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출구 전략 사례 연구: 메께오 성경번역사역

정제순,GBT

0. 들어가는 말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본고는 성경번역 선교 사역을 사례로 선교사 출구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글이다. 그러나 본고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선교사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 몇 가지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본고는 다양한 선교사역들(missions) 중 성경번역사역(bible translation ministry)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사역 내용과, 사역 환경(environment), 사역 상황(context)에 따라 논의 내용이 다소 달라질 수 있음을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본고는 선교사 출구 전략을 논의하는 하나의 견해일 뿐, 선교사 출구전략을 명제화하거나(prescribe) 일반화하기(generalize)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본고의 논의 범위가 파푸아뉴기니 메께오 부족(Mekeo tribe)이라는 특수한 사역환경(specified ministerial context) 내에서 발생한 내용을 한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들(constraints)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경우를 하나의 사례(case)로 제시하는 이유는, 선교사 출구 전략이라는 방대한 주제에 미약하나마 기여하여 건전한 한국선교의 미래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램에서이다. 

I. 출구전략을 통해 본 성경번역 사역 과정(Mekeo Bible Translation Ministry Process in Terms of an Exit Plan)

선교사 입장에서 선교사 출구 전략을 바라보면 하나의 생명 주기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의 사역을 예비하며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 되느니라.’(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NAS)라고 말했던 세례 요한의 언급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 뒤 서서히 사라져야 하는 존재다. 아래의 도표는 1986년 파송부터 2010년 사역지에서 공식적으로 떠난 시점까지 진행되었던 사역 과정을 보기 쉽게 표기한 것이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공식적 철수는 어디까지나 지역에서의 철수(exit from geographical area)를 의미함이지 관계나 사역에서의 철수(exit from ministry or relationship)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 파송 및 훈련 기간(Pre-field Training Period)

1986년 3월부터 10월까지 한국 선교훈련원(GMTC, Global Missionary Training Center)에서 선교학 기초 훈련을 받았던 기간이다. 당시는 선교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출구전략은 염두에 없었고 파송과 사역지에서의 토착화 선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동년 말경 사랑의 교회(Sarang Community Church)에서 파송 받을 때만 해도 선교사는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비장한 각오와 다짐으로 선교지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는 권면만 들었지 선교지에서 소기의 사역목적을 완수한 후 가능한 조속히 철수해야 한다는 권면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파송 후 사역지로 들어가기 전, 1987년 2월부터 11월까지 싱가포르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에서 기초 언어학 훈련(pre-field linguistic training)을 받았다. 이때도 대부분의 시간을 언어학 분석(linguistic analysis) 훈련을 받는데 할애했을 뿐 출구전략에 대해선 단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

영국에서 훈련받을 때만 해도 필자는 아프리카에서 사역할 것을 기대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1989년 1월 파푸아뉴기니로 사역지(mission field)를 변경해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성경번역선교사로 훈련받는 선교사 후보들의 사정과 훈련환경은 필자가 파송 받을 당시와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성경 번역 선교사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한동대 아릴락(ARILAC, Asia Research Institute of Language and Culture)에서 훈련받는 모든 훈련생들은 전체 사역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는 보다 효율적인 사역 수립을 위해 ‘언어 프로그램 기획’(Language Program Planning)이라는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이 과목을 이수함으로써 학생들은 ‘결과 중심 관리’(RBM, Result-Based Management)와 ‘통합계획’(Comprehensive Plan)에 대해 숙지할 수 있게 된다. 통합계획에는 선교사 개인의 사역, 지역교회나 공동체와의 파트너십, 다른 사역과의 협력과 연계(association), 그리고 사역 후 어떤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물론, 구체적인 사역 내용은 사역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훈련 기간에는 선교지에 가서 해야 할 사역에 집중하는 입구전략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아무리 정교하게 계획을 세운다 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지만, 큰 그림 속에서 수립되는 통합적 계획(plan)은 훗날 출구 전략의 수립을 더욱 용이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2. 언어문화 습득 및 관계 형성 기간(In-field Language Learning and Culture Aquisition and Building Relationship Period) 

