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독교와 아시아 교회의 역할

이문장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 하려면 성경의 세계를 깨닫는 깊이와 영적인 능력이 통전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이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기독교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 기독교가 재편성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세계 종교 환경, 특히 기독교에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3백여 년 동안 기독교는 서구 선교의 결과로 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세의 확장은 서구 교회의 쇠퇴 및 기독교 왕국의 붕괴와 함께 일어났다. 지금은 기독교 역사의 격변기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소 거시적인 판 단이라,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는 분명 재편성되고 있는 중이다. 세계 종교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세계 기독교의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이 가지는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우선 세계 기독교의 재편성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재편되고 있는 세계 기독교 질서 에서 아시아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먼저 아시아 교회가 서구 기독교와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또한 아시아 교회의 모판을 이루는 아시아 사회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아시아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은 아시아 교회를 하루 속히 탈서구화 하는 일이다. 이는 아시아 선교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이미지의 탈서구화를 위해 어떤 신학적 작업이 필요한지 더불어 검토하고자 한다.

세계 기독교가 재편성되고 있다

아시아 기독교의 위치를 점검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세계 기독교 역사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기독교의 상황을 진단해볼 때 크게 네 가지 현상이 주목된다. 첫째, 세계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소수자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 세계의 종교적 환경이 바뀌어 전통 종교들이 다시 발흥하고 있다. 셋째, 기독교의 목회적, 선교적 환경이 다시 초대교회 상황과 비슷해지고 있다. 넷째, 기독교의 종주국에 변동이 생기고 있다. 이 네 가지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소수자의 종교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1910년 에든버러에서 최초의 세계 선교 대회가 열렸다. 20세기 기독교의 역사는 “현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world evangelization in this generation)”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씩씩하게 출발했다.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 기독교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는가? 기독교는 지리적 확장에 있어 세계 기독교가 되었다. 서구 세계의 경계를 넘어 비서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확장은 서구 기독교의 쇠퇴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제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 인구는 소수로 전락했다.

이러한 서구 기독교의 현상은 흔히 서구가 탈기독교 혹은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ian society)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설명된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서구를 더 이상 기독교 사회로 규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서구의 정신세계를 주도하고 통제하는 규범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서구 사회는 이제 탈기독교화 되고 있으며, 비기독교화 되고 있다. 서구 일부 신학자들은 기독교가 이제 서구 종교가 아니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아시아 사람이 불교나 힌두교가 더 이상 아시아의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그런 상황은 아직 상상이 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 엄청난 변혁이 일어나야 비로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를 탈유교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이조 왕조가 붕괴되고 전통 사회가 해체되면서 서구 문명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곧 한국 사회가 역사상 엄청난 격변을 거쳐서 탈유교 사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물론 오늘 날에도 한국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유교적 영향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독교가 이제 더 이상 서구 종교가 아니라는 말은 기독교 역사에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그러한 변혁의 한복판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혁명적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다.

지금 서구 사회는 기독교 인구가 현격히 감소했다. 한때 세계 선교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상황을 보더라도 교회 출석 인구가 5%를 밑돌 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의 상황은 어떠한가? 필리핀과 한국, 싱가포르와 중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아시아 대부분 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1-2%밖에 되지 않는다. 아시아 대륙 평균이 5%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 인구는 서구사회에서도 소수요, 아시아에서도 소수다. 아프리카나 남미 일부 지역에서 기독교가 다수인 곳도 있지만, 전 세계적 상황을 조감해볼 때 대부분은 소수자 종교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기독교는 이전의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위상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추어 그리스도인의 의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소위 주제 파악을 잘해야 한 다는 말이다.

세계 전통 종교들의 발흥 

세계 종교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데 발맞추어 우리 주변에는 전통 종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전통 종교라 하면 불교, 힌두교 및 이슬람을 가리킨다. 물론 유교도 포함될 수 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Traditional Religion-TR)도 포함 될 수 있다.

전통 종교의 재발흥은 탈현대주의나 종교다원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과거에는 서구와 비교해 낙후되고 원시적이며 창피하게 인식되던 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귀중한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를 묘사할 때도 예전에는 용광로의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이 제는 샐러드 그릇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각 민족의 특성을 다 녹여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주조해내는 게 아니라 각 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전 세계적인 상황이 그렇게 다양성과 다원성을 존중하는 흐름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 흐름에 따라 전통 종교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는 분위기다.

