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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선교사 2013가을-3: 선교사의 사역적 통합성 및 텐트메이커 선교사의 사역적 integrity의 과제, 그리고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의 파트너쉽의 가능성에 대한 발제 (김기석, 한동대학교/IT변혁연대)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7-01-31 09:45:53]  HIT : 652  

선교사의 사역적 통합성 및 텐트메이커 선교사의 사역적 integrity의 과제, 그리고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의 파트너쉽의 가능성에 대한 발제  

김기석, 한동대학교/IT변혁연대

 

0. 본 발제에서 사용한 용어의 정의 

1) 선교사 – 교회나 선교단체로부터 공적으로 파송받아 지속적인 감독을 받고 사역하는 사람. 

2) 해외 사역자 – 지속적인 감독이 없이 자발적인 헌신가운데 개인적인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3) 영적 사역 – 선교사로서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과 교회 공동체 사역을 위한 전도-양육=교회개척 등의 사역을 말한다. 

4) 전문 사역  - 영적사역의 기반이나 플랫폼,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나 세속적 직업을 바탕으로 한 사역을 칭한다. 비자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는 비즈니스 플래폼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 현지인의 교육과 취업을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 병원을 세우고 치료하는 일 등등을 말한다. 5) 현지인 – 선교사가 섬기고 사역하는 나라의 영혼들 

6) 목회자 선교사 – 안수받은 목사로서 파송된 선교사 

7) 평신도 선교사 – 목회자 선교사의 반대말. 평신도라는 말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한국적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므로 본 발제에서는 사용하는 것으로 함 

8) 텐트메이커 – 텐트메이커는 목회자중 세속적 전문성을 갖고 사역하는 경우와, 평신도로서 공식적인 파송을 받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그리고 공식적인 파송을 받지는 않았으나 선교적 사명을 갖고 프론티어에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평신도 사역자를 모두 일컬음 

9) 텐트메이커 선교사 – 텐트메이커중 공식적인 파송을 받아 사역하는 선교사를 말함  

 

1. 서론 

 

본 발제를 통하여 다루고자 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의 문제이다. 첫 번째는 선교사들이 갖추어야할 사역적 통합성의 문제이다. 선교사들 특별히 전문인선교사/텐트메이커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전문사역의 영역과 영적사역의 영역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또 통합시키느냐 하는 문제이다. 두번째는 전문 영역에 속한 사역의 경우 영적사역을 위하여 위장하거나 불성실하게 진행하게 되는 측면에 대하여 사역적 Integrity라 칭하고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과제는 특히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와 목회자 선교사간에 존재할 수 있는 갈등의 원인을 살피고 어떻게 상호간에 최대한의 협력과 동역, 파트너쉽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선교사의 사역적 통합성의 문제 

 

2-1. 문제 

일반적으로 (항상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제자를 삼아 그곳에서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하여 영혼과의 만남과 전도, 양육, 교회공동체 구성을 위한 직접적인 활동을 영적 사역이라 칭하기로 하자.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영적사역만을 위하여 선교사가 자신의 시간을 활용할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영적사역만을 목표로 선교사 비자를 허락하고 입국을 하도록 하는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자를 얻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한다면 그 비즈니스를 설립하고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여야 한다. 현지인의 교육에 기여하기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여야 한다. 꼭 비자문제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현지인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물을 파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런 노력을 총칭하여 전문 사역이라 칭하기로 하자. 

이 영적사역과 전문사역을 선교사가 어떻게 조화시키고 또 통합시켜야하느냐의 과제가 남아 있다. 어떤 선교사의 경우는 불가피하게 본인은 영적사역을 많이 하기를 원하지만 영적사역은 거의 하지 못한 채 전문사역에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선교사는 내가 왜 선교지에 와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수 있다. 또는 영적사역과 전문사역을 동시에 추진하는,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이 두 개의 사역을 통합하여 이루고 있는 사역자의 경우, 그 열심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건강을 해치거나 또다른 중요한 선교사의 영역인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될수 있다. 이러한 통합성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해결하고 또 준비할 것인가 ? 