이 기간은 주로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익히는 과정이다. 번역 선교를 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기간은 짧게는 2년 길게는 약 6년까지 소요된다. 필자는 메께오 부족의 언어에 대한 조사(Mekeo language survey)를 마치고 메께오 부족으로 들어갔는데, 메께오지역 동부에 위치한 이나와이사(Inawaisa)에서 현지인들과 교류를 쌓아가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메께오 부족 마을에서 그들과 같은 삶을 집중적으로 살아간 결과, 2년 반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메께오어를 일정 수준으로 습득하고 상당량의 단어를 수집해 분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시 음운론(tentative phonology)을 바탕으로 초기 알파벳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께오 동부지역은 언어는 메께오어 중 방언(dialect)으로 판명되어 메께오 서부지역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당시 SIL에서는 출구전략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역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계획은 항상 강조되었다.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지사역을 시작할 때 모든 번역 선교사들은 해당 지역 담당 디렉터(regional director)와 함께 한 달, 일 년, 한 텀(4년)을 기준으로 계획을 수립한 후 그 계획에 따라 사역하도록 했고 그 결과를 놓고 대화하고 평가했다. 사역 계획의 내용은 본인이 맡은 사역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언어학자겸 성경번역자이었기 때문에 언어학(linguistics), 번역(translation), 문맹퇴치(literacy) 등과 같은 주된 사역에 대한 계획과 실천 보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역개발(community development), 가족과의 시간(family time), 자기개발계획(self-development plan), 심지어 개인의 경건생활(personal devotional-life)까지 추가적으로 보고해야 했다. 필자가 사역할 당시에는 불가피하게 교회 사역에 참여할게 될 경우에는 부족어만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회관련 사역의 참여 자체를 자제할 것을 요청받았는데, 이는 혹시라도 있을 보안 문제로 다른 사역자들까지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현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있게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 현지인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충분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언어 분석을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첫 마을 사역지로 메께오 동부지역을 택하여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성립해 나갔으나 메께오 동부지역의 언어(East Mekeo langauge)가 방언(one of the dialects)으로 판명되면서(revealed) 부득이 하게 메께오 서부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무장 강도를 만나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건 때문에 메께오 서부지역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제자훈련 양육기간(Discipleship Nurturing Period)

1991년 봄, 필자는 동부 메께오 지역에서 서부 메께오 지역인 베이파(Veifa’a village)로 이주할 때, 필자는 모든 이주 과정에 대해 현지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먼저 어느 장소에 사는 것이 가장 최적인지(the bast place for us to live)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는데, 추장들과의 회의(meeting with chiefs)를 거쳐 그들이 제공해 준 늪지대 근처(swampy area)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지역은 ‘이나보꼬아’ 씨족(Inafokoa clan)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 씨족의 일원으로(clan member) 살아가며 사역을 시작했다. 사역 초기부터 현지인들이 사역의 진행을 주관하도록 했는데, 종종 더디게 진행되는 듯 보이기도 했고, 그들의 결정이 긍정적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인과의 관계 내에서 모든 결정이 성립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마을 안에서 함께 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필자의 집을 내왕했다. 의사소통에 불편이 사라지면서 필자는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 형식(narrative method)으로 조금씩 들려주었다. 필자는 언어학자이지만(SIL은 규정상 선교사 신분이 아닌 언어학자 신분으로 들어간다) 기독교인임을 밝혔고, 또 자연스러운 대화중에 원래 불교신자였던 필자가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형식을 빌어 말해주었다. 번역을 하기 전에 번역할 텍스트를 기초로 한성경 공부를 매일 같이 준비했고, 그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진행하면서 번역을 수행해 갔다. 이렇게 진행된 성경 공부는 메께오 문화와 사람들의 삶 전반을 이해하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고, 현지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성경공부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시시콜콜한 가정사(family life)관해서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개중에 호기심이 많은 형제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해 왔고,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더욱 관계를 맺어갈 수 있었다. 

4. 영적 각성과 확장기간(Spiritual Awakening and Bible Study Expansion Period)

92년 초부터 베이파(Veifa’a) 마을에서 발생한 각성 운동이 메께오 전역으로 확산되어 사역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성경 공부에 우연히 참석한 한 형제의 회심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성경 공부를 통해 회심을 경험한 그 형제가 자신의 가족들 앞에서 복음을 간증함을 통해 메께오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성경 공부의 확산은 그 후로 약 2년 반 넘게 지속되었는데, 이를 통해 때로 매우 강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던 성경번역과 성경공부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모든 메께오 마을에 크고 작은 성경 공부 반들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성경을 번역하고 검토하는데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앞 그림의 3에 해당되는 기간은 필자가 처음으로 가진 안식년 기간이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이 기간 중에도 성경 공부 모임들은 자발적으로 확산되어 갔다는 점이다. 이렇게 발생한 각성 운동은 메께오 동부지역에서 메께오 부족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

5. 집중 훈련기간(Intensive Training Period)

성경 공부 모임의 확산으로 많은 이들이 번역 자문과 검토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번역 사역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들 중 신약 번역에 헌신한 빅토, 아메, 아이사 등에게 번역 워크숍이나 메께오 기본 문법(essential grammar)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이 스스로 다른 현지인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었다. 성경 공부 그룹이 확장은 성경 번역과 직접 관련된 언어학적 부분 외에도 다양한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신앙, 상담, 지도자론, 문맹퇴치, 지역개발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 

96년 6개월가량의 두 번째 안식기간(sabbatical months)에 이르러서는 빅토, 아메, 아이사 등을 중심으로 한 대략 10-12명가량으로 구성된 현지인 번역 검토 위원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경 번역 초안을 잡아갔다. 번역 사역 면에서만 보면 이 기간이 가장 빠른 진전을 성취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마을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자면, 번역과 성경공부 모임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되었던 기간이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봉헌식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메께오 동부지역에서는 성경공부와 각성에 힘입어 자발적인 교회개척이 진행되었다. 

