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미션파트너스 이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선교를 선도하며 귀하게 쓰임 받았는데, 이곳에 이전한 후 더욱더 활발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아름다운 비전을 나누고자 합니다. 야곱이 임종이 가까워지자 열두 아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열두 자녀에게 일일이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원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축복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예언적 축복기도’로서 후일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됐고, 앞으로도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한 축복기도를 살펴보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내용은 두 아들 유다와 요셉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와 요셉 개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래 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과 아버지 야곱 앞에 많은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장자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 대신 그 장자권이 다른 아들과 다른 지파에게 옮겨갑니다. 4남인 유다에게는 ‘영적인 장자권’이 주어집니다(창49:8~12). 이스라엘의 왕과 메시아 예수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날 것을 예언합니다. ‘사자’는 왕(다윗 왕가)을 상징하고, ‘실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11남인 요셉에게는 ‘육적인 장자권’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나 다른 지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cf. 대상5:1~2). 창세기 48장을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손자 관계를 넘어 자기 아들로 삼으며 축복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각각 반지파인데 한 지파로 치고 두 배로 축복한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두 지파의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장자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의 분깃을 받는 법을 감안하면, 요셉에게 장자권이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며 기도한 내용이 무엇일까요? 창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이 구절을 분석해 보면 세 개의 내용으로 분해됩니다. 요셉과 그 후손이 무성한 가지와 같다. 그런데 그 가지가 샘 곁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이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사막성 열대 기후의 지역에서 샘물은 문자 그대로 오아시스 입니다. 그곳에 심어진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무성해진 모습입니다. 축복에 관해서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1] 샘 곁의 가지 :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 관계
무성한 가지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덩굴을 의미합니다. 창49:22 “ ... 샘 곁의 무성한 가지(a fruitful vine near a spring-NIV) ...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덩굴이 샘 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물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 관계(mystical union)를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창조 당시부터 하나님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그 후 생명과 은혜의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죄가 단절을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서 독립되어서 좋은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영적인 사망이요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 비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단절시킨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대속의 피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영적인 연합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 영적인 생명과 은혜를 공급받고 마치 열매를 맺듯이 축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원리가 성경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시1:3에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나옵니다. 수분을 계속 공급받으니까, 잎이 싱싱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됩니다. 요15:1~5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도 동일한 원리를 강조합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그리고 예수님께 꼭 붙어있으면 됩니다. 이게 신앙생활을 가장 잘하는 길이고 동시에 인생을 가장 잘 사는 길입니다.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가능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복된 인생을 소원합니까?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됩니다. 마치 샘 곁의 가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풍성한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게 바로 무성한 가지입니다. [2] 무성한 가지 : 풍성하고 안전한 축복
무성한 가지는 구체적으로 풍성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하나님이 보장하는 절대로 안전한 축복입니다. 샘 곁에 있으니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뿐만 아니라,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흔들릴지라도 뿌리째 뽑히지는 않습니다. 야곱이 요셉과 그 자손을 축복한 것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비유되는데, 얼마나 풍성할까요? 본문 25절을 보면, 육적인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망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할 때 사용하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란 표현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그 축복이 대를 이어가면서 자자손손 더 풍성해짐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풍성한 축복이라도 만일 고난과 시련 가운데 흔들리고 빼앗긴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끝까지 보호하시고 승리케 해 주심으로 축복을 보존하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풍성할 뿐 아니라 안전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전하다는 말을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고난이나 시련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나 고난과 시련을 겪기 마련이지만, 그 가운데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본문 23절~24절을 보면, 요셉과 그 자손도 고난과 시련을 겪겠지만 마침내 승리할 것임을 증거합니다. 요셉의 생애 스토리를 보면 풍성하고 안전한 축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담장을 넘은 가지 : 축복의 나눔과 확장 야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셉과 그 자손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창49:22(하) “ ...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whose branches climb over a wall-NIV)” 이것은 풍성한 축복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그래서 갈수록 축복이 더 풍성해지고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바로 요셉과 그 자손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붙어 있음으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받아 누리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사방으로 흘려보냈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에게, 더 나아가 만민에게까지. 총리가 되어서 7년 기근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이런 목적은 비단 요셉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모든 성도에게 부여된 목적입니다(창12:2~3). 한마디로 표현하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을 나누는 삶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고갈시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나누지 않아서 문제입니다(잠11:24).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저수지가 아니라 축복의 강물이 돼야 합니다. 나누면 더욱더 축복이 확장됩니다. 예수님이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주는 삶을 실천하면 하나님이 더 풍성하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눅6:38). 이른바 축복의 확대재생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의 이야기입니다. 그 가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OMF 전신)를 창설했는데 획기적인 선교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당시 선교사들은 해안 지역에 머물렀다. 내륙 깊은 곳은 열악하고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선교본부에서도 효율성과 안전을 이유로 해안 지역에 머물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허드슨 테일러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내륙에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이 많고, 그곳이 더 열악하기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내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역이 늘어날수록 동역자와 선교비가 많이 필요해졌지만 도와주는 단체나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스트레스로 압박을 받았고, 급기야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15:5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 특별한 각성의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이 포도나무이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염려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이 수액을 공급해 주는 나무인데 가지인 내가 스스로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시간부터는 모든 것을 맡기고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책임져 주옵소서!” 그 후 놀랍게도 모든 것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 선교’(Faith Mission)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사람은 샘 곁에 있어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듯이 복음의 지경을 확장해 갑니다. 여러분,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자손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러면 야곱이 요셉과 그 자손에게 축복한 대로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그리고 담을 넘어가는 가지가 되십시오. 특별히 미션파트너스가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가 되십시오. 아무쪼록 복음의 지경을 계속 확장하며 축복의 재생산을 경험하는 미션파트너스 가족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