 

2-2. 전문사역에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원인 분석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게 위하여 먼저 왜 선교사가 전문사역에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열거하기로 하자 

 

1) 비자를 얻기 위하여 

선교사에게 선교사비자를 내어주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특히 마지막 미전도종족을 위한 사역을 목표로 활동하는 선교사에게 선교사비자를 내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 지역에서 영적사역을 목표로 들어가려는 선교사는 불가피하게 비즈니스나 취업, NGO활동을 통하여 그나라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자격을 취하여야 한다. 

 

2) 현지인의 필요 때문에 

현지인의 삶에 있어서 그들에게는 영적사역에 해당하는 영혼의 문제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빵과, 궁극적인 해결책을 위한 일자리, 건강 등의 실제적 필요가 있다. 그 필요도 분명 선교사가 직시하고 함께 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하여 학교를 짓거나 창업을 도아주고 교육하는 일, 오염되지 아니한 물을 제공하기 위한 일체의 노력 등을 돕거나 행할 필요가 있다. 

 

3) Contact Point를 얻기 위하여 

영적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현지인과 만나고 또 마음을 열게 하여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의 경우 매우 유용한 컨택 포인트의 전략은 태권도이다.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매우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모을수 있고 또 그들과 친해질수 있다. 

 

4) 일과 직업 자체가 하나님이 부르신 또다른 사명의 현장이요 부르심의 현장이기 떄문에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은 현지인들이 지켜보며 또 본받게 된다. 특히 일과 직업, 비즈니스에 대한 태도와 그것을 이루어가는 모습에서 현지인 평신도 크리스천들은 그 본을 보게될 것이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은 본인의 일과 직업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의 확신의 토대 위에 그것을 이루어나가야할 것이다. 꼭 비자를 얻기 위해서나 Contact point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2-3. 해결책 – 어떻게 영적사역과 전문사역을 함께 통합하고 조화시킬 것인가 

1) 팀 사역을 통한 해결책 

영적사역의 목표와 그에 따르는 열매, 그리고 전문사역의 목표와 그에 따르는 열매를 한 사람의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다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적절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사람의 모여진 팀이 그 두가지 목표와 열매를 이룬다고 바라본다면 사역적 통합성에 대한 균형과 긴장의 문제가 훨씬 해소될 것이다. 팀 안에서 일부는 영적사역에만 몰두할수 있다. 또 일부는 은사에 따라서 전문사역에만 몰두할수도 있다. 또 일부는 이 두가지를 적절히 조화롭게 함께 병행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2) 전문사역의 현장이 영적사역의 터가 될수 있도록 

일석 이조라는 말이 있다. 돌 하나를 통하여 동시에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의미이다. 전문사역이 단지 비자를 얻기 위한 수단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사역의 현장을 통하여 만나는 영혼들과의 사귐과 나눔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면서 영적사역을 동시에 진행하는 가능성을 말한다. 몇십명의 직원을 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경우, 그 안의 직원들은 전문사역을 위한 직원이기도 하지만, 영적 사역의 대상이기도 하다. 

 

3) 전문사역 자체를 바라보는 영적 의미의 통찰력 

전문사역의 반대되는 용어로서 영적사역이라는 단어를 취한 것은 매우 심각한 오류일수 있다. 즉 이분법적 사고의 표현일수 있다. 전문사역은 그러면 영적사역이 아니라는 말인가? 즉 하나님이 전문사역은 본질적으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을 분리하고 별도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통찰력에 기반할수 있다. 우리의 일과 직업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역임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혹시 불가피하게 전문사역만 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100% 받으실수 있다는 부분에 대하여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과 직업은 하나님이 부르신, 영적사역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명의 현장이다. 

