선교를 일관성 있고도 깊이있게 다루고 있어 이러한 관점에서 이 주제에 관련된 요소들을 뽑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1 마리아의 찬가 (Magnificat)

누가복음에서는 신분의 역전 혹은 반전 (reversal of status)이라는 주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마리아의 찬가가 바로 이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미리 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한 시골 처녀의 노래인 이 마그니피카트 (Magnificat)가 복음서의 가장 앞 부분에 나오면서 누가복음 전체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예시하고 있다. 

이는 자기의 몸을 통해 세상에 오게 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와 함께 이 세상에서는 역전 (reversal of status)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역전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마리아의 개인의 삶 속에서 행해진 하나님의 일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그 차원이 넓어지면서 이 노래는 인간생활 전체를 다루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로 말미암은 역전이 깊이있게, 돌이킬 수 없게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커다란 하나님의 새로운 역전을 위해 마리아 자신이 선택되고 부름 받았다. 

노래의 본문에서는 반복과 대조가 계속되고 있다. “계집종의 비천함” (1:48)과 “능하신 이” (1:49)가 대조되고 있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1:51), “권세 있는 자를 그 위해서 내리치셨으며” (1:52)가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1:52)”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1장 53절에서는 또 다시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가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와 대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마리아 자신의 삶 속에서 행해진 전능한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다. 가난한 한 시골 처녀를 만나 그녀를 높이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룬 것이다. 이로 보건대 노래 자체가 신학적인 선포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 자신이 약함을 통한 선교의 모형이 되고 있다.

2.2 부자와 가난한 자 

누가복음에서는 또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다. 어느 때에는 두 가지의 주제가 따로, 어느 때에는 두 가지가 대비가 되어 함께 나타난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나 “주린 배를 움켜 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와는 의미가 다르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의 의미가 영해 (靈解) 되지 않는다. 

6장 20-26절에서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하는 반면에 부자들을 향하여는,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고 하였다. 이 구절들에서 예수는 공의의 하나님이 그 왕국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심으로써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간격을 메운다고 말한다.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원하는 자는, 그 왕국이 가난한 자에게 속한 것이기에 가난한 자와 이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의 말은 가난한 자들이 더욱 의롭거나 혹은 왕국을 받기에 자격이 있기 때문에 왕국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이기에 주께로 마음을 돌리며 또 복음과 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들에게 대한 복음은 무엇인가? 부자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 방법은 그들이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나눌 때 가능하다고 예수는 말한다. 

2.3 여자들

누가복음에서는 여자들을 주제로 하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예수를 따르는 초기의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로부터 온 한 무리의 여인들이 있다 (8:1-3). 이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라 다녔는데, 결국 예수의 죽음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랍비가 여자 제자들을 거느리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한 랍비가 여자들의 추종을 허락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을 허락함으로써 예수는 사회적인 장벽을 제거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종류의 교제가 경험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갈릴리로부터 온 이 여인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끝까지 옆에서 지켰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부활하여 빈 무덤이 된 그 곳에 제일 먼저 와 있던 자들이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섬기는 무리로써 그들이 담당한 역할은 매우 중요하여 남자 제자들의 역할과 대조를 이룬다. 예수가 이끈 제자단을 위해 이들이 행한 섬김과 또 예수 당시의 사회에서 그들이 낮은 신분의 사람들로 간주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사역이야말로 약한 위치로부터의 미션이었다 할 수 있겠다.

다른 구절에서도 여자와 남자 사이의 대조를 찾아 볼 수 있다. 7:36-50의 죄 많은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여인은 바리새인 시몬과 대조되는 인물로서 성서는 소개하고 있다. 이 죄인은 여인이요, 시몬은 남자 바리새인인 것이다. 이 여인은 주변적 (peripheral), 즉 소외된 사람이다. 예수, 이 여인, 그리고 바리새인인 시몬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초대 받지 않은 사람, 예수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인 반면, 바리새인 시몬은 이 장면의 중심에 있으며, 예수를 접대하고 (hosting) 그와 함께 앉아 있다. 이 여인이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며 그 머리카락으로 눈물을 닦고,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그에게 부었을 때 시몬과 예수의 반응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드리며 예수를 향하여 감동적인 헌신과 사랑을 표현한 것에 반해 바리새인 시몬의 냉랭함과 무관심은 무척 대조적이다. 이 여인의 섬김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나오는 여제자들의 섬김 (8:2-3)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용서를 베푸는 자로서 그녀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기 위해 그를 교정자로 세우는 것을 본다. 

