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의 방향성에 대한 모색

안점식

I.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의 필요성

1.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에 대한 자각과 요청

1990년대 이후 눈부신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선교는 파송 선교사 숫자에 있어서 2006년 말 기준으로 1만 5천 여명에 도달하였으며 해외 선교사(foreign missionaries) 기준으로 미국을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의 선교국으로 부상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운동은 2/3세계 선교운동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구조조정과 질적 성장을 통한 업그레이드를 요청받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요청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서구적 선교 모델을 탈피한, 2/3세계 선교를 위한 비서구적이면서 성경적인 모델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필요에 부응해서 2005년 11.1-4까지 선교사, 선교단체대표, 목회자, 신학교수 등 36명이 제 1차 설악 포럼으로 모이게 되었다. 설악 포럼은 그 결의문에서 “서구 선교 모델에 대한 연구와 한국 선교 현황에 대한 연구 평가를 통해 변화하는 선교 환경에 부응하며 다른 나라의 교회들이 선교하는데 있어서도 적합한 성경적이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과 선교 모델을 찾고자 하였다”라고 모임의 방향을 정리하고 있다. 또 설악 포럼은 “한국 선교가 세계 교회와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갖는 선교가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2/3세계 선교운동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주도록 하기 위해 한국 선교의 국제화, 자문화중심주의의 극복, 국제 지도력의 개발, 비서구 선교신학의 개발 등에 진력하기로 하였다”라고 결의하고 있다. 

비서구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에 대한 요청은 단지 한국 내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보다 먼저 범세계적 선교학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1999년 10월 브라질의 이과수에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A) 선교위원회 주최로 53개국에서 160여명의 선교학자, 선교실천가, 교회지도자들이 모여 선교학적 차원에서 20세기 선교를 반성하고 21세기 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회를 가졌다. 

2/3세계에서의 선교운동의 활성화를 반영하고 있는 이과수 대회의 선언문은 모임의 목적으로서 (1) 21세기 선교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 (2) 20세기 복음주의 선교학과 실천에 대한 개관, (3)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성경적 선교학의 발전과 적용이라는 세 가지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항목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선언문은 세 번째 항목을 부연 설명하면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선교학적 목소리들로 인해 기뻐하지만, 그 목소리들을 우리의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라고 반성하고 있다. 

여기서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선교학(a relevant biblical missiology which reflects the cultural diversity),”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선교학적 목소리(diverse missiological voices emerging around the world)”라는 표현은 비서구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을 요청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과수 대회를 결산하는 논문집으로 출판된 “Global Missiology for the 21st Century"(21세기 글로벌 선교학)의 편집자인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는 토착화의 원리로서 삼자(三自)의 개념에 두 가지를 더해서 자기 신학화(self-theologizing)와 자기 선교학화(self-missiologizing)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자립의 원리는 신학적, 선교학적 범주들과 방법론에서 기존에 정립된 옛 이론들에 대해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서구의 선교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고 서구적 시각에 의해서 형성된 선교학이 어떠한 상황에서나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고백은 신장된 2/3세계의 선교가 그 영향력에 있어서 선교학의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서구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세계 선교학계는 비서구 세계의 시각을 반영한 선교신학과 선교학을 요청하고 있다. 2/3세계 선교사와 선교학자의 시각을 담고 있는 선교학은 서구적 시각의 선교학과 아울러져서 보다 균형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주며, 그 결과 성경적인 범세계적 선교학(Global Missiology)을 이루어서 세계 선교에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이 요청받는 배경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게 제기되는 비서구적 선교학의 필요성에 대한 요청은 무엇보다도 인식론적 전제의 변화 및 기독교 판도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1) 인식론적 전제의 변화

포스트모더니즘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계몽주의에 의해서 확산된 모더니즘 인식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즉 인식론적 전제의 변화로 말미암아 비서구적 시각이 요청되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아시아적 선교학의 발전을 저해한 요인은 모더니즘 인식론의 전제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 서구 학문의 기초는 계몽주의적 이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자율적 이성은 인식 주체로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진리를 객관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천적인 인식기능으로 간주되어졌다. 이러한 전제는 서구 학문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쳤고 신학과 선교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자율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이성의 인식능력에 근거해서 보편적인 신학과 선교학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한편 계몽주의 정신은 19세기 후반에 와서 급기야 진화론을 낳았는데 그 결과 역사의 진보와 문명의 진보라고 하는 관념이 서구 사회에서 팽배하게 되었다. 문화 진화론의 관점에서 서구 문명은 가장 진화한 문명으로 간주되었고 서구인의 문화적 우월감은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쉽게 결부되었고 서구에서 형성된 신학과 선교학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계몽주의적 인식론의 붕괴와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이성은 보편타당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이성의 합리성에 근거해서 구축된 모든 거대 담론들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과 학문들의 진리주장도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주관적 해석 및 가치와 관련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신학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이성은 객관적인 해석을 통해서 성경적 진리를 도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하며 따라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 가운데 놓여있는 인간의 주관적 해석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모든 신학적 작업은 철저히 상황을 반영한 신학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인식론은 극단적 상대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모더니즘 인식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인식론 양자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이 객관적 진리를 오류 없이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리주장은 주관적이고 상대적 가치만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대안이 폴 히버트(Paul Hiebert)가 말하는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과 국제적 해석학적 공동체(International Hermeneutic Community) 이다. 