 

4) 시간사용의 문제 

시간 사용의 지헤와 원리에 대한 대한 많은 책들이 있다. 중요한 것부터 시행하는 것, 어느 시점에서 집중하는 원리, 때로는 내려놓고 긴장을 푸는 것의 중요성 등등이다. 시간사용의 관점에서 영적사역과 전문사역간의 균형과 통합을 시도할수 있다. 

 

5) 길게 보는 통찰력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을 대상으로만 백여년을 사역한 선교단체가 있다. 그단체의 선교사에게 과연 그 백여년동안 교회가 어느정도 개척되었는지를 물었다. 지난 백여년간 거의 교회가 개척되지 않았지만, 최근 10-20년동안 매우 급격히 많은 사례가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지난 약 3-5세대에 걸쳐서 선교사들이 매우 모범적으로 삶으로 보여주고 또 그 과정속에서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기다릴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지않아도 빨리 빨리의 조급성을 가진 우리 민족이다. 선교지에 도착한지 한달만에 가정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서 과연 너희들도 (수년간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팀을 향햐여) 과연 선교사냐 라고 말하시는 어떤 선교사가 있었다. 

만약 우리가 3-4세대에 걸친 열매를 받아들일수 있다면, 지금 현재  전문사역만 하고 전혀 영적사역을 못하거나 안하는 것에 대하여 조금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본 주제인 통합성이라는 말 자체가 적용되지 않을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것은 그 첫 번째 세대에서 전문사역만을 이루어내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진 사명일수 있기 때문이다.  

 

6) 파동을 통한 균형에 대한 시각 조정 

균형은 파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어느 균형싯점을 바탕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파동의 곡선을 그리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전문사역만 하는 시점과 기간이 있다. 또 어느 시점에서는 영적 사역만 하는 시점과 기간이 있을수 있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통합을 이룰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 전문사역만 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 있다면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7) 은사적 시각, 전문성의 시각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는 사람과 물을주는 사람이 다를수 있다. 축구경기에서 수비수와 공격수는 그 역할이 다르다. 우리는 공격수가 골을 넣은 장면에서 최고의 선수는 공격수라고 생각하지만, 수비수가 그것이 부러워서 상대방 골대 앞에서 계속 어른거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교에서도 평신도 전문인선교사가 감당해야할 영역과, 목회자 선교사가 감당해야할 영역은 서로 다를수 있다. 어떤 면에서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는 심는 역할일수 있다. 프론티어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통하여 씨를 뿌리는 역할일수 있다. 또다른 선교사가 물을 주되, 그 열매는 목회자 선교사가 거두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일수 있다. 모든 선교사가 각각 개인이 심기도 하고 물도 주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하려고 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 성경적인가?

 

3. 선교사의 사역적 integrity의 문제 

 

3-1. 문제

 

1) 사역적 integrity란 ?  

전문사역의 의미가 비자를 얻는 것 뿐이라면 비자를 얻는 순간, 그 전문사역에 소홀히 할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에 비자를 갱신할 때가 되면 그 비자를 유지를 위하여 전문사역에 대하여 어느정도 실적을 위조하는 뱀처럼 지혜로운(?)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비교적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나 서구 선교단체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사역의 Integrity 문제라고 부른다. integrit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실성이라 언급되어 있다.  personal/professional/artistic integrity란 인간적/직업적/예술가적 진실성을 의미한다. “to behave with integrity”는 “진실되게 행동하다”라는 뜻이다. 비자를 얻기 위해 전문사역을 한다면 그 전문사역에 대하여 충분히 진실되게 행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integrity를 정직성으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서구선교사들은 사역적 integrity를 언급할 때 정직성의 개념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뱀처럼 지혜로움의 문제이다. 문화적 차이일수 있고 인식의 차이일수 있다. 본 발제에서는 “사역적 진실성” 또는 그냥 영어로 “사역적 integrity”라 칭하겠다. 

