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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인도 기독교 이해 (공갈렙) 프린트   
서대한  Email [2022-01-10 15:34:04]  HIT : 816  


1.     인도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도하면 드는 생각이 신비하다’, ‘카레’, ‘타지마할’, ‘힌두교’, ‘불교의 발상지’, ‘선교’, ‘요가등 다양한 이미지와 단어가 떠오른다. 한국에서 인도에 대한 이해는 적어도 동북아의 주변 국가들과 비교했을 상당히 미비하다고 있다. 그런면에서 한국 교회 의 인도 기독교 이해도 일천할 수밖에 없다. 선교지로서의 인도는 알아도 선교와 사역 파트너로서의 인도 교회를 이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교회가 인도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인도선교에 대한 자세나 방향, 방법 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주제는 중요하다 하겠다.

 

 먼저, 선교지로서의 인도를 생각할 한국교회가 주안점을 두는 부분을 생각해 보고 자 한다. 첫째, 선교지로서의 인도엔 교회가 없기 때문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선교활동의 초점을 선교사의 직접적 복음 전도와 예배당 건축, 신학교 건립 등과 같은 외적 요소에 관심을 가진다. 실제로 인도의 각 지역에 예배당을 건축한 국의 여러 교회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세운 교회가 현지 교회나 교단과 연계되어 않고 한국인 선교사와 후원한 한국교회와만 연결되어 있어서 고립된 사역의 특징을 지고 있다. 예로 2015 이후, 인도에서 추방되거나 입국거부 선교사들이 많아지면 사역지의 교회, 학교 등의 재산을 송두리째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때 현지 기독교 교단이나 기관과 연계하지 못해서 사후 관리나 사역의 지속이 어려워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둘째, 선교지로서의 인도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에게 구제와 교육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 빈민 구제 사역과 빈민 학교 사역으로 구체적 사역의 열매를 맺게 된다.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으론 인도에 서의 선교 활동이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것으로 진행되거나 온정주의(paternalism)’ 혹은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 인해 현지인의 과도한 의존현상을 낳기도 한다.

셋째, 선교지로서의 인도의 문화는 반성경적이거나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에 멀리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인해 인도인과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현지어 학습을 제외 하곤 인도 문화나 역사, 관습 등을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인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나 인도선교를 지원하는 교회가 늘어가지만 인도를 잘 아는 전문가는 매우 부족한 현상황은 이런 자세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 왔던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역사와 문화를 배워서 관련된 책을 편찬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는 점은 한국 교회가 인도 전문가 양성에 게을렀던 점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인도인에게서 무엇을 배운다는 자세를 갖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르치는 자이지만 동시에 배우는 자로서의  선교사의 역할, 선교하는 한국교회의 역할에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선교 파트너로서의 인도교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인도 교회가 선교에 동참하게 하여 인도 선교의 주체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선교사들이 인도에서 사역할 사역의 주체가 되기보다 역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도교회 중 지역의 거점교회나 복음적으로 건실한 교회를 사역 파트너로 정해서 함께 그 지역 선교를 이루어간다면 그 열매는 고스란히 지역 인도교회 몫이 있을 것이다. 인도교회가 결코 규모나 능력이 작지 않다. 정부 계로는 인구의 2.4 퍼센트 정도지만 실제로 최소 4-5 퍼센트로 보는데, 무려 5,000만 명 정도다.(1)

둘째, 한국교회가 인​도교회가 자립-자전-자치 있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로는 위의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제국 주의 시대 서구 선교사들의 위치가 자의 타의 반 이런 온정주의의 한계를 경험했던 처럼 21세기 인도선교를 진행해서는 되는 경고음을 들어야 것이다.

셋째, 인도 기독교를 일단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연하자면, 한국교회의 주류인 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의 잣대로 인도교회를 평가하기보다 그 자체로서의 특징을 이해하고 바탕 위에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받았던 은혜를 누는 것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은 인도 현지교회에 대한 폭넓은 수용과 관대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신학적이나 신앙적으로 절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을 있다. 부분은 따로 다루면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인도 안에 있는 기존 교회를  완전히 무시해서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제기를 염두에 두고 인도 기독교의 역사적 변천과 현재의 모습을 바라 본다면, 한국교회가 21세기에 인도 선교 역사의 바통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 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해서 인도교회를 인도 선교의 주체와 파트너로 인식하고 인도 기독교를 이해한다면 인도 선교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게 것이다.

