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여행의 현황과 과제 황예레미야, 그나라선교센타/삼덕교회 1. 들어가는 말 선교는 교회의 DNA이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그것은 선교가 교회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의 항목 중 하나가 아니라, 교회가 하는 일이 모두 선교적인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며, 선교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기독교의 전체 실존은 선교적인 실존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말은 선교의 갱신 없이는 교회 갱신은 없다는 말이며, 교회갱신 없이는 바람직한 선교는 불가능하다 말이다. 사실 기독교는 2,000년 역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선교는 교회의 기존의 인식과 경험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향해 결단하도록 촉구하며 그것을 위해 먼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함을 요청받고 있다. “120년 만에 선교대국으로 발돋움할 만큼 한국교회는 선교에 가장 많은 힘을 쏟았지만, 선교에 관해 어떠한 논쟁이나 토론도 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가 집중된 부분이 선교다.” 이 말은 2004년, 당시 참여연대 공동대표였던 박상증 목사가 '생명평화를 일구는 기독청년들'(대표 최철호 목사) 주관으로 서울교대에서 열린 청년성서연구원 제15회 공개강좌(2004년 3월 10일)에서 ‘한국교회갱신과 역사변혁을 위한 기독청년의 소명’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짚은 내용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가 집중된 부분이 선교라는 이 지적은 한국교회의 현주소와 선교의 상관관계를 깊이 자성하게 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급성장을 해왔다. 2010년 현재 168개국에 1만 8천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대국이 된 것은 참으로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성공적인 선교동원에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단기선교여행의 확산과 대중화였다. 실제로 현대 선교운동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선교운동의 하나가 바로 단기선교다. 그러나 특히 선교여행의 근본적인 재고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바른 선교신학적인 조명 없이 열정적으로 진행된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많은 선교활동들이 오히려 교회와 선교지에 부담을 주고,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여행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이 하나님의 선교의 거룩한 대행자로서 한국교회의 자리매김을 새롭게 하고, 시대적인 세계선교의 사명을 보다 잘 감당하기 위한 것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선교여행의 현황과 과제 1) 선교여행이 지역교회에 준 영향 교통수단의 변화, 지구촌화와 함께 활발하게 확산된 선교여행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지역교회 입장에서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선교여행의 확대는 지역교회의 선교의 판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첫째, 젊은이들의 세계선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고취시켜 주었다. 이는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인 청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비전을 세계적인 지평에서 재해석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청년목회의 패러다임 자체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것은 보다 선교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한국교회의 거룩한 투자가 되고 있기도 하다. 선교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 청년들이 교회마다 적지 않게 일어났다. 둘째, 평신도의 선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선교여행의 확산은 세계선교가 특별한 소명을 받은 특정인들만의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지는데 해 주는 큰 기여를 했다. 지역교회의 선교 관심자들이 선교지의 지구촌 이웃들을 직접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호흡할 수 있게 되면서 선교지와 파송된 선교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교여행에 참여했던 많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세계선교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서의 선교활동에 주체적인 동력으로 참여하는 일이 일어났다. 셋째, 지역교회의 세계선교의 역량을 강화해 주었다. 잦은 선교지 방문과 꾸준한 교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만이 선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보다 창의적인 선교전략과 방안을 강구하게 해 주었다. 이로 인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선교활동이 가능하게 되었고, 특히 잘 준비된 선교팀들은 현지 선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당연히 선교사와 유대를 강화해 주는 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선교여행을 통해 중장기선교사로 헌신하는 일도 교회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짧은 선교여행이 계기가 되어서 1-2년의 단기선교사로, 장기선교사로 자신의 삶을 드리는 이들이 지역교회에서 배출되게 된 것이다. 넷째, 일부의 사례일수도 있겠지만, 선교여행은 교회의 자기변화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선교여행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신앙과 삶이 큰 변화를 입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가 무엇인지를 깊이 인식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선교는 반드시 자기 변혁을 동반한다.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지만 동시에 선교가 교회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강력한 체험은 지역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선교의 대행자로서의 선교적인 교회로의 체질적인 변화를 진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 선교여행의 현황과 과제 이처럼 선교여행의 긍정적인 열매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선교여행에 대한 반성과 재고는 불가피해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선교여행의 긍정적인 영향이 실제로 일부 교회의 경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무분별한 선교여행으로 인한 후유증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과 성처들이 간과하기에는 실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여행의 일반적인 현실과 과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방통행식의 무례한 선교활동의 문제다. 상호존중이 결여된 조심성 없는 시혜성 활동, 물량주의적인 선교방식, 종교적인 우월감, 상대방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존중의 상실, 선교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빚어내는 무례함,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선교방식과 태도로 인해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등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선교적인 열정이 앞선 나머지 가진 복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주려고만 하다 보니 빚어진 사례들이다. 