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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선교사 2013봄-4: 선교적 참여의 사례와 대안-해외주재원 사례 등을 중심으로 (양동철)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7-01-26 16:54:07]  HIT : 647  

선교적 참여의 사례와 대안

해외주재원 사례 등을 중심으로

양동철

 

들어가며

’12년 총선 및 대선에서 처음 실시된 재외국민투표에서 투표권이 있는 재외유권자 수를 약 28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재외동포 수를 약 700만명, 해외활동인구는 약 1,000만에 달한다고 한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권으로 여겨지던 것을 생각하면 ‘해외에 가는 것’에 대한 문턱은 확실히 낮아진 것 같다. 최근 서울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고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된 것처럼 일, 학업 및 기타 이유로 해외에 나가 일정 기간 머무르는 일 또한 점점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해외에 머물게 된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국내에서 훈련받고 사역했던 그대로 머무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사도행전 11장에서 흩어진 자들 중 몇몇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도전을 받지 않고도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들도 평신도를 직접선교로 부르는 강한 도전이 없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해외에 체류하면서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어서 나오는 사례들은 성공사례라기 보다는 제4타입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례에 등장하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

 

(사례1) 홍석기부장은 중동지역 A국에 있는 관계회사 사업장에 파견발령을 받게 되었다. 국내에서 직장선교단체에 소속되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성장을 개인적으로 도와오던 홍부장은 A국 사업장에서도 그곳에 파견되어 온 한국인 근로자들을 신앙으로 도왔을 뿐 아니라,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근로자로 이루어진 사업장 내 신앙공동체를 섬기게 되었다. 홍부장은 업무상 A국 사람들과도 접촉할 기회가 있었고, 그들 중 몇몇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A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충분한 만남과 교제를 통해 개인적인 신뢰를 얻은 후 예수님을 전하였기에 그를 통해 복음을 들은 이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를 종교당국에 고발하여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몇 A국 사람들은 제시된 복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고, 복음 제시 후 지속적으로 신앙성장을 돕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값진 열매를 맛볼 때도 있었다.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던 A국 청년인 모센형제는 홍부장이 복음을 전했을 때 즉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다. 교제 중 ‘어느 순간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해야겠지만, 당분간은 신변이 위험할 수 있으니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라는 홍부장의 권면에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음을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있기에 두려운 것이 없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모센형제의 신앙은 성장하였다. 후일 홍부장은 귀국 후에 모센형제 및 함께 교제하던 필리핀 형제를 필리핀에 있는 선교사에게 연결하여 주었고, 모센형제는 필리핀으로 가서 선교사역을 도우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례2) 김미연집사는 남편 황호식집사의 업무차 B국에 살고 있다. 김집사는 한국에서 영어 관련 서적을 출판한 적이 있을 만큼 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 내에서 사람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여 왔다. B국은 이슬람 교세가 강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 성격이 비교적 온건하고 경제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곳이어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체류하고 있는 곳이다. 황호식집사가 영어공부를 위해 찾는 학원에는 한국, 일본에서 온 학생들 뿐 아니라 중동 국가에서 온 무슬림 배경의 젊은이들도 많은데, 사교적인 성격의 황집사는 이들과 자주 어울려 교제할 뿐 아니라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도 많다. 김집사는 이들 중 먼저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곤 하였고, 이 중 반응하는 학생이 있는 경우 인근 한인교회나 국제교회에 연결시켜 왔다. 

 

김집사는 그 가정을 찾는 학생들 중 무슬림 배경의 학생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그 중 오마르가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김집사와 황집사는 정기적으로 그를 만나 성경을 가르치고 그의 신앙성장을 도왔다. 김집사는 영어로 된 제자훈련교재 등을 활용해 오마르를 비롯한 다국적 학생들을 돕는 한편, B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등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사역자로서 더 잘 준비될 수 있도록 힘썼다. 무슬림 배경의 학생을 돕는 일은 전혀 계획하지 않은 가운데 갑자기 시작 된 일이기에 김집사는 이슬람에 대해 이해할 필요를 느꼈다. 김집사는 출석하고 있던 한인교회 목사님의 격려와 권유 속에 마침 이슬람 상법을 공부하기 위해 B국에 와 있던 성민집사와 함께 무슬림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더 잘 섬기기를 원하는 한인교회 성도들을 조직하여 약 2달간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여 무슬림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사례3) 용성준박사는 벨기에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통계학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생선교단체 출신인 용박사는 국내에서도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복음을 전해 왔다. 지도교수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한 적이 있을 정도로 복음전도는 그에게 생활이다. 벨기에에서 약 2년 6개월여 체류하는 동안에도 많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용박사는 복음전도 뿐 아니라 동료 및 학생들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가지면서 전인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섬기기를 힘쓰고 있으며, 유학생이 많은 지역 사회에서 그의 이러한 태도는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는데 좋은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생활화된 복음전도의 결과 지금까지 용박사는 약 5명의 동료들과 보다 깊게 정기적으로 신앙교제를 할 수 있었다. 용박사는 주로 벨기에와 베트남 출신 동료들과 교제하였는데, 한번은 세르비아 출신 동료와 정기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다가 그가 다른 연구소로 직을 옮겨 시간을 내어 만나기가 어려워지자 화상전화를 이용해 성경공부를 지속하기도 하였다.