즉 성경 해석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는 성령의 교통함이 있다. 신학적 작업에는 신학자 개인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 의해서 편견과 선호 등의 오류가 들어갈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경 해석은 기본적으로 해석학적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학함(doing theology)은 해석학적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성령 안에서의 교제이다. 해석학적 공동체 안에서 성령께서는 신학적 작업에 개입하실 수 있으며 신학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서 상호 격려와 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학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범위가 국제적일 때 성경 해석은 더욱 객관적이고 풍성해진다. 즉 다양한 종족과 문화로부터 구성되어진 해석학적 공동체에서는 독특하지만 성경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해석의 장점을 서로 인정해주고 또한 편견과 오류를 서로 견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Paul Hiebert, Missiological Implications of Epistemological Shifts, pp.112-113. 히버트의 주장이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 및 합의이론과 다른 점은 성령의 역사하심과 간섭하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국제적 해석학적 공동체는 단순히 인본주의적으로 인간들의 의사소통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공동체 해석학도 결국 개공동체의 상황과 관점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모더니즘 인식론의 전제 하에서 보편적 신학의 근거는 인간의 보편적 인식 능력에 있었고 보편적 신학은 이성에 근거해서 연역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비판적 실재론의 인식론적 전제 하에서는 보편적 신학, 즉 범세계적 신학(Global Theology)의 형성은 국제적 해석학 공동체인 범세계적 교회(Global Church) 안에서 귀납적으로 이루어진다. 

선교학에 있어서도 동일한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 범세계적 선교학(Global Missiology)은 보편적이고 오류 없고 객관적인 인간 이성의 보편적 능력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칫 특정한 종족과 문화의 관점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제국주의적 강압이 될 수 있다. 서구의 신학과 선교학이 이러한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보편적 선교학의 형성은 범세계적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교제가 있고, 다양한 문화의 시각이 반영된 다양한 견해가 소통되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서로 배우고 서로 교정해주면서 이루어가는 점진적 과정이다. 진정한 성경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의 기초는 이성의 합리성이나 주관적 가치의 주장이 아니라 성령의 교제에 기초를 두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선교사가 서구적 시각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국적 시각을 가지고 한국적 선교학을 정립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적 시각은 아시아적 문화와 정서, 사고 방식, 의사소통 방식, 의사결정 방식, 그리고 아시아적 관심사 등을 반영할 것이다. 아시아적 혹은 한국적인 시각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놓치기 쉬운 성경적 진리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면도 있을 것이고, 또한 아시아와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나온 편견과 비성경적인 면을 드러낼 수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아시아와 한국의 선교학자들은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한 비성경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국제적인 선교학 공동체 안에 자신들의 선교학적 작업을 내놓을 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을 한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적 민족주의나 지역주의로 나아가거나, 혹은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을 보편화하려는 제국주의적 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세계선교와 범세계적 선교학에 기여함으로써 지상명령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적 선교학이 범세계적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서구 선교학이 범했던 과오를 역시 범할 수 있다. 

(2) 기독교 중심축의 이동

서구는 근대화 이후 후기기독교왕국(post-Christendom)의 사회에서 세속화 현상을 경험해왔다. 기독교는 외형적 측면에서도 퇴조하고 있으며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도 점점 그 영향력이 위축되고 있다. 반면에 오히려 과거에 피선교지였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기독교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앤드류 월스(Andrew Walls)는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고 있으며 선교의 주축도 남반구로 옮겨갈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도 월스의 기독교 중심 이동설과 뷜만(Walbert Bühlmann)이 제시한 제 3 교회의 도래설(the coming of the third church)을 수용하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이어서 남반구에 위치한 교회들이 세 번째 천년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예견대로 비서구 출신 선교사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인도, 브라질 등이 타문화권 선교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선교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서구 출신 선교사의 증가는 비서구적 선교학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서구적 선교학은 기본적으로 서구적 시각에 의해서 서구 선교사들의 체질에 맞게 형성되어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서구 선교사들의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형성되어진 것이다.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424.

 서구적 시각은 서구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어진 것으로서, 계몽주의와 근대화가 형성해낸 소위 합리성의 존중, 과학적 접근이라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다. 그 결과 서구적 선교학은 성경적 근거보다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치우치는 면이 적지 않았다. 서구적 선교학은 서구인의 의사소통 방식, 의사결정 방식, 사역 방식 등 서구적 선교 방식을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러한 방식들은 비서구인의 체질에는 맞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적 선교학에 입각해서 선교훈련을 받고 서구인에 의해서 설립된 국제 선교단체에 소속해서 사역하는 비서구 선교사들은 현지인 뿐 아니라 서구 선교사들과의 문화적 갈등을 종종 경험한다. 예를 들어서 서구 선교사들은 대체로 합리성을 강조하고 시스템에 의해서 사역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연구에 기초해서 선교 방향과 목표를 세우고 기획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은 때로는 지나친 신중함과 과단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시스템은 의사결정과 사역의 속도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방식으로 경직되어 나타난다. 한국 선교사들에게 서구 선교사는 지나치게 몸을 도사리고, 선교사역에 별 진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서구 선교사들과 서구인이 주도하는 국제단체에서 보았을 때 한국 선교사들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열정은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저돌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한국 선교사들은 시스템에 속해서 팀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사역하는 것으로 보이며 선교단체의 규칙을 잘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선교사의 부정적 특성은 흔히 “무모함, 생각이 없음, 대책이 없음”을 나타내는, 소위 “무뎃뽀(無鐵砲)”라는 속어로 지칭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도 한국적 선교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무뎃뽀”와 성경적 “믿음”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두 가지 모두 인간적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경적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상당수의 한국선교사들이 성경적 믿음과 비합리적 저돌성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들 중에는 성경적 믿음을 구사함으로써 합리적인 서구 선교사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놀라운 사역의 돌파구를 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교사들이 서구적 시각의 선교학에 의해서 지원받고 있는데 반해서, 한국선교사들은 아시아적 혹은 한국적 시각의 선교학에 의해서 지원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사역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선교학적 확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에너지의 낭비일 뿐 아니라 세계선교를 위해서도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적 시각은 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의 필요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선교학에서 다루는 영역과 주제들을 다양한 문화적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선교학이 다루어야 할 영역과 주제를 선택하는 것 자체에 시각이 개입될 수 있다. 서구적 선교학은 서구적 시각으로 주제들을 접근할 뿐 아니라, 다루어야 할 주제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서구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적 선교학은 어떤 주제에 대한 아시아적 관점을 배제할 뿐 아니라 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영역이나 주제를 다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II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의 방향성

1.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성경적이어야 한다.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이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데이빗 보쉬(David Bosch)가 그의 저서 “변화하는 선교(Transforming Mission)”에서 입증해보여준 것처럼 스스로 성경적임을 자처했던 선교신학과 선교학 이론들이 그 시대의 정신, 혹은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t 2, "Historical Paradigms of Mission"을 참조.