2.4 과부

약함을 통한 선교의 또 다른 예로 과부를 들 수 있는데 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누가복음서에서 여러 번 나온다 (7:11-17; 18:1-8; 20:45-47; 21:1-4).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한다. 그 중에도 과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누가복음이 쓰여진 당시에는 여자라면 누구나 남자의 보호아래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어머니가 아니면 부인, 아니면 여동생이나 누이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신분으로 남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이들은 여성의 명예를 잃게 되고 수치스러운 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남편이 없기 때문에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자가 된다.  

20장 45-47절과 21장 1-4절의 연속되는 두 단락에서 과부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 두 단락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먼저 20장 45-47절에서 서기관들이 그들의 불선한 행위로 인하여 예수로부터 강한 경고를 받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영향력을 남용하면서도 존경받기를 좋아했다. 또 그들은 종교적인 경건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과부들을 착취하였다. 과부들에게 법적인 도움을 제공하면서 그들로부터 부도덕하게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공중 앞에서 길게 기도함으로 짐짓 경건한 것같이 하며 사람들의 신임을 사고, 이것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그들의 행위는 종교적인 악행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들을 향하여 가장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연속되는 다음 단락인 21장 1-4절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대조되어 나타난다. 비록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보다 많은 돈을 연보궤에 넣었으나 예수는 더 깊은 것을 보고 있었다. 한 가난한 과부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주께 드린 것이다.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서기관들이 그들의 종교적인 영향력을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고 있는데 반하여, 이들 지도자들에 의해 착취를 당하고 있는 한 가난한 과부는 서기관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 과부는 종교 지도자들과 대비가 되고 있다. 

2.5 어린이

약함을 통한 선교의 수행자로서 어린이들이 또한 나타난다 (9:1-50; 10:21-24; 18:15-17). 그들은 위대함, 리더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자 등의 표현을 통해 상징적 존재로 나타난다.

9장 46-48절에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예수는 한 어린 아이를 그들 앞에 세우고, “누구든지 나의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또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 하였다. 여기에 나타나는 뜻은, 누구든지 이 작은 아이를 보면서 그의 배후에 있는 주의 현존을 보며, 또 주를 보내신 아버지의 권위를 볼만큼 참 겸손을 지닌 자가 바로 큰 자라는 것이다.

10장 21-24절에서 다시 “어린 아이들” (헬라어로 “네피오스”)이라는 단어가 지혜롭고 (wise) 슬기 있는 자들 (learned, 학식 있는 자들)에 대조되어 나타난다. 예수는 하나님의 비밀을 지혜롭고 학식있는 자들에게는 숨기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는 것을 아버지께 감사 드렸다. 여기서 어린 아이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켜 언급한 것이지 실제의 어린 아이들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의 제자들을 어린 아이와 같이 묘사하고 또 지혜롭고 학식이 있는 자들과 대조함으로써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10:21)는 그의 비밀을 어떤 학문적인 성취나 역량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맡기시지 않고, 오직 부모에게 절대 의존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제자들에게 맡겼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자신을 여기는 자들을 하나님은 물리치는 것이다. 

18장 15-17절에서는 어린 아기들을 향한 제자들의 태도와 예수의 태도가 비교되어 나타난다. 제자들은 여기서 어린 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을 꾸짖고 있는데, 이는 제자들이 아직도 영적으로 어두움에 가리워져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일어나는 역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구절들의 바로 앞에서 제자들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8:14)는 가르침을 비유를 통하여 들은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또 다른 형태의 역전이 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데 더딘 것을 본다. 