 

2. 2,000년 역사 속 인도 기독교


 1) 1-17세기 인도 기독교


 인도 기독교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왜냐하면, 사도 도마의 인도 전래설2)에 따라 서기 52년부터 인도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논쟁이 될 만한 소지가 있지만, 대체로 초대교회 교부들의 기록, 여러 문서의 증거 등을 통해 도마의 인도 사역을 중복해서 언급하고 있고, 초기 인도 교회가 스스로를 도마파교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등을 통해 도마의 인도 전래가 인도교회 안에선 나름대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여하튼, 도마의 인도전래 이후 초기 도마교회 공동체가 남인도 케랄라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고, 시리아 정교회와의 해안선을 통한 교류로 정교회 전통을 추구하는 교회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시리아정교회는 케랄라 지역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초기 인도교회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매우 소수의 공동체가 특정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아대륙에서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서구 교회와의 교류가 단절된 결정적인 계기는 622년 이슬람교의 출현부터였다. 7세기경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동방과의 해상무역 또한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이루어졌던 기독교 교류가 단절 되게 된 것이다. 이런 단절은 인도교회의 독특성을 키웠던 반면, 16세기 포르투갈의 본격적인 포교 활동 이전까지 약 600년에서 1,000년 가까이 되는 공백기를 가지고 왔다.

 

 인도 기독교는 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과 유럽의 가톨릭 포교를 통해 좀 더 광범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포르투갈의 무역항이 있었던 남인도 해안을 중심으로 빠르게 그 영향력을 높여갔다. 지금의 케랄라와 타밀나두 지역이 그 중심이었 다. 16세기와 17세기는 가톨릭 선교의 두 세기라고 할 수 있다.3)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인도 중서부 해안의 고아(Goa)엔 아시아 최초로 가톨릭 교구가 세워져 아시아 포교의 교두 보 역할을 감당하기에 이른다. 이 두 세기 동안 크게 선교의 두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그 흐름을 대표하는 두 인물을 통해 당시 가톨릭 선교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예수회 소속 프랜시스 자비에르(하비에르)(Francis Xavier, 1506-1552) 신부와 로베르토 드 노빌 리(Roberto de Nobili, 1577-1656) 신부가 그들이다.

 

 16세기 중반 프랜시스 자비에르가 남부 해안에서 가난한 하층민, 주로 어부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였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이 사역의 주된 메시지였다. 그러나 로베르토 드 노빌리는 17세기 초반 타밀 지역을 중심으로 상층 카스트주로, 브라만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유럽의 브라만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인도 브라만들에게 브라만처럼 다가갔던 소위 ‘문화수용(accomodation)’의 방식을 포교활 동에 적용했다. 가난과 절제를 실천했던 초기 예수회의 전통 속에서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불가촉천민을 포함한 하층민을 사랑한 성자로 추앙 받았던 반면, ‘백인 브라만’이라는 별명을 사용할 정도로 상층 카스트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문화, 관습을 모방하려 애썼던 로베 르토 드 노빌리는 산스크리트어, 타밀어, 텔루구어에 능통했다. 두 흐름의 선교 방식은 나중에 개신교 선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2)18- 20세기 초 서구 선교와 인도 기독교


