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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2012-7: 단기 선교의 영성과 자세(장연식, WEC)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7-01-25 11:15:51]  HIT : 1661  
단기 선교의 영성과 자세
(단기 선교 사례와 행 3:6 절을 중심으로)
장연식, WEC

프란시스가 걸식 수도단을 만들어 허락을 받기 위하여 교황청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황이 많은 보화가 쌓여 있는 창고를 보여주면서 “이제 우리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프란시스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고 말할 능력도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중세는 많은 권력과 물질을 가졌으나 예수님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무능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도 기독교 부흥의 화려한 추억을 가졌던 모든 나라들 안에서 진리처럼 역사가 되었다. 유럽을 지나 미국 안에서도 진리가 되어버린 이 이야기는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부흥을 경험했던 한국 안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아니 벌써부터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 미운 오리새끼가 연못 안으로 얼어 들어오는 얼음을 막고자 필사적으로 연못가에 원을 그리며 자신의 체온으로 막으려 했지만, 겨울의 차가움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처럼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AGAIN 1907 등을 일으키며 그 옛날 평양에 일어났던 대 부흥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려는 여러 가지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점점 더 영적으로 무기력해지며 몸집만 커져버리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진실된 사랑은 잃어 버려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교회에 영적 하향곡선이 일어나기 시작한 1980 년대 후반과 1990 년대 초반부터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선교의 바람을 불어 주시면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준비된 한국교회를 열방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는데 사용하기 시작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중세교회의 영적 빈곤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한국 교회에도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매년 떠나는 단기 선교의 열기(?) 속에 서도 이러한 중세교회의 증상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일은 벌써 10여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몽골에 파송 받기 바로 한 해 전, 전도사로 섬기고 있는 교회의 청년들과 중. 고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몽골에 단기선교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한국 교회에 부는 선교의 바람과 함께 한창 단기선교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때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몽골은 그 중 에서도 정말 최고로 붐비는 단기선교 여행지 중의 최고의 인기장소 중 하나였다. 20대 후반 나는 선교에 대한 열정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정말 기도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몽골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선교에 대한 그림은 몽골에 도착한지 2-3일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말씀도 성경도 모를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몽골 현지인 리더는 신학대학원에서 3년을 배웠던 나보다도 말씀전하는 능력과 복음을 향한 열정이 탁월했다. 악보를 보지 않고 찬양을 인도하던 몽골 교회의 찬양 리더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찬양 인도훈련을 받았던 찬양 인도자들 보다 더 영감 있는 찬양들을 드렸고, 예배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며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몽골 현지 성도들의 뜨거운 모습들은 우리 교회 청년부나 중.고등부 학생들의 예배보다 더 간절하고 진실되었으며, 몽골 현지인들이 만들었다는 몽골찬양들은 나의 영혼 곳곳을 눈물로 물들게 하며 조금만 듣고 있어도 주님을 향한 몽골인들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영감 어린 곡들이었다. 몽골의 부흥을 향한 몽골 그리스도인들의 가슴 저린 갈망을 맛볼 수 있었던 그들의 기도들… 정말 어느 것 하나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영적 영향력이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몽골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모습들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며 갔던 단기선교팀 들에도 거룩한 영향력을 주며 그들을 변화시켜놓았고, 주님을 향한 거룩한 헌신을 다시 다짐하게 만드는 영적 도전들을 부어 주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가져간 옷가지와 생활 필수품들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영적 부끄러움이 밀려왔었는지 모른다. 