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7년 방콕/설악 연석포럼(4월 11일~13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성격이 다른 두 포럼이 함께 자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방콕포럼은 선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과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일을 지난 15년 동안 해 왔다. 그 결과 선교사의 책무, 지도력, 현장구조, 팀 사역, 자녀교육, 출구전략, 선교사 은퇴, 선교사 정신건강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을 모색해 왔고, 그 결과물은 한국선교에 나름 영향을 주어왔다. 한편 설악포럼은 변화하는 세계와 이에 합당한 선교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를 위한 모임과 학습을 여러 해 동안 지속해 왔다. 설악포럼은 오늘날 선교가 서구중심에서 소위 글로벌선교로 그 위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세계선교를 이끌어 간 서구선교로부터 계속 이어가야 할 유산과 단절해야 할 것을 구별하고 이어가야 할 유산과 새로운 현실을 통합하는 새로운 선교패러다임 창출을 고민하는 모임이다.

한편, 오늘날 변화의 속도가 더 급속히 일어나고 있다. 세상은 4차 산업시대가 가져올 삶의 형식과 문화에 대응하는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변화하는 시대가 가져올 선교패러다임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 오늘날 현장의 문제와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이번에 방콕포럼과 설악포럼이 함께 자리한 것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에 변화하는 선교패러다임”이라는 주제를 선정한 것은 이런 의미이다.

이번 포럼의 전체적인 틀은 토드 존슨(Todd Johnson) 박사의 “글로벌 크리스차니티”(Global Christianity)에 대한 강의로부터 가져왔다.[1] 얼마 전부터 세계교회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관련된 강의나 내용을 자주 접한 터라 서구 중심의 기독교가 남반부의 기독교로 전환되어 가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흐름은 익숙한 것이었다. 세계교회의 구도가 바뀌리라는 것을 처음 감지한 사람은 랠프 윈터(Ralph Winter)다. 그는 1970년에 처음 출간했고, 1980년, 그리고 2005년에 재판한 그의 책 “비서구선교 운동사”(예수전도단, 2012)이미 서구교회의 몰락과 비서구교회의 등장에 대해서 예견했다. 그 후 앤듀르 월스(Andrew Walls)가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신학적 접근을 하기 시작했고, 근래에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의 “신의 미래(The Next Christendom)”(도마의 길, 2009)는 남반구(비서구권)교회의 약진으로 인한 세계교회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과 과제에 대해서  토드 존슨(TODD JOHNSON)은 세밀한 관찰을 하구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중에 몇 가지 핵심적인 관찰과 대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중심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까지의 새로운 인식이라기보다는 원래 교회는 비서구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의 재인식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주 후 923년까지는 여전히 기독교는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교회가 그 중심이었다. 그 후 유럽 중심으로 교회가 확장되다가 다시 1981년을 기점으로 남반구 교인의 수가 북반구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역사를 언급할 때는 초기 1000년까지의 역사마저도 여전히 서구 교회 중심의 역사 기술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초기 1000년까지의 남반구 교회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유산을 우리가 확인하기 쉽지 않다. 반면 최근 1000년간의 서구 기독교는 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밀한 발전을 해 왔고 그 기록을 이어가면서 오늘날 교회의 내용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1000년의 교회 역사를 남반구의 시각에서 다시 찾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남반구 교회가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하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해서 양산되어 공급되는 서구교회 시각에서 만들어진 정보의 홍수 속에 비서구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비서구교회가  비서구교회가 영향을 덜 받고 초초해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가지고  덤덤하고 창의적으로 자신들이 해야할 작업을 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둘째, 남반구교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성장하는 남반구교회가 이에 걸맞은 신학과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의 문제다. 사실 이 문제는 필립 젠킨스가 제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The Next Christendom”에서 비서구교회의 증가에 대해서 서구교회가 분발해야 할 것을 촉구하는 반면에, 성장하는 비서구교회에 대해서는 과연 성장하는 교회에 걸맞은 신학과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역량이 되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다. 남반구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반구교회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분열된 기독교다. 비서구교회 분열의 책임은 교파별 선교를 시행했던 서구선교패턴에서 이미 내재하여 있었지만, 비서구교회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서구교회는 상당의 분열되어 있다. 교파별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특히 개신교 운동은 네슬리 뉴비긴이 지적한대로 분리 혹은 구별이라는 신학적 흐름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들 간에 유사성을 가지고 협력을 추구하기 보다는 차이점을 극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왜곡된 시각은 비서구교회 안에 분열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과연 분열된 남반구교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남반구에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다는 말은 세계의 모든 지역이 다종교화된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기독교인, 무슬림, 불교인, 힌두교도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각각 구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로 이제는 인해 모든 지역에 모든 종교가 공존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의 확장으로 더 가속화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다종교와 다문화와의 공존이 큰 과제가 된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갈등과 전쟁과 난민 발생 원인의 대부분은 종교 간 혹은 종족 간 갈등의 결과이다. 남반구 교회의 성장이 해당 지역의 기존의 전통 종교와 공존으로 갈 것인가 충돌로 갈 것인가의 불확실성 때문에 세계교회와 전 세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결국, 남반구교회가 다종교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토드 존슨은 자신의 강의에서 미래 남반구 교회 중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교회는 싱가포르와 같이 다양한 종교가 의미 있게 공존하면서도 서로의 신앙 활동의 자유와 나눔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다문화 국가 교회 출신들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을 주목해 볼 만하다. 다종교가 공존하면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남반구교회의 중요한 과제다.