그 아름다운 선교적 열정에도 불구하고 상호 존중과 배움, 상호해석학적인 만남과 에큐메니칼 대화 등 선교에 있어서의 인격성을 상실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무례함의 선교’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선교는 우리가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들고 가서 전투기가 폭격을 퍼붓듯 퍼부어 놓고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둘째, 자기만족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선교활동도 깊은 재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각종공연과 특정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선교현지에 방문했다고 해도 현지의 상황과 선교지의 사람들의 필요에 적절치 않으면 마치 그것을 준비해 오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는 선교프로그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한 대로 잘 하고 오면 참가자들에게는 큰 만족과 보람이 될 것이다. 돌아와서 선교보고회를 할 때도 뭔가 보여줄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교는 선교를 수행하는 이들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현지의 선교적인 필요에 있다. 셋째, 일관성과 지속성을 상실한 일회적인 선교여행의 한계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은 선교담당자와 선교여행팀의 인솔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때 그 때 선교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선교에 대한 전문적인 통찰력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불가피하게 책임을 맡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특히 선교여행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많은 교회들이 체계적이고 통전적인 선교훈련 커리큘럼의 부재, 충분한 준비의 부족, 미비한 후속조치로 인한 연속성의 상실 등 선교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관성과 지속성을 잃고 있다. 선교활동의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의 부재로 인한 지속성의 결여는 당연히 선교여행에 있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선교적 낭비를 초래한다. 이러다 보니 선교여행이 단순히 목회사역에 있어 하나의 이벤트성 프로그램으로 전락하고, 무분별한 선교활동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통전적인 선교신학의 결여로 인한 선교적 편향성의 문제이다. 이는 작은 경우엔 관광성 프로그램을 선교로 과장하기도 하지만, 결코 한 세대로 끝날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위대한 청사진의 부재로 인한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일차적으로 선교네트워크를 가진 교회 파송선교사를 도와주는 활동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고, 각개전투식의 독립적인 개교회주의 선교를 양산해내어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인 보다 큰 선교협력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개인적인 회심과 영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지구생태적인 성찰이 동반되지 못하는 역사 책임성을 상실한 선교적 편향성의 문제도 시간이 갈수록 큰 문제가 될 것이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선교는 이제 단순히 기독교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국가, 교회와 시민사회, 나아가 교회와 국제사회의 정치적 합의를 요청하는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편향적인 선교 인식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상황에 제대로 응전할 수 게 된 것이다. 선교의 핵심주제는 회심과 교회설립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의 거대 담론인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 화해와 용서 등 많은 주제들이 선교의 핵심 가치이다. 그러나 통전적인 선교신학의 결여로 인한 편향성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본질에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 작은 것 같지만 누적된 지속적인 편향적 선교여행과 선교활동은 오히려 선교와 교회를 더욱 고립화시켜서 역사적인 지평에서의 하나님 나라 선교를 기형적이 되게 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다 주고 말 것이다. 3. 바람직한 선교여행을 위한 대안모색 교회의 선교여행의 재고와 진정한 대안 모색은 전문적인 선교책임자를 세우고, 선교관련 부서를 강화하고, 획기적인 선교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교회 전체를 선교적인 체질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결국 이 모든 선교활동은 하나의 좋은 활동 이상의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바로 깨닫고, 선교적인 사고를 하고, 선교적인 체질을 갖추게 되면 선교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 그래서 철저한 선교신학적인 교회의 자기 성찰이 불가피한 것이다. 1) 선교신학적 모색 가. 선교의 표준모델을 회복하자. 이 모든 원인은 예수님의 선교 DNA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교의 표준 모델은 바울도, 선교역사의 획을 그었던 그 어떤 위대한 선교사들도 아니다. 선교의 표준모델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교’의 완벽한 표준모델이요 선교의 유일한 원본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표준모델을 상실한 데서 기인한다. 복사한 것을 또 복사하다보니 원본에서 멀어진 것이고, 선교의 수행자들이 서로 다른 선교의 표준모델과 선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보니 선교협력도 끊임없이 장벽에 부딪치는 것이다. 선교사의 표준 모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수행하셨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도행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선교를 바로 이해하려면 오히려 사도행전의 전편인 누가복음을 비롯한 사복음서와 예수님께서 그렇게 인용한 구약의 예언서들을 독파하는 성서신학적인 통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모든 선교 활동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서의 삶과 선교는 그 당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여타 다른 그룹들과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그 대상에 있어서 파격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당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유대인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부터가 달랐다. 예수님의 하나님 이해,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 예수님의 역사 이해,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주제인 생명과 평화의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선교 DNA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선교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적인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철저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세리와 창녀들과 같은 공적인 죄인들을 우선하여 모든 경계선을 넘어서서 선교하신 예수님의 선교를 복원해가야 한다. 