전통 종교의 부상은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특히 서구의 신학을 배 우고 가르친 아시아 교회에게는 더욱 그렇다. 전통 종교들은 나름대로 영발로 버텨온 종교들이다. 영발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터오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영적인 힘에 있어서 기독교와 전통 종교들은 상 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구적인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기독교가 가진 말씀의 힘, 영적인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냐면 신학이 말씀의 세계, 영적인 세계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서구 신학이 자연 과학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기독교는 본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신학을 배우고 가르친 모양새다.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가 신학 공부를 10년 정도 했을 때 드디어 도(道)가 깨달아졌다. 그 때 필자는 에든버러 대학 신학 부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10년 공부 어쩌고 하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학문에서 10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 10년 공부 끝에 득도(得道) 비슷한 것을 했다. 그런데 기대 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아, 이런 식으로 신학을 공부하면 도가 트일 수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영국 대학 신학부 교수라 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야, 저 사람은 기독교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 친구도 자유주의 물을 먹었겠지. 영국 대학에서 신학자 노릇하기 쉽지 않을 텐데” 하는 것일까? 아마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심한 경우에는 “그 사람 그리스도인 맞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구 기독교의 위기 상황을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유럽 신학교 교수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기독교의 도를 터득했거나 하나님과 인간을 깊이 아는 영성과 학문을 겸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서구 신학의 위기요, 서구 기독교의 위기다.

기독교가 소수자의 종교로 돌아오고 전통 종교들이 다시 번성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기독교와 타 종교들과의 경쟁이 영성(靈性)의 경쟁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 동안 기독교가 이 정도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영성이 아닌 다른 것의 도움이 많았다. 상황을 다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앞으로 기독교의 생존은 기독교의 영성 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맘이다. 복음 송 가사처럼, 돈으로도 안 되고, 지식으로도 안 되고, 인간관계로도 안 되고, 학벌로도 안 되고, 프로그램으로도 안 되고, 오직 말씀과 기 도의 능력으로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아시아 교회가 은사 위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영성과 은사주의는 현격하게 다르다. 기독교의 영성 회복은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의 경우와 같이 말씀과 기도, 즉 지혜와 능력이 어우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모습이 회복될 때 기독교는 비로소 제 위치를 찾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초대교회 상황

기독교가 소수 종교가 되었다는 말은 상황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전 시대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 상황과 그 때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단지 기독교의 사회적 위치가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초대교회 상황’이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 한다.

첫째, 기독교를 감싸고 있던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기독교 배후에 정치 세력의 비호가 없었다. 오히려 정치 세력으로부터 박해 받았다. 둘째, 초대교회는 종교적으로 다원적 상황 이었다. 제 종교가 각축을 벌이는 형세였다. 기독교는 복음의 능력 자체를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더 나은 종교요, 그래서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했다. 당시 기독교는 가치 전복적이고 파격적인 가르침과 실천, 그리고 영적 권위에 의해 나타나는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21세기에 기독교가 맞닥뜨리는 시대적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기독교를 감싸고 있는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고, 종교는 다원화되고 있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말의 허구성을 직시해야 한다. 기독교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교 차원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서구 사회에서나 비서구 사회에서나 기독교는 소수자 종교가 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자기 인식이다.

서구 기독교나 비서구 기독교 모두 직면한 도전의 성격은 동일하다. 정치적 세력의 비호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라야 하는 것이다. 21세기 기독교는 다시 말씀의 실력, 영적인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기독교의 본질적 모습, 영적인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반기독교적인 시대정신을 뚫고 일어서야 한다.

기독교는 타 종교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그 탁월성과 신령함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 자체를 복원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복음을 재발견하고 복음의 능력을 이 시대에 복원하는 일은 선생 교회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권위를 회복하는 일만 이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만드는 일이다.

기독교 종주국의 변화

지난 2천여 년 동안 기독교는 서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였고, 주 무대 또한 서구 사회였다. 그러나 이제 서구는 더 이상 기독교 사회가 아니다. 서구 종고가 기독교로 인식되던 시대도 지나갔다. 이것은 기독교가 서구 사회에서 사라졌거나 더 이상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전처럼 서구 사회와 기독교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서구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지만 서구를 떠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서구의 종교적 현상을 보고 일부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중심 이동을 말 한다. 기독교는 역사상 그 중심이 여러 차례 이동했는데, 우리 시대에 다시 한 번 그 중심이 이동했다고 본다. 그 동안 서구가 그 중심이었다가 이제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가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중심이 이동했다는 말은 기독교가 서구를 떠났다는 말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서구 사회가 기독교에서 벗어난 것이겠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서구 사회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할 수 있다. 서구가 탈기독교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나, 서구 인들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중심 이동을 했다는 말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과 설명이다.

