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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선교사 2013가을-1: 21세기에 필요한 선교 헌신자의 영성과 인격 (김동화, GMF/GBT)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7-01-31 09:39:49]  HIT : 558  

21세기에 필요한 선교 헌신자의 영성과 인격 

김동화, GMF/GBT

 

(​이글 중 상당 부분은 필자가 2012년 5월 선교한국 파트너스 포럼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PartII’에서 ‘21세기에 필요한 선교사의 자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과 중복됨을 밝힌다. )

 

1. 들어가는 말

 

선교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는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 중 특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면 그 자신이 먼저 올바른 제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제자는 먼저 세례를 받아야 하며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세례는 거듭남 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정체성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배워서 지키는 사람은 그 삶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선교사는 기본적으로 제자로서 이러한 변화를 확실히 겪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옛것은 모두 불살라 버리고 전혀 새로운 모습이 되는 것(눅12:49-53)이라고 할 만큼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말한다.

 

이렇게 제대로 변화된 정체성과 삶의 모습이 나타날 때 영성과 인격이 잘 갖추어진 선교사로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참된 제자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며 또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21세기의 선교 환경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러한 참 제자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2. 21세기의 상황에서 필요한 선교사의 자질과 자세

 

영성이 깊은 선교 지도자로 알려진 Rose Dowsett은 21세기의 상황과 초대교회 시대의 상황을 대비하면서 21세기 사역자의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출발점에 와 있다...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콘스탄틴 회의 이전과 유사한 점이 많다.  1500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회는 정치, 경제와 교육에 있어서 별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가마솥 속에서 살고 있다.  유일한 진리와 유일한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것은 제도적인 반대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기독교가 너무 변두리로 밀려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실제로 점차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통합적인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처음 3세기 동안에 살았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였다.  세부적인 것은 다를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상황은 대단히 유사하다.  특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포스트 모던시대의 서구에 있어서 교회는 거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초대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박해와 순교, 불의를 당하는 것을 통해 생생하게 느끼던 일이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는 변화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문화도 결국 약한 것은 실패로 여기고 강한 것을 성취로 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가 실패를 인정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용기 있게 붙들어야 할 십자가의 참된 역설적인 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다르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모든 힘과 권리, 지위를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전할 뿐 아니라 보다 큰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방법이다.  우리는 갈보리의 고통도 겪지만 부활과 오순절의 승리도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처럼 우리도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따르는  모든 축복을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버려둔 채 부활과 오순절의 승리를 붙들려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 그러했던 것처럼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선교학 p. 768-769) 

 

Dowsett의 말은 오늘날 어떤 선교사가 필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2011년 11월에 독일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 연맹(WEA)의 선교위원회 컨설테이션에서 Mission Exchange의 Steve Moore는 21세기의 상황은 복잡(complicate)한 상황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복잡(complex)한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선교의 어려움과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사역자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오늘날의 선교에 있어서 다양한 변수들의 수(quantity)와 다양성, 상호의존성이 우리의 사역을 대단히 복잡하게(complexity)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복잡성(complextiy)이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가) 변화를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원치 않았던 결과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즉,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지는 것(consequences)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합적인 복잡성complexity)의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우리가 시도하려는 변화가 우리의 사역 또는 다른 사람들의 사역의 양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을 기하급수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커졌다는 말이다.  

 

나) 위험(risk)를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가 아니라 위험(risk)의 형태(profile)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변화들은 다른 변화와 상관없이 우리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는데, 문제는 복잡성(complexity)으로 인해 그러한 변화가 어떤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 사람을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점점 더 상호의존적이 되어가고 지도자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자스민 혁명, 런던의 폭동, 월(Wall)가를 점령하자는 운동 등이 특별한 지도자도 없이 진행된 것이 좋은 예이다.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매우 당황하고 있다. 자스민 혁명에서 나타난 것은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복합적으로 복잡한 상황(complexity)을 마치 단순히 복잡하기만 한 상황(complicated)으로 인식하고 대처하려한 지도자들이 변화의 형태(profile)가 그들이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하고 있음을 몰랐다는 것과 과거에는 힘이 없는(powerless) 것처럼 보였던 민중들이 통제 불능(unmanageable)의 민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complexity)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상호의존성(mutuality)을 강조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받아드리려면 어떤 개인이나 조직도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예기치(unintended) 못한 결과(consequences)와 그 결과가 우리의 집단적인(collective) 위험(risk) 형태(profile)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정확히 예측할  능력(capacity)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vulnerability)을 알고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서로 깊은 관련을 맺어야(engage) 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 나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상호의존(mutuality)을 위한 기본 전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호의존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계(global body)가 갖고 있는 복잡성(multiplicity), 다양성(diversity),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이 문제이면서 동시에 해결책(the answer)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또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필요한 사역자는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이후 자신들도 모르게 서구 기독교 제국의 힘의 우위를 바탕(패권주의/승리주의)으로 사역해온 많은 선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깊은 영성과 성육신적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자들 즉, 복음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자들임을 보여준다.  케냐나 우간다, 르완다의 경우처럼 기독교인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복음의 탁월성이 실제의 삶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더욱 그러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기독교가 주변부로 밀려나 소수자들(minority)의 종교가 되었고  다원주의적 상황에 처하였다는 점에서 초대교회 시대와 유사하다. 서구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교회는 신뢰를 상실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쇠락(church quake)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원주의는 사역자로 하여금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복음을  이해하고 전달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오늘날의 급격한 교통 통신의 발달은 보내는 지역과 피선교지를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만들었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진 피선교지에서도 본국에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교통하고 모든 미디어를 접하게 될 수 있게 되는 등 이전 보다 훨씬 더 discipline이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SNS과 같은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사역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투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3. 사도 바울의 경우 