 

2) 전문사역이 목표가 컨택포인터를 형성하는 것 뿐이라면 

전문사역의 목표가 역시 컨택포인트를 형성하는 것 뿐이라면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어를 가르친다고 공지했던 선교팀이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나니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영적사역에만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팀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수 있는 컨택포인트로서의 영어교육사역이 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전도와 양육만이 의미가 있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영적인 의미가 없거나 적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모습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영적 사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어를 가르치는 부분에 관한 한 사역적 integrity, 즉 사역적 진실성은 부족했다고 말할수 있다. 

 

3) 꼬실라이제이션 

어떤 선교사님께서 사역적 integrity 없이 전문사역을 이루어 현지인을 컨택포인터로서 만나 복음을 나누는 것을 꼬실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전문사역이 그들을 꼬시기 위한 것인가? 다른 말로 미끼인가? 미끼를 한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을 꾀어 내기 위한 수단이나 물건. ¶ ~를 던지다. ~에 걸려 들다. 돈을 ~로 유혹하다.”로 되어 있다. 추후 전문사역이 결국 미끼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현지인은 과연 끝까지 그 선교사를 신뢰할 것인가? 

 

3-2. 사역적 integrity의 문제가 왜 생기는가? 

 

1) 전문사역은 영적사역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문제는 그 어떤것보다 중요하다. 이를 결코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의 문제를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홀히 하신 적이 없다. 함꼐 중요한 것이다 이를 전인사역 또는 Holistic mission이라 부른다. 모든 것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2) 우리의 목표는 오직 영적사역 뿐이라는 인식이 있기 떄문이다

그 어떤 선교단체나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는 거의 영혼구원과 교회개척이 궁극적인 목표로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단체들도 거의 교회개척 좀 더 순화하여 교회공동체의 개척이 목표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전문사역 자체도 함께 목표가 될 수 있음에 대하여 좀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어느 시점에서는 전문사역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문사역만이 전부의 목표가 될수도 있다. 충분히 긴 어느 시간 동안은 그 지역에서는 오직 전문사역만이 목표일수 있다.  

 

3-3. 사역적 integrity의 해결책 

1) 뱀처럼 지혜롭다고 말할 수도 있다. 

비자획득만을 위한 전문사역이나, 영혼들을 만나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로만의 전문사역을 취하는 한국의 많은 텐트메이커들에 대하여 그들이 정직하지 않다던지, 또는 사역적 진실성이 부족하다든지 하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 뱀처럼 지혜로움의 극치라고 해줄수 있다고도 본다. 

 

2) 전문사역 자체도 분명히 영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역적 진실성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 사역적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분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전문 사역 그 자체도 분명히 영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골로새서 3장 22-24절을 보자.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여기서 종들이란 로마시대의 진짜 종 즉 노예를 말한다. 종으로서 노예로서 하는 모든 일을 성실하게 할 것과, 그것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유업의 상을 받을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3) 일과 직장, 비즈니스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통찰하라 

일, 직장, 비즈니스 자체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현장이다. 다윗에게 목동의 일이 그러했으며, 요셉에게 보디발의 집에서의 가정총무의 사역과, 감옥에서의 전옥의 일이 그러했다. 국무총리로서의 삶도 전옥의 삶에 대한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4. 전문인선교사/텐트메이커 선교사와 목회자 선교사의 파트너쉽에 대한 주제 

목회자출신 선교사들과 (평신도) 텐트메이커 선교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긴장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제시와 목회자선교사와 (평신도) 텐트메이커 선교사 각각이 가지고 있는 사역적 기회와 한계를 선교헌신자들에 잘 안내함으로서 좋은 선교사를 발굴할 수 있다.