이렇게 기독교의 중심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기독교의 중심이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확인할 만한 새로운 중심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비서구 종교(non-western religion)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지금은 오히려 기독교의 중심이 이동하는 중이라거나 새로운 중심이 아직 등장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기독교가 탈서구 종교 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비서구 종교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기독교 대륙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기독교가 서구의 종교가 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되리라고 전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도 많이 성장하였지만 기독교 대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 서 새로운 중심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시아의 경우는 더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기독교가 많이 부흥하고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 서구가 기독교 사회였던 것처럼, 이들 지역이 기독교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다. 종주국의 변동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곳이 세계 기독교의 흐름을 주도하게 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명백한 사실은 기독교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과 기독교가 더 이상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신학의 중심도 이동할 것이고 세계 선교의 중심도 이동할 것이라는 것 이다.

아시아 교회의 현실

아시아 기독교는 서구 기독교와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불연속성을 가진다. 그 동안 우리는 이 둘을 동일한 것으로 전제했었다. 그래서 아시아 기독교와 서구 기독교가 불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연속성과 더불어 불연속성을 인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시아 기독교는 서구 기독교와 역사적 경험이 다르다. 아시아의 땅에 들어온 그날부터 다른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 것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아시아 기독교는 서구로부터 전달되었지만, 서구 기독교 역사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서구 기독교가 서구 사회에서 가지는 위치와 아시아 기독교가 아시아 사회에서 가지는 각자의 위치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기독교의 정체성은 아시아의 경험을 배경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구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아시아 그리스도인 들조차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라도 아시아 기독교

와 서구 기독교의 차이를 깨닫고, 이 둘의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에 서 가지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재발견 해야 한다.

기독교는 서구 종교다

2001년 말에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두드러진 박해가 있었다. 하나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로 천주교 신자 19명이 성당 안에서 회교 과격분자들에 의해 살해된 일이다. 다른 하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났는데, 이 역시 회교 과격분자들이 교회 두 곳과 성당 두 곳에 방화를 저질렀다. 이번에 일어난 기독교 박해는 지난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폭파 이후 전개된 미국의 대테러 보복 전쟁과 연계되어 있다. 회교 과격분자들의 관점에서는 미국 및 서방 세계와 기독교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아닌 현지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불에 탄 교회와 성당 역시 말레이시아 성도들이 주인인 곳이었다.

이 두 극단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것 은 아직도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기독교가 여전히 서구 종교다. 이것은 또한 아시아 교회에 복음에 대한 저항감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필자는 아시아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저항들을 접게 될 때,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우리가 부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것이 안타까운 이유는 기독교가 서구 종교로 인식되는 것이 아시아 선교에 큰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시아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서구적 이미지로 인해 억울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아직도 외국 종교 혹은 서구 종교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아시아 백성들은 물론이고 아시아 그리스도인들 조차 기독교는 아시아 종교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 불교는 아시아종교다. 힌두교도 아시아 종교다. 유교도 아시아 종교다. 그러나 기독교는 불교, 힌두교, 유교와 같은 차원의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에 불교 사찰과 현지 불교 신자들이 있어도 우리가 불교나 유교를 서양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기독교 역시 아시아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 종교로 인식되지 않는다.

기독교가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되었음을 근거로 아시아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 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아시아에 알려지지 않은 오랜 기독교 역사가 있다는 것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아시아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근거다. 아시아의 비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의 의식에서조차 기독교는 서구로부터 전해진 종교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산지는 서구이며, ‘기독교’ 하면 아직도 서구가 연상된다.

아시아 기독교는 소수자의 종교다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기독교 인구는 5~7%에 불과하다. 필리핀, 한국, 싱가포르 및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시아 국가의 기독교 인구는 1% 안팎이다.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소수자 종교인 것이다. 따라서 서구 기독교가 탈서구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위상은 아직 아시아 종교로 편입되지 못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가 소수자 의 종교가 되었다. 서구는 비기독교 사회와 기독교 사회를 거쳐 이제 탈기독교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는 아직도 대부분 비 기독교 사회 내지는 기독교 이 전 사회(pre-Christina society)다. 아시아 어느 나라도 기독교 국가 혹은 기독교 사회가 되어본 적이 없다.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수자의 종교였다.