어린 아이들은 누가-행전이 쓰여진 시대의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그렇게 대접받는 것은 고사하고, 그리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열려 있으며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성취하였다고 주장하거나 어떤 성공을 거두었다고 내세우는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수는 어린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무죄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요점은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공적을 내세우는 자세와는 반대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로 예수에게 이끌린다는 것이다.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들 그리고 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가르침에 바로 뒤 따르는 구절인 부자 관원의 이야기 (18:18-30)에서 다시 한번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무언가 자기의 성취와 선행에 의존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젊은 관원은 어린 아기들의 대비가 되는 것이다.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약한 위치로부터의 선교

한 학자는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 혹은 주변적인 사람들 (people on the periphery) 과 관련된 주제들이 사도행전에서는 사라진다고 말한다.  얼른 보면 그의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복음 자체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복음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기록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 누가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의 사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유추컨대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이슈들은 사도행전의 공동체와 거리를 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제기되는 것이었으리라 믿는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예수의 가르침이 신앙공동체의 생활에 끊임없이 적용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와 같은 공동체의 지속적인 존재 자체가 예수의 가르침의 중요성을 더해 주고 있음을 입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형태로 약한 위치로부터의 선교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 가고 있다. 나는 여기서 헬라어 단어 diakonia가 본문에서 어떻게 사용되었고, 또 초대교회의 발전과 diakonia와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한다.

3.1 디아코니아 (Diakonia)

사도행전 1장 17절과 25절에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 디아코니아 (diakonia)는 누가복음 22장 24-30절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지도하는 자 (the one who rules)가 섬기는 자 (the one who serves, 헬라어 diakonon)와 같아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충분히 깨닫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와서는 기조가 달라진다. 제자들이 경험한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일생 동안 잊어버릴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의 부활까지 보았다. 부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처럼 무참하게 죽을 수 있었다면, 이를 통해 예수가 가르친 섬김이 무엇이며, 또 이 섬김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17절에서 베드로는 가룟 유다가 다른 열한 제자와 함께 이 직무 (diakonia)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고 기술함으로써, 예수의 지상사역 시 그와 함께 행한 사도들의 사역이 섬김의 사역 (diakonia)이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1장 25절에서도 역시 봉사 (diakonia)가 사도의 직분에 앞서서 언급됨으로써 그들의 사도직 (apostleship)은 철저히 섬김 (diakonia)에 근거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사도들은 이미 섬김의 사역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누가복음 22장 이후 제자들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6장 1-4절에서는 디아코니아 (diakonia)가 세 번 나타난다.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 과부들이 구제 (diakonia, 6:1)에 빠짐으로 공동체의 연합에 금이 갈 위험이 왔다. 이에 열두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 (diakonize the table)이 마땅치 아니하다” (6:2)고 하며 공동체의 회원들로 하여금 구제에 힘을 씀으로써 사도들의 일을 덜어 줄 수 있는 사람들 일곱을 택하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 전하는 것 (diakonia of the word)을 전무하리라” 하였다. 

이로 보건대 과부를 공평하게 돌보는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직능상 두 개의 섬김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구제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이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명료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헬라어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섬기는 것 (diakonia)이다. 하나는 식탁에서 섬기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6:1-4절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복음화 운동의 초석으로서 디아코니아(diakonia)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를 보여 준다. 다음 부분에서는 바로 이러한 측면을 기독교의 초기 운동 발전과 관련해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3.2 초대교회의 발전과 디아코니아 (Diakonia)

사도행전을 마치 큰 그림처럼 보려 할 때 그 시각이 각각 다를 수 있다. 본인은 여기서 사도행전의 초기 기독교 운동이 어떻게 디아코니아 (diakonia)와 관련되어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는가를 가능한 한 간략히 보려 한다. 우선 6장 1절에서 과부를 돌보는 문제가 일곱 명의 일꾼을 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공궤를 하는 것 (diakonize the table)을 위하여 구별된 자들이다. 이중에 제일 먼저 이름이 언급되었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이 순교는 대 핍박을 낳았다. 핍박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흩어지는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로부터 온 무명의 신자들이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다.