 유럽 대륙에서 온 지겐발크(Ziegenbalg)와 플뤼차우(Plutschau)는 인도에 도착한 최초 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이들은 유럽의 할레대학교 프랑케(Francke) 교수 밑에서 신앙훈련 을 받고 루터파 교단에서 파송 받아 1706년 인도 남부 타밀 해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트랑쿠에바르 선교회를 조직하여 타밀 지역의 하층민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타밀어 성경 번역, 각종 출판, 일반교육, 지역 영주들과의 좋은 관계 형성 등을 이어가면서 헌신적으로 섬겼다. 그 뒤를 이어 슐츠, 페브리시어스, 슈바르츠 등이 마드라스와 탄자부르 지역에서 사역을 넓혀갔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남인도의 케랄라, 타밀나두, 안드라 프라데시 등에 선교기지와 교회, 미션 스쿨 등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 시기 놀라운 발전은 지역 언어, 타 밀어로 된 성경이 처음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1793년 영국 침례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가 인도 동부 해안 세람포르에 도착했다. 그는 함께 사역한 조슈아 마쉬만, 윌리엄 워드와 ‘세람포르 3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듣기도 했던 윌리엄 캐리는 일생을 바쳐 인도선교에 헌신했고, 그가 했던 성경번역, 출판, 학교, 대학, 언어 및 고전 연구, 식물 연구, 팀 사역, 사회개혁 등 다방면의 공헌으로 인해 지금까지 훌륭한 선교사로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 또한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도에 서구식 혹은 영국식 기독교를 이식시키려 했다는 점이 자주 지적되곤 한다.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파송으로 인도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섰다.4) 그와 같은 선교회 소속 동역자들은 교육선교에 동참하였는데 그 영향이 현재도 인도의 교육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도 중산층의 머릿속엔 기독교 사립학교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더프의 사역 또한 이런 화려한 업적도 선교학적으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영어 교육이 곧 기독교 전파를 촉진하는 것이며, 인도문화는 반기독교적이라 배울 것이 없다는 더프의 사고가 현대선교에서 현지문화를 존중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탈제국주의적 시도와도 맞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인해 더프의 선교방식이 식민지 상황에서 기독교가 영국의 제국주의를 강 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5)

 

 미국 선교사들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인도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선교지 분할정책(comity)에 의해 기존 선교회가 사역하는 지역에는 중복해서 다른 선교회가 사역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주로 새로 개척하여 사역했다. 대표적인 곳이 펀잡, 마하라슈트라 남부, 구자라트, 라자스탄, 우타르 프라데시 일부 등이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의료 선교사 였던 아이더 스커더(Ida Scudder)는 타밀나두 벨로르에 여성병원과 여성의과대학을 설립했고, 독립 후 이 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여러 선교회에서 의료선교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한편,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영국과 영연방 여성 선교사들이 인도인 여성과 아이들을 선교하기 위해 제나나(Zenana)6) 선교회를 조직하여 사역하기 시작했다.7) 남인도 ‘고아의 어머니’로 불린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도 이 시기에 영국성공회 제나나 선교회 소속으로 여성과 고아들을 위해 사역한 대표적인 인 물이다.

 

 이런 다양한 사역의 열매로 19세기말이 되면 남인도와 북동부 지역을 시작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인도인 지도자들이 발굴되기에 이른다. 이들 중 서구식 기독교가 인도 토양에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인도 문화에 맞는 교회를 세우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따로 교회나 운동을 조직하진 않았지만 삶에서 인도식 기독교의 한 형태를 보여주 었던 사두 선다 싱, 브라만 사제를 아버지로 두었던 여성 지도자 판디타 라마바이, 브라만 출신의 나라얀 틸라크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서구 선교사들 중에서 도 이런 인도식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소위 ‘상황화(contextualization)’ 사역을 전개하기도 했다.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8)

 

 19세기 중반부터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기독교는 서구사상과 문물을 함께 들여오는 통로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의 힌두 지도자들 중에서 서구 기독교의 유일신, 개혁 사상 등을 힌두 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람 모한 로이, 케샤브 찬드 라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9) 하층 카스트 지도자였던 조티라오 풀레는 기독교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기독교 평등사상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10)

 