현지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킨 것은 현지인 중심 선교를 지향하는 SIL의 기본 방침 때문이었다. SIL이 출구 전략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번역 선교사들은 신약성경에 대한 번역을 마치면 대부분 사역지를 떠나는 것이 관례(implicit agreement)로 되어 있다. 이런 일이 관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다음과 같다: (a) 현재 사정도 비슷하지만, 당시에는 더 많은 SIL 번역 선교사들이 평신도 사역자들(거의 97% 이상)로 구성되어 있었다. (b) SIL 성경 번역 선교사는 신약성경에 대한 번역을 마치면 자신의 사역이 마무리 되었다고 간주하고, 번역 과정을 통해 성장한 현지 교회 공동체나 지도자들이 사역을 지속해 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현재 이 전략은 구약 번역과 성경 사용을 권장하는 기타 프로그램으로 확대되었고, 이러한 사역에 현지인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이냐에 대한 전략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c) 당시 성경 번역 사역의 기본 전략은 한 부족에 한 가정이 들어가는 것이었고, 신약 번역이 사역의 주 관심사였다. (d) 신약 번역을 마치면 선교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현지인에게 이양할 것을 현지인 땅 주인과 계약한 후 사역을 시작했다. (e) 성경 번역 선교사들 외에 다른 기술이나 사역으로 동역하는 사역자들은 일정 기간 사역기간을 마치면 학교나 기타 사역 단체로 이동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자유스럽게 활용할 수 있었다. 

성경번역 사역 수행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선교 본부도 철수할 때는 재산권을 땅 주인에게 자동으로 돌려주게 되어 있다. 사실 SIL의 전략은 선교지 재산권에 대한 이양이 아닌 리더십에 대한 이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사역 초기부터 토착화를 미리 계획하고 선교사들이 떠나고 난 후 현지 기독교 공동체가 사역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와 관계를 수립하는데 실패하고 번역 사역 자체에만 집중한 결과 번역을 한 후에도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라 할지라도 무조건 부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 번역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상당 세월이 흐른 후 그 공동체가 부흥하는 모습을 종종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한 예측 불허한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리더십 이양에 대한 많은 관심과 노력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6. 신약봉헌 및 교회개척 확산기간(Mekeo New Testament Dedication and Church Planting Expansion)

신약 번역을 봉헌하는 날에는 그동안 성경 번역에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참석했다. 특히 천주교 쪽에서 적극적으로 성경 봉헌식에 참석했고, 번역된 성경을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전(canon)으로 인정했다. 이와 동시에 성경공부 멤버들이 주축으로 메께오 서부지역 베이파에 최초의 개신교 교회(protestant church)가 세워졌다. 위 도표를 보면, 1999년 전환점 붉은 점선이 위로 향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필자의 신약 번역 선교가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현지인 스스로의 교회 개척과 확장이 이 시기를 계기로 더욱 새롭게 확장되어 나간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이 기간에 필자나 현지인 사역자들 모두 더욱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필자의 가정은 미국에서 구약 번역에 관한 공부(Ph.D)를 했고 현지인 사역자인 빅토는 파푸아뉴기니 SIL의 위탁으로 호주에서 약 3개월 동안 번역에 관한 이론적 훈련을 받고, 뒤이어 신약 그리스어 공부와 번역 자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도 필자는 출구전략에 대한 이해보다 신약번역에 이은 구약번역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에 하루속히 현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SIL의 선교전략을 출구전략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SIL 번역 선교사는 번역을 하더라도 성경에 번역자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번역본에 대해 여하한 어떤 판권(copy right)도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점은 성경번역 사역을 수행하는 성서공회(Bible Society)와 다른 점이다. 성서공회는 번역 후 판권을 반드시 가져야 하지만, SIL은 번역된 성경이 잘 쓰여 믿음의 공동체가 스스로 이끌어가는 상황화 과정(contextualization process)에 집중한다. 소위, SIL사역에는 사역의 사유화(privatization)가 발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사역에 대한 비사유화는 출구 전략이 수립할 때 쉽게 떠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된다. 