한편 스데반의 순교 이후 빌립이 스데반의 자리를 대신하며 말씀전파에 진력하는 것을 본다. 빌립은 일곱 일꾼이 선택될 때 스데반 다음으로 언급된 이름이다.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가르침대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증거되는 것을 본다. 

안디옥 교회는 이미 많은 헬라인들로 채워져 있다. 더 나아가 이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복음이 널리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증거되도록 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본다.

사도행전 13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바울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는 스데반의 순교 당시 그 옷을 지켰던 청년으로 이미 앞서 소개되어 있다 

(7:58). 스데반과 사울 (바울)의 관계는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사울은 스데반의 마지막 용서의 기도를 들은 인물이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이후 바울은, 그리스도가 아나니아에게 말한대로 (9:18) 스데반과 같이 고난의 종이 된다.  바울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는 모습은 (9:29) 스데반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6:9-12). 또 바울이 성전에서 잡혀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는 인물이라고 고소당하며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모습은 (21:28)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스리는 인물이라고 공격 당하는 모습과 거의 같다 (6:13-14).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바울의 설교의 시작 (22:1)은 스데반의 설교의 시작 (7:2)과 흡사하다.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 있었음을 소상히 설명한다 (22:20). 이런 점에서 바울은 스데반을 대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스데반의 죽음이 여러 면에서 예수의 죽음의 마지막 장면을 닮았다면,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를 들은 바울은 그 사역에 있어서 스데반을 닮은 것을 본다.

우리가 스데반을 섬기는 자의 한 원형 (prototype)으로 볼 수 있을진대, 사도행전 1장 17, 25절에 나타난 디아코니아 (diakonia), 6장부터 시작된 과부를 돌보는 일, 이로 말미암은 두 가지 형태의 디아코니아 (diakonia)의 발전, 그리고 스데반-바울로 이어지는 사역의 유사성 등이 통일성과 계속성을 보여 준다. 동시에 우리는 디아코니아가 사도행전의 큰 뼈대를 형성하는 것도 알 수 있다. 약함을 통한 선교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관통하는 주제가 됨을 본다. 

4.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약함을 통한 선교

 바울을 가리켜 사람들은 십자가의 신학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린도 전후서에는 바울의 십자가의 신학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십자가의 신학 속에서 우리는 약함을 통한 선교라는 주제를 볼 수 있다. 이 두 서신은 특별히 “약함을 통한 강함”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두 서신을 기록한 시기의 차가 있을지라도 기저에 흐르는 이 주제가 둘을 하나로 묶어 준다.

고린도 전서 전체를 읽다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가 통일성 없이 뒤섞여 있는 듯이 보인다. 실제로 고린도 전서 전체가 마치 한 주제에 의해 일관성 있게 서술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신의 바탕에는 십자가의 신학이 깔려 있는 것을 본다. 특별히 서신을 시작하는 1장 과 2장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약함, 고린도 교인들의 약함, 바울 자신의 약함을 설명하면서 근본적으로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게 하고자 한다. 이는 서신 전체가 십자가의 도를 중심으로 한 바탕 위에 쓰여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인은 약함을 통한 선교라는 주제를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4.1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바울은 1장 18-25절에서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복음의 핵심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전능한 하나님의 약함 (1:25), 곧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약함이 갖는 신비성을 고린도 교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바울은 물론 바울이 전한 복음 자체도 오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인간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도록 잔인한 십자가의 뒤에 감춰지고, 또 십자가가 하나님 아들이 지기에는 너무나 굴종적인 것이므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과 약함이 바로 지혜요 권능이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지혜가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는 아무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이 세상에 속한 능력도 십자가 앞에서는 능력을 잃고 만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한” (1:25) 것이다.

