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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4-9: 교회없는 기독교의 도전에 대한 복음주의적 평가 (티모시 테넌트)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8 17:56:13]  HIT : 803  

교회없는 기독교의 도전에 대한 복음주의적 평가

(The Challenge of Chruchless Christianity: An Evangelical Assessment)

티모시 테넌트(Timothy C. Tennent), 이천 역 

 

비(非)서구 세계에서의 폭발적인 교회 성장은 교회 교리에 관한 새 질문들을 불러 일으켰다.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는 그의 저서 ‘새 기독교 세계: 세계적 기독교의 도래(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에서 비(非)서구 세계에서 기독교의 왕성한 성장을 부각시켰다. 젠킨스 박사는 현재의 성장세가 유지된다면 2050년에는 6개 나라에서 기독교 인구가 1억을 넘을 것이며, 이 6개 나라 중 단 1개 만이 선진화된 서구 세계의 나라(미국)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앞으로 25년 안에 아프리카의 기독교인의 수가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인의 수를 앞지를 것이다. 기독교는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중국 종교의 중심부에서도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는 서구 문화 또는 이국적이라는 어감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 또는 ‘교회’라는 말은 서구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 그리고 그보다 더 좋지 않은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즉 ‘기독교 교회’는 부정적인 문화적 함축을 주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Christ)’라는 이름은 그렇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서구 기독교에서 가장 잘 인지되어 온 교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교회론에 대한 재고찰은 분명히 환영 받을 일이며 중요한 진전인데, 그 이유는 교회에 대한 교리가 종종 불필요하게 교회에 대한 서구적 표현에만 매여 있었고, 이러한 표현이 비서구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에 적당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새로이 등장하여 부상하고 있는 교회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로 알려진 현상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이 교회없는 기독교는 비서구 세계에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교회에 대한 한 반응으로 부상하였다. 

 

허버트 회퍼(Herbert Hoefer)는 그의 저서 ‘교회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에서, 인도 타밀 나두(Tamil Nadu) 주(州)의 농촌 지역과 주도(州都) 첸나이(Chennai) 도심에 거주하는, 그리스도를 따르지만 유형(visible) 교회에는 속해 있지 않고, 또 힌두교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자료들을 수집해 놓았다. 회퍼는 이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수의 열심 있는 자들(devotees of Jesus)’라는 뜻의 ‘예수 바크타(Jesu bhakta)’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이들은 소규모가 아니다. 회퍼의 조사에 의하면, 첸나이(Chennai)에는 전통적 개념의 공식적이고 공개적인(visible) 기독교인들 보다 세례를 받지 않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더 많다. 힌두 사회의 바크티(bhakti) 운동은 힌두교인들에게 특정 신에 대한 예배에 집중하도록 하는 길을 터주었다. 이로써 힌두교인들이 예수를 경배하기로 결정하며, 심지어는 예수만을 예배하는 것에 대한 힌두교 공동체의 반감을 없애 주었다. 예수 바크타들(Jesu bhakta)은 ‘선택된 또는 선호된 신’이라는 뜻의 아쉬타 데바타(ishta devata) 신학을 따르며 힌두교인이라는 그들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particularity)을 유지하였다. 그들이 만약 질문을 받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기독교인이 아닌 힌두교인이라고 규정지을 것이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답변할 것이다. 회퍼에 의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교회’ 그리고 ‘세례’와 연관 짓지 않으려는 행위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와 ‘세례’가 주는 강한 문화적 연관성 때문이다. 