 

4-1. 문제점에 대한 이해 

 

1) 평신도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는 목회자/교회 그리고 현장의 목회자 선교사들 

아직도 평신도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는 목회자 선교사가 많이 있다. 또 평신도를 선교사로 파송하지 아니하는 교회도 많이 있다. 평신도는 목회자선교사의 사역을 보조하거나 돕기위한 사역자로만 파송하는 교회와 선교사도 많이 있다. 평신도가 이를 받아들이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역현장에서 평신도가 오히려 전문성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럴 경우 평신도와 목회자 선교사간의 긴장이 존재할수 있다. 그 경우 그 사역에 있어서 누가 전문성을 갖고 있느냐가 그 팀의 리더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고, 단지 목사이기 때문에 리더가 되고, 평신도이기 때문에 리더가 될수 없다면 평신도 선교사/사역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깊은 좌절과 상처가 될 것이다. 

 

2) 평신도와 선교사의 사역적 차별화에 대한 문제 

중앙아시아의 어느 곳에서, 평신도 중심의 단체와 목회자 중심의 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양 단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불편한 관계속에 있었다. 그 양단체를 모두 방문하여 여러 현장을 둘러보고 사역을 이해하고 나서 발견하게된 한가지 사실이 있었다. 목회자 중심의 선교단체에서 하는 현장의 모든 사역과, 평신도 중심의 선교단체에서 하는 현장의 모든 사역이 거의 똑같다는 점이었다. 평신도 중심의 선교단체에서도 교회개척 뿐 아니라 교회를 짓는 사역도 하고 있었다. 목회자 중심의 단체에서도 병원을 지어 운영하거나 학교를 짓고 또 컴퓨터 센터를 운영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려먼서 두 단체가 갈등하고 비난하며 중복투자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이때 했던 질문중의 하나가 이 두 단체가 서로의 달란트에 맞는 사역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역은 서로 사역자를 교환하여 서로를 돕는 형태의 사역은 불가능한가에 대하여 질문을 갖게 되었다. 

 

3) AC 신학 

평신도 선교사들이 목회자 선교사로부터 인정을 못받거나, 평신도 선교사들을 인정하는 교회가 적어 충분한 후원이 안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말미암아, 선교지에 간 평신도들이 비교적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로 신학을 시작한다. 이를 일컬어 AC신학이라 한다. (AC는 그 어떤 단어의 약자가 아니다. 발음대로 그냥 “에이씨” 이다)  

과연 바람직한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어느정도 선교사나 사역자들이 “신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AC신학은 그 문제가 아니다. 목사안수를 받기 위함이다. 목사가 아니어서 받은 서러움 때문이다. 

풀러신학교의 박기호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다.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데 9명의 목회자 선교사가 팀이 되어 사역하고 계셨다. 그런데 컴퓨터 사역자가 필요해서 수소문 끝에 한분을 찾아서 선교사로 임명하고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 사역하시더니 슬그머니 없어지셨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목사안수를 받고 나서 다시 목사선교사로 그 팀에 합류하셨다. 그리고 난 후, 그분은 예전에 본인이 하셨던 컴퓨터의 사역을 하시지 않고 나머지 9명과 똑같은 사역을 하시기 시작했다. 다시 컴퓨터를 통한 사역은 꼭 필요했지만 여전히 할 사람이 없다. 바람직한가? 

 

4-2. 문제점의 원인 

1) 한국의 유교 문화 

한국은 신분사회였다. 그것을 유지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근간이 유교문화였다. 그 개념이 현대화된 한국사회의 각 곳에 아직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안에서 그리고 선교지의 사역필드에서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양반이면 끝까지 양반이고, 서자이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항상 그 밑에 있어야하는 계급적 사고방식이 혹시 목회자와 평신도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많은 분들이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고 또 그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일 것이다. (필자도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목사님들께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목사가 리더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리고 평신도는 아랫사람 부리듯이 부려도 되는 것처럼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계신 것 같다. 평신도 선교사가 리더일수도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선교지에서 평신도 전문인선교사와 목회자 선교사간의 갭은 좁혀지지 않는다.  

