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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포럼 2018-6: 케이스 스터디-어느 풀뿌리의 선교적 삶과 여정(양동철) 프린트   
정유미  Email [2019-01-17 18:06:16]  HIT : 1121  

어느 풀뿌리의 선교적 삶과 여정 - 양동철

 

0. ‘96년 교회 로비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온 산업연수생 구나완을 처음 만났다. 공단 지역은 아니었지만 교회 옆에는 모자를 만드는 작은 공장이 있었고, 거기에는 약 20~30명 정도의 외국인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구나완은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교회에 출입했다. 비슷한 또래의 우리는 이내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가끔 밥도 같이 먹는 등 자연스럽게 교류를 시작하였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는 해외선교에 적극적인 교회였다. 나도 자연히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그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익혀 그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 옆에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유창하진 않지만 이 사람들은 우리말도 스스로 배워서 한다.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가난하지만 젊고 꿈이 있는 젊은이로 해외에 가서 3년간 일을 하는데, 우연히 꽤 규모가 있는 교회 옆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하자. 그런데 내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 동안 교회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나를 돕거나 섬기지를 않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얼마나 이상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그래서 뜻을 정하여 이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하였다. 주로 그 친구들이 기거하는 숙소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1. 작은 규모지만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훈련이나 준비를 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일단 부딪히면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을 갖춰나가는 방식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인터넷이 없거나 아직 발달하지 않았을 때여서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언어를 공부하였다. 초창기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다수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였다. 가르쳐 줄 사람이나 기관이 없어서 서점에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 독학이 가능해 보이는 쉬운 책을 집어 공부하면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만나서 사용해 보고 확인도 받았다. 시청각 자료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외대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기도 하였다. 컴퓨터만 켜면 자료가 넘치는 지금 보면 격세지감이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 없었고, 무슬림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정보와 자료도 역시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사실은 시도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따로 훈련받은 것도 없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를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는 호주 선교사님과 친구들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그 선교사님이 소개해 준 인도네시아 내 사역단체에 편지를 써 쪽복음서나 전도책자들을 받아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건네기도 하였다. 관심있게 읽던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아예 본격적으로 한국말 교실을 열어보기도 하였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거부감 없이 예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서 크리스마스 때 새벽송을 가거나 파티를 열어 문화행사의 틀을 빌어 예수님에 대해 말해 보는 것을 시도해 보기도 하였다. 기독교 교리가 간단하게 정리된 전도책자 등을 소개해 보기도 하였고, 그렇게 해서 일정한 시간 함께 성경공부를 같이 하기도 하였다.

정해진 틀이 없는 사역이었기에 정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인천이나 부천에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에 같이 가보기도 하고, 우리 집에 초대해 밥을 먹기도 하였다. 더운 나라에서 와 초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떨고 있는 스리랑카 친구들을 보고 교회와 회사에서 겨울옷을 모아 주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를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했던 것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친구들의 숙소를 방문해 친구가 되고 신뢰를 쌓는 일이었던 것 같다.

 

