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 변하는 선교 오늘날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선교다. 선교는 세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선교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의 아프카니스탄과 최근의 북아프리카가 그 예이다. 정치적 변화에 따라서 선교사들이 다 철수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선교의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또한 경제적 변화는 해당 국가 교회의 선교역량의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최근 선교 지형의 중요한 변화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는 선교 오늘날 선교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는 선교’(from everywhere to everywhere)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비서구교회로 옮겨 가면서, 지금까지의 서구 교회 중심의 선교에서 비서구권 교회들이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1900년만 해도 세계 10대 기독교 국가 중에 브라질만 비서구 국가였는데, 2005년에는 반대로 서구국가 중 미국, 독일, 러시아 등 세 나라만 세계 10대 기독교국가에 속하게 되었다. 2050년이 되면 1900년과는 정 반대로, 세계 10대 기독교국가 중 미국만이 유일하게 서구 국가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서구 국가가 된다. 이러한 기독교 지형의 변화가 오늘날 선교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서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고, 비서구교회는 선교사를 받는 지역이라는 과거의 도식이 무너졌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2위 선교사 파송국가인 것을 비롯하여, 브라질, 인도, 케나, 필리핀 등의 비서구 교회들이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얼마 전 까지 만 해도 선교지였던 중국도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의 구별이 없어졌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고 동시에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편 세계화와 이민과 난민 등 인한 빠른 인구이동이 일어나면서, 특정한 민족이 특정한 지역에 머물러 있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모든 지역에 함께 사는 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이제까지의 지리적 개념의 선교에서 미전도종족 선교개념으로 바뀌면서, 모든 지역에서 타문화권 선교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주 가까운 예로, 이제 다시 한국 내에도 선교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을 복음화하기 위한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12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 다문화 가정, 외국인 유학생 등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교회가 없는 지역과 이슬람 등 타종교 지역에서 온 사람이다. 이들을 복음화하기 위한 타문화권 선교사가 국내에 시작되었다. 최근 미국 교회 선교의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는 미국 내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문턱선교(mission on our doors step)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민족 교회 즉 한 교회 안에 여러 종족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행태의 교회가 발전하고 있다. 한국도 곧 한 교회 안에 다민족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효과적인 타문화권 선교 중 하나가 바로 국내에 와 있는 외국인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는 선교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유럽의 재복음화와 교회일치로서의 선교 비서구권교회의 성장과 선교적 약진의 다른 측면은 서구권교회의 침체를 의미한다. 1960년 이후 서구교회가 빠른 속도로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교회 또한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 미국보다는 유럽의 교회들이 가파르게 축소되고 있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어떻게 유럽 교회를 다시 회복할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과연 유럽에 기존의 교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회복을 위해 선교사를 보내고 선교사들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가이다. 유럽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교회 개척보다는 교회의 부흥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에 선교사들이 가서 새로운 교회(교단)을 만들어 가는 것은 현지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죽어가고 있는 유럽교회가 스스로 재생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유럽 교회가 부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 한 한국선교사가 영국에 교회개척학교를 개설했다. 영국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개인전도와 교회개척 방법을 나누는 사역이다. 복음으로 구비된 서구인들이 그들 민족을 복음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유럽의 복음화는 교회의 일치(ecumenical)의 관점에서 접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타문화권선교라고 하면 선교사들이 가서 그 곳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교단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럽은 이미 오랫동안 교회가 존재해 왔다. 단지 침체되어 있거나 복음의 진정성을 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외부의 선교사들은 기존의 교회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여, 그들과 하나의 예배 공동체를 만들어 감으로서 복음이 확산되게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현지교회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예배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의 확산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접근이다. 유럽 선교의 또 다른 측면은 소수민족들에 대한 선교이다. 예를 들면 영국이 이슬람을 효과적으로 복음화 할 수 있는 지역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이슬람들이 런던에 와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인들 복음화의 전략적인 지역이 독일이 될 수 있다. 현재 독일에는 400만 명의 터키인들이 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터키에서 보다는 독일에서 터키인들의 복음화에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유럽교회의 부흥과 다민족선교라는 관점에서 유럽선교의 정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교계에서는 오랫동안 유럽이 선교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최근에는 그 논의가 유럽의 부흥을 돕고, 이미 그 안에 와 있는 많은 소수 종족들을 복음화한다는 방향으로 유럽선교가 그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 최근 선교계의 화두는 미셔널 처치(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이다. 