예수님의 선교는 성육신의 선교였다. 십자군의 정신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국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이 긍정하시는 선교가 될 것이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으로, 식탁교제와 공동체적인 삶, 대안 공동체 운동과 철저한 제자훈련, 하나님 나라에 초점 잡힌 공적인 사역과 활동,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친히 몸소 보여주셨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의 선교 DNA를 회복해야 한다. 나. 선교적인 교회(Missional Church)론을 회복하자. 선교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선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선교나 교회의 선교 이전에 하나님의 선교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운동의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 기인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교회의 선교의 근원이시요, 지탱자시다. 하나님은 선교적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선교적 백성이다. 선교는 교회의 핵심적인 본질이다. 동시에 교회는 선교의 핵심이다. 교회가 선교를 좌지우지 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선교는 형편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계속적으로 갱신과 변혁을 통해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한 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교회는 철저하게 선교에 의해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 속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선교공동체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을 구원할 사명(mission)에 있다.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에밀 브루너의 말처럼 불은 타오르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므로 존재한다. 교회의 존재 근거와 방식은 선교에 의해서 규정되어진다. 이 말은 교회의 존재 근거가 선교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동시에 교회의 존재 방식 역시 선교에 의해 구체화됨을 의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선교는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 사명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의 사역이다. 선교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교회의 선교에서도 보내시는 분이시요, 인도하시고 결정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선교 명령을 받지 않았어도 선교는 존재한다. 교회는 성령께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고후3:5). 그렇다. 하나님의 일인 선교를 위해서 교회는 만들어진 것이다. 선교가 교회의 핵심적인 역할이 아니라 사실 교회가 선교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1952년 7월 독일 빌링겐에서 개최된 제5차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 주창된 것처럼 “교회가 선교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를 가진 것이다(It is not that the church has a mission but that God's mission has a church).”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대행자(the agent)이다. 선교는 교회의 한 기능이 아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 한 기능이다. 다.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을 극복하자.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는 태생적으로 복음주의적인 토양위에 세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는 복음전도(evangelism)를 교회의 기본적인 사명의 하나로 이해한다. 선교는 교회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교회로부터 선교가 나왔으며 선교의 처음, 중간, 마지막도 교회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의 장점은 선교에서 지역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있다. 선교 활동의 결과를 교회에 관련시킴으로 선교사와 개종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책임지게 한다. 반면 교회 중심적인 선교는 교단의 입장에서 선교를 보게 한다. 교회 중심적 선교는 선교의 전 지평이 교회로 가득 차게 되고 선교사는 교회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선교의 처음도 교회요, 중간도 교회요, 선교의 마지막도 교회가 되면 선교신학은 교회의 확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교회 중심적인 선교는 교회 역사를 통해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교회의 체재 유지와 독선을 위해 자신의 도그마를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올려놓는 과실을 범하기도 했다. 교회가 절대화 되면 될수록 교회는 타락했다. 하나님께 오히려 아픔을 드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고 중세 교회가 그러했다. 이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큐메니칼 운동, 오순절 운동 등과의 깊은 상호 해석학적인 대화와 성찰이 절실하다 하겠다. 이원규 교수는 『한국사회 문제와 교회 공동체』라는 그의 책에서 한국 교회의 중대한 과제 중의 하나가 선교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함을 역설했다. “선교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해 오는 복음화(evangelization)만을 의지 않는다. 선교는 교회가 사회로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들을 비인간화 하는 모든 사회 구조적인 사회적 악과 불의, 부조리와 모순의 현실을 바로잡는 인간화(humanization)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특별히 소외감을 느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의 문제, 급격한 사회 변동의 부작용으로 생겨나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 가족 문제, 도시와 농촌문제, 그리고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야기되고 있는 청소년 비행과 범죄 문제, 빈곤문제, 노동과 직업윤리 문제 등 13가지의 사회문제들의 실태와 심각성을 다루면서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에게 주어진 선교적 책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하나님 나라 선교의 관점에선 남북 분단의 현실, 생태적 위기, 도시화,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 생명공학기술발달, 패권주의와 헤게모니적 지배구조 등도 중대한 선교적 책임이며 과제이다. 선교는 그것이 교회이건 개인이건 간에 선교를 수행하는 자 중심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이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꾸준한 가르침과 전파, 더불어 함께 삶을 나누는 공생를 통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 상황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조명해 주는 방법으로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라. 