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포럼/세미나 > 설악포럼 
설악포럼 2015-2: 서구 선교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김동화, GBT/GMF)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9 09:16:55]  HIT : 742  

서구 선교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김동화, GBT/GMF

 

1. 현대 서구 기독교 형성의 시대적 배경

 

서구 기독교에 의해 이루어진 선교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우선 현대 서구 기독교가 어떤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 서구 교회의 형성과 선교 여기서 말하는 ‘서구 선교’는 지난 200년 즉 19세기와 20세기에 이루어진 유럽과 북미주 그리고 오세아니아가 주도해온 선교를 의미한다.  운동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요소 중에서 선교와 관련이 깊은 세 가지 즉,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서구의 크리스첸덤과 17세기 이후의 계몽주의 사조에 의해 형성된 근대성(modernity), 20세기에 시작된 포스트모던주의를 살펴보려 한다. 

 

1) 크리스첸덤 크리스첸덤은 오랫동안 기독교가 국교가 되거나 국교 역할을 한 서구 사회를 말한다.

 

A. 크리스첸덤의 형성과 특징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과 고난 속에서 소수자(minority)로서, 사회의 주변부(marginal)로 밀려나서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복음의 돌파를 이루어 왔다. 예수님이 그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지 않았고 그가 사람들에게 준 최고의 징표는 자신의 죽음이었다. 초대교회는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성육신적인 선교를 하였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아무런 사회적, 정치적 힘을 갖지 못하였고 모진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들어냄으로써 로마제국 안에서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보여주었다. 바울이 자신이 복음을 전한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한 것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가져와 필요에 따라 나누고 (행2:45, 4:32) 그 결과 그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는(행4:34) 대안 사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힘을 바탕으로 하는 당시의 약육강식의 문화와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는 국가 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이와 결탁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도화된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세속적인 질서와 권위에 순응하거나 교회 자체가 그러한 권위를 갖게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초기 교회(early church)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관리 가능한 종교로 축소, 변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회는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 집단 즉, 제도 교회(institutional church)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그 사회에 태어나면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크리스첸덤에서는 교회의 역할이 국가와 더불어 소위 기독교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의 공동체성과 선교적(missional) 본질이 많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처음 3세기 동안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세상 속에 육화(肉化, incarnate, engage)하여 변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회심이 이루어지게 한 교회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B. 크리스첸덤과 선교

크리스첸덤은 공식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종식되었다고 하겠지만 그 긴 역사의 잔상은 아직도 남아 있어 우리의 교회와 선교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2차대전까지는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공직을 맡으려면 명목상으로라도 크리스천이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으나 2차대전 이후에 이러한 관행은 사라졌다.) 구성원 전체가 “크리스천”이라고 간주되던 서구 사회에서 교회는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교회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신학으로 인해 기독론과 구원론이 교회론의 하부에 자리 잡게 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고작 몇몇 수도원이 아직 크리스첸덤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민족을 순화시키는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선교였다. 종교 개혁 이후의 교회들도 이러한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나타난 교회관조차도 교회를 존재(being)로 묘사할 뿐 그 기능(function)은 언급되지 않음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교회는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적 사명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즉, 교회의 초점은 내부 지향적이었고 중요한 기능은 성도들을 통제하여 교회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었다.

 

1792년 윌리엄 케리가 인도 선교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라비안 형제단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간과되고 있었다.  크리스첸덤이 붕괴돤 상황에서 선교적 본질을 망각한 서구 교회가 쇠락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가 그 사명보다는 그 위상에 집착함에 따라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특히 개신교가 국교와 같은 위상을 갖고 있던 미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 많이 남아 있고 그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의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선교를 목회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실용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 계몽주의와 근대성

 

A.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형성과 특징

17세기 후반부에 시작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인본주의적, 헬라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갖고 있는 합리적 사고 능력으로 인해 지속적인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확산시키었고 기존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과 인간의 삶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세계관이 영향을 끼쳤으며 이에 따라 모든 낡은 제도와 체제는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종교는 핵심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계몽주의는 서구에서 교회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부정하는 지적, 정치적 힘으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기존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하도록 만든 계몽주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모토에서 나타나듯이 관념론적 세계관을 확산시켰으며 헬라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세상과 인간을 자연과 초자연, 영(靈)과 육(肉), 성(聖)과 속(俗) 등으로 구분하게 하였다.