4.2 고린도 교인들

1장 26-3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임을 상기시킨다. 이는 결코 그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구원 자체가 하나님의 일관적이고도 위대한 계획의 일부임을 설명하고자 함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은 약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과 같이 낮은 위치에 처한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행위 속에서 바로 하나님의 약함이라는 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이해했어야 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세상 관점으로 바울과 그의 전하는 복음을 판단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들을 택한 이유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려는” (1:27, 28)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선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4.3 바울의 설교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인 자신들에 대해서 언급한 후 바울은 곧 2:1-5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회 교인들 뿐 아니라 바울 자신도 이 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나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 자신의 권위에 어떤 손상도 주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복음 그 자체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약함과 같은 표지가 그와 함께 있다고 바울은 변론한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2:2)을 전하며 고린도 교인들 앞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2:3) 나아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약함은 약함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지혜와 자기 충분 (self-sufficiency)이 쓸모 없음을 보여 주고, 도리어 하나님의 참된 능력의 통로가 되어 그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바울의 생애와 그의 메시지가 세상의 지혜와 다른 것은 바로 이 약함이 동반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하여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와 그의 메시지를 능력으로 인증하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을 신뢰하게 한다. 바울은 이제 그의 메시지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분명하게 함으로 고린도 교인들 앞에서 스스로 옹호를 받는다.

이제까지 우리는 고린도 전서 1:18절로 2장 5절까지 나타난 약함의 신학을 보았다. 약함의 신학의 본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고린도 교인들과 같이 약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구원 행위에서도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이 약함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에게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바울은 복음의 속성과 본질 자체를 잘 설명하면서 자기의 약함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나 자기 자신의 사도직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약함의 사도 (Apostle of weakness)”로서 참된 복음을 그들에게 증거하고 있음을 변론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약함, 그리스도의 약함, 복음 전하는 자 (여기서는 바울)의 약함을 본다. 그러나 그 약함은 하나님의 참된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5. 고린도 후서에 나타난 약함을 통한 선교

고린도 후서에서는 약함을 통한 선교가 고린도 전서보다 더욱 깊고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약함을 통한 선교에 대한 바울의 신학은 고린도 후서에서 가장 심오하게 나타난다. 이 서신에도 여러 가지의 소주제들이 나타나지만 크게 네 소주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고통을 통한 위로, 수치를 통한 영광, 죽음을 통한 생명, 그리고 약함을 통한 강함이다.  그 중에서 지면 관계상 고통을 통한 위로, 수치를 통한 영광, 그리고 약함을 통한 강함 세가지 만을 다루고자 한다.

5.1 고통을 통한 위로

위로에 관한 바울의 언급은 고린도 교인을 향한 축복 (고후 1:3) 직후에 나타난다. 고린도 교인을 향해 구체적으로 자기 변호를 해야 할 것을 알고, 바울은 먼저 그의 편지 서두를 위로 (헬라어로 paraklesis)로 시작하고 있다. 이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목자로서의 바울은 이 위로가 진실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임하기를 구했다. 

그런데 이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과 동시에 사도들 곧 바울과 디모데를 통하여도 온다. 하나님의 위로는 환난 가운데 있는 이 사도들에게 먼저 찾아 왔다. 그리고 이 위로가 이제는 환난을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1:4). 더 분명하게 말하면 사도들이 받은 고난 때문에 이 위로가 그들에게 임했고, 이 고난 때문에 동일한 위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까지 흘러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고난을 받고 있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가 그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은 것 같이 고난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위로는 사도들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이 위로의 통로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이 위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올 때 사도들의 고통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온다. 사도들의 고난이 위로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1장 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그의 위로도 “우리에게 넘치는도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강조점을 바울 자신과 디모데가 받는 위로에 두지 않는다. 도리어 “이 위로가 넘치고 있다” (1:5)고 하면서, “이 위로가 너희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려 하였다. 

고통과 위로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측면이 사도들과 고린도 교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그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고난이 오고 그 후에 위로가 온다. 사도들이 받은 고난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오고, 그 위로로 사도들은 또 다시 고난 받는 고린도 교인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은 특별한 유대 관계를 갖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바라는 것이었다.