무언가 주고, 특별히 어떤 영적 영향력을 주겠다고 떠난 우리 단기선교팀은 ‘선교’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우리 자신들의 영적인 빈곤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도전과 충격의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무척이나 겸손해졌고, 함께 갔던 청년들과 아이들도 몽골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적인 도전과 빛을 안고 돌아오며 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후로부터 단기선교 여행을 ‘Vision Trip’ 이라는 말로 바꾸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선교를 하러 갔던 우리가 오히려 도전을 받고 새로운 비전들을 받고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내 마음에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프란시스와 교황과의 만남의 이야기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중세교회였지만 영적으로는 빈곤해져 버린 중세교회, 은과 금은 가지게 되었지만 정말 가져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잃어 버린 이러한 현상들이 어느덧 한국 교회의 모습이 되어 버리자 그 모판에서 떨어져 나가는 단기선교팀들의 영적 헐벗음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몽골 선교사로 있으면서, 여러 단기팀을 데리고 다니면서, 또 다른 제 3세계의 나라들을 다니면서 경험하게 되었던 것은 한국교회 안에 정말 잘 훈련 되어지고 살아 움직이는 소수의 성도들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많은 한국교회들의 청년들과 중. 고등부 학생들의 영성은 지금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부흥을 경험하는 선교지들의 현지 그리스도인들보다 주님을 덜 사랑하고 덜 열정적이며 더 세상과 가깝다. 쉽게 말해서 그들에게 가서 줄 수 있는 영적 영향력, 즉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대한 열정은 더 열등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을 향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으로 인하여 도전 받으며, 말씀을 향한 그들의 거룩한 갈망에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가서 정작 그들에게 주어야 할 영적인 영향력은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선교하러 간다는 말인가?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의 부채춤이나 전통무용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다. 우리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가서 주어야 할 궁극적인 나눔은 페이스 페인팅이나 잘 짜여 진 세련된 워십 댄스가 아니라 분명한 십자가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영적인 가치들을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워오는 상황이 되었다. 영적인 영향력으로 따진다면 어쩌면 그들이 우리에게 선교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는 어느새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주었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아니라 그 당시 이들이 줄 수 없었던 은과 금을 주며 선교를 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중세 교회 교황의 웃음소리가 되어버리는 같아 염려스럽다. 물론 한국 교회가 선교지에 가지고 가는 이러한 문화의 컨텐츠들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현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음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선교의 목적은 영적인 영향력에 두어야 하며, 선교지 영혼들에게 정말 원하는 것도 우리가 가지고 간 물질적이고 문화적 컨텐츠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격하는 것과 그 주님을 마음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데 두어야 함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소망이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세상적인 부요함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생명 바쳐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바울의 소망이었다(빌3:4-9, 행20:24). “나는 부자라 곧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3:14) 라는 말씀은 오늘날 단기선교 팀을 향하여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하나님의 외침이다. 때문에 정말 중요한 복음에 대한 감격과 주님에 대한 순수한 열정 없이 선진 문명과 자국 문화를 나눠주는 것으로만 선교를 하려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주님을 향한 선교지 영혼들의 순수한 사랑을 변질시키고 오히려 깨끗한 신앙을 오염시키는 슬픈 일을 할 수 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단기선교의 영성과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단기선교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지나치게 비판적인 입장에 서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유는 단기선교에 대하여 무조건 적인 비판을 말하려 함이 아니요, 누가 말하는 것처럼 단기선교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날 여름이 되고 방학이 되면 저마다 할 것 없이 유행병처럼 단기선교를 떠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성도님들과 선교 현장에서 단기선교팀을 받고 계신 선교사님들 모두가 이제는 정말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 생각하기에 이 글을 드리며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선교지의 영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우리가 정말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자. 둘째, 선교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결코 우리의 신앙보다 열등하거나 낮지 않다는 것임을 기억하자. 아니 오히려 겸손하게 그들에게 배워오겠다는 낮고 겸손한 자세로 가야 하는 것이 더 귀한 것임을 명심하자. 아무쪼록 이러한 자기비판과 성경적인 점검이 자칫 물량주의와 문화우월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증상에 좋은 약이 되기를 바라며, 21 세기에도 계속 될 단기선교는 더욱 더 성숙한 영성과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진정한 영적 영향력을 주는 예수님 닮은 선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기를 마음 다해 소망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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