아시아 전통 종교가 살아 있다

대개 전통 종교들은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과 함께 맞물려 있다. 국가 종교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 차원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 국가 개념은 더 이상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9 · 11 사태가 난 이후에 미국에 입국하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정부 지도자의 경우,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지나치게 보안 검사를 해서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말레이 사람=회교도’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어떤 국가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과 연결 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도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아시아의 다른 전통 종교들은 국가 종교로서의 위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종교가 국가 종교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교회가 처한 형편은 이렇다. 첫째, 대부분 지역에서 종교적 환경이 우호적 이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이다. 둘째, 기독교에 대한 집단적 가해 행위가 일어난다. 셋째, 기독교는 서양 종교라는 이미지로 정서적 반감이 팽배하다.

이러한 아시아적 도전과 더불어 기독교에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서구 문명의 영향도 아시아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전통 종교들이 국가종교 차원의 비호와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지속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지금도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실존적 결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아시아 그리스도인 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통 종교로부터 박해와 멸시를 당하고 있다. 이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구 기독교의 경우보다 이중삼중으로 힘겨운 형세다.

아시아의 다원 종교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 성장으로 잘 알려진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 가지다.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집사님은 직장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 이란 사실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몇 년을 한 부서에서 근무하던 동료와 회식도 하고 술잔도 주고받았는데 나중에야 서로 교인이란 사실을 알고 극도로 무안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자기 부서의 직속 상사도 교인이란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몇 년 후 어느 교회 장로라는 사실을 알고서 가슴이 썰렁해졌다고 했다. 물론 그것이 자기 자신이 직면한 실존적 문제라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것은 개인의 단편적 일화지만, 이러한 경험과 고백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한국 사회에서조차 기독교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일종의 게토(ghetto)와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정체를 떳떳하게 드러내고 그리스도인의 행동 양식에 따라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기독교에 열려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타협을 강요 받는다. 교회 안에서는 훌륭한 직분자 이지만, 사회에 나가면 전혀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와 사회 사이에 거리, 즉 갭이 존재하기 때문에 파생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기독교의 배경은 아시아 문화가 아니다 

서구 기독교는 서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토대를 형성하고 자양분을 제공해왔다. 반면 기독교가 아시아 문화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기독교와 아시아 문화를 긴장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그만큼 둘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아시아 전통 종교들은 아시아 문화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다. 이와 달리 기독교는 아시아 정신세계에 가장 뒤늦게 들어왔고 아시아 문화 형성에도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시아에는 아직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아시아 교회는 여전히 창조적 소수(?)에 머물고 있을 뿐 이다.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대표되는 기독교는 소수자의 종교, 2천년 역 사를 가진 종교, 서구 문화를 형성한 종교, 서구의 정치, 군사, 경제적 힘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던 종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주류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종교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아시아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아시아 기독교와 서구 기독교의 불연속성이 있다.

아시아 교회는 이제 서구 기독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또한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아시아 기독교 상황에 맞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교회와 서구교회는 역사적 경험이 판이하게 다르다. 아시아 교회를 서구 교회 역사의 연장 내지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다.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2천 년의 기독교 역사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지만, 아시아 그리스도인의 역사적 의식 속에는 그러한 과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물려받았으나, 우리의 정서 안에는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 누렸던 영광도 없고 권력의 남용으로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죄의식도 없다. 이것이 아시아 그리스도인의 자기 발견이요, 자기 이해다.

기독교를 아시아의 종교로 만들라

그럼 우리 앞에 남아 있는 도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독교를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이것은 아시아 기독교와 서구 기독교의 차이를 자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앞서 우리는, 기독교가 탈서구 종교가 되었으나 아직 비서구 종교로 등장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한 현 시점에서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가 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사실 아시아 종교는 여전히 불교, 유교, 힌두교 및 회교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 이동은 전 세계 종교적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기독교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 촛대를 옮기고 계신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가 기독교의 새로운 중 심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가 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의 입에서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라는 말을 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하도록 지금부터 그 기초 작업을 해야 한다. 

