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가운데 예수님이 가장 분노한 사건은 성전에 들어가서 비둘기 파는 상인들의 상을 뒤 업고, 채찍으로 그들을 쫒아낸 장면이다. 예수님이 폭력을 사용하신다. 성경 가운데 유일한 사건이다! 왜 그렇게 분노하셨을까? 많은 경우 이 본문을 가지고 주일날 교회에서 장사하는(?) 여전도회를 질책하는 본문으로 사용하거나,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을 질책하는 본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정말 그 정도 일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분노하시고, “내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셨을까? 거기에는 분명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간 시점은 유월절을 앞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 성전에는 전 근동지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물을 가지고 예배드리러 성전으로 몰러드는 시기이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50만에서 100만 명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들은 멀리서 가장 귀한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와서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한 제사에 참여한다. 그런데 그들이 멀리서 비둘기나 제물을 가져오면 다 상하고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성전 가까이에 와서 싱싱하고 좋은 예물을 사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결국 더 싱싱한 예물을 사기 위해서 성전 안 마당에서 까지 비둘기를 사고파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왜 분노할 일인가? 오히려 잘하는 일 아닌가? 이런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전 구조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에서 솔로몬왕 때 만들어진 것이다. 구약에서 성전의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즉 성전은 구원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가는 곳 혹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다윗왕이 엄청난 영토와 부귀를 얻었지만 그가 제일 원했던 것은 성전을 짓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임하게 하는 일, 다시 말하는 구원을 완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 짓는 일을 최고의 일로 생각했고 이를 준비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에서 성전을 짓게 한다. 즉 다윗은 성전을 위한 설계도 뿐 만 아니라 이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을 다 준비해 놓고 이를 아들 솔로몬에게 넘기고 숨을 거둔다.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 솔로몬이다. 모든 부귀와 지혜와 명예를 다 얻은 사람이다. 그런 솔로몬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은 바로 성전을 완성한 것이다. 영왕기상에 보면 5-7장에서 성전을 짓는 장면이 나오고 8장에 넘어가면서 성전의 핵심인 언약괘(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를 새 성전으로 옮김으로 성전이 완성된다. 하나님의 임재, 즉 구원이 이뤄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이 자신이 성전을 완성함으로 임하는 일을 솔로몬이 이룬 것이다. 그 성전에서 올라가 솔로몬이 기도하는 장면이 8장에 이어진다. 솔로몬의 첫 번째 기도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한 기도이다(삼상8;21-40). 이스라엘백성들이 당하게 될 모든 어려움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기도이다. 즉 하나님이 이제 그들과 함께 계시므로 그들이 어떤 기도를 해도 주님이 용서하시고 들어주신다는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솔로몬이 또 다른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이다(41-43).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땅의 만민(이방인들)이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하나님을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사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땅의 만민(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즉 성전은 유대인만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만민(이방인)도 기도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은 성전의 구조를 보면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성전 뜰 혹은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즉 이방인들이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도록 만들어진 이방인들을 위해 따로 예비된 장소이다. 예수님의 분노의 진정한 이유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방인들이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예비 된 장소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예배를 잘 드리려고 싱싱한 예물을 사고파는 장소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좀 더 나은 예배를 위해 이방인들이 예배드릴 공간을 빼앗은 것이다.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는 말은 바로 이 말이다. 오늘날 교회는 구약의 성전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혹시 우리가 우리의 예배를 멋지게 잘 드리려고, 이방인들을 위해 예비된 공간(재정, 시간) 까지 빼앗아 버리지는 않았는가? 식당에 가면 예약석이라는 곳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유명하고 돈이 많아도 예약석을 차지 할 수는 없다. 이미 다른 사람이 쓰기로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 되려면 우리 교회 가운데 떼어놓아야 할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시간, 재정)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면 (비록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멋진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도) 그것은 강도의 짓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우리가 하나님께 더 멋진 예배를 드리려고 이방인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구분된 공간과 재정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이방인의 뜰이 존재하는가? 신약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전은 어디인가? 우리 개개인이 바로 성전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 속에 떼어놓아야 할 이방인의 뜰은 존재하는가? 나의 시간, 재정 가운데, 이방인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예약되어 있는 부분까지 우리가 다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비록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멋진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하면 우리는 강도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성전이 되려면 우리 속에 이방인들을 위한 뜰을 따로 구분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