예를 들면 계몽주의 세계관의 영향 하에서 형성된 현대 서구 선교학은 원인과 결과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친 경우는 사회과학적 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되고 사무엘 에스코바가 지적했듯이 관리적 선교학(managerial missiology)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서구 선교학도 의식적 차원에서는 “성경적임”을 주장하고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지불식간에 합리적 통제와 관리를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라는 면에서 취약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인들이 성경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져서 자의적으로 계몽주의적 세계관과 범주, 논리로써 선교신학과 선교학을 세우는 오류를 범했다면 아시아인, 혹은 한국인도 그러한 위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 선교학은 한국적, 아시아적 관점과 심성을 반영하는 해석학에 기초하겠지만 이러한 지역적 시각을 주장하는 것에서 멈춘다면 이 또한 서구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에 대립하는 것이 되고 서구 선교사들에게는 부적합한 자민족중심주의적인 아시아적 선교신학의 패러다임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또 성경적 타당성 여부의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과 심성의 장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약점과 죄악성도 반영될 수 있다. 

한국적 선교신학은 한국적 시각의 성경읽기와 해석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이 선교의 근거, 동기, 전략 등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폴 히버트가 언급한 것처럼 초문화신학(Transcultural Theology), 즉 보편적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은 성경에 확고한 중심을 두어야 하며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한국적, 아시아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보다 우선적으로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아시아적 시각이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이어야만 한다. 아시아적 시각은 아시아적 지역성에 고착되기 보다는 그것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성경적 원형을 찾아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세계화 시대에 범세계적 선교학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이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은 영적 성숙과 관련되어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인간의 특권적 책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경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음으로 절로 과실을 맺는 것이며(요15:4-5), 존재(being)를 통한 사역(doing)이다. 계몽주의적, 서구적 이원론은 영적 성숙과 사역이 분리되게 하고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게 한다. 

이론과 실천의 괴리는 인간의 타락이 불러온 본질적 결함이지만 서구의 진리관이 이러한 괴리를 더욱 부채질했다고 본다. 즉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진리는 변화하는 현상 세계 배후에 변화하지 않는 본체(本體), 혹은 실체(實體; substance)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실체적 세계관은 개별적 실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 불변의 속성과 본질, 그리고 실체들 간에 관계하는 원리에 대한 탐구라는 진리관을 낳았다. 즉 진리란 마음(mind) 차원에서 사물의 본질과 원리에 대해 올바른 방식으로 인식된 지식을 축적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진리는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 차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탐구가 된 것이다. 실천(praxis)은 지식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헬라적 진리관은 중세의 대학, 르네상스를 거쳐서 계몽주의 이후에 더욱 확연하게 굳어졌다. 뉴턴-데카르트 이후의 이신론적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목적론은 붕괴되었고, 자연의 세계는 초자연과 무관한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으로서 간주되었으며, 그 결과 개별적인 현상들에 대한 인과관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학문관이 굳어졌다. 학문들은 분과학문으로 계속해서 분리되어 나가면서 분석적인 연구방법이 더욱 지배적이 되었고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은 점점 어렵게 되었다. 서양에서 학문(-ology)는 실체의 속성과 본질,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마음(mind)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론적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이론과 실천의 이원론적 괴리는 서구의 신학과 선교학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학은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으로 이원화됨으로써 이론신학은 쉽게 현장성과 실천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면에 실천신학은 단순히 적용의 문제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쉽게 세속적 분과학문의 관점과 방법론을 취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진리관과 학문관은 또한 상아탑주의를 낳았는데 선교학에서도 이론가인 선교학자와 실천가인 선교사는 확연하게 구분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교사들은 종종 사역의 이론적 근거,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고 지극히 실용주의적 견지에서 사역의 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대해서 신학적, 선교학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을 때 이론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회피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은 이론과 실천을 통합해야 한다. 즉 모든 신학은 실천신학이며 동시에 모든 신학은 이론신학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이론신학은 현장성과 실천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모든 실천신학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 이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한편, 한국적, 아시아적 전통에서 학문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성을 보다 더 지향한다. “학(學)”이나 “각(覺)”은 단순히 인지적 차원에서 지식의 축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양식의 변화를 수반하며 체득적(體得的) 요소를 가진다. 이것은 히브리적 전통의 “앎”에 훨씬 가깝다. 신유학 전통에 나타나는 공부(工夫)는 몸의 수련과 실천적 측면을 포함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도(道)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로 표현되어지는데 그것은 하늘과 인간이 가는(行) “길”이며 실천적 수양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서구적 전통, 특히 계몽주의 세계관이 전제로 하는 “인식 주체와 객체”의 관념에 강한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도 단순히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고 분석과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동양적 전통에서 경전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체득하고 순종해야할 규범이었다. 물론 이러한 동양적 전통 중에서도 힌두교나 불교에서처럼 경전의 제한을 넘어서 명상을 기초로 하여 지나치게 체험중심적인 것들이 있다. David Hesselgrave는 스미스(F.H. Smith)에 의해서 고안되고 휴즈(E.R. Hughes)에 의해서 수정된 인지과정(cognitive process)의 유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서구, 중국, 인도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하는데, 인도의 경우는 심령적 경험(psychical experience)이 가장 우선적임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체험을 중요시 하지만 체험은 언제나 정경(canon)과 정통교리(dogma)에 의해서 제한 받는다. 

지(知)와 행(行)의 일치, 앎과 삶의 일치에 대한 동양적 강조는 메시지와 메신저의 일치를 요구하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메신저 자체가 곧 메시지가 됨을 주목할 때 종교다원 사회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유일성과 독특성은 메신저의 삶의 독특성과 유일성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설득력을 상실할 수 있다. 즉 종교다원 사회에서 소위 “다원적 영성”을 주장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기독교적 영적 성숙의 유일성과 독특성이 입증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종교다원 사회에 놓여있는 한국교회가 처한 현금의 교회성장의 정체 현상을 말해준다. 교회는 본질상 선교적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선교하려 했지만 메신저의 삶에서 선교적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앎과 삶의 괴리는 한국적, 아시아적 문화의 토양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며 성경적인 선교 열매의 산출방식도 아니다. 