 

2)선교사가 맞니? 그냥 집사고 또 사역자이니?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를 인정하는 목회자 선교사에게도 여전이 남아있는 질문이 있다. 그냥 교회 집사님께서 선교지에 오시더니 어느날부터 선교사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어디서 파송했냐고 물으니 하나님께서 파송하셨다고 한다. 왜 단체에 소속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선교사인가? 우리의 결론은 “No”이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이 제대로 선교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자발적, 그리고 자칭 선교사로 칭하는 너무나 많은 평신도 선교사들로 인한 혼란스러움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선교사를 정의하기를..... 교단이나 선교단체 등의 공적 기관을 통하여 파송되고 관리 감독되어지는 경우에만 선교사라고 부르기로 한다. 따라서 공적 파송과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선교사”라고 부르지 말고 “사역자”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목회자 선교사의 경우 최소한 신학3년과정을 포함하여 목회자선교사로서의 사역역량의 제고를 위한 많은 시간들을 공식적으로 보내었다. 그러나 목회자 선교사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많은 자발적 자칭 “선교사”들은 과연 선교사로서의 역량을 위하여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를 본다면, 목회자 선교사들이 평신도 선교사들에 대하여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원인이 평신도 선교사들에게도 분명히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선교사”로 불리우지 않고“사역자”로 불리우는 것의 충분함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선교계에서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누구라고 불리움에 대하여 비중을 두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사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초점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서 갖는 성숙한 텐트메이커들이 많이 일어서기를 기대한다. 어떤 전문인선교훈련을 받은 훈련생이, 회사의 파견근무를 가기 전에 교회에 “선교사”로 임명해달라는 요청을 하였는데 교회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가 되묻기를 왜 꼭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되물었다. 

왜 꼭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야 하는가? 그냥 “일터사역자”로 임명받으면 안되는가? 온누리교회는 2000/10000 비젼이 있다. 2000명의 선교사와 10000명의 사역자를 해외에 파송하는 비젼이다. “사역자”로 불리우며 일하면 안되는가?

 

4) 목회자가 갖는 목사직에 대한 견해의 적절성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목사님으로 안수받고 임명받는 순간, 그분들에게 들어가는 인식 중의 하나는 “사역은 목사의 것”이고 평신도는 목사의 목회를 돕는 것이라는 인식인 것 같다. 할렐루야 교회의 김상복 목사님은 “목사의 목회는 평신도가 목회를 잘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의하셨다. 어느 견해를 따를 것인가?

 

5) 목회자들의, 평신도에게 있어서의 일과 직장에 대한 몰이해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파트너쉽이 온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평신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과 직업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이원론 견해가 뿌리 깊게 현재의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에게 심겨져 있다. 목회자가 다루는 영적 사역이 평신도 선교사가 진행하는 전문사역과 비교하여, 그것이 더 본질적이고 또 목표이고, 선교사라면 당연히 그것만이 목표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한, 많은 시간을 전문사역에 들일 수밖에 없는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들에 대한 심정적 이해를 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6) 평신도 전문인선교사 스스로 위축됨의 악순환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를 충분히 사랑하고 인정하는 목회자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그분은 평신도 전문인선교사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그분이 해당 지역의 선교사회 회장을 하면서 몇몇 자리를 평신도 선교사들에게 맡겼다고한다. 그러나 그 평신도 선교사들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어짜피 목사님들께서 다 하실 것 아닌가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수차례 당하고 나서 다시는 또다시 속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포기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 않겠는가?

 

7) 평신도에게 있어서 목회자의 목회적 전문성에 대한 인정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목회자가 하는 사역중에서 평신도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인할수 없는 사실은 목회자 선교사들은 목회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하여 신학을 포함한 다양한 사역훈련을 매우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평신도 입장에서 목회자들의 목회적 역량과 전문성을 충분히 인정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좀 적절치는 않지만,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의 사역적 전문성의 의의와 중요성을 상호 인정받고 또 그 가운데서 새로운 파트너쉽의 모델을 찾기 위하여 꼭 짚고 넘어가야 하기에 이를 언급한다. 