 

필자는 2년 동안(2001-2003)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인들이 갖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인식에 대해 조사했고 많은 힌두교인들이 실제로 ‘교회’ 또는 조직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해 왜곡되고 유감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힌두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존경할 만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하는 동안 신발을 벗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힌두교인들은 종종 기독교인들을 문화적으로 이방인(foreign)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바닥에 앉기 보다는 의자에 앉으며, 바잔스(bhajans)라고 불리는 인도 고유의 음악이 아닌 서양 음악을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힌두교인들은 기독교인 여성들이 팔찌(bangle)를 착용하지 않고 대중적인 문화 축제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말해, 힌두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만났을지라도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과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를 불쾌하게(repugnant) 받아 들인다. 이러한 유형 교회에 대한 연관성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낳았는데, 예수에 대해 ‘예’라고 하는 사람이 유형 교회에 대해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연관성은 인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형 교회와 관련 짓지 않는 세례를 받지 않은 예수 추종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만도 아니다. 이러한 유형은 무슬림 사회에서도 널리 관찰되어 왔다. 로비 버틀러(Robby Butler)는,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쿠웨이트 무슬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무슬림은 기독교인은 부도덕하고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며 미국 드라마 달라스(Dallas, 부와 권력 다툼 그리고 성(姓)을 대담하게 다룬 미국 드라마, 역주) 또는 Sex in the City 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버틀러는 또한, 무슬림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비밀스러운 부도덕한 삶을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무슬림 사회에서의 ‘기독교인’, ‘교회’ 그리고 ‘기독교’와 같은 용어에 대한 당황스러운 인식은 교회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운동을 낳게 했다. 라피크 우딘(Rafique Uddin)과 데이비드 카신(David Cashin)은 이사(Isa)  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유형 교회와 연합하지 않고 이슬람 사원에 남아 있는 사례들을 목격했다. 미션 프론티어스(Mission Frontiers)는 베넹(Benin, 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역주)에서 이러한 수 개의 예수 모스크들(Jesus mosques)을  세웠던 알레잔드로 오르티즈(Alejandro Ortiz)와 베르샤 오르티즈(Bertha Ortiz)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선교사 부부는, 10만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이슬람 사원에서 예수를 이샤(Isa)로 경배하는 무슬림 국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제도화된 교회에 환멸을 느낀 힌두교인들과 무슬림들 또는 포스트모던적인 미국인들이 유형 교회와 연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에게 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가? 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례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개인적 고백인가 또는 세례는 신자들의 유형의 공동체로의 가입(incorporation)을 요구하는가? 교회론과 구원론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에게 깊은 선교적 숙고(reflection)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적 참고 사례

 

이 논쟁을 적절한 역사적 입장들을 통해 조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갖고 있던 교회론에 대한 이해의 몇 가지 중요 사건들을 조사하는 작업 없이 교회없는 기독교 운동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회퍼와 다른 이들이 기록한 것에 대한 기술적인(descriptive) 진실들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이 운동을 형성하고 유도하는데 교회가 처방적인(prescriptive)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이 운동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에 필자는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적절하게 숙고하기 위해서 다음의 4가지 역사적 참고가 되는 사례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니케아 신조(Nicene Creed), 중세 천주교의 교회론, 종교 개혁 그리고 후기 개신교 신앙 고백들 등.

 

니케아 신조. 교회가 가장 일찍 받아들였던 교회론에 대한 언급 중의 하나가 니케아 신조(주후 325년)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apostolic) 교회를 믿는다.” 여기서 나오는 두 개의 단어가 이 논쟁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보편적(catholic)” 과 “사도적(apostolic)”. 예를 들어 만약 교회없는 기독교인들(churchless Christians)이 지속적으로 예수 외에 다른 신들을 예배하거나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사도성(apostolicity)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심지어는 교회없는 기독교인들이 기본적으로 정통 교리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갖고 있는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 또는 universality)에 대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 기독교인들 사이에 여러 상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성은 기독교인들에게 동일한 주님, 동일한 신앙, 동일한 세례를 생각하도록 하여 준다. 세례 받지 않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교회의 보편성을 온전하게 숙고(reflect)할 수 있을까? 교회없는 기독교인들이 모든 인간의 조직적 노력을 허용하지 않는 보편성의 신비에 대한 진정한 표현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구조적, 신학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주(主)로 고백하며 세계의 다른 (기독교) 신도들과 교류하는 세계 도처의 유형의 신앙 공동체의 한 분파인가? 