서구적 시각에서는 진리주장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논리적 정합성(整合性: consistency)과 실재와의 부합성(附合性: coherence)을 제시한다. 이러한 서구적 진리검증 기준은 당연히 수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우리는 여기에 아시아적 시각에서의 진리검증 기준을 추가해야 한다. 한국과 아시아의 토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론과 실천, 지와 행, 앎과 삶의 일치성을 더 중요한 진리주장의 검증 기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3.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상황성을 살리고 성경적 성령론을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서구의 진리관이 현상계 배후의 불변의 실체에 대한 관한 탐구였다면 동양적 진리관은 과정(process)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동양에서는 변화하는 우주의 배후에 불변의 본체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동양에서는 불변의 원리보다는 변화의 원리를 찾아내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진리는 불변의 속성과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에 따른 행위와 결정을 내리는 적시성(適時性)에 있었는데 이러한 적시성은 종종 “시기에 적중함”의 뜻으로 “시중(時中)”으로 불리웠다. 그러므로 서양의 현자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자라면 동양의 현자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보다는 사물의 변화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읽어내고 시의적절한 판단과 결정과 가르침을 베푸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자였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하는데, 참된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지”(以心傳心) 문자와 교설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종(敎宗)에 대응해서 체험중심주의를 강조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 1장에서도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을 말하는데, 이것은 “도(道)를 가히 무슨 도라 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도(常道)는 아니며 이름(名)을 가히 무슨 이름으로 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름(常名)은 아니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상황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기도 한데, 상황성에 대한 강조는 그 자체 만으로서는 자칫 상대주의, 도구주의, 실용주의 차원의 임기응변으로 전략해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은 성령론에 대한 21세기의 요구와 맞물려있다. 하나님의 행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인간의 합리적 분석과 탐구의 대상 밖에 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측량할 수 없으며 그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롬11:33) 기독교 사역의 핵심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있다. 사무엘 에스코바는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선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주도권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성령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넘어서 행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의 행하심을 모두 헤아려 알 수 없지만 무엇이 성령께서 행하시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성경적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적 융통성과 상황성은 성경적 원리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 성경적 원리를 벗어난 융통성은 더 이상 융통성이 아니며 자의적 변질이며 변절이다. 진정한 융통성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되 성령으로 말미암은 역동성과 자유함이 나타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적 합리성에 기초한 경직성과 율법주의의 탈피이다. 원리성에 대한 서구적 집착은 종종 경직으로 나타나고 상황성에 대한 동양적 집착은 종종 방종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변증법적 지양(止揚: Aufheben)이 요청된다. 상황성에 대한 재인식은 원리성에 의해서 보충되어지고 견제되어져야 한다. 신학에서도 조직신학은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원리성에 초점을 둔다. 즉 공시적 차원에서 실체에 대한 개념, 원리를 규명하고 도그마(dogma)를 형성해낸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역사, 시간, 변화와 무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성경신학은 역사성과 상황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통시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역사적 과정과 상황에 따라 섭리하시는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방식을 규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해서, 한국 선교사들이 지나치게 융통성이 많아서 문제라면 서구선교사들은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융통성이 없어서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 말하는 바 저상황(Low Context) 문화와 고상황(High Context) 문화의 차이를 말해준다. 집단 문화는 공동체에서 노출된 삶을 살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집단 문화는 체면 문화, 즉 수치심(shame) 문화이기 때문에 체면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상황 파악의 능력을 “눈치”라고 부른다.

 상황성에 편중되는 한국적, 아시아적 경향성은 한국선교사에게 잘 나타난다. 한국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사역적 경험을 이론화, 원리화, 체계화하는데 취약하다. 한국 선교사들은 매뉴얼을 잘 만들지 않는다. 매뉴얼은 이미 알고 있는 자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지만 어떤 사물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에게는 매우 도움이 된다. 한국 선교사들은 경험과 감(感)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서 매뉴얼을 잘 만들지도 않고, 설사 매뉴얼이 이미 있다 하더라도 참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배 선교사들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매뉴얼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의 형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매뉴얼 자체에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이 들어가며 이러한 매뉴얼을 기초 자료로 해서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다시 한번 이론과 실천의 통합이 요청된다.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을 형성하는 데에는 선교학자 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선교학은 늘 현장과의 연계성을 갖고 현장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선교학자들은 선교사들과 교제를 통해서 선교현장의 정보와 경험들을 수집하고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며 수시로 선교현장을 방문하거나 사역에 동참함으로써 현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선교현장의 선교사들도 선교학의 주체로서 아시아적 한국적 선교학의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론가와 실천가의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훈련을 통해서 문화적, 사역적 경험을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으로 원리화, 이론화, 체계화 할 때 선교현장과 밀접한 선교학을 형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아시아적 논리구조에 근거한 통전성을 가져야 한다.

세계관은 범주(category), 논리구조(logical structure)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계몽주의적 이원론적 세계관은 서구적 논리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모순율, 배중율, 동일율에 기초한 헬라적 논리구조는 계몽주의 이후에 지배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either A or B"의 논리구조는 서구의 전형적 이원론적 사고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동양적 사고는 전체적이다. A와 B는 겉보기에는 대립적인 것 같아도 반드시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보다 큰 전체 안에서는 보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적 논리구조는 주로 ”both A and B"로 나타난다. 이러한 논리구조는 음양(陰陽)의 사상 등에 잘 반영된다. 음과 양은 대립자이지만 적대적 모순 관계가 아니며 투쟁보다는 조화와 보완을 추구한다. 음양은 태극(太極)과 같은 보다 상위의 범주에 의해서 조화롭게 통일된다. 신유학의 이기(理氣)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이(理)와 기(氣)는 이원적 개념이지만 불상리(不相離; 서로 떨어질 수 없음)와 불상잡(不相雜: 서로 섞이지 않음)의 논리구조에 의해서 일원론적 긴장성을 유지한다. 동양적 논리는 양자의 대립보다는 긴장성의 유지를 통한 조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에 서구의 이원론적 논리구조는 헤겔의 변증법 안에서도 잘 나타난다.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는 기본적으로 투쟁적이다. 