 이 시기 개신교 선교는 상층 카스트를 대상으로 시작했던 선교회라도 열매가 많지 않아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하층 카스트와 부족민들을 주된 사역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약 80 퍼센트의 인도 기독교인들이 하층 카스트이거나 부족민 출신이다. 또 한, 이들 사이에서 부흥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04년부터 수년 간 펀잡, 카시, 나가, 안드라, 타밀, 케랄라 지역에서 동시에 부흥의 불길이 일었고, 이 부흥의 띠는 영국 웨일즈로부터 인도, 한국 등으로 이어지는 강 력한 성령의 활동이었다.11) 20세기를 전후하여 인도의 북동부와 인도의 여러 산악지역에 사는 부족민들이 집단개종을 하면서 그 지역사회가 샤머니즘, 애니미즘 숭상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회로 완전히 탈바꿈한 사례가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지역으로 나가 랜드, 미조람, 메갈라야, 마니뿌르 주 등이 있다. 실로 복음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게 찾아왔다. 이들에게 복음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해방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소위 ‘라이스 크리스챤(Rice Christian)’이라는 별칭이 기독교 선교의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3) 독립 후 인도 기독교

 

 1947년 독립은 분단과 함께 찾아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다수의 피난민들과 종교적 갈등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돌보는 일이 새로 독립한 두 국가의 일차적 과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종교적인 중립노선에 있었던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난민구호에 참여하였다. 난민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기독교 학교와 병원이 난민 캠프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그 기관의 기독교인 직원들이 난민 구호를 담당하였다. 전국 각지의 교회와 기독교 기관에서 난민 구호 헌금을 보내왔으며, 그 액수 또한 상당했다. 인도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행동을 했다. 이와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를 안고 있던 소수 기독교 집단으로서 다수자인 인도의 힌두교, 파키스탄의 무슬림 집단 앞에서 자신들도 충실한 국민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12)

 

 1947년 독립 이후 자립적인 인도 교회와 자체 선교의 시대가 강화되었다. 인도 기독교는 CSI(Church of South India, 남인도 교회연합), CNI(Church of North India, 북인도 교회 연합) 등의 20세기 초 현지화를 위해 이미 조직되어 있었던 교회를 비롯한 현지 지도자 중심의 기독교 기관과 단체, 교회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이와 함께 소수종교로서 기독교인이 겪는 어려움은 무슬림과 비슷한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되면서 절대 다수의 힌두교인이 중심이 된 정계 개편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누리던 특권이 사라지거나 오히려 이들에게 분리한 제도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독립된 인도의 네루 정부가 시행한 SCs(지정카스트), STs(지정 부족) 제도는 달리트 배경의 기독교인들을 철저히 배제하였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꾸준히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1950, 60년대를 지나면서 인도 기독교 내에 연합과 통합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를 위해 임마누엘병원연 합(EHA), 인도복음주의협회(EFI), 복음주의학생연합(UESI) 등 여러 연합 기관들이 세워졌다. 서구 선교사들은 이러한 인도인 주도의 연합운동에 종종 산파 역할을 하고 뒤로 빠지 는 일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지난 식민지 선교의 잘못을 인식하며 나타난 결과였다.14)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60-70년대 선교사 주도가 아닌 인도인 지도자들의 주도로 남인도 타 밀나두와 케랄라, 안드라 프라데시에서 북인도로 선교사를 보내는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이런 운동에서 배태된 인도 자생 선교단체로 IEM과 FMPB 등을 비롯하여 수백 개의 단체가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순수 인도인 주도로 IMA(India Mission Association, 인 도선교연합회)라는 선교 연합체가 1977년에 결성되었다. 2021년 6월 현재 소속 단체만 243개, 6만 명의 타문화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다.15)

 

 그 결과 현재 북인도의 중요 교회와 기독교 기관은 서구 선교사의 뒤를 이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남인도 지도자들이 다수이며, 이와 함께 남인도 기독교인들이 직접 세운 기관 또한 다수 포진해 있다.16) 더 나아가 주변 국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 있었는데, 네팔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케랄라, 타밀나두, 안드라 프라데시, 미조람, 나갈랜드 등에서 네팔, 부탄, 스리랑카, 중동, 중화권, 영국 등에 선교사를 지속적으로 파송하고 있다. 그중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미조람 교회들의 완전 자립된 선교모델은 마치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열정과 비교할 만하다.17)

 