2. 작은 열매들이 없지 않았지만 사실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행착오였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의 숙소를 방문하기 시작했던 초창기이다. 아직 언어도 안 되어 영어를 쓰고, 이슬람이 뭔지 기초도 몰랐을 때이다. 조금 친해진 이후 어쨌건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고 선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떤 맥락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 자신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들 중 종교심이 더 깊던 한 친구가 아니다.’ ‘예수는 선지자다라고 말하며 책장에서 한 책을 꺼내 왔다. 아랍어로 된 꾸란이었고, 오른쪽에 영어로 그 의미를 번역해 놓았다. 라흐만이라는 이름의 그 친구는 나에게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 그리고 예수가 등장하는 부분을 꺼내 보내주었다. 난 왜 꾸란에 마리아가 나오고 예수님이 나오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되었다며 그 친구들은 좁은 방 안 내 앞에서 두 줄로 서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뭘 중얼거리고 허리를 숙였다 무릎을 꿇었다 하며 기도를 했다. 혼이 떠나는 것 같았다. 한 동안 꽤나 위축이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굉장히 조심하고 신중한 가운데 좀 친해진 친구들에게 책자를 건넨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였다. 그 중 대학도 나오고 어느 정도 지식인 층에 있던 큰 형뻘 되는 분이 있었는데 내가 주는 책자에 관심을 보이고, 다른 책자들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중부 자바 출신이고 자기 삼촌도 기독교인이라 하며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숙소를 방문해 보니 이 분이 없었다. 물어 보니 산업연수 기간이 만료가 되었는데 불법체류를 염려한 회사 측에서 친구들에게 인사할 시간도 신변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갑자기 이 분에게 짐을 싸라고 하고 공항에 보내 출국을 시켜 버린 것이다. 너무 아쉬웠다.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은데. 나중에 알았다.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도 내가 처음 만난 구나완, 라흐만처럼 수마트라에서 온 친구들이랑 중부 자바 사람들과는 기독교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3. 여러 실수를 했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아쉬운 점은 내가 이방인 친구들의 친구가 되고 섬기는 일 그 자체가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보내는 많은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직접 예수님에 대해 말하거나 기독교 교리를 소개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교제하고 돕는 데 사용되었다.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병명을 잘 이해 못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통역을 해 준다던지, 은행업무를 도와준다던지,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한다던지, 다른 교회 지체들과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그런 교제와 섬김이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한두번 찔러 보았는데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에게는 시간을 덜 사용하였다. 관심도 덜 두었다. 마치 축구를 할 때 90분 동안 열심히 운동장을 누벼도 골이 안 나오면 0:0인 것처럼 아무리 내가 잘 섬기고 교제해도 결국 누군가 그 결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와서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들은 생활의 필요 외에도 여러 가지 정서적 필요가 있었다. 아마 영적 필요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나를 포함해서 교회 다른 청년들과 교제할 기회가 생기면 정말 좋아했다. 공장에서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할 수 있는 한국인 동료들과 일하다가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 젊은이들과 교제하는 것이 그 친구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한국사람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대접받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교육수준이 꽤 높고 원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런 경험을 인정해 주고 함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때 교회 청년부 지체들과 이 친구들을 위한 파티를 연 적이 있다. 음식을 준비하고 노래와 춤, 게임 등을 준비했다. 무슬림 친구들은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여는 파티라 주저하기도 하였지만 많이들 참석해 주었다. 파티를 마치고 필리핀에서 온 한 여자친구는 파티가 있었던 교회 방에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를 못했다.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가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그 여자친구는 카톨릭 신자였는데 같이 성경을 공부하기 쉽지 않은 그런 친구였다. 타국에서 그 외로운 마음을 보고 섬길 수 있는 그런 눈이 나는 없었다. 그걸 보고도 이후에 이 친구와 많이 교제했던 기억이 없다.

만약 다시 이런 사역을 하게 된다면 교제와 섬김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사귀며 섬기려 할 것 같다. 여러 상황 속에서 복음을 소개할 기회를 찾겠지만 여의치 않더라도 그 교제와 섬김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사역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했을 때 복음이 전해지고 받아들여질 기회가 더욱 넓게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시간이 좀 흘러 회사에서 이슬람경제, 금융 전문가가 필요하여 한 명을 선정하여 학위과정 연수를 보내기로 하였다.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주로 교제하며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기는 하였지만 이슬람을 잘 알지는 못하였는데, 이 과정에 지원하여 선정되면 인도네시아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고 생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원하였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에서 설립한 대학원에서의 공부와 교수, 친구들과의 생활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슬람금융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샤리아의 기본원리들을 알아야 한다. 강의실 뒤편에 앉아 중동과 유럽 등에서 수학한 수준높은 율법학자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에 참여하며 나에게 주어진 이 흔치 않은 기회에 새삼스레 감사하였다. 그 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 학자들의 논문과 글을 읽으며 이슬람의 세계관 속에서 무슬림들이 어떻게 이슬람의 가치를 뿌리내리려 몸부림 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무슬림 친구들도 쉬는 시간마다 목소리를 높여 토론하며 특히 경제와 금융에서 참다운 이슬람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슬람의 교리 뿐 아니라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무슬림 학자와 친구들과 교류했다. 대륙도, 인종도, 종파도 다른 무슬림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고 공부하며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보편적인 이슬람의 가치와 각 지역과 종파, 분파, 세대 간 특수성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무슬림인 속에서 직접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최대한 이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 무슬림 친구들과 어울려 교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금식월에는 무슬림처럼 금식을 했고, 우리나라의 명절에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할랄음식으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명절음식을 대접하였다. 언제든지 무슬림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집에서는 한동안 돼지고기나 돼지고기로 만든 햄을 요리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페이퍼를 쓰고 공부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다. 지금은 동남아에 기반을 둔 경제인이면서 이슬람을 이해하는 직업인으로 영역을 넓혀가려 하고 있다.

