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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선교사 2013봄-8: 유학생 사역을 돌아보면서 (김종호, 춘천효자교회)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7-01-31 09:34:02]  HIT : 651  

유학생 사역을 돌아보면서

김종호, 춘천효자교회

 

이 글은 나의 친구이자 동역자인 한철호 선교사의 요청에 의해서 지난 일을 돌이켜보며 쓴다. 2006년 9월 어느 날 중국 유학생 여러 명과 인솔자인 서단 선생이 우리 교회 수요 예배를 드리려고 나왔었다. 예배 후에 나는 그들을 환영하고 그리고 그들과 따듯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중국 유학생 사역을 시작하게 된 첫 걸음이다. 그 후 유학생들은 서단 선생의 인솔 하에 우리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한국어 교실과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후에 우리 교회의 가족이 되어 30여명 정도는 세례를 받고 대학부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유학생부 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다. 때로는 3~40명 많게는 50-60명의 유학생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는 사역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따로 유학생 선교 교회로 분리 개척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르렀다.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습관적으로 산책을 한다. 강원대학교 뒷산 곧 사대부고 뒤편으로 산책을 해서 강원대학교 종합운동장까지 다녀오는 일을 늘 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 사대부고 뒤편을 지나가는데 눈에 띄는 한 푯말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맨땅으로 텃밭처럼 버려진 땅이었는데 그 땅 위에 “유학생 기숙사 건축터전” 이었다. 그런데 그 푯말을 보는 순간 나는 이곳에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가 세워지면 내가 이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 거기로 지날 때 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곳에 유학생들의 기숙사가 세워지면 이 유학생들과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해주세요.” 늘 분주하니 기도만 하고는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선교한국 파트너스의 퍼스펙티브스(PSP)훈련을 받고 춘천에서 교회 지도자들인 목회자, 간사, 장로 들을 대상으로 교회 지도자 선교 학교를 3학기나 운영하면서 항상 복음에 빚진 자로 교회가 선교의 주축이 되어서 복음을 이곳 저곳 땅 끝까지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교회 나오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교회가 반드시 환영하고 환대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늘 생각했다. 걸인들이나 어려운 형편에 온 사람들도 교회가 잘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또 하나님께서는고아나 과부나 외국인들을 잘 환대하라고 하신 성경말씀을 마음에 늘 새겼다. 그러던 차에 서단 선생이 중국 학생들을 데리고 교회에 오게 되어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들을 잘 돌보고 또 살피는 일을 했었다. 

 

서단 선생은 연변 과학 기술대학 한국어과를 졸업한 중국 한족 자매로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IVF간사 시절에 지도했던 지경자 선교사의 제자로서 한국 형제와 결혼하여 강원대학교 어학원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연변 과기대에서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또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신실한 자매였다. 그러니 자기가 가르치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이들을 교회로 인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물어 물어 우리 교회로 학생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과히 측량할 수 없고 참 헤아릴 수도 없다는 것을 이런 경우를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서단 선생이 데리고 온 이 유학생 아이들을 먼저 따뜻하게 환대하고 올 때면 항상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의 한국어가 너무 서툴러서 한국어 교실을 열어 강원대학교 한국어 어학원 수업이 마치고 나면 바로 식사를 준비해 먹게 하고 함께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이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알게 되어 일자리를 소개해주었다. 또한 이들에게 유학 대행기관에서 소개해 준 아파트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 폭리에 가까워서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집을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하면서 이들의 삶을 도와주는 마치 부모와도 같은 역할을 서서히 하게 되었다.

 

 어떨 때에는 유학생들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갈 수가 없을 경우에 잘 아는 의사 선생에게 부탁해 치료받게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맹장 수술을 해야 해서 그 많은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어 강남병원에 요청하여 우리 교회가 비용을 준비해 수술을 할 수 있게 했다. 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북경이 고향이고 행정학과에 다니는 한 친구는 배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 찾아왔길래 기도해주고 죽을 잘 끓여서 주었더니 깨끗이 나았다고 고맙다 인사하던 일이다.

