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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4-7: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한국적 자신학화 가능성 (임태순, GMP)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8 17:50:50]  HIT :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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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한국적 자신학화 가능성

이슬람 상황에서의 내부자 운동의 사례를 중심으로

임태순, GMP

 

I.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 선교가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한국적 자신학화의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한국적 자신학화를 논하려면, 이슬람 내부에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문화, 종교, 영적 상황을 복음과 통합하는 복음적 공동체를 세운 경험과 성공사례들이 어느 정도 쌓여야 하는데, 한국교회의 경험이나 연륜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상황에 더 깊이 들어가 복음의 진정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충분한 수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Christ-Centered Community)를 세우고, 또 그 열매로 나타난 (무슬림 배경의) 현지인 지도자들에 의한 자신학화 작업이 어느 정도 가능할 때,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한국적 자신학화 논의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전통적 관점을 내려놓고, 이슬람 상황에서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형성을 시도하고 있고 또 이 과정에서 많은 신학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이슬람 상황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한인 선교사들의 질문들을 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자신학화 토론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신학적 질문들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한국적 영성에 기초한 이슬람 선교신학의 가능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훗날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적 영성에 영향을 받은, 무슬림 배경의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가 자신학화 논의를 하게 될 때 귀중한 토론 기초가 될 것이다. 

 

필자 역시 무슬림 선교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다양한 신학적 질문들과 씨름해야 했다. 예를 들면, 2004년, Insiders Movement로 알려진 그룹이, 방콕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선교전략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참여하게 되었고 (주최측에서 초청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이슬람 상황에서의 “Insiders Movement”를 접하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모임은, 오전 오후 귀납적 성경공부 를 하고, 저녁에서는 각처에서 온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사례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특히 전략토의 및 사례 발표를 하는 저녁 모임에서는 많은 선교학적 이슈들이 제기되었고 생각거리를 주었다.  이 모임에서 C-5 전략에 따라 사역하고 있는 다수의 선교사, 선교학자, 무슬림 배경의 개종자들을 만나 교제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C-5 전략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함께, 한국교회 출신의 무슬림 사역자로서, 많은 질문을 직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 상황에서의 상황화 사역은 서구 중심의 전통적 선교 상황에서 볼 때, 많은 신학적, 선교전략적 쟁점을 제기한다.  동시에 이런 질문들은, 한국교회 배경을 가지고 무슬림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에게도 많은 도전과 함께, 무슬림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적 관점에서의 자신학화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본 소고는, 이슬람 상황에서 내부자 운동의 의미를 정립하고, 내부자 운동이 한국교회 무슬림 선교 전략 확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학적 관점들을 개관하고자 한다. 논의는 다음의 쟁점들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내부자 운동의 의미에 대해 정리하고, 둘째, 내부자 운동이 제기하는 신학적 문제들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무슬림 선교 전략에 있어서의 한국적 자신학화가 필요한 쟁점들을 간략하게 검토할 것이다.  

 

II. 내부자 운동에 대한 개관

A. 내부자 운동의 개념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의 개념은, 성경 자체가 증거하는 선교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서 성인이 되기까지 내부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내부자로서 유대사회, 더 나아가서 전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을 감당했다. 바울 역시 선교에 있어서 내부자의 관점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고린도전서에서 주장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이란 선교사역 원칙은 오늘날 내부자 운동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선교역사를 통해서도 이런 정신은 계속 계승되었다. 예수회의 토착화 선교전략이나, 초기 중국선교를 담당했던 경교 등의 선교전략도 내부자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인 선교사들 (윌리암 케리, 허드슨 테일러 등) 역시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내부자적 관점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해 왔다. 

 

타문화권 사역에 있어서 내부자적 관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맥가브란이라 할 수 있다. 맥가브란은 그의 책 The Bridges of God (1955)에서 “선교기지 중심의 사역”과 “종족중심 사역”을 비교하면서, 전자는 외부인(당시는 주로 서구인)에 의한 이질적인 서구적 교회 설립 중심으로 선교를 이해한 것인 반면, 후자는 외부인 선교사가 종족 (문화) 중심의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그 문화의 내부인이 되어, 현지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다리를 타고 복음이 흘러가게 하는 전략을 지칭한다. 

 

기독교적 신앙고백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 특히 동질집단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인들로 이뤄진 공동체는 그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 ... 모든 상황화 주장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상황화가 가장 강력하게 관심을 갖는 바는 특정 사회에서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백성, 인종, 카스트 혹은 종족과 갖는 관계이다. 