넷째, 다종교 상황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잃지 않으면서 복음의 탁월성과 유일성을 들어낼 수 있는 길은 성육신적 삶의 실천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상황화(Contextualization) 능력이다. 신학적 상황화 작업 비서구교회의 중요한 과제다. 토드 존슨(TODD JOHNSON)도  이 문제에 대해 말레이시아 신학자 화융의 예화를 인용한다. 바나나와 망고의 비유다. 많은 경우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바나나와 같이 겉은 노랗지만 속은 여전히 흰색의 서구신학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망고와 같이 겉과 속이 다 노란 아시아교회의 신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화 작업은 결국 자신학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상황화 과정은 무균실이나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이웃의 삶의 현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2017년 방콕-설악 연석포럼 합의문

2017년 4월 11일-13일 국내 선교단체 및 교단 선교부 지도자들과 현장 선교사들, 그리고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장로회신학대학에 모여 ‘변화하는 세계와 선교’라는 주제로 방콕-설악 연석 포럼을 가졌다. 특히 이번 포럼은 선교 통계학의 세계적 대가 토드 존슨(Todd Johnson) 박사를 초청해 급변하는 21세기 세계의 선교적 상황과 도전에 대한 그의 폭넓은 안목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이번 포럼을 통해 참석자들은 선교적 현실과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공감대를 갖게 되었다.

1. 기독교의 중심이 비서구로 이동함에 따라 한국교회를 포함한 비서구 교회와 선교계는 서구의 신학과 선교모델을 비판 없이 답습할 게 아니라, 변화되는 상황에 걸맞은 신학적 논의와 선교적 모델을 일궈내야 한다. 세계화 현상이 가져온 다종교적 상황이 요구하는 새로운 지도력은 전통적 서구가 아닌 비서구 세계의 몫으로 기대되고 있는데, 비서구 교회는 급성장하는 규모에 상응하는 지도력과 영향력을 아직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선교는 건강한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파트너로서 세계의 선교공동체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이바지해야 한다.

2. 기독교의 분열이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었다. 외형적으로는 수많은 교단의 난립과 개교회주의의 폐단이 증가했고, 복음의 본질 면에서는 통합성을 잃고 이원론적 종교로 전락한 기독교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증거의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과거의 예측과 달리 사람들의 영적 필요는 더 증가하고 있는데, 제도교회는 갈수록 게토화되는 모순에 빠져있다.

3. 21세기의 현저한 양대종교로 지속적 성장이 예측되는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갈등과 충돌이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균형 잡힌 이슬람 이해에 기반을 둔 무슬림 선교의 건강하고 새로운 패라다임이 절실히 요구된다.

4. 세계화 물결에 따라 전 세계적 인구이동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인데, 이주자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전통적 선교 패러다임에 머물기보다 디아스포라에 의한 풀뿌리 선교운동의 강조와 촉진이 필요하다.

5.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많은 분야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데, 선교적 파급효과에 관한 연구와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선교의 진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선교에 이바지하는 면도 있겠지만, 탈육화 과정이 가속될 것으로 예견되는 미래 상황에 복음의 성육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상의 상황인식에 따라 포럼 참석자들은 향후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버리거나 극복해야 할 것, 그리고 회복하거나 새롭게 학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모았다.

1. 버리거나 극복해야 할 것 (to unlearn or undo)

    서구적 관점의 신학 및 성경해석

    복음진리와 제도적 종교의 동일시

    정량적(quantitative) 성과 중심의 사역 이해 및 추구

    이슬람에 대한 서구적 (호전적, 십자군적) 관점

2. 회복하거나 새롭게 학습해야 할 것 (to learn or relearn)

    전인적 제자도를 추구하는 기독교적 학습과 훈련

    공동체적 평등성에 기반한 파트너십, 팀워크, 수평적 지도력

    대화와 토론을 통한 공동체적 목표의 합의, 소통, 평가

    검증된 기준(예: 로잔언약)에 따른 선교의 이해와 추구

    성육신적 선교

포럼 참석자들은 이상의 사안들에 대한 한국교회와 선교계의 공감과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한편, 2017년 방콕-설악 연석포럼에서 논의된 사안들에 대한 심화토론과 실천방안 모색을 위해 2018년 다시 한 번 연석포럼을 갖기로 결정했다.

2017년 4월13일

방콕-설악 연석포럼 참가자 일동

[1] 토드 존슨박사의 발제 요약은 본 잡지의 앞 부분에 게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