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지나면서 공장 사람들의 출신국가별 구성이 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많고, 필리핀 사람들도 일부 있는 정도였는데 스리랑카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부에 있는 섬나라인데, 키가 작은 인도 남부 사람들과는 달리 일찍이 인도북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 체격도 좋고 성실하고 교육수준도 높아서 공장에서 선호하였습니다. 또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이탈하는 일이 잦았던 것도 고용주가 스리랑카 근로자들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에는 스리랑카 친구들이 한두 명씩 늘더니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3~4년 뒤에는 스리랑카 친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인도네시아어와 문화를 배우고 이슬람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점점 떠나가고 스리랑카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스리랑카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리랑카에 대한 자료들도 인터넷에서 새로 찾아보고 많진 않지만 책 같은 것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스리랑카 말을 공부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힘들게 독학으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했건만 친구들은 다 가버리고 또 새로운 걸 공부하려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어도 교재나 자료가 많지 않지만 스리랑카말인 싱할리어는 더더욱 배울 곳이 없었습니다. 교재는 어렵게 어떻게 구했지만 문자와 발음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취직을 해서 출근을 하는 상황이라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기도 해서 아쉽게도 싱할리어 공부는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스리랑카인 중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앤튼이라는 친구입니다. 불교가 강한 스리랑카에서 소수 그리스도인인 앤튼은 호텔에서도 일한 적이 있어서 영어도 잘하고 아주 밝은 친구였습니다. 스리랑카 불교는 우리나라 불교와 달리 승려들이 이슬람이나 힌두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고, TV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다른 종교를 비난하거나 교회에 난입해서 린치를 가하는 일들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앤튼은 매우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핍박 가운데 있는 스리랑카 성도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여러 번 체험해서 믿음의 비밀을 소유한 친구였습니다. 앤튼과는 여러 일을 함께 겪었고, 지금도 연락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할 때 가족과 함께 저를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형제입니다.

  교제의 중심이 인도네시아 친구들에서 스리랑카 친구들로 옮겨가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숙소를 찾아가면 서로 다른 방을 쓰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당연히 오랜 친구인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앤튼과 다른 한 두 명의 스리랑카 친구들도 웃으며 저를 맞았습니다. 서로 다 같이 사이좋게 교제하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일터에서 잘 지낸다고 해도 퇴근 후까지 같이 지내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쪽 친구 방에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에게 좀 미안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친구들 간에 서로 약간 소원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동일 민족이나 집단을 특별한 타겟으로 삼아 섬기지 않고 여러 민족과 문화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사역을 하고 친구를 삼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