 

중세 천주교의 교회론. 중세의 교황, 특히 1215년 4회 라테란(Lateran) 공회 당시의 이노센트(Innocent) 3세와 1302년 보니파스(Boniface) 8세는 구원을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성례와 연계하여 규정했다. 이 견해는, 카르타고의 키프리안(Cyprian of Carthage, 주후 258년 사망)이 그의 저서 ‘교회의 통일성에 대해(On the Unity of the Church, 주후 251년 저술)’에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리라’(요한복음 6:53, 개역개정)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장하며 만들어 낸 표현 ‘extra ecclesiam nulla salus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문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구절은 성례(세례), 사면(absolution), 성찬(Eucharist) 등을 받지 않으면 그리스도에서 분리되어 나간다는 의미를 함축했다. 교부들이 선호했던 은유를 인용하면, 교회는 즉 방주(ark)와 같다. 교회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심판에서 구원하기 위해 만드신 배(vessel)이다. 방주에 들어가는 이들은 구원을 받고,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된다. 전통적인 천주교의 시각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에 속하지 않은 세례 받지 않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는 결단코 구원의 여지가 없다. 

 

종교 개혁. 세 번째 역사적 참조 사례는 종교 개혁이다. 종교 개혁에서 발생한 가장 큰 신학적 도전 중 하나는 종교 개혁이 교회의 보편성을 공격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답변을 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키프리안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교회 교부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단순히 신비롭거나 보이지 않는 무엇이 아니라 감독 제도(episcopal)로 해석했다. 키프리안은 다시 주목할 만한 문구를 제시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교회의 사도적 권위가 베드로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감독 제도를 통해 전수되고 지속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개혁은 로마 천주교회의 유형 통일성을 이탈하는 한 분파로 여겨졌다. 종교개혁은 감독제의 권위에 도전으로 보여져 하나됨(oneness), 사도성, 보편성을 명시한 니케아 신조의 파괴자와 분파주의자로 간주되었다.

 

루터는, 교회론이 특정 교회 조직과 구조적, 성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특정 조직을 초월한 성도들(saints)의 신비로운 연합(communion)으로서의 교회임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이렇게 교회론을 다시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종교 개혁에 대한 비판에) 대응했다. 진정한 교회는 사도적인데, (사도적 권위가) 감독 제도로 전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사도들이 가르친 것을 가르칠 때에만 그렇다. 그리하여 개신교 교회론은 사도적 정통성을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의 교리를 통해서 찾았다. 사도적 가르침(message)이 선포된다면 교회는 사도적이며, 그 교회는 진정한 교회를 특징짓는 신비한 하나됨과 보편성을 함께 나눈다. 루터는 자신의 저서 ‘공의회와 교회에 대하여 (On the Councils and the Churches)’에서 진정한 교회를 sancta, catholica, Christiana로 규정했는데, 이 뜻은 거룩한 백성, 기독교인이다. 루터는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의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 교회’라는 표현은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루터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에 비중이 있었지, 사람들이 속해 있는 조직상의 구조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루터가 이해한 참되고 유기적인(organic) 교회는 유형적인 특성(nature)과 무형적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유형의 교회에는 구속되지 않는 죄인들과 하나님의 신성한 사역에 의해 구분된 성도들(saints)들이 함께 존재한다. 반면 무형의 교회는 모든 시대와 지역을 통해 진정한 신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성과 숫자는 하나님만 아신다. 교회에 대한 종교개혁적 구분이 감독 제도 보다는 영적인 차원에 맞추어져 있지만, 교회에 대한 몇몇의 가시적인 표현들에서는 다양한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교회에 대한 후기 개신교 신조 형식. 네 번째이자 마지막 참고는 종교개혁의 출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개신교인들의 교회없는 기독교에 대한 평가에 적합하다. 개혁주의 교회들이 증가함에 따라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위기가 발전되었다. 그 이유는 ‘개신교(Protestant)라는 낱말에서 따온 개신교인들의 초기의 항의가 어지러운 분열(division)과 논박(disputation)과 논쟁(controversy)의 연속을 불러 일으킬 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개신교의 새 분파(branch)들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참 교회의 특징들을 명확히 천명해야만 했다. 한 예로, 아우그스부르그 고백 (Augsburg Confession)은 ‘교회는 복음이 순수하게 가르쳐 지며, 성례가 올바로 집전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7항)’고 언급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39개 조항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들이 나온다 (19항). 새로이 출현한 개혁교회(개신교회)들은 교회의 영적 특성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교회의 특정 ‘특징들(marks)’도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특징들은 유형의 공동체에서만 보여지는 것들이었다. 