평신도 선교교육을 강화하자. 교회의 강점은 많은 예배와 성경공부, 다양한 집회와 프로그램, 인적자원과 예산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선포에 모든 가르침을 집중하셨듯이 교회는 이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되어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초점 잡힌 설교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성경공부와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선교에 초점 잡혀 있어야 한다. 예산 집행에 잇어서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하나님 나라에 집중된 신앙교육과 선교교육을 통해 교회는 평신도들의 선교적 소명과 직업적 소명의 통일성을 이루게 해 주어야 한다. 세상에서부터 교회로 오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부터 세상을 향하여 올바르게 참여하고 진입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세상을 놓쳐 버린다는 것은 선교의 장을 놓치는 것이다. 선교적 명령이 교회를 넘어서 세상을 향해 나가는 활동이라면 직업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선교적이어야 한다. 지역사회든지, 국경을 넘어 세계의 현장이든지, 이 세계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장이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목회자와 성도는 계급적으로 구분되지 아니하고 은사에 따라 교회 안과 밖의 위치에서 교회를 견고히 세우고 동시에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일에 협력하고 수종들어야 한다. 매일의 삶의 현장, 직장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교현장이다. 날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선교 현장인 세상 한 복판으로 파송하며(요20:21) 직장, 사회 속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곳이 때때로 광야와 같이 삭막하고 강력한 대적과 반대에 직면하는 곳일 수도 있다.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비전과 능력을 얻기 위함이다. 교회는 모든 평신도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대행자로 살게 교육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선교적 과제는 성직자들의 교회적인 역할이나 또한 평신도를 교회를 잘 섬기는 “작은 목사”로 훈련하는 프로그램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세계의 현실을 가르치고, 선교교육을 강화하여, 모든 평신도들이 각자의 은사와 전문성을 가지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적극 참여하게 해야 한다. 2) 실천적 모색 선교의 표준모델은 예수님의 선교이다. 예수님의 선교는 ‘성육신의 선교’다. 예수님은 결코 일방통행식의 ‘무례한 선교’를 하신 적이 없었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강요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철저한 자기희생과 더불어 삶을 나누는 공생과 철저한 섬김, 우정 어린 만남과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 깊은 공감과 상호 존중과 배움을 잃지 않는 겸허함,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십자군의 승리주의적인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연약함의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지역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보다 건강한 선교여행을 위한 몇 가지 실천적인 방안을 간략하게 제안해 보고자 한다. 가. 순례기도회(기도여행)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 당시 갈릴리는 이방인의 갈릴리라고 불려질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철저히 소외된 곳이었다. 예수님은 그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철저히 깨어진 갈릴리와 같은 곳은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도 많고,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 선교지에도 산재해 있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선교현장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작은 소그룹 단위로 또는 각 기관별로 사랑과 복음으로 섬겨야 할 선교현장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모든 교인들이 세계선교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게 해 주어야 한다. 순례기도회는 광주 5․18묘역, 양화진외국인묘지, 통일전망대, 두만강과 압록강과 같은 북한접경지역, 동티모르와 같은 분쟁지역, 아체와 중국의 스촨성과 같은 재난지역, 수단 다르푸르와 같은 난민촌, 나가사키와 같은 참혹한 순교현장 등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을 직접 함께 방문하여 현지인들의 고통에 깊이 참여하는 일종의 기도여행이다. 정직하고 깊이 있게 역사를 공부하면서 함께 그 곳의 역사의 아픔을 부둥켜안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 현지에서 여러 증언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눈물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교적인 소명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깊은 선교로 나아가는 길을 열게 해 줄 것이다. 나. 공정여행 한국은 연간 해외여행객들이 2008년도에 벌써 1천 3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 문화의 대중화의 이면에는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비지향적이고 무분별하며 퇴폐적이기까지 한 행태들이 대두되었다. 또한 여행자들이 여행지를 방문하면 일반적으로 현재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거에 세워진 기념물이나 유적지 등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관광성 여행에 대한 한계다. 이러한 여행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정여행’이다. 공정여행은 여행지에서 무엇보다 현지 사람을 만나고, 만난 이들과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상호 배움을 가지며, 그 만남과 머무는 시간이 여행지의 공동체와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꿈꾸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공정여행이 선교여행의 모든 부분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선교여행을 위해서 공정여행은 매우 중요한 선교적인 실마리와 접촉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과 문화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여행의 따뜻한 마인드를 선교여행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해주는 방식에서 돌아서서 듣는 여행, 현지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여행을 시도해보라. 지속적이고 꾸준한 방문을 통해 선교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친구로 느끼도록 해 보라. 우리의 선교적 필요에 따라 우리의 흔적만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그들을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남기려고 해 보라. 그러면 ‘관심’에서 ‘관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복음의 씨앗과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그렇게 선교지의 사람들의 마음에서 싹을 틔워 갈 것이다. 