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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인격성 프린트   
한철호  Email [2016-03-25 16:44:21]  HIT : 4735  


 

이세돌 9단이 한판 이겼다.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공포에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이 다시 반전해서 인간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받을 수 없다는 인간의 의지가 엿보인다. 공상 영화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받던 인간들이 인간들 만이 가지고 있던 어떤 것으로 인해 그 힘으로부터 벗어나는 통쾌한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다. 

 

이세돌 9단도 3승하다가 1패하면 더 힘들었을 텐데, 3패하다가 1승하니 너무 기쁘다고 말한다. 인간이 기계에 지배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거기서 변화의 단초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가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고자하는 자는 얻을 것이오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라는 의미를 이해하고 구현해 낼 수있을까?  그리고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을까? 일부 영화에서는 기계에게 이런 영감까지 부여하긴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기계의 한계는 여기가 아닐까? 인간에게있어서 승리는 성취가 아니다. 인간됨의 회복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 욕망의 부산물인 기계가 그 욕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들은 그 기계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이 죄인이라는 증거는 아닐까?  기계로 노동을 대치하므로 인간에게 더 많은 휴식과 보장을 가져다 준다는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에게 모든 노동을 빼앗아간다.  노동으로 벗어나기 위해 노동을 빼앗긴 인간은 결국 인간성을 상실하고 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는 완전해 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고통스러운 노동과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은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타락 이전에도 노동을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즐거운 노동이었다. 왜냐하면 그 노동은 채움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나눔을 위한 노동 이었기 때문이다. 타락이 후 채움을 위한 노동으로 변질된 것은 노동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노동은 이용하는 인간의 문제였다.

 

그동안 발전이 지지부진하던 인공지능이 최근 2-3년 사이에 방대한 정보의 축척을 통한 가장 높은 확률을 찾아내는 방식에서, 각 정보 단위(unit)을 연결해서 주어진 정보를 관찰하여 스스로 객관적인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세계관의 싸움이다. 인간을 물질의 일부로 보는 세계관과 인간을 인격성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는 세계관의 싸움이다. 어떤 퍼스펙티브스(Perspecties)로 세상을 볼 것인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창조된 피조물의 창조 목적을 보는 일이 필요하다. www.perpsectiv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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