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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롤드 스코필드의 기도 프린트   
전병준  Email [2016-04-09 23:07:41]  HIT : 4917  

헤롤드 스코필드는 CIM (OMF의 전신으로 1865년 허드슨 테일러가 만든 중국내지선교회)의 허스름한 본부의 문 앞에 내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동안 그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거리는 똥과 쓰레기 그리고 씻지 않은 더러운 몸에서 나는 악취를 항상 풍기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900만 명의 원주민과 이들 사이에 있는 단지 5,6명의 선교사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중국의 내륙 선교사 중에도 그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훈련된 몸과 정신을 소유한 대학 출신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코필드는 이 곳 중국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간정하게 필요하지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았다. 1883년 어느 봄 날 저녁, 스코필드는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마음의 짐을 풀었다. 그는 영국교회가 깨어나 주의 말씀을 전파할 사람을 세우시도록 기도했다. 특별히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주시고 재능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하나님 역사를 위해 헌신케 해 달라고 기도했다. 스코필드의 나이 이제 29세, 그가 영국을 떠난 후 2년 반 동안은 자신과 같은 대학 출신의 중국 선교사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그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지난 며칠 동안은 음식과 휴식도 중지한 채 계속해서 기도에 대달렸다. 황혼 빛이 그의 조그만 침실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스코필드 자신의 살아생전에는 볼 수 없을 기도제목을 위해 무릎을 꿇고 전심전력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의 이러한 한 사람의 간정한 기도를 전혀 알 리가 없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생인 호스트가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옥스퍼드 대학 안에 있었던 무디 초청집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리고 복음을 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이방에 복음을 전혀 들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로 결심했다. 1883년 봄 어느 날 대학 친구로서 선교헌신자인 윌리엄으로부터 CIM에 관한 책자가 보내왔다. 그 책자는 윌리엄이 또 다른 선교헌신자 친구인 보샴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특히 허드슨 테일러가 쓴 소책자 「중국의 영적 필요와 요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호스트는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백만 명의 중국 영혼이 죽어가는 동안 팔짱만 끼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도저히 그는 이러한 사실을 그냥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호스트가 아직도 해외선교를 희망한다면 장교가 되는 것을 포기해고 좋다는 허락이었다. 1883년 8월 1일 호스트는 허드슨 테일러와 CIM선교사 허입을 위한 면담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선교 역사에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7인 중에 한 사람이 또 탄생하게 된다. 이 시간 중국 산시성에 있는 스코필드선교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진료소에 찾아온 중국인으로부터 전염된 악성 디프테리아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중국의 부름 짖음에 대한 영국 대학생들의 눈을 열어주시도록 하는 기도를 죽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1883년 8월 1일 영국에서 호스트와 허드슨 테일러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며칠을 앞두고 해롤드는 중국 땅에서 눈을 감았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선교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늘 청년대학생들을 사용하셨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용기 그리고 희생 때문이었다. 이 일은 오늘날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청년대학생들이 열방을 향해 나가는 꿈을 꾸고 그 이상을 우리 젊은이들이 보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나는 오늘도 한국의 스코필드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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