“복음전도냐 사회적 책임이냐?” 라는 이원론적 질문은 동양적 논리구조에서는 우문에 속할 수 있다. 물론 "either-or"의 논리구조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적어도 존재론적 차원,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야훼냐 바알이냐?”(either Yaweh or Baal)이지 “야훼와 바알을 함께”(both Yaweh and Baal)일 수는 없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비인격적일 수는 없다. 존 힉(John Hick)과 같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궁극적 실재(the Real)는 인격자이면서 동시에 비인격자일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능력의 유한성을 고려할 때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both 인격적 and 비인격적”일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순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either-or"의 논리구조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동양적 ”both-and"의 논리구조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보면 복음전도나 사회적 책임은 모두(both-and) 포함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비분리에 대해서는 데이빗 보쉬(David Bosch), 존 스토트(John Stott), 간하배(Harvie Conn) 등에 의해서도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구원을 내세적이고 타계적인 영생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복음의 내용을 축소하는 것이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에 생겨난 타협의 부산물이다. 즉 로마제국의 핍박 하에서 기독교인들은 황제에 대한 충성을 의심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나라가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저 멀리 “하늘나라”임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국교화 후에 국가와 종교는 동맹을 맺었고 교회는 저 세상의 영생을 책임지고 이 땅의 문제는 기독교 황제가 책임지는 것으로 타협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하늘 소망”으로 슬그머니 바뀌었고 사회변혁과 문화변혁이라는 차원은 점점 망각되어졌다.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인한 전적 부패성과 전적 무기력성을 고려할 때 사회변혁과 문화변혁의 주체가 될 사람들의 영혼구원이 우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혼구원은 단지 내세적 영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 형상의 완성을 지향하는 성화의 측면을 가져야 한다. 데이빗 보쉬도 복음전도는 사람들을 변혁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구원의 논리적 우선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화를 영혼구원 안에 포함할 때 그 자체가 사회변혁이나 문화변혁과 무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성화는 불교나 힌두교에서처럼 명상을 통해서 개인의 의식과 관념과 인식을 조정하는 행위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관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실현되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복음전도는 하나님 왕국적 존재의 개인적 실현을 위한 것이며 사회적 책임은 하나님 왕국적 가치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것이다. 

사회적 변혁과 문화적 변혁, 즉 사회적 책임은 복음전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기독교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복음전도의 강력한 기회이며 복음의 증거가 된다. 여기에서 “무엇이 우선이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역시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라는 서구의 이원론적 논리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시아적 시각은 상황성을 중요시한다. 복음전도가 절실한 상황에서는 복음전도를 우선시하면 되고 사회적 책임이 절실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하면 된다고 본다. 

이것은 또한 소명과도 관련되어 있다. 계몽주의적 사고는 절대주의 및 이원론적 논리구조와 연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종종 경직성과 획일주의를 드러낸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이원화하고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다음 모든 사람이 이 절대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경직된 획일주의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소명은 상황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소명과 은사와 직분의 다양성은 필요하며 존중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태도이다. 복음전도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일을 주로 하면 되고 사회적 책임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일을 주로 하면 된다. 우리의 태도는 서로 존중하고 세워주며 연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약자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진보적인 에큐메니칼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타락 이후에 자연계는 전락되었으며 힘의 원리, 즉 약육강식과 강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게 되었다. 전락된 자연을 극복하고 나온 이 세상 문화의 원리도 동일하게 힘의 추구과 생존을 위한 물질의 추구로 요약이 된다. 문화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문화, 즉 “이 세대”(롬12:2), “이 세상 풍속”(엡2:2)의 원리는 지배하게 된 이 세상의 원리는 동일하다. 

천국, 새예루살렘성의 원리는 힘 있는 자가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섬기고 희생하는 영적 원리이다. 가난한 자, 약자,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은 복음의 장신구가 아니라 복음의 핵심적 영역이다. 그들은 힘이 지배하는 “이 세상” 원리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선적 관심이 가난한 자와 약자들에게 있는 것은 그들이 죄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상 그러하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누구보다 확연히 누리는 자들은 바로 가난한 자와 약자들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메시아 질문에 대해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고 말씀하신다. 장애인, 가난한 자들은 권력도 없고 재물도 없다. 그들은 이 세상 문화, 이 세상적 원리의 피해자이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등 진보주의적 상황화 신학이 시도하는 성경해석과 신학적 주장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러한 것들이 복음에 포함된 한 가지 중요한 면을 지적했다는 것을 복음주의 진영은 받아들여야 한다. 