7. 출구 준비 기간(Preparation for Exit Period)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구약 번역을 위한 워크숍과 번역을 진행하던 중, 아시아 SIL로부터 교수요원으로 섬길 것을 요청받았다. 그래서 1년 동안 출구를 준비했다. 아마 이 때 요즘 회자하는 출구전략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필자가 품고 있었던 생각들은 다음과 같았다. ‘떠난 후에는 이들과 어떤 식의 관계를 맺어야 할까?’, ‘누가 구약 번역을 책임질 것인가?’, ‘현재까지 단 한 사람도 급료를 받으며 사역하지 않았는데, 과연 이들이 스스로 자립해 나갈 수 있을까?’, ‘우리가 떠나면 누가 구심점이(centripetal) 되어 젊은 사역자들을 이끌 것인가?’, ‘토착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러한 질문들을 가지고 현지인 사역자들과 더불어 구약 번역 과정과 향후 발생할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 나갔다. 수차례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많은 지역 교회들이 세워졌을 정도로 성장했으니, 스스로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와 함께 어떻게 떠날 것인가에 대해 함께 의논했다. 

8. 출구 후 교류 및 관계 기간(Exit and Post-Exit Fellowship and Relationship Period)

2003년 7월 메께오 현장사역을 공식적으로 마감하고(officially terminate) 파푸아뉴기니를 떠나 마닐라로 이동했다. 사실상 이 때 메께오 성경번역 사역의 출구가 성립된 셈이다. 이때를 정점으로 모든 사역을 현지 번역자인 빅토에게 위임했고, 메일과 전화를 통한 격려 외에는  번역 사역에 대한 직접적인 관여를 중단했다. 비록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구약 번역을 포함한 전도(evangelism)와 교회개척(church planting) 등 모든 사역과 관련된 방향 수립과 결정도 스스로 해 나가도록 했다. 동시에 2010년까지 매년 한 번씩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하여 현지 번역자들과 젊은이들을 격려는 일을 지속했다. 이 기간이 출구 후 전략에 관한 내용이 될 것이다. 

이 와중에 2005년 또 한 번의 사역의 일대 전환이 발생했다(occurred).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 SIL (Asia SIL in Manila)에서 교수로 섬기는 동안 아시아 언어문화 연구소(Asia Research Institute of Language and Culture, ARILAC)의 태동 가능성(a possibility of establishing ARILAC)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준비 기간을 거쳐 2005년 7월 한동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과의 협약을 통해 ARILAC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까지 ARILAC 사역을 통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심지어는 서구인까지 번역 선교사로 훈련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사역과정을 겪은 필자로서는 이들 훈련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더불어 이들 개개인이 향후 겪어야 할 출구전략에 대한 계획이 참으로 중요한 사역의 일부로 와 닿는다.

II. 선교사 출구 전략 반추를 위한 메께오 성경 번역 선교사역의 특성(The Characteristics of Mekeo Bible Translation Ministry for Reflection on A Missionary Exit Plan)

서두에서 필자의 경험은 파푸아뉴기니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미리 언급했다. 따라서 필자의 경우를 일반화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파푸아뉴기니 내라 할지라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출구전략이란 주제에 관해 좀 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선교사 출구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성경 번역 선교사의 특징들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들이고, 과연 그것들 중 다른 방식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출구전략에 원용(utilize) 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앞에서 SIL소속 선교사는 신약을 번역하고 나면 대부분 사역지를 떠난다고 했다. 물론 떠남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사역에 대한 열매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번역을 한 후에도 번역된 성경이 사용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이유들과 하등 상관없이 번역이 완료되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역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다름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금 강조하건데, 지역과 상황에 따라 사정과 여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출구전략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룰 수가 없다. 그런 이유에서, 여기에서는 메께오 사역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내용을 가지고 출구 전략과 연관시켜 반추해 보고자 한다.

1. 초기부터 현지인 주도 선교지향

필자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부터 현지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다. 언어 조사를 마치고 메께오어의 번역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고 난 후, 필자는 현지인과 함께 메께오 교회를 방문하여 사역에 대한 토의를 나누었다. 메께오 지역은 개신교가 전무한 지역이었고, 번역 팀에 앞 서 천주교가 들어와 오랜 동안 사역을 진행한 곳이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메께오 사람들은 천주교에 대해 익숙했다. 필자는 천주교 지도자들과 마을 지도자들을 만나 성경 번역 사역에 관해 논의를 진행했는데, 모두들 그 필요성에 동감하며 사역을 반기며, 필자와 가족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도 마을에서 결정해 주었다. 

만 2년이 경과한 후 장기적으로 거주할 마을 집을 짓게 되는데, 이때도 마을 지도자들과 만나 어느 장소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서 함께 결정했다. 번역 사역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때로 발생하기도 했던 반대를 통해 이들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었고 번역 사역에 대한 신뢰와 교류가 심화될 수 있었다. 장기간 거주할 집을 지을 때도 신약 번역을 마치고 떠날 것을 대비하여 필자와 가족이 살 집은 반드시 집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계약서를 쓰고 집을 지었다. 집은 마을 사람들이 사는 형태보다 조금 낫게 짓기는 했으나, 현지인들의 거주양식에 따른 집을 지음으로써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화감을 최소화 했다. 이러한 방식은 그 후로도 계속되어 신약 성경에 대한 봉헌식(New Testament Dedication Ceremony)도 전적으로 현지인이 주도했다.  