 그러나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부터 제기된 구조적 문제로 북인도에서 남인도 리더십 이 가지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북인도 출신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배출하는데 실패한 나머지 차기 리더십을 남인도 출신으로 대체하는 관습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또한, 20세기 들어 인도화된 기독교에 대한 엇갈린 반응에 대해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달리트(Dalit) 신학, 자유 주의 신학, 서구화된 신학, 상황화 등의 주제는 각각의 이슈를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도 근대사에서 기독교가 두드러지게 공헌한 세 영역을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교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개혁이다. 현재까지 피부로 느껴지는 기독교의 공헌이다. 향후 21세기 인도 기독교가 어떤 모습으로 인도 사회에 공헌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3. 선교 주체로서의 인도교회와 인도 기독교의 미래

 

 21세기 인도 교회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받고 있다.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 정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소수종교 차별에 대한 수위가 높아졌다. 이에 더해 해외 선교사에 대한 비자거부나 추방 사례 또한 현저하게 늘었다. 이런 비자 문제는 인도에서 비즈니스와 투자를 목적으로 한 비자발행의 증가와 대비된다. 2020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타국과의 교류 감소는 더더욱 인도 교회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 황을 만들고 있다. 인도에서 기독교에 대한 차별은 단지 소수종교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불교나 자이나교 등은 기독교보다 수적으로 더 적지만 테러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외래종교로서 식민지 제국주의 종교이자 하층민의 종교로 인식되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개종에 대한 강한 거부감 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 교회의 선교적 자발성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내외부적인 환경이 오히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상황 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 이후 심한 핍박으로 인해 교회가 흩어질 수 있었고 이방 지역에 가서 선교할 수 있었다(사도행전 11:19-26). 핍박과 고립의 위험에서 인도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면 해 외 선교사의 주도가 아닌 인도 교회의 주도로 자국 선교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교 회엔 이런 역량이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 고, 신학적으로 건강한 교회, 기도하는 교회가 있다. 이들이 단지 소수 종교로 받는 억압을 믿음과 순종으로 잘 극복하고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복음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의 선교가 부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바탕으로 인도 기독교의 미래 비전을 전망한다면, 첫째, 제3세계 선교 주 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 다언어, 다종교 국가에서 살아온 인도 기독교인의 문 화수용성과 영어라는 언어소통 능력, 깊이 있는 영성이 추가되어 이들이 선교적 부르심에 과감히 헌신한다면 한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세계선교를 주도하며 섬기는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실례로 국제 선교단체인 인터서브(INTERSERVE)의 국제총재가 인도인이며, 인도 인이 주도하는 자국 혹은 국제 선교단체가 수백 개가 있다는 점에서 인도교회가 이미 선교 부르심에 구체적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도인 기독교인 수가 대한민국 인구만큼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도 중산층 기독교인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선교자원으로 헌신한다면 인 도교회는 한층 성장, 성숙해질 것이다. 인도교회의 약 80 퍼센트 정도가 하층민 혹은 소수 부족민 배경이라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러 세대를 지나오면서 이들 중 중산층으로 도약하거나 중산층에서 회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인도인 선교사 들 중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사역하는 중산층 출신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 중에는 해외로 선 교활동을 나가기도 한다. 또한, 직업을 통한 선교적 삶을 살기 위해 남인도에서 북인도로 직장을 구하는 기독교인들도 여럿 있다.18) 인도 안에 있는 여러 선교단체의 지도력도 이런 중산층 기독교인들이 발휘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 침이 없을 것이다.19)

 

