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웃’으로 지내면서도 언젠가 메시지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강박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졌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듣던지, 읽던지 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것은 미숙했지만 여러가지 시도를 하였던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한 번은 교회에 WEC 선교회 소속인 선교사님들이 방문하셨는데 선교회 이사이신 장로님 댁에 묵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지금은 WEC 선교회 소속으로 키르키즈스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가셨습니다.

방문하신 선교사님은 호주 출신으로 독신이시고 인도네시아에서 25년을 사역하신 분이셨습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그 선교사님을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25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셨으니 언어도, 사람도 잘 아시니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에 친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 그리고 선교사님에게 이 아이디어를 얘기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인도네시아에서 25년간 살았던 호주 분이 오셨는데 만나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약속이 된 줄로 생각하고 주위에 기도 부탁을 하고 약속한 날 저도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친구들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정말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약속 시간에 찾아가자 친구들은 마치 그 얘기를 처음 듣는다는 듯이 반응하며 식사하러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약속이 된 줄 알았던 저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하였습니다. 제가 난감해 하니까 친구들도 딱 잘라서 거절하지는 못하고, ‘그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냐? 인도네시아에선 뭐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선교사라고 얘기했고 친구들은 더더욱 같이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나중에 3~4명 정도라도 저를 따라 나선 것은 아마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정리와 제 얼굴을 생각해서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장로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선교사님과 친구들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워낙 선교사님이 유쾌한 분이셔서 처음에 경계하는 표정으로 굳어있던 친구들의 표정도 곧 풀리고 웃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 인도네시아어가 짧아서 중간 중간 단어만 알아 들을 수 있었기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벽안의 서양 사람이 자기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얘기를 재미있게 나눈다면 저라도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릴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아주 좋아졌지만 제가 기대했던 ‘한 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돌아간 뒤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약간 아쉽기도 했습니다.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아무 맥락 없이 복음을 전해도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항상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면 이 선교사님이 결혼도 안 하시고 인도네시아에서 25년씩 사실 이유가 없었겠지요.

소득도 있었습니다. 호주 선교사님께서 인도네시아어로 된 자료를 받아볼 수 있는 주소를 하나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아마 현지에서 사역하시면서 문서선교를 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메일 주소를 받아서 메일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는 아날로그 방식이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로 된 전도자료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직접 써서 항공우편으로 부쳤습니다.

한참 지나서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소포가 와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전도책자와 얇은 누가복음서 여러 권,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도 있었습니다.인도네시아 제목이 ‘나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가?’ 였는데 아마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번역한 책인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의 인도네시아 실력이 그런 자료를 읽을 정도에는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구들에게 그런 자료들을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받은 책자들에 관심을 보이고 주의 깊게 읽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신앙이나 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서 이런 주제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는 신앙이 삶에서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때로는 서로 다른 신앙 때문에 싸우는 일은 있어도 신앙과 관련한 대화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책자를 건네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읽어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사디라고 하는 분은 나이가 좀 있어서 그냥 이름을 부르지 않고 ‘빡(Pak) 아사디’ 라고 불리곤 했는데, 점잖고 진중할 뿐 아니라 조금만 얘기를 해 봐도 공부도 좀 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에게 자료들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니 자기 작은아버지도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받았던 책자는 다 읽었고 다른 책이 있으면 더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빡 아사디를 위해 기도하며 조금 더 깊이 교제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어느날, 친구들 집을 방문하였는데 빡 아사디가 귀국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옆에 있던 모자 회사는 정식으로 외국인근로자들을 산업연수생으로 고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본봉은 30~40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야근, 휴일 근무 수당을 받아야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사업장을 이탈하여 다른 곳에 가서 일하면 백 만원 정도를 기본으로 받을 수 있으니 이탈 근로자가 많았던 것입니다. 회사입장에서는 자사 소속 근로자 중 이탈하여 불법체류하게 되는 일이 많으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연수기간이 다 되어가는 빡 아사디를 본인에게 알리지도 않고 동료들과 인사할 시간도 없이, 이곳 생활을 정리할 말미도 주지 않은 채 일하는 사람을 불러서 짐을 싸게 해서 내보냈던 것입니다. 참 비인격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망스럽고 낙담이 되었습니다. 친하게 지냈고 좋아하던 분인데 인사도 없이 헤어지게 된 것도 너무 아쉬웠고, 복음에 대해 더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기도했던 것도 허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실망이 컸습니다.

제가 잘 몰랐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제가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이 선지자일 뿐이라며 저에게 꾸란까지 보여주었던 친구들과, 나중에 제가 전해 준 전도책자를 주의 깊게 읽으며 관심을 보였던 친구들은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이지만 출신지역이 다릅니다. 처음 그룹은 주로 수마트라섬 여기저기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나중 친구들은 중부 자바 출신들이 많습니다. 이슬람을 인도네시아에 소개한 것은 인도 무슬림 상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서쪽에 있는 수마트라섬에서 부터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서쪽에 있는 아체주는 지금도 특구로 지정되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적용되고 있을 만큼 이슬람이 강합니다. 반면, 인구가 가장 많은 자바 지역은 이슬람화가 진행되는 데도 시간도 많이 걸렸을 뿐 아니라 힌두 및 토속신앙 등 여러 요소가 합쳐져서 정통 이슬람과는 다른 형태의 이슬람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슬람의 정통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죠) 또, 자바는 기독교회가 적어도 두 번 이상의 부흥을 경험한 곳입니다. 평양 대부흥이 유명한 것처럼 자바대부흥도 유명합니다. 그러니 자바 사람들은 이웃이나 친척 중에 기독교인이 있던지, 결혼을 하면서 기독교인이 무슬림으로 무슬림이 기독교인으로 개종을 하는 일들을 보며 다른 신앙에 대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갖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들어 점점 덜 관용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전 이걸 몰랐습니다. 처음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전 무조건 조심하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완전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무슬림이던 한 친구의 여자 친구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어느 정도 신앙에 대해 나눌 준비가 되었는데도 그걸 알지 못하고 시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실패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무슬림에 대해서도, 다른 신앙과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 기회가 없었기에 당연히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일 것입니다. 때로는 인내하고 섬기며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강하고 대담하게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항상 그 때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며 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하겠지요.

때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생각지 못한 때에 움직여도 열매를 맺는 경우도 많아서 저는 그저 기도하며 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