이 개념의 출발은 네슬리 뉴비긴으로 볼 수 있다. 그는 1936년부터 1974년까지 인도에서 사역한 영국선교사였다. 그가 사역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왔을 때 영국은 1930년대와는 달리 이미 후기기독교사회로 바뀐 상태였다. 그의 고민은 세속사회 속에서 어떻게 복음이 다시 그 의미와 영향력을 가질 것인가 이었다. 해답은 복음의 삶의 모든 영역에 진리로 해답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교회가 선교적 정체성의 가지고 사회와 문화의 모든 영역에 다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미국 교회들을 중심으로 미셔널 처치(missional church)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 운동의 원래 명칭은 ‘복음과 문화 네트웍’(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이다. 즉 복음이 오늘날 세속화된 다원주의 문화 안에서 어떻게 그 영향을 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네슬리 뉴비긴은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꼭 타문화권 선교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자문화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이 진리로 그 능력을 들어내는 것과, 타문화권에서 복음이 구원이 타민족에게 전파되는 것 둘 다를 포함한다. 이러한 해석으로 인해서 선교계에서는 미셔널 처지(missional church)라는 말을 선교를 이해하는 것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 IVP)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성경 전체를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기존의 미시오 데이(missio Dei)에 대한 편향된 개념을 극복하고, 선교를 성경 전체로부터 찾아내려는 성경의 선교적해석학을 시도 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에 힘입어,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는 이제까지 선교가 교회 보다는 선교단체 중심으로 일어난 것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선교단체가 교회를 도와 교회가 선교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의 회복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용해 왔던 동원(MOBILIZATION)이라는 단어보다는 참여(ENGAGING)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교회의 선교운동를 위해 선교단체들이 참여하고 돕는 패러다임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차 선교단체와 교회와의 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 예상된다. 선교사의 정체성, 통합성, 책무 그리고 새로운 선교사 모델 지난 20년 동안 선교의 주체와 방식의 급속한 변화는 최근 선교사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까지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거나 평신도로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고 정기적인 재정후원을 받아, 선교지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안식년을 가지고, 나이가 되면 은퇴해서 돌아오는 형식의 전업선교사(Professional Missionary)였다. 그러나 변화된 선교환경은 선교사 비자를 가진 전업선교사를 받아들이는 지역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선교가 필요한 지역은 공개적으로 선교사 비자를 주지 않는 지역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에 선교하러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선교사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가서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면서 현지인들에게 기독교의 가치를 보여주고 복음을 전하거나, 유학생으로 가서 대학에서 복음을 전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경우 선교사의 정체성(identity)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과연 선교사인가 비즈니스맨인가? 선교사인가 의사인가? 이 경우 한국에서 열심히 비즈니스를 하고 주말에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 봉사하는 집사와는 어떻게 구별이 되어야 하는가? 또한 선교사로서의 통합성(언행일치; integrity)에도 의문이 생긴다. 전도가 금지되어 있는 지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당신은 선교사입니까라고 현지인이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현지인에게는 “아닙니다. 저는 의료인으로 당신들을 도우려 왔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안식년에 한국에 와서 교회를 방문할 때는 제가 선교사로 A라는 나라에서 의료를 통해 사역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언행일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책무(accountability)에도 문제가 생긴다. 비즈니스를 통해서 선교할 경우 만일 엄청난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은 누가 가지는 것인가? 유학생으로 사역할 경우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과 복음을 전하는 시간의 균형은 누가 결정하는가? 선교하러 갔다고 하면서 개인 공부만 열심히 하고 학위만 받아오면, 이 선교사는 교회나 후원자들의 돈으로 유학하고 온 것이 되는 것은 아닌가? 즉 변화된 선교 환경 때문에 선교사의 정체성에 질문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비서구교회가 선교사들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재정적으로 한계가 있는 비서구 교회는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서구 선교사들의 모델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면서, 최근 새로운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선교사를 모집 혹은 동원하여, 그들을 전임선교사로 파송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선교사와 비선교사를 구분하는 것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모든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거나 교회가 주도적이 되지 못한다. 또한 더 많은 선교자원을 보내야 하는데, 교회가 가진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기 보다는 창조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저비용 고효율의 선교방법을 개발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한국교회가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가라는 사실은 한국선교가 세계선교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자랑이기도 하지만 책임이고 도전이다. 결국 오늘날 변화하는 선교에 대응하는 창의적 노력이 더욱 요청되는 시기이다. 미션파트너스 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