 

그러던 중에 나의 자녀들이 집을 떠나서 타향에서 공부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중국 아이들 중에 왕흠과 마초근, 그 후에는 왕계량도 우리 집에서 내가 데리고 우리 식구처럼 같이 살았다. 처음에는 공짜로 하는 것이 이들에게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얼마를 받았는데 지나고 보니 이들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그 후에는 한 푼도 받지 않고 그냥 이들과 우리집에서 자식처럼 데리고 살았다. 3년전에 청도에 갔을 때 그때 같이 생활했던 친구가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이 난다고 서로 웃으면서 그때를 추억하였다.

 

나중에는 중국학생들끼리 공동체로 살도록 강대후문 앞에 2층집을 얻었다. 나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 후에 이곳으로 가서 밥을 하고 준비해간 반찬으로 간단하나마 아침식사를 준비하여서 10분 기도회를 하고 같이 식사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곤 하였다. 내가 갈 때면 늘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방마다 두드리면서 일어나라 하고 깨운 기억이 우리 모두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많이 기억나는 왕흠과 마초근은 참 좋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왕흠을 아들같이 여기며 잘 돌보았다. 그는 강원대학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드럼도 배워서 찬양을 인도했다. 또한 이곳 저곳 다니며 간증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다. 또한 나는 그의 고향인 중국 단동에 가서 그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복음도 전하고 사촌에게 세례도 주고 그 주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왕흠은 강원대학에 다니면서도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서 배운 한국어 실력과 부지런한 공부한 덕에 한국 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였다. 후에 졸업하면서 춘천 퇴계 농공단지에 중국, 미국으로 수출하는 벤쳐 기업에 취업해서 직장 생활도 잘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사회 각기 계층의 지도부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서 투잡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된 생활을 했다. 작년 12월 달에는 상해의 삼촌이 운영하는 정수기 회사의 부사장 자리로 가게 되어 나는 마음이 뿌듯하고 그가 회사에서 직업 선교사로 훌륭하게 일을 잘 하리라고 기대한다. 지금도 카톡으로 늘 신앙을 점검하고 격려하고 있다. 왕흠이 나에게 고마워하고 자신이 자리를 잡으면 또 상해 자신의 회사에 와서 기도해주고 또 격려 말씀을 꼭 해달라고 할 때 마음이 참 기뻤다.

 

지난 부활절 예배를 다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왕계량에게 전화가 왔다. 왕계량은 청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인데 청도의 그의 집에도 내가 두 차례나 방문해서 그의 부모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그 부모님들은 지금은 공직에 있고, 또 당원이기도 해서 세례를 받을 수 없지만 퇴직을 하면 나에게 꼭 세례를 받겠노라고 여러 번 말하던 가정이다. 지금은 그 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가정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나는 너무나 기뻐서 왕계량의 통역으로 그에게 축복기도 해주었다. 가까운 날에 청도에 가서 세례 받고 믿음생활 하는 왕계량의 부모님과, 청도 근방에 있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간 청년들과 가정을 만나 격려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이제 대학부와 유학생 사역을 맡겼던 유병준 목사가 개척된 유학생 교회인 바나바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어 내가 직접 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우리 교회의 좋은 신실한 교인이 된 인도네시아 결혼이주가정의 뜨리 자매가 한국에 있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도와준다. 또 우리교회 연변에서 온 엄향옥 성도가 예수님을 잘 믿고 연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 민족이 참 많은 복을 받았다고 늘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받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은 나누어야 제대로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농사를 짓고 결실을 맺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았으니 복을 흘려 보내서 많은 결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월남전에 참전하고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고 중동에 가서 노동자로 일해서 번 돈으로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는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하러 오고 많은 노동자들이 돈을 벌어 고향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오는 많은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은 140만 여명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새로워진 나라, 축복받은 기독교 나라인 우리나라에 온 이들이 적어도 한 번 쯤은 복음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골목마다 마을마다 어디든지 십자가 종탑이 있는 나라인데 이슬람 나라에서 오든, 불교나라에서 오든 이 사람들이 한두 번쯤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맛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을 먹고 이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뭐 그렇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사실 노동자들이 고향을 떠나 여기 온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고 말이 유학생이지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 온 중국, 아시아권 유학생들 대부분이 노동자와 비슷하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밥에다가 밥 한 그릇, 국 하나, 수저 하나 더 놓으면 이들과 함께 먹는 것이고, 예배당에 함께 앉았을 때 손 내밀어 붙잡아주고 따뜻하게 웃어주고, 이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쳐주고 환영해주고 그리고 병원에도 데려가고, 은행에도 데려가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도 데려가고, 학교 행정처에도 데려가서 이 사람들이 다 표현하지 못하고, 불편한 것들을 대신해주고 잘 돌보아주는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 많은 돈이 들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유학생들은 굉장히 고마워 해서 결국 우리와 같이 성경공부를 한다. 같이 예수님 믿자고 느지막히 이야기했을 때 거부감 갖지 않고 예수님 믿고 세례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해 평생 예수 믿고 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많이 봤다. 

