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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한다면 할 수 있다! 프린트   
전병준  Email [2016-03-25 09:50:44]  HIT : 7422  

역사 속의 한 사건

 

사람마다 자신의 삶과 사역의 비전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있고 그 계기를 마련해 주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학생선교운동권에서만 일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학생 때부터 본인이 소속됐던 단체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또 후배들에게 그 역사를 가르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1806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건초더미 기도회(Haytack Prayer Meeting)’이다. 이 기도회 사건을  계기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위대한 미국의 학생선교동원운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전설적인 이 사건을 기억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새로운 감격과 비전이 생긴다. 또  이 사건을 후배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고 우리 가운데 그런 비전과 사역이 일어날 것을 촉구하곤 한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가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꿈에야 상상했으랴!

필자는 한가지 책쓰기 준비작업으로 1997 여름 미국 학생선교운동사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 1시간 반정도 북쪽에 위치한  NEW HAVEN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OMSC( Overseas Ministry Study Centre)와  예일(Yale)대학 신학부도서관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당연히 ‘건초더미 기도회’와 관련된 자료를 보게 됐다. 그 결과 그 기도회가 있었던 윌리암스( Williams)대학이 멀지 않은 곳(차로 네 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인터넷과 대학 도서관 연구원의 도움으로 그 대학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OMSC 에 머물고 있던 학생 때부터 오랜 친구이자  PWM 소속 박상배, 이현숙선교사 부부를 꼬득여서 함께 길을 떠났다. 가는 차 속에서는 나는 이 선교사 부부가 결혼 10년 만에 아기를 임신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 무엇인가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윌리암스 대학을 찾아서

윌리암스대학은 메사츄세츠(Massachusetts)주 동북쪽에 있는 윌리암스 타운(Williams Town)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New Haven에서 2시간 반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출발하고 보니 높은 산을 몇개나 넘어야 했다. 시간이 걸릴수록 마음 속으로는 ‘괜히 임신초기인 이 선교사를 동행하자고 했다’라는 미안함이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에 우리 고향의 산과 흡사한 산길이 나오고 이 선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그리움의 감탄 소리를 들으면서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Mohawk라는 인디안 보호 마을을 지나 다시 큰 산 고개를 하나 넘자 드디어 윌리암스타운이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대학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다른 캠퍼스타운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은 주로 대학 때문에 생긴 마을인 것 같다. 마을 주도로가 캠퍼스를 관통하고 도로 양옆으로 세워진 대학 건물들의 겉 모습만  보아도 비록 캠퍼스의 크기는  작지만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학교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게 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조용하고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방학 중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아 두리번 거리다가 한 학생의 도움으로 ‘건초더니 기도회 기념탑’이 있는 위치는 확인하고 걸음을 내딛는다.

 

1806년 8월 어느날

잠시 1806년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1806년 당시 미국은  청교도들의 신앙이 아직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고 유럽에서 부터 시작된 영적부흥운동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부터 독립한 미국은 지금의  New England 지방을 중심으로 정착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청교도들의 선교정신을 이어받아 인디안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아직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선교적 관심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700년대 말과 1800년대 초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회가 거의 없는 세계의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개신교도들 사이에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New  England의 리치휠드(Litchfield) 지방을 중심으로 영적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신학교가 생기고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고조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당시 대학안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러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리치휠드(Litchfield) 지방 중심으로 일어나던 부흥운동이 1805년 윌리암스타운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이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1793년 세워진 월리암스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 가운데는 이미 그리스도인으로 대학에 들어와있던  James Richards와 1806년 신입생으로 들어온 사무엘 밀즈(Samule J. Mills)이라는 성령이 충만하고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이 있었다.  사무엘 밀즈의 부친은 목사로서 당시 일어나고 있던 부흥운동의 리더였다. 사무엘은 이러한 집안의 영향으로 15세 때 영적회심을 경험하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해외선교에 자신을 드릴 것을 결심하여 이를 준비하기 위해 윌리암스대학에 입학했고 윌리암스 마을과 대학 안에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일에 마음먹게 된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그 안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게 된다. 

그러던 1806년 8월 초 어는 토요일, 사무엘 밀즈를 비롯한 다섯명의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자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장소인 캠퍼스 서남쪽의 계곡 밑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좀더 넉넉한 토요일에 그들은 가끔 그곳을 와서 함께 놀기도 하고 모임도 하곤 했다. 그날도 존 밀즈와 제임스 리차드 등 다섯의 기도친구들이 함께 모였다. 그날 오후는 무척 무더웠다. 그들은 처음  작은 숲은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기도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보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급히 소나기를 피해 근처에 있는 건초더미(Haystack) 아래로 몸을 피했고 그 곳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대화의 주제는 아시아의 도덕적 어둠에 관한 것이었다. 사무엘 밀즈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서 빛을 가져다주자고 제안했고 ‘만일 우리가 한다면 할 수 있다!(We could do if we would)’라고 제안한다. 차후에 이 말은 건초더미기도회운동의 슬로건이 된다. 그들 중 한 학생인 로미즈(Loomis)를 제외하고 모두가 이 제안에 동의했는데 그가 반대한 이유는, 군대가 먼저 가서 이방인들을 정복하고 나서 선교사를 보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무엘 밀즈가 ‘저 어둠 구름이 지나가고 하늘이 밝아질 때까지 이 문제를 놓고 이  건초더미 안에서 기도하자’라고 다시 제안했다. 학생들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함께  기도한 후 사무엘 밀즈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대적하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의 군사들을 일으킬 것을 구하는 마무리기도로 기도회는 마쳐졌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검은 구름은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그들의 머리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 기도 모임은 그 해의 여름 내내 그 숲속에서 계속됐고 매 기도마다 해외선교가 기도의 주 내용이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기도모임은 캠퍼스와 숲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의 한 부인의 집 부엌에서 계속되었고 그 부인은 부엌문을 열어놓고 그들이 하는 기도소리를 듣다가 마침내 마을 사람들을 모아 그 기도모임에 함께 참석하기에 이르렀다.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기도모임은 다시 숲속의 장소로 옮겨졌고 이 기도회는 1987년 여름까지 계속됐다. 이것이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해외선교를 위한 첫 기도모임이었다.