“고난을 통한 위로”는 그 형태에 있어서 “약함을 통한 강함”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바울이 이 서신의 시작부터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그의 고난 (예를 들면 1:8 이하에 기록된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이다. 그런데 이 고난이 그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가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를 줌으로써 하나님이 사도들과 함께 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5.2 수치를 통한 영광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의문 중의 하나는 외모로는 별로 볼품이 없어 보이는 바울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복음의 사자요 사도가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바울은 영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며 이 영광이 다름 아닌 바로 수치를 통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2:14-4:6절에서 바울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시작하는 구절 (2:14)을 우리 개역성경으로 읽으면 지금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본문의 본래 의미를 살려 다시 읽는다면 다음과 같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경거리처럼 인도하시고, 우리로 인하여 각처에서 하나님을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여기서 “이기게 하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thriambeuonti)는 본래 “구경거리로 세워놓는다”는 뜻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마치 로마의 개선 장군 뒤에 끌려 다니는 적군의 포로들 처럼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그의 사역을 위해서 맛보아야 했던 부끄럽고 굴욕적인 경험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동시에 바울은 자신에게서 찾고자 했던, 영광 곧 고린도인들이 생각하는 영광에 대하여 그가 받았던 수치의 경험을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살고 있던 고린도인들이 알아 듣기 쉽게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3장 6절부터는 새로운 언약과 옛 언약, 그의 사역과 모세의 사역, 그의 영광과 모세의 영광에 대해서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인식 문제이다. 왜 옛 언약을 위한 사역자 모세에게서 나오는 영광, 곧 없어질 영광 (3:7)은 쉽게 알아 볼 수 있으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새 언약 곧 더 큰 영광의 언약을 전파하는 사도 바울을 통해 빛나는 영광은 인식할 수 없었느냐는 질문이다. 

4장 4절과 6절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이제는 복음의 대변자인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겸손한 바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 빛을 고린도 교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광은 바울 자신도 회심하기 전에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야 했던 것처럼 (사도 9:18), 고린도 교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마음을 덮었던 베일이 벗겨질 때만 비로소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3:14). 베일과 비늘은 어떻게 벗겨지는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미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라고 이해한다면, 3:14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베일이 벗겨진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베일이 벗겨진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쉽게 표현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의 고난, 수치, 저주 (갈 3:13), 죽음, 부활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서신 전체를 통하여 끊임없이 그의 대적자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3:1, 11:4, 12, 13). 이들은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11:4). 바울과 그를 동행하는 디모데가 그리스도를 주로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겸비와 섬김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동안에, 이들 바울의 대적자들은 자신들을 높이며 (11:18) 또 고린도 교인들을 종 삼고, 착취하고, 이용하고 있었다. 자기를 희생하고 부인하는 바울의 복음과 또 그의 모범에 반해, 바울의 대적자들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만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수치의 상징이 되는 십자가의 도를 따름으로 그리스도처럼 수치를 끊임없이 경험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바울에게서 당연히 그의 대적자들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여지는 영광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돌이켜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 때 나타났던 영광, 수치를 통한 영광을 바울에게서 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참 되게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5.3 약함을 통한 강함

고린도 후서에는 본래 4장 7절에서 시작하여 15절까지 “죽음을 통한 생명”을 다루고 있다. 이 소주제 또한 본인이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이 주제가 앞에서 다룬 두 주제와 함께 “약함을 통한 강함”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고, 또 이 서신이 일관성 있게 쓰여지는 과정의 중도에 분명한 목적을 갖고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면 관계상 이 부분의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이제 바울은 11장과 12장에서 약함을 통한 강함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고린도 후서뿐 아니라 고린도 전서에서부터 주장하여 온 바울의 논지의 결론 격이 된다. 그러나 그는 먼저 11:16-12:3절에서 내키지는 않지만 마지못해 자기에 대한 자랑을 하고 있다. 이는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바르지 못한 태도 때문에 부득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랑도 결국에 가서는 자기의 약함을 자랑함으로 글을 맺는다 (11:29-33, 12:5).

