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교회에 퍼스펙티브스 강의를 갔다가 한 청년 사역자의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청년대학부가 활성화 되면서 주위에 연약한 자를 돕는 사역을 모색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교회 근처에 노숙자 숙소가 있었고, 그 가운데 몇몇 노숙자 청년을 알게 되어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청년대학부에 정기적으로 나오게 되습니다. 그를 통해 노숙자 청년 4~5명이 청년부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청년들도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원칙에 따라 그들이 4주간의 신입반 교육 후 청년공동체 소그룹에 편성되는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노숙자 청년들이 자기 조에 편성되는 것을 기존 청년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기존 청년들이 그들을 도울 때는 기쁜 마음으로 섬길 수 있었지만, 정작 그들이 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되자 여러 측면에서 불편함이 발생한 것입니다. 노숙자들의 환경이나 문화와 기존 청년들의 환경이나 문화가 다를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청년 모두가 다 성숙해서 불편함을 다 참아내고 사랑으로 인내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노숙자 청년들을 무조건 기존 청년팀에 합류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복음으로 삶의 목적을 깨닫고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는 즐거움을 경험한 그들을 공동체에서 제외시킬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노숙자 청년들도 다 대학을 나오고 나름 정체성과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부 목사님이 ‘왜 신입반 교육을 다 마쳤는데도 청년공동체 합류가 지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노숙자 청년과 교회 청년 공동체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되었습니다.
동일 문화권 내이던 타 문화권이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웃 사랑이 거리를 두고 일어날 때는 기쁨이 되고 즐거운 섬김이 될 수 있지만, 사랑의 대상이 내 삶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상당히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앞에 언급한 문제를 풀어갈 때 초점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 13장에서 사랑을 ‘선행‘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몸을 불사르는 구제’가 아니라 오히려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사랑은 결국 자기인식(Self-awareness)이 충분히 일어나는 가운데 실현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 수준 범위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꾸 해봐야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집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일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자꾸 해봐야 합니다.
저는 앞에서 등장한 청년부가 이 문제를 잘 풀어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쉬운 대답은 없습니다. 목사님과 청년 공동체가 빠르고 쉬운 결정을 내리지 않길 기대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충분한 자기인식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생각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대안을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