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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변화 시킨 퍼스펙티브스_박성흠 선교사 프린트   
김사무엘  Email [2025-12-10 17:11:43]  HIT : 1256  

자동차를 오래, 잘 사용하려면 자동차 회사에서 발행하는 매뉴얼 대로 정비를 잘 하는 것이라고 정비사는 늘 강조한다. 모든 기계가 그렇듯이 처음에 만든 사람이 제시해 주는 그 기계에 대한 합당한 방법의 정비와 때에 따라 적절한 정비(수리, 부속 교환, 청소 등)를 잘 해 주면 그 기계들을 유용하게 활용할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동안에 즐거움을 더해 주며,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도, 신앙생활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요즘에 와서 더 자주 하게 된다. 지금 보다 더 젊었을 때는, 경험이 부족하고 세상 이치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주변 사람들이 정해 놓은 방향이 마치 나에게 주어진 방향인 것처럼 착각하고 무조건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급급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내 인생의 기계(?)를 너무 무리하게 사용했다든지 혹은 정비할 시간도 없이, 심지어는 매뉴얼을 보지도 않을 뿐더러 매뉴얼을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고 그냥 무슨 성공(?)을 위하여 달려왔는지 앞만 보고 달린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필요에 따라 쉬는 시간도 가져야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도 가져야 하며, 다시금 나의 인생의 매뉴얼은 어떤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들이다.

 

퍼스펙티브스 훈련과 퍼스펙티브스 프로그램에서 섬기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이러한 유익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달리면 조만간 모터가 망가지든지 불이 날 수 있는 것처럼, 윤활유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또한 사역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버거운 의무감에서만 시달려야 하는, 그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는 일이지만, 퍼스펙티브스에서 “성경적 관점”을 계속 묵상하면서 나에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계속 확신하는 시간들이다.

 

퍼스펙티브스가 나의 삶을 변화시킨 것이 너무나 많지만, 그 중에 두 가지만 나누려고 한다.

 

첫째는, 주도권이 바뀌게 되었다. 나는 목사요 선교사로서,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역을 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내가 “주”가 되고 하나님을 나를 돕는자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선교와 목회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때는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 돌리며 왜 나를 잘 도와주지 않았냐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 분의 목적을 제대로 분별하고 그 목적에 편성이 되면 나는 그냥 어쩌면 공짜로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이다. 내가 걸어가야 할 그 분의 목적이 분명해 지면 그 방향으로 그 분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될 일을 내가 내 마음에 맞는 길을 만들려고 하니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과는 역행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둘째는, 영웅주의와 성공주의에서 나를 자유케 하신 것이다. 60-80년대는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한국 사회에서 통한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에서도 여전이 영웅주의와 성공주의에 반응하고 결과를 요구하는 내용들의 광고나 글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 허구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고, 나 또한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자유롭지 못하여 전전긍긍하지 않았는지 나를 성찰해 보는 시간이 많았다. 물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정의하여 복음의 진정한 열매보다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를 우리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깊은 묵상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삶의 주도권과 성공주의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물든 사회에서 형성된 가치관으로 선교지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시작했다는 흔적이 나의 사역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선교사들의 사역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현지 지도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 (벌써부터) 시작했다.

 

퍼스펙티브스를 통하여 경험할 수 있는 고백은,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이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의 겸손한 성육신을 배워야 할 것이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의 예수님이 나의 삶을 주장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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