선교는 복음만을 전달해 주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성육신의 삶’과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놓치면 성경적인 선교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남으로 친구가 되고, 그 관계 안에서 맑고 고귀한 증인된 삶을 통해 참된 감동과 변혁에너지가 빛을 발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 전문 단체와의 선교적 협력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특정 교단이나 단체, 개인에게 모두 위임된 것이 아니다. 한 세대에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선교에는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 속에서의 네트워크와 선교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연대를 통한 교회의 협력선교는 오늘날 시대적 요청이며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도 필요한 방식이다. 교회간의 경쟁이나 분열은 사회적으로도 교회의 신뢰를 저하하는 것이다. 협력정신이 부재한 선교의 열정은 오히려 선교의 부정적 결과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고질적인 개교회주의와 각자의 편향성을 넘어서는 서로에 대한 수용성과 범 교회적인 에큐메니칼 연대가 선교여행과 선교현장에서부터 과감하게 실행되어져야 교회의 미래가 교정될 것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새 천년의 주역이 NGO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앰네스티, 그린피스, 대인지뢰금지협정, 국경 없는 의사회, 월드비전, 컴패션, The Frontiers와 같은 국제적인 NGO들 뿐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많은 국내 NGO들이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교회를 압도하는 사회적 양심과 희망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교회는 건강한 기독교 NGO 및 선교단체들과 장기적인 선교적 협력관계를 과감하게 맺어 선교여행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공교롭게 꾸며낸 프로그램이나 감성적인 이벤트에 의존하는 선교사역에 집중하기보다는 광활한 세계 현실 속으로 청년들과 성도들을 보내서 고통과 슬픔에 빠져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배우도록 하나님의 감동적인 학교인 세계 현장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라. 외국인유학생선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고 파견 받아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며 국경을 넘어 땅 끝으로 다가가서 복음을 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크신 섭리 가운데 오히려 많은 대가를 지불하며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게 해 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환경의 변화 속에서 세계선교의 창의적인 접근의 필요성과 함께 선교의 새로운 기회를 보게 된다. 외국인유학생선교를 시작해보라. 먼저 다가가서 외롭고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섬김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이들에게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로 초대하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그들 가운데서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세례를 받게 되며,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받아 자국의 선교사로 파송되는 이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과는 선교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방학을 이용해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고국을 방문하여 두루 다니며 선교여행을 함께 해 보라. 기대 이상의 열매들이 있게 될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 선교는 타문화로 나아가는 것보다 높은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음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의 국민에게도 복음을 안전하게 전할 수 있는 안전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학생들은 한국에 와서 뭔가 배우려는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개방성과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국인들과의 접촉은 특히 교회의 청년들에게 세계적인 시야와 안목을 갖게 해 주며,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데 있어 선교교육적인 시너지가 크다. 이러한 장점들은 지역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선교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소중한 만남을 원한다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과의 장벽을 넘는 만남부터 시작해 보자. 4. 맺는 말 한국교회의 선교적 갱신을 이야기 할 때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교회의 선교가 과연 예수님의 DNA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선교의 표준모델은 바울이 아니다. 선교의 표준모델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선교는 바로 성육신의 선교였다. 교회의 선교적 갱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다른 연구와 성찰보다도 선교의 원본이요 표준모델인 예수님의 선교를 깊이 재해석하고 연구하여 그것을 오늘 교회와 선교의 삶의 자리에서 복원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바로 원본을 복사하지 않고, 복사한 것을 또 복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교회와 선교가 위기는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 적지 않다. 오늘날 선교여행의 확산은 세계선교운동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지역교회들안에서 선교동원이 일어났고, 선교단체들 역시 많은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성경적인 검증과 역사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선교여행의 장기적 효과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 자체가 선교적인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초점잡힌 선교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모든 활동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해 주는 선교활동으로 기획되고 충실한 준비의 과정과 평가를 거쳐야 한다. 선교는 세상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도 변화시킨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교회가 자기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려고 교회의 능력과 지혜를 확산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구원을 원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에 겸손히 수종드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핵심적인 본질임에 틀림없다. 선교는 교회가 자신의 본연의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늘 지침을 제공하며 교회는 이로 인해 자기 갱신과 변혁을 통하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적인 대행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