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대담하게 전하려던 시도가 벽에 부딪힌 뒤에는 직접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시간을 같이 보내거나 도울 일이 있을때 도움을 주면서 서로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것으로 도와주지 않아도 말벗이 되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들에겐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이 20대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품이 좋으신 분들도 있었겠지만 다른 문화나 종교를 가진 외국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의사 표현이 투박하신 경우도 많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지만 낯선 곳에서 자신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살면, 서로 소통하며 상대의 문화도 배우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3년을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 TV도 보고 지나다니는 같은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도 보는데 전혀 아무런 교류 없이 밤낮으로 일만 하고 휴일에는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국 사람 중에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TV도 같이 보다가 한국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한국말도 가르쳐 주는 친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도 얘기해 줄 수 있는 친구...  알고 보니 고향에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였던 사람도 있고, 얘기를 나눠보면 정말 점잖은 학자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데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참는 아빠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문화나 유행에 대해서도 말해 주고,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가 되고 보니 구나완이 왜 고향에 전화를 하지 않을 때에도 교회로비에서 서성대곤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구나완은 한국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교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제 구나완은 저 뿐 아니라 교회 청년부의 다른 형들하고도 친했습니다. 동네에 있던 숭실대학교에 다니던 교회 형님 졸업식에 구나완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쫙 바르고 왔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졸업식이 평일에 있었는데도 잠시 공장에 얘기를 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온 것이었습니다.

뭔가를 같이 먹었던 기억도 많습니다. 친구들이 우리나라 양념치킨을 정말 좋아해서 늦게 찾아간 날에는 치킨을 시켜서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부평에 있는 인도네시아 식당엘 함께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친구들에게는 한국 가정에 초대를 받아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더욱 특별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저희 집으로 부르고, 여자들은 결혼할 예정이었던 자매 집으로 초대해서 닭볶음탕 같은 걸 만들어 함께 먹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결혼한 이후에는 신혼집으로 불러 아내가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가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없어서 어머니나 여자친구에게 부탁을 해야했기에 집에 자주 초대하지 못했던 것이 좀 아쉽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자주 초대할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밖에서도 함께 먹을 수 있고, 배달을 시켜서 먹을 수도 있지만 손님을 초대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몇가지 요리를 합니다. 한국요리, 서양요리 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에서 먹었던 음식들도 몇가지 시도해 보고 있는데 비슷하게 맛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남아 음식을 좀 더 배워서 나중에는 한국 요리도 하고, 동남아 음식도 해서 손님들을 대접하고 싶네요.

한국문화나 한국말에 대해서 알려줄 기회도 많았습니다. 특히 친구들 집에 갈때면 못보던 몇 일 사이에 들었는데 의미를 알 수 없어 궁금했던 한국말 표현들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노래가사를 

궁금해하고, 때로는 광고에서 자주 들리는 카피 같은 것들도 물었습니다.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잘 기억해 놓았다가 제가 가면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말 중에는 좋지 않은 말들도 많았습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나 같이 일하는 어른들이 했던 말들을 물어보는데 표현이 거칠어서 그 의미를 바로 얘기하지 못하고 상당히 순화시켜서 얘기해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욕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니 다른 곳에 가서 쓰지는 말라는 말도 꼭 덧붙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매번 찾아갈 때마다 몇 십분을 가르쳐 주고 자음, 모음, 발음에 대해 설명해 주다 보면 어느덧 그 시간이 한국말 강좌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한국말을 가르쳐주면서 우리말 문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그 변화무쌍한 어미변화와 높임말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뺐습니다. 발음도 그렇습니다. 보통소리와 된소리, 센소리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스리랑카 친구들에게는 ‘달’과 ‘딸’과 ‘탈’이 각각 ‘moon', 'daughter', 'mask' 의 의미를 가진 다른 낱말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달‘, ’딸‘, ’탈‘ 이렇게 말을 해도 다 똑같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들리지가 않으니 따라해 보라고 하고 ’달‘ 해도 ’dal‘, ’딸‘ 해도 ’dal‘, '탈’ 해도 'dal' 하면서 자기는 잘 따라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나 이웃사이가 원래 그렇듯이 그냥 같이 시간 보내고, 먹고, 얘기하고 그런 시간이었고 항상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친구들이 다니는 공장과 숙소가 다 교회 옆에 있었으니 마주칠 기회도 많았고 그 때마다 안부를 묻고 반가워하곤 했습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청년부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만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나그네로 와 있던 외국인들과 친구와 이웃으로 지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도와줄 일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물론 공장에 있는 한국분 들이나, 먼저 한국에 와서 일하는 다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제가 가까이 있는 한국 친구이니 저를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고 싶은데 어떻게 찾아가면 되는지 알려주는 일부터, 은행업무, 그외에 이것저것 알려주고 도와줄 일들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들이 꽤 쌀쌀한 날씨인데 얇은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교회와 회사에서 잘 입지 않는 겨울옷을 모아서 준 일도 있습니다. 입던 옷이고 유행이 많이 지난 옷들이어서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주었는데 겨울 내내 그 옷만 입고 다니는 걸 보고 흐뭇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습니다.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산업연수생으로 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입국한 근로자들은 신분도 확실하고 보험도 있어서 몸이 아플 때 필요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에서 병원에 데려가면 충분히 필요한 진찰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의사가 설명을 해도 내용을 잘 전달해 주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항상 따뜻한 데서 살다가 타지에 와서 계절도 바뀌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보니 이유 없이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같이 병원에 가서 증상을 의사에게 설명해 주고, 의사가 하는 말들을 전달해 주곤 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사전을 들고 갔습니다. 증상에 대해 미리 듣고 사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신체부위 및 증상에 대한 어휘를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큰 일이 날 뻔 했었다고 친구들이 말하였습니다. 들어보니 저랑 비교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여자친구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우리 같으면 119를 부르던지, 급히 차로 병원에 옮기던지, 들쳐업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던지 하겠지만 밤에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기자 어떻게 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도움을 요청하러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제가 전화를 받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공장에 다른 분에게 연락을 하고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비록 전화를 받지 못해서 도울 수는 없었지만 이 친구들이 낯선 곳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저였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글쓴이/ 양동철, 대학교 시절 한국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근로자 친구들을 섬기면서 이슬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경제를 공부하여 지금은 13년째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문 앞에 다가온 외국인 친구들을 환영하는 선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