 

선교사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더 절실히 요구되는 모범을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1세기의 상황이 초대교회 시대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시대에 사역을 하였던 사도 바울이 어떻게 준비의 과정을 겪었고 그 결과 어떤 모습의 선교사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으로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으며 유대인중심주적인 자기문화중심주의자 였다.  그러한 그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될 수 있는(고전(9:20-21) 성육신적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이후 자신의 고향 다소에서 바나바의 청빙을 받을 때까지 15년 이상의 준비하는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지 않은 그가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버리고 그가 그렇게도 멸시하던 이방인들을 위해 오히려 자신의 연약한 모습으로 사역할 수 있는(고전2:3)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본격적으로 사역하기 전에 우선 안디옥 교회로부터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로부터 잘 준비된 자로 인정을 받고 파송을 받는 사역자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약함, 섬김, 괴로움, 고통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는 능력, 기쁨, 자랑이 선교사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선교사로서의 선교사의 영성과 인격적 특성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약함: 바울은 오랜 시련을 지나서 이것을 깨닫게 된다(고후12:7-10). 그는 자신이 자랑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재평가 한다(고후6:8-10). 그는 예수께서 연약함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난 것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그의 사역에 함께 하실 것(고후13:4)”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그는 “약함과 멸시와 핍박과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에 만족하였다”(고후12:10).  

 

2) 고통/인내: 고통은 그의 부족한 육체가 온전해지도록 돕는 길이라고 말한다(골1:24). 바울은 고통의 길을 통해서만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의 고통이 “복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딤후1:8, 고후1:6, 4:12). 그의 고통은 생명을 가져다주었고 교회를 위해서라면 더 큰 어려움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였다(고후12:15).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적 사역은 언제나 몹시 힘들고, 약함 가운데 이루어지며,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대적들이 거부한 연약함, 고통 그리고 자기부인이 바울이 자신의 메시지와 삶의 중심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고통과 인내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고후4:7-10). 

 

3) 겸손: 바울이 선포한 메시지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엄중한 것이었고 이에 대한 그의 확신은 분명한 것이었지만(고후2:16) 그는 겸손하고 소박하고 잘난 체 하지 않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다니엘 닐스가 말한 바와 같이 “선교사란 어디에 가야 빵을 찾을 수 있을지를 다른 거지들에게 알려주는 거지”임을 잊지 않았다(고후9:22, 9:27). 바울은 폴 히버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없어도 될(disposable)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어떤 곳에서도 자기가 없으면 안 되도록 사역하지 않았으며, 한 지역에 오래 머물려하지 않았다.  

 

4) 소망/기쁨: 바울에게 있어서 소망은 성취의 과정 중에 있는 희망이었다(빌3:12).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소망 중에 구원을 받음을 잊지 않았고 고통과 환란 안에서 기쁨을 누렸다(고후7:4). 바울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해 흔들림이 없었으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마게도니아의 부름의 환상을 받고(행16:10) 그곳으로 갔으나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채찍질과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이 자신이 속한 곳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그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바울은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고후6:8-10) 역설을 살아내었다.  

 

4. 바람직한 선교사의 발굴과 양성

 

늘 그랬겠지만 특히 오늘날의 상황에서 바울과 같은 이상적인 선교사를 발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선교사들의 영적/인격적 수준은 한국 교회의 영적/인격적 수준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임을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선교사를 키우는 모판인 교회가 그 본질을 되찾고 그 지도자들의 영성과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아가지 않는다면 별 희망은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잘 준비된 선교사를 찾아내는 방법은 무엇일가? 바울의 연약함과 성육신의 영성을 생각할 때 릭 워렌이 자신과 함께 일할 사역자를 선발할 때에 “ 큰 상처가 있었던 (그리고 치유된) 적이 없는 사람은 뽑지 않았다”라고 한 것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에게도 큰 장점들이 있습니다. 또한 당신에게는 큰 약점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장점들과 약점들의 덩어리들입니다. 겸손이란 양자에 대해 솔직한 것일 뿐입니다. 교만은 능력을 막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우리에게 은혜를 줍니다. 그래서 저는 사역자를 뽑을 때 큰 상처가 있었던 (그리고 치유된) 적이 없는 사람은 뽑지 않습니다.  상처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처받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하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완전 하려 하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무적의 리더로 생각하도록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긴장을 풀어 편안한 마음을 갖고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더 깊은 체험을 하십시오. 사랑은 자신의 약점(상처)을 들어냄으로 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약5:16, 너희 죄를 서로 고하여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입니다.  (Rick Warren 1997년 Willow Creek 교회의  Leadership Summit에서)

 

선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그 성장 과정에서 어떤 좌절을 맞보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게’ 되었는지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존 파이퍼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많은 도움이 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모두 절망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위대하신 구주를 필요로 하는 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죄인들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과 통찰을 달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위대하고 진귀한 약속들에 소망을 둘 것이다. 나아가 이런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으며 결국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Piper 영적 지도자의 표지들) 

 

파송단체가 이러한 영성을 추구할 때에 그 기관의 문화를 통해 선교사 후보생들이 훈련과 결속(bonding)의 과정을 통해 더욱 더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어 갈 것이다.  개인이 보다는 공동체의 영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각 파송단체가 선교공동체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아야 한다.  선교사의 영성과 인격의 시금석은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가하는 것 이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세계 선교의 사명을 확인하거나 선교 전략을 세워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것이었음을 기억하자(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29. 어떤선교사 2013가을-2: 응답-21세기에 필요한 선교 헌신자의 영성과 인격 (박경남, WEC)
     27. 어떤선교사 2013봄-8: 유학생 사역을 돌아보면서 (김종호, 춘천효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