2. 현장 중심의 선교

번역 선교의 특징은 언어문화의 습득 및 분석을 최우선 과제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를 원활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는 현장 중심의 선교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마을에서는 씨족의 일원으로 행동하고 그들과 함께 살며 교류했다. 그들을 선교 대상으로 보기 전에 그들을 우리와 같은 지체요, 한 가족으로 생활하는 자체가 사역을 위한 큰 동력이 되었다. 

언어문화 습득은 적어도 한 텀(4년)이상 마을 사람과의 집중적인 교류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언어와 문화를 단순히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습득하고 분석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부족언어 수준에 대한 테스트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기는 하나, 번역 선교의 특성 상 대부분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사역지역에 따라 아직 알파벳이 없는 부족일 경우에는 문화 인류학 보고서 뿐 아니라 언어학에 관한 모든 논문들(음운론, 문법, 담화분석, 기초 사전-Phonology, Grammar, Discourse Analysis, Basic Lexicon)을 순차적으로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고, 자문위원(linguistic consultants)의 승인에 따라 번역 가능 범위가 정해진다. 필자가 사역했던 메께오 부족의 경우에는 이 같은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난 후에라야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advantage)은 단순히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데 있지 않고, 이 과정을 통해 발생하게 되는 현지인들과의 깊은 유대와 삶을 나누는데 있다. 

3. 성경 말씀 교류(fellowship through the Bible)와 말씀 나눔(sharing)의 선교 

번역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훈련시키는 최고의 기회는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번역선교사들과 현지인 동역자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필자의 경우 이런 과정이 1, 2년 이어지면서 둘도 없는 친구나 형제관계로 성장했다. 현지인에 대한 성경지식과 기타의 훈련은 번역을 착수하기 전에 하게 되는 성경공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경공부는 단계적으로 복음을 전수하는 방식이 아닌, 텍스트에 나오는 내용을 삶의 영역에 통합시켜 이야기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성경 텍스트의 특정 문단을 번역하기 하루 전날 해당 문단을 성경 공부 교재로 만들어 현지인들을 가르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지인들로 하여금 번역할 문단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했고, 어떻게 번역해야 최선의 번역이 될지에 대해 의논해 갔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영적전투, 리더십, 가정생활, 개인의 영성 등 거의 모든 주제를 통합적으로 다루었다. 이러다보니 경우에 따라서 번역은 단 한 줄도 못하고 성경공부만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을 위해 오는 현지인도 있었다. 매일같이 이루어진 이와 같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교류와 가르침이 누적되어 갔고, 나중에는 성경 공부 모임이 메께오 마을 전체로 퍼져나가는 기폭제가 되었다.

4. 자원한 현지인과의 동역 및 재정 문제 

필자가 속한 SIL에서는 언어와 문화를 지속적으로 가르쳐주고 번역에 동참하는 현지인 동역자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것이 관례다. 필자도 이런 관례에 따라 메께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기준에 맞는 동역자가 발견되면 보수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현지인들이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오기는 했으나 지속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 도와주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중도에 그만두는 바람에 보수지불을 하기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첫 텀인 4년 이 지나는 동안 고정된 현지인 동역자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오히려 더 늘어났고, 그 결과 친구도 더 많이 사귈 수 있었다. 번역에 참가하는 현지인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교대로 오도록 했고, 성경공부를 해 나가면서 교회를 섬기는 모두가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점심시간에는 누가되었든 현지인이 오면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며 그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부에 올라가 중급이나 고급 훈련을 받을 경우, 오고가는 경비를 포함하여 훈련기간 동안 드는 식사비용에 대해서는 필자가 부담했다. 비록 훈련 받은 현지인 중에서 중도에 하차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잘 선별된 현지인들은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지인들은 번역이 자신들의 일이기도 하며 협력과 동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 갔다. 번역과 번역 후 번역 내용을 검토하는 검토 팀도 그들 스스로 논의하여 결성했고, 성경공부 모임의 확대를 통해 재정에 관한 자립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갔다. 필자가 안식년을 가지는 기간 동안에는 현지인들 스스로 번역을 해 나갈 정도로 헌신이 되어 있었다.