 

기념비가 세워진 이유

그러나 그들의 기도모임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초더미기도회 기념비는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도했을 뿐 아니라 그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 행동했다. 사무엘 밀즈를 비롯한 그들 5인은 1808년 9월 7일 캠퍼스의 한 강의실에 모여서 비밀리에 만든 ‘형제단 헌약(The Constitution of the Brother)’에 서명한다. 이 비밀 모임의 목적은 ’각 회원들이 이방을 향한 선교를 하게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며 각 회원은 ‘부름심이 있을 때 언제 어느 때라도 선교지에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이 모임이 비밀리에 모여진 것은 그들  자신들의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기 위해서였고 당시 아무도 해외선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70년대 초만 해도 선교사로 나가겠다면 교회에서는  어떤 이단에 빠진 줄 알고 말렸던 것을 기억하면 그들의 이러한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 후 그들은 이 비밀 형제단 모임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렸고 사무엘 밀즈를 비롯한 첫 기도모임의 5인은 윌리암스 대학을 졸업한 후 주변의 신학교와 예일, 프린스턴, 하버드 대학으로 재입학해서 세계선교에 동참할 학생 헌신자들을 확보해 갔다. 첫 기도모임의 5인 중 4명은  1810년 6월 28일 당시 브레드훠드( Bradford)에서 열리고 있던 교단 총회에 찾아가 교회가 자신들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해 주기위해 교회선교위원회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고 그 결과  최초로 미국교회선교위원회(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가 만들어지고 2년 후에는 그들 중 3명과 또 다른 2명이  선교사로 파송 받아 아시아로 떠난다. 당시 사무엘 밀즈가 어떤 이유로 당시 선교사로 파송되자 않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국내에 남아서 선교단체를 만들고 선교사를 동원하는 일과 더불어 당시 가장 억압당하는 자들이었던 아프리카 노예들의 해방을 위한 문제로 1818년  아프라카로 여행하던 중 배 안에서 질병을 얻을 순교하게 된다. 그 후 수십년 동안 계속해서 이 선교 형제단을 통해 많은 대학생들이 선교에 동원되어 아시아와 인도로 나가게 됐다. 그 중에 윌더(Wilder)라는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다니던 중 이 선교 형제단을 통해서 선교에 헌신하고 인도에 갔던 선교사였다. 그는 오랜 선교활동 가운데 건강이 나빠져 1883년 경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그의 아들인 로버트 윌더(Robert Wilder)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로버트 윌더는 누이동생과 함께  사무엘 밀즈가 했던 것처럼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 학생 100명을 선교에 동원하기 위한 비밀모임을 만든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주의학생들 사이의 영적부흥운동과 선교운동에 힘입어 캠브리지 대학에서 성공리에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D. L 무디를 부추겨 전국의 대표적인 기독 대학생들을 모아 성경집회를 하자고 제안하고 그 결과  무디가 운영하는 고등학교가 있는 헐몬산(Mt. Hermon: 실제 산이 아니라 마을 이름)에서 1806년 7월 1일-31일 헐몬산 수양회를 개최했고 그 속에서 그는  그 속에서 존 모트(John Mott)라는 대학 2년생(로버트는 당시 대학 4학년생)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그들의 만남은 결국 학생자원자운동(SVM: Student Volunteers Movement)이라는 미국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생선교동원운동을 만들어 낸다. 1888년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1930년 때까지 20만명의 선교헌신자와 2만 5백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사상 최대의 학생선교동원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결국 건초더미 아래에서 시작된 다섯명의 기도모임에 19세기 초의 미국선교역사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우리 기도가 응답되려면

필자와 일행은 월리암스 대학에서 한 학생이 가르쳐 준대로 남쪽 끝 한 기숙사 건물 앞에 서 있는 건초더미 기도회 기념비를 발견했다. 건초더미 기도회 100주년되는 해였던 1906년에 세워졌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작은 기념비였지만 그 앞에 선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기념비에는 ‘미국의  해외선교가 시작된  곳’(The birth place of American Foreign Missions)이라는 글귀와 당시 기도모임을 시작했던 사무엘 밀즈를 비롯한  5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돌아서는 발걸음 속에서 내 속에 한 의문이 생겼다.‘ 왜 건초더미기도회 5인의 기도는 저런 큰 열매를 맺는데 우리들을 기도는 그렇지 못할까?’ 그 해답은 기념비 하단에 적혀진  사무엘 밀즈가 건초더미 기도회에서 한 말에 있을 것 같았다.‘만일 우리가 한다면 할 수 있다!(We could do if we would)’오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한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는 그 기도한 것에 대해서 바로 내가 헌신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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