 

결론. 역사적 관점에서 교회의 권위 아래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세례 받지 않는 신도들의 존재는 교회론의 기준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 천주교 입장에서도 교회와 성례적 관련이 없는 예수의 추종자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사한 선언들이 동방정교 (Eastern Orthodox)에서도 발견된다. 종교 개혁과 그 뒤를 이어 나온 교회론에 대해 언급한 신조들은 교회론에 대한 활발한 재고(再考, rethinking) 작업에도 불구하고 개혁(개신)교회가 교회에 대한 교리와 규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포용하거나 받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실제로 모든 개혁교회들이 유형 교회의 표시로 최소한 세례 의식과 성찬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이 잘 정의되어 있는(defined) 사람들의 모임인(gathered) 공동체를 관장할 목사, 신부, 감독, 장로와 같은 몇몇 조직화된 권위를 고집했다. 만약 교회없는 기독교가 받아들여진다면, 천주교나 동방정교 그리고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지지하여온 역사적 교회론과는 분명한 결별일 것이다. 

 

비판과 논쟁

 

이러한 결별은, 다른 학자들과 함께, 인도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에큐메니칼(ecumenical) 지도자 M. M. 토마스 (M. M. Thomas, 1926-96)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는 인도의 방갈로(Bangalore)에 위치한 기독교 종교 사회 학문 연구소(Christian Institute for the Study of Religion and Society)의 소장으로 수년간 봉직했다. 토마스의 교회론에 대한 비판은 주로 인도 주재 영국인 선교사이자, 에큐메니칼 지도자이며, 남 인도 교회의 감독(bishop)인 네슬리 뉴비긴 (Nesslie Newbigin, 1909-98)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 두 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유형 교회로서의 교회의 특성에 대한 논쟁은 엄청난 문서로 남아 있다. 두 학자는 각각 수십 권의 책과 글을 남겼다. 토마스와 뉴비긴의 교회론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지지와 신학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안이다.

 