5. 사역의 비 사유화 (Non-privatization) 

SIL이 추진하는 성경 번역 사역은 선교사 개인의 사역으로 사유화시키는 과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번역을 완료하고 출판을 한다 하더라도 그 판권을 SIL이나 선교사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다. 종종 출판을 해 준 기관들, 예컨대 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y)나 바이블 리그(Bible League) 등이 판권을 갖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번역 선교사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번역 책 서문에조차 번역자들의 이름은 공시되지는 않지만, 현지인 동역자들의 이름이 명시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번역 자체가 현지인과의 동역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깊는 신뢰와 방향성 때문이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번역이 끝나면 현지에서 철수해야 하고, 거주했던 집도 토지 소유주에게 반환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성경번역 과정에서 제자화(discipleship training)와 인재 양성(training trainers)에 주력하기 때문에 사역의 사유화가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6. 현지인 훈련 및 리더십 이양 선교

번역 선교는 사역 초기부터 현지인 훈련에 주력한다. 훈련받은 현지인들이 나중에 번역선교사로부터 리더십을 이양 받아 사역을 계속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에 대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훈련을 지속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a) 현지인 성경 번역자(local translator) (b) 문맹퇴치자(literacy workers) (c) 성경공부 지도자(bible study leaders) (d) 지역 개발자(community developer) 등으로 대별된다. 이에 따라 훈련도 다양하다: (a) 선교사와의 일대일 훈련 (man to man training) (b) 훈련 종류와 방향은 사역 현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선교본부에서(at mission center) 다른 현지인들과 협동으로 진행되는 현지인 훈련 (c) 각 부족에서 인정받고 선택된 (chosen and approved) 현지인 사역자 (local leaders) 훈련 (d) 탁월한 학적인 은사가 발견되어 해외 훈련이 더 필요한 현지인 사역자에 대한 훈련. 메께오 사역의 경우, 출발점은 성경 공부였다. 처음에는 이야기 중심의 나눔에서 시작했으나, 번역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텍스트 중심의 성경 공부가 주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며 훈련을 시켰고, 그 중에서 일부를 선정하여  번역, 문맹퇴치, 언어학 등 분야에 대한 중급(Intermediate) 혹은 고급(advanced) 과정 워크숍과 훈련을 받도록 했다. 메께오 사역의 경우, 현지인들 중 빅토 오뿡우(Victor Opungu)만이 이 모든 훈련과 워크숍 과정 이수를 완료했고 현재 현지인 번역 자문위원(translation consultant)으로 활동하며 현지인들을 훈련시키는 훈련학교의 교장(principal)로 섬기고 있다. 이들의 학력은 초등학교 6학년(6th grade) 졸업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th grade) 다양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빅토의 경우를 보면 학적인 자질(academic capability)이 있는데 비해 적절한 훈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번역에 틀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필자가 쉽게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할 수 있었었던 것 같다. 

7.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 

1992년 초 최초로 마가복음이 메께오 말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성경 공부 팀들은 이렇게 출간된 마가복음을 교재로 사용했다. 그해 6월에 성경 공부 모임에 우연히 참석했던 마태 에피(Mate Efi)가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의 적극적인 전도 활동으로 메께오 번역 사역은 극적인 전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테 에피가 자신이 들은 복음을 가족에게 전하고, 그 가족이 다른 가족들에게 전하여 씨족에서 부족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번져나가는 전례 없는 메께오 성경 공부 각성운동(bible study awakening movement)이 발생했다. 대략 30-50명 단위의 성경공부 모임이 메께오 서부지역 마을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메께오 부족 전체 마을(대략 32개 이상의 마을)로 퍼져나갔다. 이때 마침 번역된 마가복음이 출간 배포되었다. 이러한 각성운동 중에 성경공부에 참석했던 한 메께오인이 ‘아무런 방해가 없는 숲 속에서 집중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 제안에 따라 숲 속에서 3일 동안 수련회를 가졌다. 이 각성의 물결은 1996년 중반까지 대략 4년 정도 이어졌으나, 최고의 절정기는 1992년 10월부터 1995년 말까지 대략 2년 10개월 동안의 기간이었다.

성경공부 각성운동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메께오 성경번역 사역 초기에는 메께오 부족 가운데 개신교 교회는 전무한 상태였고, 필자보다 먼저 와서 사역을 시작한 천주교 교회는 형식적인 예배로 인해 젊은이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각성 운동의 결과로 젊은이들이 천주교회에 차고 넘치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젊은이들이 성경 번역 사역에 자원하여 동참했고, 이로 인해 매우 협조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경 번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필자보다 먼저 온 천주교 교회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는데,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성경번역 사역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양분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번역 사역 자체에 큰 위협이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현지인 사이에 귀신들림(demonization), 환상(vision), 꿈(dream)과 같은 현상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경 번역을 사모하게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경 번역을 위한 기도가 더욱 강렬해졌다. 이런 와중에 거짓 영적 치유자들(fake spiritual healers)과 자칭 전도자(evangelists)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1996년 두 번째 안식년을 이후까지 지속된 각성 운동의 영향 때문에 SIL 사역을 그만 두고 전도와 교회 개척에 전적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여부를 두고 많은 갈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진행하던 성경 번역을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믿고 지속키로 결정했다. 