연합도 마찬가지로 에큐메니칼 진영의 전용물이 될 수 없다. 아지쓰 페르난도(Ajith Fernando)가 지적한 것처럼 연합은 기독교의 기본적 특질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반영한다. 연합은 복음의 핵심이며 장신구가 아니다. 연합은 권력과 재물, 즉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타락한 이 세상 문화에서 사람들이 분열하고 분리하고 갈등하는 것은 기득권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열이 이 세상적 원리라면 연합은 천국적 원리이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하나됨은 이 세상 원리를 거슬러서 “힘써”(엡4:3)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합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며 결코 복음의 장신구가 아니다. “하나됨”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라고 기도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발견할 것이며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복음전도와 연합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밀접히 연관된 것이다. 데이빗 보쉬가 지적한대로 교회가 세상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과 다른 존재가 될 때에만 교회는 선교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이 세상과 동일한 존재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성장의 정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5.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질서”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폴 히버트가 지적한 것처럼 서양 문화는 질서를 세우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비서구 문화는 관계가 중요하다. 질서는 공간과 시간, 청결함, 아름다움, 법 등에 두루 적용되어진다. 서구적 사고에서 사물의 올바른 공간적 배열과 구분, 시간의 엄수와 효율적 사용, 정리정돈과 청결, 법의 준수는 옳은 것이다. 질서는 선한 것이고 혼란은 악한 것이다. 서구적 계몽주의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사물의 고유한 구조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삶과 사건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며 따라서 인간은 삶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관계보다는 구조적 질서로 구축된 시스템을 선호하며 계획, 효율, 생산성, 이익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서구적 시각에서는 모든 일이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것이 관계보다 중요하다.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에서는 관계가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가 종종 억압적이고 번거로움을 만들어내고 무질서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선교는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선교현장의 문화는 관계 중심적 문화이다. 친척이나 친구가 불시에 방문해도 나의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관계 중심적인 문화이다. 관계 중심적 문화에서는 화목과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악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를 잘 맺는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의 현지인들과 훨씬 잘 화합하는 것이 사실이다. 관계 중심적 문화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나 상황을 수용하는 정도가 높다. 반면에 질서 중심적 문화에서는 종종 경직성과 융통성의 결여 창의력의 억압이 나타날 수가 있다. 

아시아, 한국 문화의 관계 중심성은 성경적 관점과 더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고 본다. 믿음과 순종은 종종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밖의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정돈이나 질서정연함에서 보다는 상황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민감성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관계 중심적이다. 우리의 존재는 어떤 구조적 질서 안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떤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진다. 따라서 올바른 존재의 상태는 올바른 관계의 상태이다. 죄와 악은 올바르지 못한 관계의 상태에 있는 것이며 회개와 구속은 기본적으로 관계 회복적이다. 물론 성경이 질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구속이 질서 회복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복음은 관계적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율법의 준수가 질서적 의(義)라면 믿음은 관계적 의(義)이다.  “믿음을 의로 여김”(롬4:5)은 복음이 가지는 관계 중심적 측면을 잘 말해준다. 

성경적 시각은 언제나 균형을 이루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다. 성경적 관점에서 질서와 관계는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서구 선교학이 지나치게 질서 중심적 관점에서 형성되었고 그 결과 소위 “관리적 선교학”이라는 비판까지 낳게 했다. 이런 차원에서 관계 중심적인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이야말로 질서에 치우친 선교학에 대해서 균형을 잡아주고 성경적 시각으로 회복시켜줄 것이다. 

6.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기계론적 효율성 개념으로부터 생명론적 재생산성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질서 중심적인 서구 선교학은 기계론적 효율성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선교구조”라는 문제의식 자체부터 검토해볼 필요를 느낀다. 왜 우리가 선교에서 효율성을 이야기 하는가? 비용과 효율의 관점은 “원인과 결과의 통제”라는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것은 투입량 대비 산출량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경영학적 관점을 그대로 선교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고비용 저효율 선교를 비판할 때 흔히 청지기 개념이나 달란트 비유가 사용되는데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우선적 요점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빗 헤셀그레이브(David Hesselgrave)는 그의 저서 “현대선교의 도전과 전망”(Today's Choices for Tomorrows Missions)에서 선교비용의 상승에 대해서 한 장(章)을 할애하면서 청지기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성경적 요점은 맡은 자는 주인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즉 주인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향유옥합을 깨뜨린 사건에서처럼 인간에 의해서 제기된 효율성에 대한 강조는 종종 하나님에 의해서 부인된다.

고비용-저효율의 관념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로 선교를 바라보는 것인데 이러한 계몽주의 세계관의 전제부터 재고해보아야 한다. 굳이 비용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선교는 기본적으로 고비용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자체가 고비용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효율성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공동체의 미덕도 효율성에 있지 않다. 효율성이 미덕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이다. 

하나님의 효율성과 인간의 합리적 효율성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의 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청지기가 자원을 허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눅16:1-2). 선교에서 자원의 부당한 낭비에 대해서 고려하는 것은 전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비용과 효율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려고만 하는 것도 또한 서구적 시각과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고비용-저효율의 원인이 잘못된 선교 시스템 때문인지 아니면 선교사의 영적 성숙도 때문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부당한 고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은 대체로 프로젝트 선교 때문인데 이것은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연장선상에서 복음화를 문명화로 생각하는 옛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부적절한 고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선교를 시스템의 가동으로 생각하는 서구적 시각 때문이다. 선교를 문명화로 간주했을 때 선교사들 자신이 “모본”으로서 교양인의 삶, 문명인의 삶, 향상된 삶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소위 “국제적 표준”은 성경적이고 객관적 표준이라기보다는 계몽주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서구가 구축해놓은 서구적 표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서구적 표준들은 선교의 중심축이 2/3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고려할 때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고비용의 문제에는 선교사의 영적 성숙도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단순한 삶의 양식(simple life style)은 시스템이 아니라 선교사의 헌신과 영적 성숙에 의해서 구현되어져야 하는 면이 있다. 시스템이 필요하겠지만 헌신과 성숙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교구조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도 다분히 시스템 중심적 서구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시스템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성을 고려할 때 개인의 역량과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민주주의 제도의 시스템이 개인의 통치력에 의존하는 봉건 제도보다 안전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성령의 종교이다. 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합리성에 대한 의존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방해할 수 있다. 오히려 지나친 시스템 중심적 사고가 성경이 말하는 제자도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제자도에 우선순위가 있지 시스템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계론적 효율성의 개념은 일정한 단기간 내에서 투자 대비 산출량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긴 안목과 긴 호흡으로 선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오히려 생명론적 “재생산성”(reproducibility)의 개념이 더욱 성경적이고 적합하다. 임스데반 선교사도 선교의 새로운 평가기준으로서 “자체재생산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생육과 번성”의 생명 원리이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증가하는(마13:8,23; 막4:8,20) 하나님 나라 확장의 원리이다. 효율성이 서구적 분석적 시각을 반영한다면 재생산성은 동양적 종합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재생산성은 사역에 있어서 생명 차원에서의 지속성과 점진적 확대성을 강조한다. 재생산성은 “현지인에게 사역이 이양되었을 때 여전히 선교구조가 작동하겠는가?” 그리고 “선교사 당대가 아니라 50년이나 백년 후에도 여전히 선교적 기능을 하고 있겠는가?” 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사역은 단기적 안목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장기적 안목으로는 재생산성이 높을 수 있다. 아지쓰 페르난도(Ajith Fernando)는 연합을 강조하면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의 “동질 단위의 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재생산성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즉 동질 집단 중심적인 사역은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으나 결국은 연합이라는 천국적 원리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상적인 클럽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조직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복음 증거가 약해질 수 있다. 