 

지금도 기억되는 중국 유학생 부춘설은 ‘목사님이 너무 잘 해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사실 심양, 중국 고향에 가면 예수님을 나는 안 믿을거야 하고 생각했었어요’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점점 알아가면서 중국에 가서도 나는 예수님을 잘 믿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유학생, 노동자 선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의 가슴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그들을 있는 형편에서 도와주면 그들이 매우 좋아하고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을 나는 여러 해 동안 보았다. 이들이 좋아하는 라면, 우리도 쉽게 먹는 그 라면을 끓여서 계란도 넣고 그리고 김치에 밥을 같이 주면 두 그릇도 뚝딱 먹어버리는 이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참 즐거워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녁에 먹고 나면 두 시간 후에는 중국의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 까지 목사님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다 알고 있어서 훗날 나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이렇게 내가 해주면 얘들 부모님들이 오늘이나 내일쯤 당연히 다 알게 되겠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초청받아 이들 가정을 방문했을 때 이들이 눈물 나게 고마워하며 융숭하게 대접하고, 호텔까지 예약해 최고급 요리로 대접해 주는 것을 보며 참 사랑으로 대접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부모님들에게도 큰 어려움 없이 복음 전하고 세례를 줄 수 있었다. 또한 그 부모님들은 너희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은 목사님을 아버지로 사모님을 어머니로 여기고 항상 무슨 일이든지 물어보고 목사님과 사모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꼭 따라서 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해서 나는 뿌듯하지만 또한 강한 책임감도 들었다. 때로는 책망도 하고 호통도 치고, 공부하러 왔으니 열심히 일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예수님 잘 믿으라고,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다고 이들에게 가르치며 같이 지냈다. 

 

한번은 지금은 부산에 있는 왕흠복이 어학원에 결석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 곧 중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될 형편이 되었다고 나에게 눈물로 도움을 요청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강원대학교 어학원에 가서 부탁했는데 도무지 될 수 없는 사정이라 다시 한림대학교 어학원에 가서 부탁했더니 받아줘서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목사님께 감사하고 멀리 있어 자주 보지 못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예수님 잘 믿어서 널리 복음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선교라 하면 꼭 먼 나라에 간다고 생각해왔는데 선교지가 우리 코 앞에 왔고, 땅끝 백성들이 우리 동네에 오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큰 돈 들이지 않고 선교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참 좋고도 좋다. 코앞에 온 땅끝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지 않고 무조건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서 선교지를 가는 것도 뭔가 좀 균형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물론 우리교회도 선교사를 파송도 하고 단기선교도 물론 간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에서 옆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하고, 곁에 있는 땅끝 사람들에게 복음 잘 전하는 사람이, 그들을 사랑하고 돕고 밥 사줄 수 있는 사람이 선교지에 가야 한다고 그렇게 늘 말한다. 곁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고 복음 전하지 못하면서 선교지에 간다고 하면 그것은 조금은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중국 선교사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선교를 한 나와 우리 교회의 사역을 보면서 자신들이 중국에서 여러 해 동안 해온 것 보다 더 큰 사역을 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에 나도 깜짝 놀라며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금 몽골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몽골 신앙 공동체를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여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일이야 말로 나와 교회와 그리고 말씀을 듣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땅 끝까지 복음 증거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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