M. M. 토마스. 1971년 토마스는 ‘구원과 인간화 (Salvation and Humanisation)’ 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선교 신학에 관련된 문제들을 인도라는 특정 상황에서 바라보며 검토한 책이다. 토마스의 시각(vision)의 중심은 교회론에 대한 급진적인(radical) 재고찰(rethinking)이었다. 그는 사회로부터 급속히 격리되어 가는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교회 외부와 갖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세속적(secular) 교통(fellowship)’을 착안하여 장려했다. 토마스는 더 나아가 왕성한(vigorous) 교회론은 모든 종교 공동체를 초월하기 때문에 ‘모든 종교 공동체의 형식(form)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퍼가 주장한 ‘교회없는 기독교’의 개념을 분명히 받아들였을 것이나, 교회가 언제나 정의되어 있는 유형적인 공동체로 존재하지는 않으며 힌두교나 이슬람과 같은 다른 종교 공동체 안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말로 고쳐 말했을 것이다. 토마스는, 교회가 ‘힌두 공동체의 윤리와 신앙과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통 (fellowship)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점을 분명히 언급했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세례 의식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전적으로 예수님과 결부시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도에서의 세례는 그리스도로의 연합(incorporation)의 주된 표징이 아닌 인도인들의 사회, 정치, 종교 공동체를 거부하는 사회 정치 공동체로의 전향(개종, proselytism)의 표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소속(communal affiliation)의 이동(transfer)’으로서의 세례는 인도에서 한 개인의 고유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적대감의 행위로 이해되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세례의 참된 성격(nature)을 옹색한 모방 행위(travesty)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마스에 의하면, 적어도 인도에서는 세례 의식이 진정한 교회의 표징(mark)이라고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에 속하는 독특한 새 인간들이 있는데, 이 인간들을 유형 교회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extra ecclesiam nulla salus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유명한 문구에도 불구하고, 이 그리스도의 새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적(empirical) 교회’의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형 교회로 불리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루터가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의 차이점을 소개할 때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속해 있지 않지만 이 땅에서 유형 교회와 경험적으로(empirically) 연합되어 있는 중생치 못한 불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것이었다. 토마스는 이와 반대되는 상황을 주장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속해 있고 그리하여 하늘의 무형 교회의 일원이지만 이 땅에서는 어떠한 경험적이고 유형적인 교회와는 연합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유형 교회 내부의 불신자들 염두에 둔 반면 토마스는 유형의 힌두교 공동체 내부의 (기독교) 신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 레슬리 뉴비긴은 토마스의 교회론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뉴비긴은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최종성(The Finality of Christ)’에서 교회는 반드시 ‘유형의 공동체’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형의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단순하게 교회와 공동체로 확장되었다는 (extension 또는 aggrandizement)’ 생각을 포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뉴비긴은 분명히 하고 싶었다. 대신 그는 ‘유형의 교제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중심이지만 그 구원의 계획이 유형의 교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뉴비긴에 의하면, 진정한 개종(conversion)은 단순히 기존의 공동체를 확장하는 행위가 아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새 창조 행위와 기존의 신도들의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행위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기독교인들은 적절한 균형감을 갖게 된다. 즉, 구원이 하나님과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중심은 그의 구속된 백성들을 유형의 교회로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뉴비긴은 교회없는 기독교에 대한 문제에 아주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응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안에서 중생한 힌두교인이 다른 (기독교) 성도들과 유형적 결속(solidarity)을 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신약 성경은 전적으로 감정적이고 영적이며 인간적 교제라는 형식으로 유형화되지 않는(unembodied)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뉴비긴은 토마스의 교회론을 과도하게 영화시킨(overspiritualization) 교회론으로 간주했고 그의 이론을 거부했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힌두교로 알려진 공동체 모임(sodality)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궁극적 유대감(allegiance)과 충성을 고백하였다면,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힌두교인으로서의 의무보다 위에 있으며, 이러한 그의 충성이 사회적 형태와 같은 유형적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인가라고 뉴비긴은 질문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신앙 생활에서) 중심적이며 결정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영접을 공통적으로 가진 자들 사이에서의 모종의 연대감(solidarity)을 만들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영접한다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럼 이 연대의 성격은 무엇인가라는 점이 문제이다. 이러한 연대는, 공식적 행위와 노래와 문자로 예수 안에 있는 공동의 신앙을 축하하고 찬양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활동을 포함한다고 항상 이해되어 왔다.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힌두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 사람은 힌두교인이다.

토마스와 뉴비긴의 논쟁이 주는 의의는, 두 사람 모두가 깊이 있는 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했다는 것에 있다. 사실 견고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이 포함된 건전한 성격적 해석이 이 논쟁의 궁극적 중재자(arbiter)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목소리들(견해들). 이 논쟁을 비중 있게 다룬 우리 시대의 가장 저명한 신학자는 미국 세계 선교 센터(U.S. Center for World Mission)의 창설자인 랄프 윈터(Ralph Winter)이다. 윈터는 교회없는 기독교 운동에 우호적인 언급을 수 차례 했다. 그는, 교회없는 기독교는 선교학적으로 건전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전통 교회보다 우월하다고 언급했다. 윈터는, 분명하게도 우리의 실제적 도전은 더 이상 기독교의 영토(boundary)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유대교와 천주교를 넘어 흘러왔듯이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이 이미 문화적 운동으로서의 기독교를 넘어 광범위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슬림들과 힌두교인들 그리고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방 종교(기독교를 뜻함, 역주)와 연관짓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허용하고 격려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밝혔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종교개혁이라고 윈터는 말했다. 