많은 프로젝트 선교들이 고비용을 요구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재생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프로젝트들의 재생산성이 크다면 고비용이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불필요한 고비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교현지에서 동원 가능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CHE(Community Health Evangelism) 방식의 사역은 비서구적, 비계몽주의적 선교 패러다임으로 주목될 필요가 있다. 현지에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선교사 본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하는 방식은 여전히 계몽주의적 시혜라고 하는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7.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다원주의를 고려한 선교변증론과 종교신학을 반영해야 한다.

세계화 현상은 연결성과 다원성에 대한 인식의 증대를 가져온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교통, 통신, 미디어 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동질성이 증가하며 사람들은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지역성과 이에 근거한 다원성을 인식하고 있다. 세계화는 동질성과 다원성의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성을 지적하기 위해서 종종 globalization과 localization을 결합한 신조어로 “glocalization"의 개념을 사용한다. 종교의 다원성과 문화의 다원성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종교와 문화에 독점적이고 독특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문화적 다원주의와 종교 다원주의, 윤리적 다원주의는 삼륜수레처럼 같이 굴러가고 있다. 문화 진화론에 입각한 서구 문화와 서구 종교의 우월성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uniqueness)과 수월성(supremacy)은 다른 세계종교들에 의해서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다. 초대교회의 선교가 직면한 것처럼 오늘날 21세기의 종교다원 상황에서 성경적 종교신학과 선교변증론은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환경 속에서 아시아적 시각, 비서구적 시각은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다. 한국이나 비서구 지역에는 종교 다원적 분위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고백하는 복음주의적 교회가 성장해왔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식민주의와 그에 따른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이다. 즉 기독교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화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화적 우월감의 표시로 간주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서구 지역, 한국의 교회는 이러한 역사적 과오에 의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이것은 종교다원 사회에서 아시아 기독교인의 자원이 된다. 아시아적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주장될 때 문화진화론에 기초한 서구 문화의 우월주의에 대한 의구심 없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오히려 종교 다원주의적 토양 속에서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을 유지할 수 있는 독특한 관점과 체험이 종교신학과 선교변증론에서 돌파구를 열어줄 수 있는 신학적, 선교학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오늘날 현상학적 방법으로는 기독교의 독특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규명하는 것이 어렵다. 계몽주의가 만들어놓은 타당성 구조는 어떤 특정한 종교에서 특정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종교들의 진리주장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상학을 넘어서 세계관 분석(worldview analysis)을 통한 선교변증론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시아 종교를 심층구조까지 깊이 이해할수 있는 아시아 기독교인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세계관 분석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종교들이 비본래적 존재 상태(무지)에서 본래적 존재 상태(깨달음)로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종교들의 방식은 인식과 관념과 의식 차원에서의 초월적 상태를 추구하며 이것은 종종 인식과 관념과 의식에 대한 조종(manipulation)과 통제(control)를 수반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비본래적 관계(반역)에서 본래적 당위적 관계(순종)으로의 회복을 강조한다.

8.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은 세계관 차원의 상황화를 시도해야 한다.

한국적 선교학은 아시아적 정신세계와 만나야 한다. 이것은 문화의 보다 심층부에 속하는 가치체계와 세계관 차원의 상황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시아, 한국 문화의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를 파악해야 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토양, 즉 타당성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들은 유교, 불교, 샤머니즘, 세속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바깥차원인 행동양식(behavior pattern) 차원에서는 문화는 빨리 변화되지만 가치체계(value system)과 세계관(worldview)으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매우 느리게 변한다. 백 년 전의 한국에 비해 행동양식 차원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치체계 차원에서는 여전히 유교적인 가치가 한국 문화 안에 강력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것은 수직적이고 위계적 인간관계에 대한 선호, 효(孝), 화목(和睦)을 중시함 등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한국적 가치체계 중에 성경적 가치체계와 겹치는 부분은 상황화해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세계관 차원에서의 상황화는 복음전도에 있어서 결정적인 효력을 갖지만 의외로 이 차원에서의 상황화는 거의 시도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선교 역사를 돌아볼 때 매우 조밀하고 치밀한 교리적 철학적 차원을 가지는 고등종교들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기독교 선교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세계관 차원에서의 상황화가 시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관 차원에서의 상황화는 어떻게 되어지는가? 성경은 세계관 차원에서의 상황화의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애니미즘의 문화적 토양 안에서 세계관적 차원의 상황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창세기 1장은 천지 창조에 대한 기술이지만 동시에 애니미즘의 신관에 대응한 유일신 사상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 애니미즘 문화에서 신으로 간주되는 해와 달과 별, 동물이나 식물, 바다의 생물 등에 대해서 성경은 그들이 신들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구약에 나타나는 신들은 다른 애니미즘 문화권에서처럼 지역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어떤 지역에서도 승리하심으로 하나님이 지역신이나 종족들의 신이 아니라 모든 종족과 모든 우주를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심을 나타낸다. Ed Mathew, "야훼와 신들: 모세 오경 안에 있는 세계 종교의 신학,” 『기독교와 타종교』, 에드워드 롬멘, 헤롤드 네틀란드 편집, 정흥호 옮김 (서울: 서로사랑, 1998), pp.45-61.