 

(사례4) 성민과장은 학생 시절 교회 옆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섬긴 적이 있다. 성과장은 친구가 된 그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자 약 6~7년의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숙소를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가졌다, 성과장은 한국말을 알려주거나 병원에 함께 가는 등 친구들의 한국생활을 돕는 한편 기회가 나는 대로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전도자료 등을 활용하거나 크리스마스 파티 때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는 등 창조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려 힘썼다. 몇몇 친구들이 복음에 대해 반응을 보이자, 성과장은 교회 내 청년들을 조직하여 함께 정기적으로 성경과 한국말을 공부하며 교제하는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성과장은 학생 때의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슬람세가 강한 C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화와 언어를 꾸준히 익힌 결과 회사에서도 C국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되는 등 C국 정치, 경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성과장은 최근 중동, 동남아시아 관련 프로젝트가 증가함에 따라 회사에서 발령을 받아 B국의 대학원에서 이슬람 상법 및 상거래 관련 연수를 받게 되었다. 무슬림 학생이 90% 이상인 학교 분위기상 직접 전도는 조심스럽지만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고, 무슬림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과장은 이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무슬림들을 복음으로 도울 수 있도록 준비되는 데 기쁨을 느꼈다. 성과장은 (사례2)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무슬림 청년들을 양육하게 된 김미연 집사와 한인교회 내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을 이해하기 위한 모임을 함께 하며 무슬림들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할 것을 권면하였다.

 

현재 성과장은 귀국해 직장선교단체를 섬기며, C국 또는 다른 나라에 가게 될 기회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한편 모임 내 회원들이 4타입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가 속한 단체에는 평신도로서 복음을 소개하고 다른 이들을 신앙으로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재원 자격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고, 또 언어나 타문화에 대한 수용성 측면에서 준비된 자질있는 선교자원이 많기 때문에 성과장은 본인이 현장에서 사역할 기회를 얻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들을 권면하여 선교에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례5) 강민호형제는 직장선교단체인 J모임에 소속되어 훈련받은지 채 2년이 못되어 D국 근무를 발령받았다. 본격적으로 사역을 위해 훈련받은 기간은 짧았지만 D국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강형제는 신흥상업도시로 급부상하던 S시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들 중 몇몇과 지속적인 교제를 계속한 끝에 한국내 J모임 모델을 기초로 한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강형제는 회사 사정으로 귀국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S시 모임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회사를 사직하고 다른 회사를 찾았다. S시에서의 사역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몇 차례 이직을 해야 했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수입 없이 일정한 기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가 속한 J모임에서 재정 후원을 하기도 하였지만 강형제와 그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S시에서의 사역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형제가 처음 D국에 발령받아 사역을 시작한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현재 강형제는 S시에서 한인 및 교포로 이루어진 모임과 D국인으로 이루어진 모임을 동시에 섬기고 있고, 인근 도시에도 모임이 확산되고 있다. J모임은 강형제의 사역 초기에 주로 기도와 재정의 측면에서 후원을 하였지만 최근에는 모임의 역량을 모아 D국에서의 사역확산을 꾀하는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이는 D국이 한국과 문화적 이질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거리가 가까워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J모임의 사역모델이 확산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고, 또 D국이 평신도 중심의 도시직장선교에 있어 잠재적 가능성 및 영향력이 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J모임 회원들은 연휴 등을 활용하여 D국 사역 현장을 방문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인적 교류를 통해 D국인 리더 양성을 돕는다던지 한국에 와있는 D국인들을 각 지부에서 전략적으로 양육하여 D국으로 재파송 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D국에서의 사역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하며 기도하고 있다.

 

사례에서

위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던지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전통적 의미에서의 선교사는 아니다. 선교현장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선교사를 보조하거나 후원하는 정도로 제한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 강한 도전을 받은 적도 없고, 이를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4타입 형태의 선교실천가가 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직자나 선교사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도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4타입 형태의 선교를 이미 행하는 사람들은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본질적으로 같은 일, 즉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현재 그들의 삶의 현장이 해외에 있기 있거나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이기에 ‘선교’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사례4)의 성과장처럼 국내에서 5타입 선교를 하다가 출국하여 4타입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하고 귀국 후에는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그러면서도 또 4타입 선교상황을 준비하고 다른 내국인들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물론 해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와 같이 4타입 선교에 헌신하는 이들은 아직 소수이다. 많지 않지만 위 사례들을 볼 때 도전과 격려 없이도 이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국내에서도 복음전도와 양육을 꾸준히 해 오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삶의 터전이 옮겨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어도 항상 해 오던 그 사역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4타입 선교현장에서는 관계 속에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성장을 도왔던 경험이 중요 하다.. 실제 (사례1)에서 중동 A국에서 홍석기부장과 같은 시기에 관계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다 투옥되기도 하였는데, ‘홍부장님처럼, 개인적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받았더라면 참 좋았겠다’ 라고 고백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사례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언어나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편이다.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아직 4타입 선교활동에 대한 훈련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이들과 신앙을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 제약은 4타입 선교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이를 위해 평신도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된다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대기업과 금융기관, 무역회사 등이 밀집한 곳에서 근무하기에, 직장 내에서나 직장선교단체, 타 기업내 기독회 등에서 꾸준히 사역하면서 국제감각과 능력을 갖추고 해외에 나가 타문화권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알게 될 기회가 많다. 이들이 선교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고 훈련받는다면 4타입 선교의 더욱 풍성한 사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 지금까지는 4타입 선교가 간헐적으로 매우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사례5)에서 볼 수 있듯이 평신도 사역공동체가 주도하는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4타입 선교의 사례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4. 어떤선교사 2013봄-5:디아스포라 교회 풀뿌리(성도)들의 선교적 참여 사례와 방향성 모색 (권순익, 주안에하나교회)
     22. 어떤선교사 2013봄-3: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홍콩의 인도네시아 가정부 사역 (손창남, O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