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복음을 듣고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가운데 분명히 명시된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 사실은 단지 마28;19-20 혹은 마24;14의 부분적인 명령이나 선언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의도이며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면 하나님께서 피조물 전체를 구속하시고 모든 피조물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목적이 성취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우리는 모두 믿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현실은 아직 온 세상이 복음화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 후 예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복음 전파와 교회의 확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든 세상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있지 않은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의 진보가 일어나 이전 보다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복음이 전파된 지역에 축적되어가고 있지 않고 그래서 한쪽에서는 복음이 전파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 복음의 영향력을 잃어가는 지루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대표적인 미전도지역인 터키 등 소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지역은 1-2세기에 최고의 기독교 중심 지역이었다. 그 곳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그 곳은 그리스도인이 없는 미전도지역이다. 오늘날 서구가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선교사들을 내보냈고 있지만 정작 그 서수 사회 자체는 세속화되고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적어지고 있다. 얼마 후에는 마치 1세기의 서아시아 지역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오늘날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지만 이 지역의 미복음화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미 일부 유럽지역 그리스도인의 수와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미복음화 된 지역이나 마찬가지이다. 만일 이런 방식으로 복음화가 계속된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분명한 사실, 즉 온 땅에 복음화 되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1) 제자도 없는 전도 성경에 나타난 복음화의 명령에 대표적인 말씀으로 사용되는 마28;19-20의 대 위임명령에 대한 온전하지 못한 이해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에서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주목해 왔던 부분은 “가라”였다. 그러나 실제 이 문장의 주된 동사는 “제자 삼아”이다. “가서…세례를 주고..가르쳐” 등은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만 그 각각의 동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예수님의 중심 명령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대 위임명령의 핵심은 단순히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 전파의 대상인 모든 족속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서 전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전파라고 할 수 없고 진정한 복음화는 복음 전파의 대상자들이 예수의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지켜 삶 속에서 행함으로 나타날 때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비록 예수께서 말씀을 공적으로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을 하셨음에도 그의 사역의 주된 관심사와 대부분의 시간은 바로 제자들을 양육하는데 사용하셨다. 즉 예수님 사역의 핵심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켜 행하게 하는 것이었고, 그 제자들에게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 사역의 목적은 자신의 제자들이 또 같은 제자들을 배가하는 과정을 통해서 전 세계복음화를 이루시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이미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선교의 실패의 원인 중 분명한 것은 바로 제자 됨 없는 복음의 선포 때문 일 것이다. 초대교회의 선교와 로마복음화 이후 지난 수 천 년 동안 진행된 서구 중심의 선교의 가장 큰 차이는 선교 주체가 가진 영향력이다. 초대교회선교의 주체들은 사실 당시 사회에서 주체 세력이 아니고 주변 세력이었다. 그러나 로마국교회 이후 기독교의 확산은 중심부에서 주변으로 나아가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중심부 즉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한 주변부를 향한 선교는 복음전파의 대상자들에게 복음에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기 보다는 복음에 굴복하게 하는 형태를 가지고 나타나며 전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인격적 영향력 보다는 설득과 회유에 의한 회심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별히 17세기 이후 서구선교는 더욱 그런 형태를 가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선교는 제자화보다는 복음의 일방적 선포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는 기독교가 복음화된 자들의 생각과 삶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즉 제자도 없는 복음의 선포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복음화가 확장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복음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2)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의 분리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가 그 힘을 급격히 잃어버렸고 지금에 와서는 몇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과거 기독교 국가에서 실제 기독교 인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서구에서의 기독교 쇠퇴의 조짐은 이미 17세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 까지 유럽에서 기독교는 종교적 영역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고 신앙과 삶은 분리되지 않고 총체적인 형태로 나타났었다. 즉 신앙의 삶의 내용을 규정했고, 신앙은 개인의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도 그 원리와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이성주의와 과학주의가 확산되면 합리성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즉 인간이 이성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이해되거나 증명되지 않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를 지나면서 과학의 발달과 함께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험주의와 사실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더 이상 종교는 합리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인정되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종교와 영적인 것은 개인적인 영역이며, 사회적 현상과 질서는 공적인 것으로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게는 경계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프랜시스 셰이퍼는 이것을 “절망의 선”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서구에서 기독교가 여전히 사회에 중요한 흐름으로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종교와 삶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기독교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됨으로 서구의 기독교는 문화적 기념비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만 것이다. 종교는 세계관이고 세계관은 삶의 내용을 구성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과 더 이상 기독교는 사회적 현상에 책임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또 일반인들은 기독교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거나 기대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주요 종교들 가운데 그들의 공적인 생활에 가장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주요 타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삶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이 삶이고 삶이 신앙이다. 이러한 형태는 결국 한번 이런 종교들이 침투한 지역은 대부분의 경우 그 국가와 종족 가운데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신앙형태가 가지는 명목적 성격이라든지 영성 없는 종교성의 문제가 있지만 어떤 튼 종교가 삶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를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적인 영역(감정, 종교)으로 국한 시키려는 시도는 기독교 안에서도 일어났다. 20세기 초반에 확장되기 시작한 기독교에 대한 이성적 비판은 결국 기독교를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가운데서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을 등한시 하는 보수주의 진영과 소위 사회복음(Social Gospel)이라고 불리는 자유주의 진영의 대립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총체성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비록 오랜 기독교 전통 안에 복음의 총체적 접근, 즉 복음이 개인의 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구속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의식은 교회 안에서 약화되기 시작했고, 기독교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분리된 집단으로 취급당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회는 이미 이성주의와 인본주의에 의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이탈한 문화적 형태가 만연되는 사회를 향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서 기독교 진리가 더 이상 공적인 영역과 상식적인 영역에서 기준과 대안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미 기독교화 되었던 지역에서 기독교가 그 영향력을 잃어가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교패러다임이 계속 되는 한, 모든 족속이 다 복음화 되는 시점은 요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에서 복음화가 일어나고 있고 한편에서는 이미 기독교화 되었던 지역이 미복음화 지역으로 변하는 제로섬 게임이 계속 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글에서….)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