구약에서 야훼 하나님은 바알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칭호들을 탈취해온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단순히 선포 뿐 차원이 아니라 사실의 차원으로 입증된다.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출현함으로써 바알은 폭풍의 신이 아니며 야훼가 폭풍조차도 주관하는 신임을 입증한다.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는 신으로써 계시하심으로 바알이 아니라 야훼가 임신과 불임을 주관하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즉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는 것도 바알이 아니라 야훼이심을 능력으로 입증해보인다. 이처럼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세계관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아시아 종교들의 세계관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유인되어 나오는 가치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불교는 열반(涅槃), 성불(成佛) 등을 궁극적 목적을 삼는데 그 내용은 절대 자유, 절대 평안, 무집착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힌두교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닫는 해탈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우주와의 합일, 신과의 합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교는 내성외왕(內聖外王), 수기치인(修己治人)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인격의 완성과 이상왕국을 추구한다. 도교는 장생(長生), 불로(不老), 불사(不死)를 추구한다. 노장(老莊) 사상은 무위(無爲), 무욕(無慾), 무지(無智), 허(虛) 등을 통해서 양생(養生)을 추구하는데 그 내용은 역시 절대 평안과 절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는 신에 대한 절대복종, 이상적 공동체로서의 움마(ummah)를 추구한다. 애니미즘은 현세적 축복과 능력을 추구한다. 

이러한 종교들이 추구하는 내용들은 인간의 죄성, 제한된 인식능력과 결부되어서 왜곡된 면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것들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누렸을 것들이다. 세계 종교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보편적 갈망과 관련되어 있으며 타락으로 인하여 상실한 것들에 대한 갈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관 차원에서 상황화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불교적 토양에서 선교한다면 하나님이 참된 자유와 절대 평안을 주시는 분임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말로 선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불교인보다 자유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집착적으로 나타난다면 무엇으로 성경적 세계관이 불교보다 더 우월하고 독특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는가? 

힌두교적 토양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만이 참된 인격적 교제의 기쁨을 줄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연합과 동행을 통한 친밀감의 희락을 누릴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의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유교적 토양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인간성을 완성시킬 수 있고 이상적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유교인보다 낫고 그리스도인이 더욱 더 공의로운 사회와 온전한 통치를 향한 열망과 열정이 있음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도교적 토양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영생과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천국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노장(老莊) 사상적 토양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虛),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뜻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無爲), 온전한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참된 사람(眞人)임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기를 부정하고, 내려놓고, 비우고, 자기 욕심대로 행하지 않고, 자유하며,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 나타나야 한다. 

이슬람교의 토양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온전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하셨고 그 결과 진정한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고 그 머리가 되셨다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서 천국 문화의 원리를 반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임을 드러내야 한다. 

애니미즘 토양에서는 하나님께서 현세적 복의 주권자이시며 참된 능력의 근원이심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운데 형통하고, 또 성령의 능력이 삶에 드러나야 한다. 

이처럼 세계관 차원의 상황화는 세계관들의 본질을 파고들어서 하나님을 선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입증되어지는 형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지식이 아니라 체질이며 따라서, 종교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성경적 관점에서 재조명되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체질화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관 차원의 상황화는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성령충만과 영적성숙이 필요하다. 즉 종교다원 사회에서 각 종교들은 다원적 영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종교다원 사회에서 기독교의 세계관이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겠는가? 여기서 세계관 차원의 상황화는 메신저의 영적 성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9.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은 생명론적 관점에서 다른 상황화 신학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우주를 기계론적으로 파악하는 계몽주의 세계관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던 현상 중의 하나는 유기체론, 생명론적으로 우주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기체론은 종종 동양의 범신론적 신비주의를 부활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경의 사상도 기본적으로 생명론적이다. 그것은 신과 인간과 자연을 전일적(全一的)으로 파악하는 범신론적 유기체론과는 다르다. 

성경은 생명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고 그 생명이 창조주의 본래적 목적과 계획대로 살기를 바라신다. 창세기 1:26-28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그 인간에게 주어진 생육과 번성의 축복, 자연에 대한 관리권의 부여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생명의 온전한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명의 온전한 실현을 방해한 것이 바로 죄이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생명의 온전한 실현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며 구원은 창조의 목적대로 생명의 실현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기”(요10:10) 위해서 이다. 

교회는 또한 신적 생명을 구현하는 곳이며 성장과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며 따라서 우리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다. 생명신학은 일부 생태신학, 환경신학자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범신론에 기초한 생명운동가의 전유물도 아니다. 오늘날 3세대 해방신학, 민중신학, 생태신학 등은 생명신학이라는 차원에서 만나고 있다. 그러나 생명신학은 진보주의 신학자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복음주의적 생명신학도 가능하다. 생명의 실현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인간의 타락과 죄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 생명의 구현을 방해하는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인종차별, 성차별 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의 생명의 구현을 방해하는 자연의 파괴, 생태계의 오염, 동물 학대 등까지도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끌어안아야 한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이러한 문제를 끌어안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의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잘못된 성경해석과 그에 기초한 치우친 신학이 출현하는 것이다. 

복음은 생명의 복음이고 선교는 생명을 살리자는 것이다. 생명의 실현이라는 면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분리되지 않는다. 구원의 영적 차원은 생명의 본질과 근원을 회복하는 것이다. 구원의 사회적 차원은 생명의 실현을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구원의 문화적 차원은 문화에 진정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것은 죄악이 없으며 우상숭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 생명의 창의적 발현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영혼구원이 생명의 더욱 본질적 차원이라는 면에서 영혼구원의 우선성을 명확히 하는 것을 필요하다.

나가는 말

필자는 지금까지 자기선교학화(self-missiologizing)라는 차원에서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신학과 선교학의 방향성에 대해서 시험적인 모색을 해보았다. 오늘날 상황화(contextualization) 개념보다는 세계화(globalization) 개념이 선교학에서도 좀 더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세계적 선교학은 지역적 시각이 반영된 선교학이 선행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선교학계에서 상황화에 대한 충분한 결실도 없이 성급히 범세계적 선교학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논리상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에서는 지역적 선교학의 결실을 수렴해서 귀납적 방식으로 범세계적 선교학의 보편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