기독교는 그 동안 서구의 문화와 정신세계랑 교섭하면서 서구적 형 태의 기독교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제는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서구가 기독교의 변방이 되고, 변방이었던 아시아 및 다른 비서구 사회가 중심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왔다. 이렇게 기독교가 서구를 떠나는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면 기독교와 서구 문화 혹은 서구의 자연 과학적 세계관사이의 교섭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서구의 자연 과학적 세계관이 기독교의 진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영적 세계와 능력을 축소하고 말살 하는 등의 역기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계몽주의 이후 근래에 이르는 기독교의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이것은 결국 서구 신학의 한계 이기도 하다.

이제 기독교의 변방이었던 아시아가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기독교와 아시아 문화 혹은 아시아 정신세계와 교섭하면서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기독교의 원형을 회복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하려면 성경의 세계를 깨닫는 깊이와 영적인 능력이 통전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이는 서구를 모판으로 형성된 기존의 기독교와 다른 형태가 될 가능성이 많다.

기독교의 아시아화 혹은 탈서구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다.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또는 왜 아시아 기독교와 서구 기독교의 차별화가 필요한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아시아 기독교 선교, 즉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필요하다. 아시아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아시아인들이 기독교를 서구 종교로 인식하는 것이다. 선교 현장에서 효과적인 타 문화권 전달을 위한 연구를 해도, 선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서구 종교로 대하 는 이상 복음 전달의 효과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시아백성들의 정신세계를 복음으로 끌어당기기 위하여, 기독교는 서구종교가 아니요 아시아의 삶의 자리에 뿌리를 둔 아시아 종교라는 인식을 새롭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둘째, 기독교의 복음이 아시아 백성의 ‘현장 신앙(actual belief)’ 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장 신앙이란 실제 말과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신앙을 의미한다. 입술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실제 삶은 다른 가치, 다른 가르침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현장 신앙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성도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무속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아직 무속을 떠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그들의 현장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무속적 정서라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아 백성들의 현장 신앙은 유교, 불교, 도교, 힌두 교, 이슬람 및 무속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가 아시아 백성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세계 기독교 역사의 지속을 위해 기독교의 아시아화가 필요 하다. 기독교가 아시아화 되는 것은 아시아가 새로운 중심지로 등장 했음을 의미한다. 앞서 기독교가 서구에서 쇠퇴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앤드류 월즈 교수는 세계 기독교의 발전은 중심 이동을 통해 이루 어 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중심이 등장해야 기독교의 발전이 방해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기독교의 등장은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넷째, 기독교가 아시아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구 기독교는 서구 문화 형성의 주체였다. 비록 서구 기독교와 서구 문화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긴 하지만, 어쨌든 기독교가 서구 문 화의 결을 만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시아 현실에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다르다. 우리가 ‘아시아 문화’를 말할 때, 그것은 유교 문화, 불교 문화, 힌두교 문화 혹은 회교 문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 문화를 소개할 때 기독교 문화의 자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줄리아 칭(Julia Ching)이 말한 것처럼, 기독교는 죽은 후에나 작용하는 내세 종교일 뿐 이생의 삶은 유교나 다른 종교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론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아시아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내세뿐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문화, 한국 문화를 형성하는 동력으로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와 아시아 문화 사이에 좀 더 긴밀한 교섭을 시도하려는 작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비록 기존의 문화 신학이 잘못된 방향 때문에 아시아 신학의 발전에 유익을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예일대의 라민 싸네 교수가 잘 정리해준 것처럼, 복음과문화의 관계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복음과 아시아 문화가 만날 때 전통 문화적 요소들 모두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에 해로운 요소들,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은 당연히 버려야 하겠지만, 복음의 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요소들도 있다. 이렇게 복음과 아시아 문화의 관계를 일방적 도식으로 파악하여 무조건 위험한 시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시아 기독교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학의 탈서구화

기독교가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려면 기독교를 연구하는 아시아만의 방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구인이 불교 신자가 되면 그는 불교의 본고장 출신 불자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동양 무술을 배우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술 사범이 가르쳐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질문이 있으면 묻고 지시하는 대로 행동한다.

기독교의 전수에서도 통일한 현상이 일어났다. 서구 선교사들이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전해주고 모두 철수했었다면, 기독교 진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터득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서구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배웠다 서구는 선생이었고 아시아는 학생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 하는데 서구와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마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20~30년 사이에 독자적인 신학의 가능성들이 조금씩 제기되었다.