 

또한 계몽주의적 세계관은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강조함으로써 과학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그 결과의 하나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평범한 개인으로 하여금 잉여재산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서구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과 사의 기로에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이러한 경제적인 발전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체를 벗어나서 생존이 가능한 자율적인 개인(autonomous individual)을 탄생하게 하여 개인주의가 등장하게 하였다

 

합리적,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계몽주의는 그 실용적 가치로 인해 그 후 계속해서  효율과 합리성, 관리와 통제를 통한 진보를 중요시하는 근대성(modernity)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 서구사회를 지배하였고 점차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B. 계몽주의와 근대성과 선교

계몽주의의 관념론적 세계관은 기독교도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신념 체계로 이해하게 하였다.  따라서 신자가 되는 것도 일정한 교리 체계와 규범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그리스도와의 관계라는 측면은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곧 통합적이고 관계적인  히브리적인 세계관에서 멀어진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원론적이고 분석적인 세계관은 신앙을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과 관계가 있을 뿐 세속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축소시키었다.  뒤이어 형성된 개인주의적 세계관은 구원을 개인 영혼의 문제로 축소시켰고, 신앙을 공동체 안에서의 삶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각 개인이 어떠한 믿음을 갖느냐 하는 문제로 변질 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케냐의  복음주의신학자 George Kinoti는 케냐 전체 인구의 80% 정도가 크리스찬이며 그중에서 40%가 복음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는 케냐가 가장 부패한 나라 중에 하나이고 부족간의 갈등이 심한 이유를 “선교사들이 총체적인 삶을 강조하는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과 육체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을 분리시킨 선교사들의 가르침과 삶을 강조한 미국 복음주의의 비 총체적 부분복음의 영향 때문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는 신앙을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공적인 것과는 상관인 영역에는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축소시키었다. 

 

계몽주의가 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 선교는 시작되었다. 현대 선교는 어떤 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인본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면이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현대 선교는 이러한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확산시키는 도구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서구 문명의 우월함, 인간 세상의 진보를 믿는 시대정신, 인생에 대한 과학적 사고 등이 선교를 통해 확산되었다. 현대 선교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준행하려 하면서 동시에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근대성에도 충실하였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근대적 세계관은 늘 긴장 관계에 있었지만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은 비서구 지역의 사람들도 근대화의 혜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현대 문명의 혜택을 다른 민족에게도 누리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선교를 하게 되는 주요동인 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점에서 레슬리 뉴비긴은 선교사가 세속주의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였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는 윌리엄 케리는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구축하려한 선교 사역을 위한 조직의 구도가 그 당시의 무역회사의 구조와 유사한 것이었고 그 이후로 선교 기관들의 구조가 서구의 상업조직과 유사하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의 선교는 계몽주의 이후 과학의 발전에 의해 만들어진 교통과 통신 수단으로 인해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할 비전을 갖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모든 국가와 민족에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확장하려는 선교 운동은 서구 중심의 오래된 크리스첸덤의 경계를 허무는 결과를 가져왔다. 

          

3) 포스트모던주의와 다원주의

 

A. 포스트모던주의와 다원주의의 형성과 특징

계몽주의 이후에 서구 세계는 인간이 미신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극대화 하면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머지않아 종교는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세상이 발전하려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러한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 학살과 같은 끔찍한 일을 태연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스탈린과 모택동에 의한 대량 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과 같은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난 20세기 후반부에는 합리주의에 맞서 영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탈근대성)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크게 확산되었다. 포스트모던주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각 개인과 집단의 주관적인 것으로 상대화 시키었다.  따라서 종교적 진리나 구원에 이르는 길도 다양하다는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확신시키었다.  

 

B. 포스트모던주의/다원주의와 선교

포스트모던주의가 합리주의에 맞서 영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개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없고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키는 다원주의를 표방하므로 세속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근대성과 아울러 기독교를 크게 위협하게 되었다. 요가나 다양한 형태의 명상 등을 통해 추구하는 영성은 각 개인이 개별적이고 주관적으로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성경적 진리는 설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이 되었고, 신앙을 더욱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이해되게 하였다. 식민시대가 종식되면서 서구 사회는 식민지배를 당한 비서구사회와 문화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 것도 비성경적인 다양한 영성의 추구가 서구 사회에 유행하게 되는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의 서구 사회에서 교황이나 그 어떤 개신교 지도자보다도 달라이 라마와 같은 비서구의 영적 지도자가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천년주의적 성경 해석은 각 개인이 구원받고 교회로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면 된다는 수동적 신앙을 더욱 확산시키었다.

