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주(靑稞酒)
향긋한 보리주가 식도를 타고 찌릿 가벼운 전율을 남기고 내려갔다. 선대(先代)로부터 술고래 가문 막내아들로 주량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막걸리 한 말 앉은 자리에서 비우고도 끄떡없다 하셨고 아버지는 밤새 소주 됫병 몇 개 해치우셔도 술자리에서 바로 출근하셨다. 타고난 주량가(酒量家)라고 동네에서 곱지 않는 칭송을 누리셨으니 보리주 몇 잔 정도야 선대의 피가 흐르는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킬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평생 맥주 한잔 마신 적 없던 몸에 한꺼번에 쏟아 부은 보리주가 스멀스멀 눈동자를 흐리게 했다. 환영(幻影)인지 실제인지 전등 몇 개가 흔들리고 있었고 거실에 놓여 있던 탁자가 갑자기 튀어 올라왔다. “你没事儿吗(괜찮으세요)...!?” 안타까운 가냘픈 목소리가 애처롭게 어렴풋이 들려왔다.
보리주는 장족(藏族)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술의 이름을 보리주라 하는 만큼 보리를 원료로 만든 술이다. 외국에서는 이 보리주를 티베트맥주라 불리 운다. 알코올 도수는 15 – 20 으로 우리가 마시는 맥주보다 도수가 높다. 빚는 방법은 간단하다. 보리를 깨끗이 씻은 다음 푹 삶는다. 온도가 조금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곧 술밑(술, 누룩으로 만든 지에 밥)을 넣고 나무통이나 항아리 안에 넣고 봉한다. 2 – 3일 정도 발효 시킨 후 다시 일정한 비율의 깨끗한 물을 넣은 다음 하루나 이틀을 지내고 나면 깨끗한 향기가 우러나오는 보리주가 완성된다. 옛날부터 가정에서 해 오던 장족 전통주이다. 매매를 위한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이나 손님 접대 차원이라 시정부(市政府)도 밀주(密酒)라고 단속하지 않는다.
장족 가정에 손님으로 가면 주인의 지극한 접대를 받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먼저 손님에게 한 잔(대접) 가득 보리주를 채워 권한다. 장족 고유의 술 마시는 방식(酒道)이 있는데 손님은 한 잔 가득담긴 술을 우선 한 모금 마신다. 그러면 주인이 다시 한 잔 가득 채워 주는데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이렇게 3번 동일한 동작 후 마지막에는 잔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손님과 주인이 함께 잔을 들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다.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없다거나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다고 극구 사양 하는 것은 당신과 친구나 우호(友好)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는 표시로 받아들인다. 다른 것으로 아무리 가깝게 접근하려 해도 이 술 마시는 의례(절차)가 치러지지 않으면 헛수고다. 종교나 이념보다 앞서는 것이 관습과 전통이다. 사람을 얻지 않고 종교나 이념 논리 가지고는 관습과 전통을 앞서갈 수 없다. 물론 이것은 개별적 자기주관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먼저인가는 본인 몫이다.
잔을 주거니 받거니 돌리거나 잔과 잔끼리 부딪히며 건배하는 습관은 없다. 소주잔이나 맥주잔은 장족 가정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거기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습관도 당연히 없다. 한족들이 라사(拉薩)에 이주해 살면서 가라오케(卡拉 O.K – 노래방, 단란주점) 몇 곳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장족 정서하고 맞지 않아 장족이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식점에서 한족들은 가족, 친지, 친구들과 먹고 마시면서 주위 신경 안 쓰고 시끌벅적스럽지만 장족 문화는 음식이나 술 마실 때 은근하고 진중하다. 다만 라사 단기여행 중 음주는 절제하는 것이 좋다. 산소가 희박해 호흡이 곤란한 부적응 상태에서 극히 해롭다. 풍광(風光)에 젖어 웬 극락천지냐 분위기 잡고 몇 잔 쭈욱 넘기다 이국타향에서 응급실로 직행한다...후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