 셋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거주 인도인들이 삼천만 명이 있는데, 이들의 선교 기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소천할 때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복음 변 증가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라비 자카리어스(Ravi Zacharias, 1946-2020) 목사는 세계 교회가 주목한 인도 출신 미국 국적의 사역자였다. 그의 깊이 있는 영성과 변증능력은 유 청소년기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습득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그가 설립한 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ssion(RZIM)은 인도 와 세계에서 기독교 변증 사역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넷째, 인도 선교사가 비교우위에 있는 선교지가 많이 있다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예를 들어, 네팔과 부탄, 스리랑카, 동남아, 아프리카 등이다. 인도 주변 국가인 네팔과 부탄, 스리랑카는 인도인들에겐 비자나 문화적 문제가 없거나 적다. 또한, 동남아에 있는 인도의 문화, 영어를 통한 접근, 지리적 접근성 등이 그 지역에 인도인 선교사가 사역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인도인들이 큰 집단을 형성하고 있기에 이들과 연계하여 그 지역을 섬길 수 있다. 미국과 서구 국가에선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문인 선교사로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가 인도교회를 존중하는 선교사역을 이어갈 때 사역적 방향이나 열매가 고스란히 인도교회의 것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한국교회의 인도선교 방 향이 인도교회가 주도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을 강화할 때 이들의 선교적 자발성 또한 키워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장은 교파적, 신학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있 어서 순차적으로 신학적 유사성을 지닌 교회와 연계하여 동역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것 이다. 더 나아가 인도교회는 인도인의 문화 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한국교회의 성숙한 선교적 자세가 될 것이다.20) 인도 문화에 맞는 교회를 세우고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를 소개할 수 있게 돕는다면 힌두교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더 쉽게 벗겨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인도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인도 기독교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인도교회의 현재와 미래 전망을 기술하였다. 인도가 기독교를 수용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전래, 내부의 필요, 외부의 전래 혹은 식민지 환경적 인 압력 등 다양했다. 16-17세기 가톨릭 선교 시대, 19-20세기 개신교 선교 시대를 거쳐 현재의 인도 기독교가 형성되었다. 인도교회는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자체적인 선교역량과 가능성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도교회가 선교 주체로서 어떤 특성을 가지 고 기능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였다. 이런 인도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인도교회의 선교를 돕는 파트너로 잘 기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제이슨 맨드릭, 세계기도정보 2죠이선교회2011.

2) Robert Eric Frykenberg, Christianity in India: From Beginnings to the Present,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pp. 91-115.

3) 앞의 , pp. 116-141.

4)  스튜어트 피진 , 최태희 , 숭고한 경주SFC, 2002.

5)   Gauri Viswanathan, Masks of Conquest,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9. 이 책에서 저자는 영  식민지배의 근저에 인도문화를 말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그것을 영문학과 영어교육을  로 들고 있다영국 관료들과 알렉산더 더프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으면서 실시된 영어교육은 영국의 모든 식민지에 표준화된 교육방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6)  여성의라는 뜻으로 종종 인도의 무슬림과 힌두 가족이 사는   쪽에 배치되어 있던 여성들


만의 규방을 지칭한다. 이곳은 오직 여성이나 가족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된다.

 

7)   엘리자베스 테베, 공영수 , 인터서브 155 역사인터서브코리아2008pp. 12-15.

8)  스탠리 존스김상근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평단문화사, 2008.

9)  로빈 보이드임한중 인도 기독교 사상CLC, 2019, pp. 52-84.

10)  공영수또다른 인도를 만나다평단문화사, 2014, pp216-222.

11)  인도 부흥의  단면을 알고자 하면 다음 책을 참고하라. 프란시스 맥고우, 권태식 , 기도  사람 하이드생명의말씀사1977.

12)  Youngsoo Kong, ‘Christians and Refugee Relief during Partition of India with special reference to Punjab and Delhi’, Christian Inquiry on Polity, InterVarsity Publishers India, 2017, pp. 85-98.

13)   달리트 크리스찬에 대한 논의는 다음 책을 참조하라. James Massey, Dalits in India: Religion as a source of bondage or libera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Christians, Manohar, 1995.

14)   이찬우, 프론티어 선교학CLC, 2020, pp. 498-506.

15)  https://imaindia.org/

16) John C. B. Webster, A Social History of Christianity: North-west India Since 1800,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pp. 343-344.

17)  https://youtu.be/1LAIMvpNYwo

18)  James Sebastian(UESI tentmaker coordinator)와의 면담, 2021 5 29.

19) 진기영, 인도 선교의 이해 (I), CLC, 2015, pp. 307-326.

20) 진기영, 인도 선교의 이해 (II), CLC, 2016, pp.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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