기독교가 아시아의 종교가 되려면 아시아 나름대로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는 방식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또한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주체가 되어 아시아 백성의 기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신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아시아 기독교는 아시아인을 섬기고, 아시아 교회를 섬기는 기독교로 거듭나야 한다. 서양식으로 기독교를 연구하는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아시아 문화, 아시아 사회에 기여할 바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기독교가 탈서구 종교가 된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서구가 신학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아시아도 아시아만의 독자적인 신학을 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신학은 복음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전 수 방식을 바꾸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지금껏 서구로부터 배웠던 신학에 대해 방법론적 회의가 필요하다. 학생 콤플렉스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첫째, 신학자의 정체성을 다시 정해야 한다. 아시아에는 서구식으로 훈련된 신학자들이 많다. 또한 실력을 갖춘 신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많고 적음이나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다른 종류의 신학을 할 수 있고 혹은 하려고 하는 신학자들이 얼마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패러다임의 질적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아시아 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자의 틀을 따르는 것을 급선무로 생각했다. 서구 신학자와 차이가 없는 것이 실력 있는 신학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고 논증하고 인용하고 각주를 달았다. 그 모든 것은 서구 신학자들로 부 터 사사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를 연구하는 방식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신학자들을 인정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서구 신학을 따라가면 서구적 기준에서 저명한 신학자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이전과는 다른 유형의 신학자, 곧 아시아적 방법론과 아시아적 관점을 가지고 연구하는 신학자가 나와야 한다.

둘째, 신학의 목적과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 서구 신학의 목적은 신학의 대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비평적인 학문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아시아 전통에서 학문의 목적은 깨달음과 자기 변화였다. 신학자 자신의 깨달음과 자기 변혁을 통해 사람들 의 관심을 얻고 호응을 얻는 신학이 되는 것이다.

셋째, 신학의 아시아적 방법, 아시아적 학문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학문적인가 아닌가를 서구적 잣대로 재면 곤란하다. 서구적 잣대는 서구 학문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서구 신학은 기독교를 탐구하기는 하지만, 방법론에선 여전히 일반 학문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 학문에서 사용하는 방법론과 구별된, 신학 연구만을 위한 독자적인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신학 연구를 위해 언어학, 문학비평, 사회학, 역사학, 심리학, 인류학 등의 연구 방법론들이 동원된다. 아시아에도 이전부터 학문하는 방법론과 목표가 있었다.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적 스타일로 학문성을 갖추면 된다. 서구 신학의 방법론과 경향을 따르고, 서구적 기준에서 학문성을 갖추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방 신학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구 신학의 분석적이고 학문적인 틀과, 규칙에 맞지 않으면 신학다운 신학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에 익숙해 있다. 이것은 아시아 신학자들 사이에 오히려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은 서구 신학의 학문적 기준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에도 학문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구 신학이 세속적 인문, 사회, 과학의 제 방법론들을 활용하여 신학을 세웠다면,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세속 학문 방법론을 활용하면 된다. 아시아의 학문 방법론도 기독교 진리 탐구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넷째, 신학 교육을 바꿔야 한다. 그 동안 신학의 목적이나 내용, 방 법에 있어서 모든 것이 서구 신학에 의해 규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신학 교육기관에는 공식적인 학적 요구사항이 있어서 신학의 틀을 유지하는데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고 전수하는 신학 교육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구식 신학으로는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섯째, 서구 신학의 길드와 더불어 아시아 신학자 길드가 형성되어야 한다. 아시아 신학계는 새로운 지평의 사고와 창의적인 제안들,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를 터득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학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 신학자들에 의해 이것이 세워져야 한다. 서로를 무시하는 풍토를 버리고 서로를 학적으로 존중하고 함께 담론을 이끌어낼 동반자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집단적 정서가 형성될 때, 아시아가 서구에 기독교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신학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시아 기독교의 미래

서구 신학이 서구 세계를 모판으로 하여 세계 기독교 발전에 기여해온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린 신학을 만들어 세계 기독교에 기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시아 기독교의 미래는 기독교를 연구하고 터득하는 방식, 즉 신학 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 혹은 기독교 신학을 아시아화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차원이 아니다.

아시아 신학은 신학 하는 목적, 방향, 방법론에 있어 이제까지 서구 신학이 제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측면들을 제시하고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아시아 기독교가 아시아 문화와 긴밀하게 교섭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어야 동}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진리가 아시아 그리스도인들과 아시아인의 ‘현장 신앙’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명실상부한 아시아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신학적 기초도 놓아야 한다. 결국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서구에서 쇠퇴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가 활성 화되고, 새로운 기독교 중심으로 등장할 아시아 교회가 복음의 담지자요, 세계 선교의 주체로 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