메께오 성경공부 각성운동이 파푸아뉴기니 일간지에서 기사로 다루어지기까지 하자, 이로 인해 마테 에피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천주교 추기경 컨퍼런스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그러나 술과 담배 등에 대해 자유로운 천주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고 돌아 온 마테에피의 행동이 이상하게 변화되어 갔다. 컨퍼런스에서 돌아 온 직후부터 교만함과 술, 여자 문제까지 겹쳐 발생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 시기와 맞물려 성경공부 각성 운동도 서서히 그 열기가 식어갔고, 많은 마을 청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과거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성운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열매는 확고부동한 번역 팀이 구성되었다는 것과 성경공부 핵심 멤버들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력으로 1999년 신약 봉헌식이 무사히 마쳐졌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메께오 서부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주역이 되었다. 동쪽 메께오에서는 각성 운동이 시작된 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체적으로 수도에서 영향을 받은 타 선교 단체 소속의 교회가 세워져 갔다.

필자가 사역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개신교 교회가 전무했던 메께오 지역에, 현재는 메께오 서부지역에 9개, 메께오 동부지역에 8개의 교회가 현지인들의 헌신에 의해 세워졌다. 이들 지역 교회의 개척은 전적으로 현지인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외부에서 지원되는 여타의 재정이나 개입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교회의 경우는, 개척한 지 10 여 년이 지났음에도 양철 지붕 하나를 못 올려 완공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헌신으로 할 수 있다고 권면하며 일체의 도움도 제공하지 않았다. 

III. 출구 후 현상에 대한 반추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지금까지 필자가 전개한 내용은 전적으로 메께오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제 필자는 필자가 사역을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출구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반추해 보고자 한다. 이제 필자가 다음에 던질 질문들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사례를 출구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 선교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발전적 방안을 모색하는데 일말의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1. 떠나는 과정에 대한 고려(Considering the Exit Process) 

필자가 메께오 사역지를 떠난 과정은 출구전략이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본부의 요청과 그 요청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수용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의 사역지를 떠나 다른 사역을 시작해 보라는 본부의 제안에 받은 필자는, ‘과연 메께오를 떠나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했다. 한동안 기도와 고민 끝에, 필자가 떠난다 하더라도 성령께서 모든 사역을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고, 그 믿음에 따라 떠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록 애초부터 계획된 출구전략에 따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출구에 대한 이와 같은 외부의 요청과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해 선교사들은 어떤 반응과 자세를 가져야 할까?” 

2. 철수 후 질적인 사역 유지를 위한 네트워크에 대한 고려(Considering a Network to Keep a Qualified Ministry after the Exit)

필자가 떠난 후, 현지인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던 구약 번역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졌고, 이로 인해 2017년으로 계획했던 구약 번역의 완교시기를 전면 수정해야 했다. 현재 속도를 볼 때 구약 번역이 언제 마쳐질 지 기약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스스로 이런 과정을 충분히 겪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도 그랬고, 마닐라나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난 이후에도 2010년까지는 한 해에 한 번 정도 메께오 지역을 방문해 현지 지도자인 빅토와 메께오 젊은이들을 격려했다. 요즘은 IT에 기반한 통신시설의 발달로, 파푸아 뉴기니 지역본부의 경우에는 이메일뿐 아니라 휴대폰으로도 교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빅토 등이 지역본부를 방문할 때마다 한국 교회에 관한 이야기와 리더십의 역할과 기능에 관해서 의견을 나누며 교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교신과 교류를 통해 격려하는 방식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책자와 DVD 자료를 보내주거나 중요한 정보를 이메일을 통해 전달해 주는 것 외, 구약 번역에 관해 필자가 개입하는 것은 없다. 물론 필자 개인적으로는 빅토의 성격상 주도권을 쥐고 강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다소 유약한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이 사역은 전적으로 성령님이 이끄신다고 핑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와 관련해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출구 후 사역이 더디게 진척되는 상황에서 최선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동시에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  

3. 사역에서 재정 문제에 대한 고려 (Considering Financial Issues at Ministry)  

빅토를 포함한 번역 팀들은 번역 및 언어학 훈련에 필요한 경비와 장비(equipment)를 제외하곤 보수와 기타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 현재 빅토는 현지인 자문위원으로 파푸아 뉴기니 현지인들이 번역한 내용들을 자문해 주고 있고 현지인 번역자들을 양성하는 훈련소의 교장이기도 하다. 외부로부터의 재정 지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빅토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힘에 부쳐할 때가 많다. 

