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중국교회의 그 놀라운 성장”(OMF.로뎀, 토니 램버트)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중국교회 최근의 각 분야의 기독교 성장을 더 알길 원하시는 분은 책을 참조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인 1949년만 해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학생운동((IVF)를 가진 나라로서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에 반응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에드니와 같은 중국 내지선교회(CIM/현재의 OMF)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공산화와 이어진 선교사 철수와 교회 폐쇄로 인해 대학 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캠퍼스에서 추방당하고 분산되었다. 무신론적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을 지배한 상황에서 기독 지성인들의 주장은 고난과 억압으로 되돌아 왔다. 중국 공산당은 20세기 초 영국 등 서구 열강에 의해서 중국이 유린 당 하고 있을 때 1919년 5월 4일 전 독일 식민지역 이었던 중국 지역들을 일본에게 양도한 서양 세력을 비난하기 위해 일어난 5.4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1921년 상하이에서 중국 공산당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의 중국 통치는 사상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반 기독교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966년 전후로 일어난 문화혁명으로 전 중국의 지식인들은 농부로 강제노역으로 내 몰렸다. 교회는 전면적으로 폐쇄되었고 긴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대학안에서 기독학생들의 모임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문화혁명의 선봉에 섰던 홍위병 젊은이들은 마오쩌둥 사상을 가장 열정적으로 응원한 계급임과 동시에 마오쩌둥사상을 사상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다. 197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마오쩌둥의 사상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홍위병 역할을 했던 그 젊은이들로 부터였다. 1966년 문화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후 그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대신 가난과 계급투쟁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자신들이 뼈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8년에 이르러 후야오방과 덩샤오평 등 개방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강제 노동 수용소와 공장에 있는 지식인들을 대학의 강단으로 돌려보냈다. 그후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세계관의 혼돈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그들의 성경으로 삼았던 그만의 경전(마오가 한 말에서 따온 인용문들로 된 작은 빨간 책), 매일 열렸던 정치 연구 수업은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산혁명의 주도 세력이었던 젊은이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세계관으로서 마오이즘이 붕괴하자 젊은이들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적으로 사상적으로 공허해 지기 시작했고, 덩샤오핑과 그 이후 시대에 어설프게 이루어진 사상 재건은 이 공허를 채워주지 못했다. 이러한 낌새가 1970년 초 중반에 들어서면서 바깥세계에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찾아 홍콩으로 헤엄쳐 간 홍위병들 중 몇몇이 교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1979~80년 중국 안에 교회들이 처음으로 문을 다시 열었을 때, 그곳에 예배드리러 오는 젊은이들과 학생들의 수에 적잖이 놀라기 시작했다. 중국대학과 학교에 기독교가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농촌과 강제 노동에서 복귀한 교수들 가운데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20대 젊은이였을 때 IVF 운동 등을 통해서 들었던 복음을 간직하고 있었고, 다시 돌아온 대학 안에 그 복음을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간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문화혁명의 고난 속에서 일생동안 격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인물은 중국과학원의 펑 교수와 같은 이들이었다. 그는 베이징 대학 근처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증거 했고, 학생들을 위해 비공식인 뒷 모임을 열기도 했다. <B1989년 6월 4일 일어난 천안문 민주화 사건은 중국 전체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비록 겉으로는 실패한 민주화 운동이지만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마오쩌둥주의와 ‘프로레타리아 독재’였다. 젊은이들의 욕구를 억압한 결과는 더 깊고, 영적인 의문들이 그들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이 베이징에서 학살 당 했던 6.4사건 이후, 나는 더 이상 공산주의를 믿을 수 없었고 당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이 그 자리를 채월 수 있단 말인가?”
성령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생각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많은 지식인들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끌어당겼다. 중국 전역에 걸쳐 작은 성경공부 모임들이 캠퍼스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990년에 베이징대학에서 기독교 음악여사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을 때 첫 강습에 200명이 참석했다, 두 번째 강습에는 400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도 중국 지신인 사이에 기독교의 부흥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국 유명 서점에 기독교 관련 서적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거스틴, 루터, C.S 루이스 등의 책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2005말 한 인터뷰에서 현재 중국을 휩쓸고 있는 물질주의의 파도 때문에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려워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한 지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식층은 대부분에 생에 대해 아주 염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부정적인 경향에 대해서나 졸업 후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압력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서 아주 열려 있습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동부 지역에 약 60개의 대학이 있는데, 그중 약2/3의 대학에 학생기독교모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사건이후 대부분의 젊은 운동가들을 해외로 달아났다. 많은 개방적 생각을 하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졌고 그들은 그곳에서 친절한 기독교인들의 도움으로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에 여러명의 천안문 민주화운동 주요 리더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위엔 즈밍(Yuan Zhiming) 중국에서 천안문 민주화 사건을 주도했던 반체제 인물이었는데 1990년 미국으로 넘어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 그리스도인들의 따뜻한 우정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1991년 4월 세례를 받게 된다. 그는 충성스러운 공산당원에서 열렬한 민주주의 투사를 거쳐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이제는 전 세계의 중국인들을 복음으로 이끌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고, 장차 중국으로 돌아가길 소망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중국 현재의 기독교 부흥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DVD를 제작하여 전 세계에 중국기독교의 현황을 알리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의 잔체제자였던 한 동팡(Han Donggang)는 현재 홍콩에서 살고 있는데,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은 미국으로 탈출해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미국 목사의 도움으로 사랑을 경험하면서 복음을 믿게 되었고 현재는 기독교인 믿음으로부터 동기 부여를 받아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에 개입하고 있으며 복음이 중국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은 민주주의로도, 다당제로도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오로지 기독교만이 중국을 온전히 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교리는 구체적이고 세계 긍정적이며, 따라서 중국 사회의 미래와 그 발전은 기독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독교가 중국에 퍼지지 못한다면 중국에서 희망은 없습니다.” 불과 30년 전만해고 중국의 지식인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러한 지식인들 사이의 부흥에 주목하고 놀라워하고 있다. 1994년 6월 중국 공산청년동맹과 국가교육연맹이 대학생과 젊은 간부를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청년동맹 간부 중 47%와 연구원 중 87%가 대학생 중 77%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믿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중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그들의 믿음(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위기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를 통해 지식인들 사이에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994년 4월 공산당의 국가교육연맹이 올린 보고에 따르면, 중국 8개 주요 대학의 상급생 중 12%가 종교적 신앙을 믿거나 그와 접촉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현재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아직 믿고 있는 골수분자의 수보다 3배나 높은 수치이다. 중국 정부의 최고수뇌부는 기독교의 부흥이 중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큰 고민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식인 사이의 기독교 활동을 억압하는 법령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2004년 8월 21일 주 의회는 교육부에 고등교육기관에서 모든 종교적 활동을 금지하는 법령을 발포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당원이면서 종교적 단체에 가입한 교사와 학생들은 예외 없이 당에서 제명되었다. 캠퍼스에서 기독교 활동이 아직도 대부분 비밀리에 행해지고 최소한 법적으로 18세 이하에는 기독교를 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19세기에는 중국의 길잡이 사상이었던 유교가 부패하고 몰락했다. 그 대신 일어난 20세기의 마르크스주는 재빠르게 확산되었지만 동시에 순식간에 몰락하고 있다. 과연 21세기에 기독교 복음이 중국 사회에 사상과 관습과 도덕으로 뿌리 내릴 수 있겠는가? 이 결과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확산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