 

5. 나의 신앙이나 사역의 목표가 항상 풀뿌리 선교인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방향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풀뿌리 선교의 모델을 접하고는 의식적으로 방향을 잡아나가려는 하였다. 따라서 신앙의 여정이 풀뿌리선교인의 삶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직장인성경공부모임(BBB)를 오랫동안 섬기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에 오기 직전까지 일산 북부에 있는 교회에서 탈북자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여정을 돌아볼 때 풀뿌리선교인의 삶과 다른 곳에서의 삶들이 서로 동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결국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 때부터 일상에서의 사역과 삶을 강조하는 교육자나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은 교회에서 자라며 자연히 선교에 대한 비젼을 키워갔지만 특히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적 삶에 관심이 많았다.

대체적으로 전임사역자가 아닌 풀뿌리선교인들은 선교지나 사역지를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노력은 하더라도)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국내건 국외건 외국인이 있건 없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그 선택지가 BBB 였고, 파주에 살면서는 탈북자 모임을 섬기게 되었다.

풀뿌리선교인의 비젼이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의 사역이 연장되어 선교가 일상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6. ‘15년에는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회사 하나를 꾸려 가며 현지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얘기하고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현지 직원들도 언어, 음식, 문화, 종교, 사상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를 정말 잘 이해하는 매니져를 상사로 둔 것에 대해 놀라워하며 즐거워 한다. 출장 가며 차 안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직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어떤 시니어 직원은 내가 말하는 방식, 사고방식이 인도네시아 사람, 특히 자바사람과 같다고 평가해 주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나하고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는 여러 갈등이 있는 곳인데 이 문화 속에서 그 갈등을 극복해 가는 것, 같이 금식도 하고 금식을 깨는 식사도 하고, 종교/문화 등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작년 말에는 처음으로 전 직원들과 1:1 인터뷰를 하였다. 24명을 만났는데 그 중 4명이 인터뷰 중 울거나 눈물을 훔쳤다. SNS에 이 경험을 올렸는데, 선교사님이 교수로 대학에서 사역하면서 학생들을 1:1로 면담하면서 신앙적인 도전이나 초대를 했던 경험을 얘기해 주시면서 신앙을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해 주셨다. 사실 이 부분이 기회이기도 하고 숙제이기도 하다. 2년 넘게 근무하면서 쌓여진 두터운 신뢰와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큰 자산이다. 조심스럽게 신앙을 주제로 얘기를 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30명 정도 일하는 작은 회사에서 상당수 직원들이 무슬림인 상황에서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7. 선교에 관심이 있고 선교지향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직업인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나는 누구이지?’ 하는 문제이다. 교회 옆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친구들을 도울 때에도 교회 내에서 같이 도울 사람들을 조직하기도 하고 교회 많은 분들로부터 관심과 지원을 받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하는 사역이었다. 시간을 정해 친구들의 숙소를 방문했지만 바쁘거나 의욕이 사라지면서 한 동안 친구들을 안 만나면 그냥 그것으로 그만이다. 누가 뭐라고 하거나 조언을 얻거나 격려를 받을 곳이 없었다. 안산이나 인천 등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사역하는 교회나 단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합류하면 우리 동네에 있는 내 교회 옆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어떻게 섬길 것인가? 그리고 우리교회에도 외국인 친구들을 섬기는 데 관심있어 하는 성도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할 때에도 고민이 많았다. 선교사로 파송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책임을 진다면 나를 그 곳에 연수발령을 낸 회사 앞에 지는 책임이 있었다. 즐겁게 공부하고 친구들과 교제하고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지만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공부를 좀 덜 하고 사람들과 교제할 시간을 더 늘려야 하나? 조금 위험하더라도 복음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소개할 기회를 찾아야 하나? 등등의 여러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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