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와중에 인도네시아를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교제하며 말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있는데 정작 현지에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후원하던 손창남 선교사님께 메일을 써서 겨울방학 기간 동안에 족자카르타에 가도 되는지 여쭙고 허락을 받아 한 달 정도를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가루다항공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에 내렸는데 간판이 다 인도네시아어로 되어 있고 사방이 온통 인도네시아 사람들로 가득해서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만나서 사귈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인도네시아말을 쓰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궁금하지 않은데도 옆 자리에 앉아 가던 학생에게 일부러 시간을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족자카르타에 있는 동안에는 단기선교사로 와 있던 형님 하숙집에 함께 머물며 오전에는 주로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오후에는 족자카르타 JOY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과 관련이 있는 것 몇 가지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어학원 선생님의 남편과 신앙과 과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 일입니다. 평소에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셔서 두세 번 정도 타티아나라고 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선생님과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인도네시아 종교상황과 개인적 신앙에 대해서도 서로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다 마치고 타티아나 선생님이 다음 번 세션 때 학원에서 자기 남편을 한 번 만나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남편은 원자핵공학자인데 ‘과학자’라서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견고한 신앙을 갖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타티아나 선생님은 저하고 얘기를 나눈 후에 남편과 저를 만나게 해 주면 남편의 회의적인 태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그런 부탁을 한 것입니다. 결국 약속을 잡고 학원에 있는 교습실에서 저와 선생님, 그리고 남편 셋이 함께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며 신앙과 과학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뭘 믿고 무슨 자신감으로 선뜻 그러겠다고 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신앙과 과학, 과학철학 등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이 주제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때 무슨 말들을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달리 신앙과 과학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견해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확신에 차 있었고 더 젊었습니다. 전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습니다. 때로는 잘 아는 주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속된 말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데 남편분이 사람이 좋아서인지 흥미 있게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말로도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를 서툰 인도네시아 말로 설명한다는 게 너무 어려워서 중간 중간 영어를 섞기도 하였지만 그 시간이 인도네시아어 교습 시간이었고 선생님도 지켜보고 있어서 왠지 인도네시아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헤어질 때 타티아나 선생님은 이 ‘인도네시아어는 더 공부해야겠다. 그런데 그 생각(idea)들은 좋았어’ 라고 말했습니다. 이후에 선생님 남편의 신앙 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 번에 생각이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쯤은 어디선가 하나님을 아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 ‘신앙의 길’과 ‘과학의 길’이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을 삶으로 증거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꼭 내가 100% 완벽히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과 과학에 대한 어설픈 생각을 가지고 한국 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서툰 외국어로 원자핵공학자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 중에 어떤 아이디어, 어떤 표현이 그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지는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내가 가장 약하고 자신 없는 분야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것들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저는 그 때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