 

Mike Pilavach는 그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공의를 강물같이, 정의를 물같이 흐르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종교적인 축제를 미워하시며, 심지어는 경멸하시겠다고 하신다(아모스 5:2).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engage)을 하기 보다는 마치 교회가 성채(城砦)나 되는 것처럼 교회 안에 안주하는 행동하고 있다.  성에 연결된 다리를 접어 올리고, 성 뒤에 참호를 파고 숨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다가 일 년에 한 번씩은 자책감이 들어 전도를 하려고 세상으로 나간다. ... 그리고 안전상의 이유로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한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고, 접어 올려 둔 다리가 내려지면 급하게 전도를 하러 달려 나간다.  일주일 후, 우연히 사로잡은 몇 명의 불운한 사람들을 끌고 다시 교회라는 성채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성채로 연결하는 다리를 다시 접어 올리고, 다음 몇 개월 동안 우리가 잡은 포로까지도 비그리스도인과 전혀 접촉할 수 없도록 몇 가지 일을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을 전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것은 오히려 반(反)전도(antievangelical)운동이라고 해야 한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씩 다리를 내리고 나가서 기습 공격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의 성벽을 무너뜨려 벽이 없는 교회, 지역 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라고 말씀 하신다“(광야 P. 16-17)

 

레슬리 뉴비긴에 의해 시작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은 서구의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며 서구 사회가 더 이상 기독교 사회가 아니며 서구야 말로 선교지라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2. 21세기의 상황과 선교

 

20세기 말에 구소련이 와해되고 사실상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속되던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물질만능의 세속주의적인 가치가 더욱 팽배해 졌다. 즉 앞에서 언급한 근대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전 세계가 효율중심의 단일 경제체제로 통합되면서 세계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관계의 급격한 변화는 선교에 또 다른 도전을 가져다주었다. 

 

1) 세계화/신자유주의와 그 좌절 근대의 기독교 선교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점으로 하는 식민주의 시대가 1947년에 종식되고 그 후로는 구소련의 붕괴가 이루어진 1989년까지 현대적인 민족국가(nation-state)형성과 냉전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1989년 이후로는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라고 말한다.

 

공산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를 확대, 심화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처럼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효율과 경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신자유주의)가 확산 되면서 세계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곧 세속주의와 기능주의, 황금만능주의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세속주의, 기능주의적인 질서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 가운데 하나가 9/11사태를 일으키고 IS와 같은 극단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라고 하겠다. 21세기에 들어서 기독교의 중심이 비서구(Global South)지역으로 옮겨 왔지만 아직도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기독교와 서구문명이 동일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선교는 이로 인해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제 선교는 서구 교회가 아닌 명실상부한 범세계 교회(Global Church)의 과업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마치 초대교회에서 복음이 유대교의 굴레에서 벗어남으로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선교는 기독교는 서구와 백인들의 종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 나아가 제도화된 기독교를 탈피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  

 

2) 기술의 진보와 선교

기술의 진보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T)의 발전은 현대인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경우에 모니터 상에서 만나고 대화한다.  육신으로 만나고 부딪히고 어울리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공장은 자동화되고 상거래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 사물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었고 사람 대신 로봇이 사람을 돌보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시장에서 흥정을 하는 일도 없어져 가고 더 나아가 물건을 사기위해 집 밖을 나갈 필요도 없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공항 대합실이다.  공항 대합실에서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engage)하지 않는다.  일행이 아닌 사람들과는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서로를 대한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모니터를 보면 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모두들 스마트 폰이나 타블렛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이러한 현상을 탈육화(脫肉化, excarnate)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세계는 인간의 경험을 탈육화하고 사람들을 마치 물건이나 아이디어 정도로 대한다.  SNS나 블로그상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것과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비정하고 냉혹한 이념적 토론이 그러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도덕과 윤리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포르노와 인터넷 도박, 좀비와 뱀파이어 영화 등에서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공간에서 어디에든 순식간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영적, 정서적인 단절을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은 세상을 기계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치고 결국 교회의 사명/선교(mission)도 탈육적인 접근을 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 기술이 가져다준 엄청난 비극은 고통의 모면하려는 문화가 생기게 하였고 더 나아가 우리가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갈 의지와 능력을 상실해 버리게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파죽지세로 몰아치고 있는 생산성, 효율성, 속도라는 기능주의의 세 가지 가장 큰 미덕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구질구질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멀찍이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 선교 여행이 그렇고 전도에 있어서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낯선 사람들을 향한 치고 빠지기 식의 사역 형태를 선호하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비참여(disengagement)와 탈육화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보다 철저한 육화된(embodied) 신앙을 갖도록 애써야 하며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3. 회복/계승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윌리엄 캐리 이후의 서구 선교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범세계 교회(Global Church)를 얘기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시기에 이루어진 선교 사역의 결실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기독교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Global South)로 옮겨 온 것 또한 그 동안 헌신적으로 사역해온 서구 선교사들과 서구 교회의 피와 땀, 그리고 기도의 열매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앞에서 본바와 같이 서구 주도의 선교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는지, 따라서 어떤 한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한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각할 때에 전략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본질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연약함(vulnerability)을 바탕으로 함: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성은 인간의 능력과 힘을 내세우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효율과 능률을 추구해 왔다. 현대 선교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313년 이전의 교회(Pre-Constantinian Church)가 아무런 세속적 힘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 보여주었던 성육신적 동일시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이는 선교를 위한 물질의 사용과 조직 등 사역의 형태 전반에 걸쳐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 한다.