 

종교개혁을 암시한 윈터의 표현은 중요하다. 만약 첫 번째 종교개혁이 유대교의 단일문화(monoculture) 체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두 번째 것은 로마 천주교를 넘어서는 것이고, 세 번째 개혁은 교회없는 기독교이다. 윈터는, 복음이 분명히 기독교라고 규정될 수 있는 공동체들을 넘어서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여러 다른 공동체들과 비(非) 기독교 지역의 구조 체제들 안에서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제, M. M. 토마스의 새로운 교회론에 더욱 가깝게 서 있는 랄프 윈터, 허버트 회퍼, 그리고 (‘힌두 배경에서 예수를 따르기 (Following Jesus in the Hindu Context)’의 저자) 리차드(H. L. Richard)와 같은 부류의 복음주의 학자들의 견해를 접하게 되었다. 복음주의 선교학자들과 전체 선교 공동체가 이 새로운 교회론을 포용해야 하는지와 이 교회론이 무슬림들(예수 모스크들), 힌두교인(예수 바크타스) 혹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서구인들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복음주의 선교학자의 반응

 

필자는 교회없는 기독교에 대한 사안에 탐구적 대답을 제시하겠다. 위의 복음주의 학자들의 논문과 통찰력에 일반적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필자는 토마스와 리차드가 제안한 교회없는 기독교에 대한 주장들을 시인하는 데에는 약간의 주저함을 갖고 있다. 특히, 리차드가 이 논쟁이 더욱 활발히 되기를 촉구한 것에 대해 필자는 지지하는 바이다. 끝으로 필자는 이 논쟁이 계속 지속될 수 있게 할 몇 가지 논점을 제시할 것이다.  

 

개종, 교회, 그리고 공동체. 첫째로 기독교의 개종을 유형의 기독교 공동체와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게 하신 두 개를 분리하는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를 뜻하는 ‘교회’(에클레시아 ekklesia) 라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예수의 ‘교회’라는 단어 사용은 오직 영적인 측면이었으며 유형의 공동체를 필연적으로 지칭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필자는 ‘에클레시아’라는 그 단어가 ‘공적 모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대응하겠다. 이 낱말의 선택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유형의 규정지어진(defined)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출범시키도록 도왔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 16장 16절에 기록된 베드로의 기독교 신앙의 고백을 규정하는 것은 곧바로 공동체의 필요성과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만남은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라는 다원적이고 다(多)종교적 배경에서 발생했다. 베드로의 고백 후에 예수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개역개정)라고 말씀하셨다. 

 