 

4-3. 해결책 

1) 평신도 사역자와 목회자는 “동역자”이다. “파트너쉽”관계이다. 

평신도 선교사와 목회자 선교사간의 관계는 서열도 아니고, 영원한 상하관계가 아니다. 만약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목회자 선교사님께서 계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불쌍히 여길 도리 밖에는 없지 않은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 그런 사고방식을 가질수 있는가? 

 

2) 순종 

교회 공동체 안에서 리더되신 담임 목사님께 성도들이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목회자나 평신도가 모두 파트너쉽이고 하나님 앞에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교회공동체 안에서 목회자에게 평신도가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또다른  죄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도 하나님께 헌신한 자인데 왜 너만 리더냐”라고 항의했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리더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매우 엄격하였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리더인 목사님에게 성도들은 거룩한 영적질서를 지켜야 한다.  목사님이 범죄하였을 때엔 영적질서와 유지하면서 함께 매우 성숙한 다루어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선교지에서의 모든 현장에서 그 목사님들께 그러한 영적질서가 전제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항상 모든 곳에서 단지 “목사”이기 때문에 영적 질서의 TOP에 서야한다고하는 잠재의식을 갖고 계신 목사님들의 태도이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영적 질서의 정점인 목사님께 드릴 당연한 순종의 모습이 모든 선교지의 사역현장에서 그 모든 목사님에게 드려야할 영적 질서의 흐름은 결코 아니다. 

   

3) 사역의 팀 리더 

선교지에서 사역팀이 형성이 되었을 때 그 팀 리더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선교사가 얼마든지 설수 있다. 목사가 그안에서 팀원으로서 함께 사역할수 있다. 꼭 목사가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님이 계시다면 조용히 보내드려야 한다. 팀을 운영하는 질서는 단체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팀 안에서 리더에게 또다른 팀원들이 “순종”이라는 영적질서 (“복종이 아닌, 상하관계 따르는 명령과 복종이 아닌”, “영적질서에 따르는 순종의 의미”)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목사인 리더에게 평신도인 팀원이 영적질서를 존중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신도인 리더에게 목사인 팀원이 영적질서를 존중해야함도 매우 마땅한 일이다.  

 

4) 사역의 은사와 전문성의 차이 

목회자는 그야말로 평신도가 전문성의 영역에서 쌓은 학업과 노력보다 더 많이, 신학교에서 신학과 목회라는 차원에서 전문성의 영역으로 많은 학업과 경력을 쌓은 분들이시다. 따라서 그 부분에서의 전문성을 아주 일부의 평신도들을 제외한 보편적인 평신도들이라면 당연히 인정하고 존중할 수밖에는 없다. 

또다른 측면에서 평신도는 목회자가 갖지 못하는 전문성이 있다. 예를 들어 비지니스를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비자를 얻고 그 과정에서 제자양육과 교회개척을 목표로 하는 사역팀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비즈니스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에 관한한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의 전문성이 훨씬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럴 때 목회자와 평신도는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팀워크를 이루면서 함께 사역을 이루어내는 동역자로 설 수 있다. 

 

5) 평신도만 갖는 매우 Unique한 사역 영역 

평신도이든, 목회자선교사이든 우리가 프론티어에 가서 그 민족을 섬기는 궁극적인 목표는 현지인들의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하여는 현지인 훌륭한 목회자를 양육하고 세우는 것과, 현지인 교회의 대부분을 이루면서 함께할 건강한 평신도 성도를 세우는 것이다. 이 두가지 요소가 현지인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두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현지인 건강한 목회자는 우리나라에서 파송한 목회자 선교사에 의하여 잘 양육되어지고 세워질수 있다. 그런데 현지인 건강한 평신도들을 세우고 육성하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그들에게 일과 전공과 직업의 중요성과 영적 의미를 가르칠 뿐 아니라 모본을 보여주고 건강한 성도의 삶을 그곳에서 살아낼 몫은 결코 목회자 선교사가 보여줄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은 평신도선교사의 몫이다. 그 나라의 비즈니스의 풍토를 바꾸어주고, 창업정신을 고취하고 성품을 제고하고, 산업을 육성하도록 돕는 부분은 그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들의 몫이다. 