 

- 통전성: 영(靈)과 육(肉), 성(聖)과 속(俗)으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삶의 전 영역에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이 들어나도록 하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

 

- 공동체성: 선교가 초대 교회가 보여준 것처럼 개인의 영혼 구원이 아니라 이 시대를 거스르는 대안적 공동체(교회) 안에서 구현되어야 할 삶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전문화와 프로그램이 아닌 교회의 본질로서의 선교: 교회 자체가 목표가 되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은 선교적(missional)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혼구원의 초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삶의 모든 영역에 보내심을 받아 구체적으로 참여(engage)하는 교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는 특별히 파송을 받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며, 선교가 교회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 선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져야 한다. 

 

끝으로 서구 선교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과 단절해야 할 것에 관해 발표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많은 실수와 잘못이 있었지만 그러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나타난 대체적인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루어진 평가이다. 그리고 비서구 선교도 서구 선교 못지않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1) 계승해야 할 것

(1) 올바른 동인(motivation)

대체로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강한 바람이 서구 선교의 가장 큰 동기였다. 아울러 대위임령(마28:16-20)에 대한 헌신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동기인 경우도 있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교에 헌신하기도 하였다. 

 

(2) 선교에 대한 통합적 이해 

복음 전도에 우선권을 둔 경우가 많았지만 윌리엄 캐리의 사역과 청교도 운동에서 보듯이 영혼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 전인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교육과 의료, 사회 복지 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다.

 

(3) 성육신적 동일시

언어와 문화의 습득을 중요시 하였고, 현지인 리더십을 세우는 일도 잘 한 경우가 많았다. 외부인(outsider)이 아니라 내부인(insider)의 관점을 갖도록 노력하였다.  환경이 대단히 열악한 오지까지 들어가 헌신적으로 사역한 예가 많다.

 

(4) 방법론

지역사회개발 등 총체적이고 공동체 지향의 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나누어주는 일을 잘 해 왔다.  장기 사역자가 많고 여성과 평신도 사역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말씀 중심의 사역에도 힘써온 것을 볼 수 있다. Partnership을 통해 네트워크와 전략적 연합을 이루곤 하였다.  한국에서의 네비우스 정책처럼 현지 교회가 자립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일에 힘썼다.

 

2) 버려야 할 것

(1) 동인

때로는 자신의 교단의 세력 확장을 위해 사역하고 현지 교회를 원격 조정한 경우가 있었다.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미개한 현지인들을 계몽하려는 생각을 가진 경우도 있었으며, 정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도피하려는 동기에서 또는 자녀 교육을 위해, 명예를 얻거나 영웅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생각에서 선교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2) 준비와 훈련 부족

영적인 면에서나 심리적, 신학적인 면에서 준비와 훈련이 부족한 채로 선교지로 파송 받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20세기 전반까지가 그러하였다.

 

(3) 선교에 대한 이해

복음에 의한 영혼 구원을 도외시한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음주의 선교 단체들은 본래의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사역대신 오로지 영혼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하였다.

 

(4) 동일시

때로는 선교사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서구식으로 만든 주거 지역에서 게토를 이루며 살기도 하였다. 인종적 우월감을 갖고 사역한 경우도 있었다.  

 

(5) 방법론 

이원론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영(靈)과 육(育), 성(聖)과 속(俗) 등으로 나누어 총체적 접근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재정 투입을 통해 현지인들이 선교사들을 의존하게 한 경우가 있었으며 단기 사역 중심으로 사역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6) 효율과 관리적 접근

목표 설정과 성과 달성 등에 있어서 기능주의적이고 관리적(managerial) 접근을 하여 성령의 역사를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101. 설악포럼 2015-3: 한국선교 및 선교사 평가 (정민영, 위클리프국제연대)
     99. 설악포럼 2015-1: 자신학화 (권성찬, GB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