메께오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에도 일절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 굶어 죽지 않는 상황이기만 하다면 비록 재정적으로 열악하고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실 것임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더디게 진전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 나갈 것을 격려했다. 나중에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열악한 환경을 보고 일부 외국인 선교사들이 빅토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재정 원칙에 대한 필자의 단호한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맹퇴치 사역도 번역 사역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훈련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제외한 여타의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Seed Company에서 출판할 때 드는 비용만은 지원했다. 자체적으로 수립한 메께오 유치원을 통한 문맹퇴치는 매우 열악하고 자립을 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나, 초등 1-2학년 과정의 모국어 과정은 정부 시책에 따른 약간의 지원에 힘입어 잘 정착돼 갔다. 현재도 그럭저럭 잘 꾸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맹퇴치 훈련에 필요한 훈련과 리더십 양성은 마을과 본부에서 이루어졌다. 사역에 필요한 장비들, 예컨대 노트북, 전력 공급을 위한 태양판과 배터리, 프린터 등은 지원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역에 필요한 훈련과 장비를 지원해야 한다면 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원해서는 안 될까?” 

4. 사역의 목적과 방향에 관한 고려  

필자는 사역 초기부터 성경번역 사역은 지역교회를 돕는 하나의 도구이자 방향이라 인식해 왔다. 다소 이해가 안 될 수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급변하는 언어 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모든 언어를 구약까지 반드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성경 번역이 교회 개척과 교회 성숙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부족이 외부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국어에 기초하고 있어야 하고, 이에 기초하여 공용어와 보다 넓은 외부와의 연계를 맺어갈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세워지고 부족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라면 소수 부족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번역 사역도 현지인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친구관계를 형성하고, 관계에 기초하여 복음 이야기 나누고, 그 뒤에 자연스럽게 번역 사역과 문맹퇴치 사역을 통한 정체성 확립 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훈련 과정을 마치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이해를 전제로 하여 빅토같이 은사 받은 현지인들을 발굴하여 전문화된 훈련을 지속하고, 이후에는 현지인 스스로 사역을 이끌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최근 빅토와의 통화 중에 구약 번역 작업을 그만두고 현지인 지도자들이 복음전도와 지역 개발에 종사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데 집중하라고 격려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사역의 방향을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조정해 가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

5. 단계적 훈련 모델과 통합적 훈련 모델에 관한 고려

메께오에서 진행한 필자의 사역은 계획된 단계에 따라 진행된 훈련이었기보다 매일 의 성경공부를 통해 통합적이고 비형식적인 방법을 통해 진행되었다. 필요에 따라 단계적인 훈련을 받은 현지인은 마테 에피였다. 마테 에피의 경우를 보면, 소요리 문답부터 로마서 주석을 영어로 읽고 질문하는 단계까지 차근차근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스로 타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빅토의 경우는 구경꾼으로 왔다가 서서히 성장 발전해 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풀러(Fuller)나 스테펜(Steffen)의 발전 지향적인 단계적 모델도 어느 정도까지는 메께오 상황에서도 유용할 수 있지만, 메께오의 성경 공부 과정에서는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다루어 질 수 있는 통합적 모델이 더욱 절실했다. 그렇다면, “현지 지도자를 어떤 방식으로 양성해야 하고, 또 파트너십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유지해야 할까?” 

6. 쉽게 떠날 수 있는 상황 조성

번역 선교사들의 경우, 번역이라는 사역의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사역지를 떠나거나 옮기는 것이 쉬운 상황적 여건이 있다. 대부분의 서양 번역 선교사는 안수 받지 않은 사역자들이다. 한국 선교사들의 경우는 교회 개척이나 현지인 훈련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측정하기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특히 보안지역에서 사역하는 경우라면 그런 류의 측정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선교사가 사역지를 떠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참조: 

메께오 부족 현재 상황: 파푸아뉴기니 중부지방 북쪽 끝에 위치한 부족으로 현재 인구는 대략 20,000-25,000 명 정도 살고 있다. 대략 32개 이상 마을에서 흩어져 살고 있지만, 인구 증가로 점차 정착민들이 마을 외곽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일반적으론 동쪽, 서쪽, 북쪽 메께오 방언으로 동서는 점차 구분이 없어지고 있으나 북쪽 메께오 지역 사람들하고는 방언의 차이로 자유스러운 의사소통이 힘들다. 공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으나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공용어에 대한 이해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음. 제 1 언어인 메께오 언어 사용자는 99% 이상이고, 제 2 언어인 영어는 15-20% 이내이며, 제 3 과 4 언어인 히리 모뚜(Hiri Motu)와 톡 피진(tok Pisin) 사용자는 2-3% 이내이다. 전체 문맹률은 현재 대략 50% 정도로 보고 있으나, 역시 교육의 확장으로 문맹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천주교가 오래 전부터 사역을 시작하여 마을이 천주교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지금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메께오 전체에 천주교는 6개의 교회 존재하고, 처음 번역을 시작할 땐 개신교 교회는 전부했다. 지금은 개신교 교회가 동-서 메께오 지역에서만 17개 교회가 지역민 스스로 개척되었고, 더 많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번역이 완성된 후 이단을 포함한 각양각색의 교회와 단체들이 들어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