문제는 그 평신도들이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역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영적사역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고 운영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본인의 은사와 달란트를 갖고 이룰수 있는 사역이 단지 세속적인 것 뿐이고, 비자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사역적 역할분담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역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는데 제대로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면 그 부분에 대하여 목회자 선교사가 이의를 제기하고 고개를 갸우둥거리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6)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의 확실한 공적 파송과 감독절차의 집행 

평신도 전문인으로서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프론티어에서 사역할 분들이라면, 확실히 “선교사”로서의 확실한 훈련, 확실한 파송, 그리고 선교단체의 엄격하면서도 확실한 재정 및 사역감독체계가운데 사역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선교사”로 불리우게될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에 대한 목회자 선교사들의 상호 인정이 비교적 용이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7) “선교사”가 아닌 “사역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의 고취,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한국교회와 선교계의 지원 

초대교회 기독교의 부흥은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사도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인함이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지상 대 명령의 완성은 공식적으로 파송된 “선교사”만에 의해서가 아닌, 수많은 비록 “선교사”로 임명받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지상 대명령에 순종한 성도들의 헌신이 전제되어야할 것이다. 이 분들을 “텐트메이커” 좀 더 정확히 ‘텐트메이커사역자“라고 칭하며 적절한 격려와 지원, 그리고 돌봄과 사역적 조절기능이 있어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 생활비는 모금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더라도, “프로젝트”의 진행에 있어서는 모금이 가능하도록 하고, 단 그 금액의 집행을 투명하고 공식적으로 할수 있도록 주변의 여러 단체들이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어떤 선교사를 보내야 하는가?

 

5-1. 영적사역과 전문사역의 중요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며, 이 두 요소를 통합적으로 균형있게 이루어갈수 있는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

 

5-2. 선교사의 전문사역에 대한, 특별히 전문인선교/텐트메이커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전문사역의 의미를 성경적 기반아래 온전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과 직업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고, 일터가 곧 예배터일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선교지에서 전문사역을 펼쳐갈수 있는 선교사를 보내어야 한다. 오직 영적사역에만 집중하는 목회자 선교사들도 이에 대한 인식을 함께 공유할수 있어야 한다. 

 

5-3.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간의 은사적 차이점을 인식하고 선교자에서 서로간의 은사를 활용하여 집중할수 있는 차별화된 사역을 개발할 뿐 아니라, 상호 파트너쉽을 갖고 동역자로 받아들이고 팀을 통하여 일할수 있는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 

 

5-4. 한국의 일터사역 관련 여러 훈련기관과 사역단체들이 많이 있다. 텐트메이커라면, 적어도 이곳에서 기본적인 훈련과 사역영성의 공유를 함께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는 기존의 일터사역 현장에서 훈련받고 성장한 사역자들에게 선교의 비젼과 프론티어에서의 일터사역에 대한 비젼을 나눔으로써 그들을 텐트메이커 선교사 또는 텐트메이커 사역자로 프론티어에서 사역하도록 물꼬를 트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 

     31. 어떤선교사 2013가을-4: 응답: 선교사의 사역적 통합성 및 텐트메이커 선교사의 사역적 integrity의 과제, 그리고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의 파트너쉽의 가능성에 대한 발제​ (손창남, OMF)
     29. 어떤선교사 2013가을-2: 응답-21세기에 필요한 선교 헌신자의 영성과 인격 (박경남, W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