서구화된 교회 대(對) 교회없는 기독교. 두 번째로 교회없는 기독교에 대한 논쟁이 종종 서구화된 기독교와 타종교 공동체 사이에 있는 교회없는 기독교 중의 선택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서는 서구화된 기독교라는 허수아비를 때려 눕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새롭게 출현한 이방인들의 기독교(Gentile Christianity)에 적대적인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지만, 이방인들의 교회는 하나님이 이 새 움직임을 분명히 축복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고 리차드는 분명하게 지적했다. 리차드는 기독교의 공동체주의(communalism), 율법주의적 종파주의, 분리주의적인 문화적 태도, 기독교 공동체들 사이의 완고함 그리고 이와 유사한 오류들에 대한 그의 좌절감을 표현했는데, 이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수천 개의 부서지고 망가진 결혼 사례들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인도 전역에는 교인들이 서구의 찬송가가 아닌 기독교 바잔스(bhajans, 인도 고유 음악, 역주)로 찬양을 하고, 교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으며, 여인들이 팔찌를(bangles) 착용하거나 문화 축제에 참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도록 하는 수 만개의 교회가 있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수 세기 동안 인도에서 존속해 온 명백하고도 잘 정의되어 있는 기독교 공동체들이다. 필자의 견해는, 교회없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들이 서구화된 예배를 계속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세계적인 (기독교) 움직임의 일원으로서 세계 교회와 함께 하는 자신들의 보편성(catholicity)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와 사도성. 세 번째로, 교회는 바로잡음과 의(義)안에서 훈련 그리고 사도적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 성도들을 서로 이어주도록 세워진 성스럽게 안수 받은 기관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교회 규율(discipline)을 집행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셨다. (마 18:15-17) 그런데 이 교회의 역할은 개신교의 신앙 고백 전통에서 진정한 교회를 구분 짓는 특성으로서의 교회 규율을 인정하는 성경적 근거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교회가 규율을 정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교리적, 도덕적 순결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회없는 기독교라는 상황에서 교회의 규율이 어떻게 적절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유형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장로로 섬기는 한 인도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지만 더불어 가네쉬(Ganesh)  또는 크리슈냐(Krishna) 를 경배하는 힌두교 예배(puja)를 드리기 위해 힌두교 사원을 계속 다니는 과오를 범하는 한 예수 바크타(Jesus bhakta) 여인에 맞서거나 그녀를 훈계할 상황이 일어나겠는가? 이 장로는 이 예수 바크타(Jesus bhakta)의 종교 활동과 삶과 신앙을 감독할 수 있는 인정된 권위가 없다. 또한 남자로서 이 장로가 한 여인을 만나서 그녀의 삶과 신앙에 대해 상의할 문화적으로 용납되는 방법(avenue)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유형 공동체만이 기독교적 규율이 있어야 할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체계(structure)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실체적 확장(ontic expansion). 마지막으로 필자는, 세계의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들이 새 신자들의 삶에서 특별하게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유익을 적절하게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주후 1세기경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었을 당시에는 그 대상이 인종적으로 유대 민족에게 한정되었다. 그러나 복음이 확산되어 헬라 문화로 전파되었고, 후에 중국, 인도, 아프리카, 한국, 그리고 다른 문화로 전파됨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그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더 많은 통찰과 더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실재적 확장(ontic expansion)이라고 불려 왔다. 더 많은 민족들이 예수님 앞으로 오게 됨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이해와 통찰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이 말은 ‘온전한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를 필요로 한다’라는 유명한 문구 뒤에 있는 내면의 의미이다. 서구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인도의 예수 바크타스(Jesu bhaktas)와 이슬람 사원에서 이샤(Isa)를 따르는 이들로부터 받게 되는 가르침에 대해 무지하여 왔다. 아마도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의 어떤 부분은 더 넓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상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이 어떠한 형체가 있고 잘 정의되어 있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속성상 삼위일체로 연결되어 있는(relational)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성육신을 통해 그의 관계적 성품(relational nature)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셨다. 또한 이 성육신은 그의 몸이라 불리는 교회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기독교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는 모든 세대를 통한 세계 모든 곳의 모든 성도들이 모든 가능한 시기에 반드시 유형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요구한다. 유형의 (신앙) 공동체는 초대 공동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카타콤(catacomb)에 모였으며, 큰 핍박을 받았고, 문화적 오해로 고통을 겪었지만 함께 모이는 집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경적 개종이, 그 말의 의미상,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결론. 새로운 세계적 상황에 기독교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더 활발한 토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대응하는데 있어 기독교인들은 또한 사실기술(description)과 처방(prescription)의 역할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역사가 이 중요한 논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인도하고 지도(direct)하시도록 하여야 한다. 

     97. 설악포럼 2014-10: Roles of “Alongsiders” in Insider Movements: Contemporary Examples and Biblical Reflections (John and Anna Travis)
     95. 설악포럼 2014-8: 기독교 영성에 기초한, 이슬람과의 대화 (문상철, 한국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