그의 자랑이 11장 22절에서 시작하여 그가 받은 고통과 어려움과 약함에 대해서 서술하다가, 33절에 이르러서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탈출한 사실을 언급함으로 일단 마친다. 한 학자는 이 구절에서 바울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 당시 로마의 관습에 의하면 전쟁 때 제일 먼저 성벽을 넘어 적진으로 들어가는 군인에게는 성벽모양이 새겨진 금관을 수여 하였는데, 이를 받은 자는 엄청난 명예를 얻게 된다. 고린도 교인들은 로마의 한 중요한 도시에 살고 있는 자들로서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이 용감한 군인과 같이 목숨을 걸고 성벽을 최초로 넘어가 적진에 이른 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자기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성벽을 타고 내려가 다메섹 성을 탈출한 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다. 고난 (11:23-27)과 약한 것 (11:30)을 자랑하던 바울이 이제는 수치스러울 정도가 되어서 도망을 친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11:11:32, 33) 자기를 비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12 장 1-4절에서 바울은 낙원으로 이끌려 갔던 한 사람에 대하여 말한다. 비록 낙원에 간 사람이 자기라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1절과 7절을 미루어 보아 이는 곧 바울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를 대적하는 자들의 자기 자랑을 책망한 바가 있는 (10:12, 17) 그로서는 자기 자랑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바울은 자기 자랑을 할 수 밖에 없었으나, 환상과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본다. 

12장 5-10절에서, 바울은 이제까지 강조해 온 약함을 통한 선교에 대한 결론에 이르며 정점에 다다른다. 먼저 낙원에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 (12:7)를 받았다고 이야기 한다. 이 구절의 해석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두 해석이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육체적인 질병이거나 유대인의 핍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지 이 약점이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바울을 낮추어 보는 이유가 되었다. 바울 자신도 이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가시”가 없어지기 위해 세 번 간구하였을 때, 주는 그의 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2:9).

바울은 이제 이 약함이 그를 동반하는 단순한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약함은 그의 삶과 사역에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약함을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는 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침내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임으로 이제는 더욱 철저히 주를 의뢰하고, 이 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약함은 사실상 한 인간으로서의 약함이라기보다는 그의 사역인 복음을 전파함에 몰두할 때 오는 약함이었다 (12:10). 순종 속에서 오는 약함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약함이 능욕, 궁핍, 핍박, 곤란과 함께 12장 10절에 나란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약함에 관하여 주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듣는 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그는 복음의 중요한 요소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데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12장 9절 하반절부터 바울은 이 주님의 음성을 그의 상황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기뻐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약할 그 때에 사실은 강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여기서 고린도 후서뿐 아니라 고린도 전후서 전체의 소 결론으로 간단히 생각해 보자.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논쟁의 초점이었던 약함, 곧 바울이 지니고 있는 약함은 바울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바울로 하여금 복음의 참된 사도임을 의심케 하는 약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 주께서 허락하신 표징이었던 것이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에 기록된 주의 음성은 고린도 후서에 다루어진 “고통을 통한 위로,” “수치를 통한 영광,” “죽음을 통한 생명”뿐 아니라,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약함, 고린도 교인들의 약함, 바울 자신의 약함,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집대성으로서의 요약이 된다. 복음의 본질 자체에 “약함을 통한 강함”이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내재적으로 그와 같은 특성이 있다. 복음에 매여 사는 바울의 삶 속에 나타난 약함은 주님의 능력을 부단히, 그리고 충만하게 드러내는데 필수적이었다. 바울은 이를 고린도 후서 13장 (13:3, 4) 끝까지 외침으로써 그의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6. 결론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책임을 다른 나라의 교회들과 함께 감당함에 있어 현재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약함을 통한 선교는 성서적으로 보거나 혹은 역사적으로 보거나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우리에 앞서 선교를 해온 서구 교회의 선교역사는 주로 “강한 위치로부터의 선교 (mission from a position of strength and power)”를 하여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과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별없이 서구의 선교 형태를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 많은 해외선교사들을 파송하며 또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선교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국교회는 이제 어떻게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선교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싯점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를 높이거나 자족한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반표지 (countersign)가 될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부적당한 동기, 혼합된 동기가 선교를 주도하고 혼합된 열매를 맺는 선교를 한다면, 이런 선교는 주가 기뻐하는 모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초기 한국교회 역사에 나타난 겸손하고도 헌신된 종들과 순교자들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영광스러운 사명을 바르게 수행함으로써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변함 없이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