 

맥가브란은, 인도 토착교회들을 다수 비교 분석하여, 문화적으로, 사회계층적으로 동일한 상황에 머물면서 그 문화 내의 네트워크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틀에서 벗어난 교회들에 비해 훨씬 효과적으로 자민족 복음화 역할을 감당함을 밝혀냈다. 맥가브란(McGavran)은 어떤 종족도 외부인에 의해 복음화된 적이 없으며, 한 종족의 복음화는 언제나 내부인 개종자 공동체에 의해 이뤄져왔음을 지적하면서 내부자적 관점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교회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무슬림 공동체의 복음화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이슬람 공동체는 복음과 기독교회에 대한 적대성이 매우 높다. 내부자에 의한 자민족 복음화가 불가능했던 이유이다. 드러난 신자 또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대부분, 자신의 공동체에서 쫓겨나 더 이상 자기 종족 향한 증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맥가브란이 제시한 종족중심의 선교접근이 원초적으로 차단된다. 그러므로 무슬림 개종자에 의한 무슬림 사회 복음화라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슬림사회 내에 생존하면서 무슬림 사회 복음화를 담당할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 형성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게 되었다. 

이슬람 사회 내부에 생존가능한 교회개척보다는 개개 무슬림에 대한 전도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전의 무슬림 전도 전략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슬람 사회 내에 남아 자민족 복음화를 담당할, 상황화된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교회) 개척에 대한 토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슬람 비판을 통한 대결적 메시지에 의존했던 전도 방법론을 내려놓고, 복음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이슬람 친화적인 전도방법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한 종족의 문화적 맥락을 수용하고 내부자 중심의 전도/교회성장을 주장한 맥가브란의 주장은, 적대적인 무슬림 공동체 내에 생존가능한 (그리고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 설립 전략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사회에 생존가능한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 설립과 이를 통한 무슬림 선교에 대한 논의의 전환점은,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국제대회였다.  무슬림 선교를 위해 이슬람 문화에 맞는 교회개척을 위한 창의적인 전략 필요성을 자극한 대회였다.  무슬림 선교에 있어서 상황화된 교회 개척의 필요성이 집중 논의된 또 다른 대회는, 1978년 “무슬림 전도에 관한 북미주 회의” (North American Consultation on Muslim Evangelism” 이다. 이 모임에서 이슬람 사회에서 생존가능한 실험적인 교회들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는 이후 무슬림 상황에 맞는 무슬림 개종자 교회, 또는 상황화된 무슬림 선교전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회의에서 Charles Kraft 가 제기한,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는 교회 등에 대한 제안은, 실제 필드 사례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실험적 아이디어 수준이었으나, 이후 이 제안들은 현장 사역자들에 의해 적용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오고 있다.  

 

현장 사역자로서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생존가능한 (상황화된) 무슬림 선교전략을 주장한 선교사는, 필 파샬 (Phil Parshall)이다. 그는 『무슬림 전도의 새로운 방향』 (New Paths in Muslim Evangelism: Evangelical Approaches to Contextualization, 1981) 이란 책을 통해 상황화된 무슬림 전도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그가 전하는 방법론은 많은 무슬림 사역자들에 의해, 이슬람 사회 내부에 남아 자민족 복음화 위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설립전략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를 통한 무슬림 선교 전략으로서, 이슬람 문화와 신앙을 적극적 수용하도록 주장한 또 다른 선교학자는 우드베리 (D. Woodberry) 교수이다. 그는 이슬람 신앙 행위의 중심인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하며, 이를 수용함으로써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가능한 개종자 공동체 설립에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상황화된 교회개척과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가능한)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 설립을 통한 무슬림 복음화 전략은, 최근 존 트레비스 (J. Travis)의 C-스펙트럼으로 연결되었다.  트레비스는 무슬림 선교전략으로서 상황화 접근을,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의 종교적 정체성에까지 적용함으로써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트레비스가 주장한 C-5 무슬림 개종자 공동체는,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하기 위해, 전통 기독교회와의 연결성을 포기하고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다양한 신학적, 선교전략적 토론을 촉발시켰다.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채 신자 공동체를 지향하는 C5 전략은,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성공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나, 동시에 혼합주의 문제와 무슬림 전도의 장기적인 효율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적대적인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하며 증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화된 교회개척 전략은, 많은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가능한 교회 설립을 통한 무슬림 전도 전략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는 면에서 무슬림 전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주었다고 평가된다. 

 

B. 이슬람 상황에서의 내부자 운동: C 스펙트럼

John Travis는 무슬림 공동체 내에 생존하면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 설립에 관한 다양한 접근을 자신의 여섯 가지 C-스펙트럼으로 단순화하여 정리를 시도하였다.

 

The C1 – C6 Spectrum compares and contrasts types of “Christ-centered communities” (groups of believers in Christ) found in the Muslim world. The six types in the spectrum are differentiated by language, culture, worship forms, degree of freedom to worship with others, and religious identity. All worship Jesus as Lord and core elements of the gospel are the same from group to group. The spectrum attempts to address the enormous diversity which exists throughout the Muslim world in terms of ethnicity, history, traditions, language, culture, and, in some cases, theology. This diversity means that myriad approaches are needed to successfully share the gospel and plant Christ-centered communities among the world’s one billion followers of Islam. The purpose of the spectrum is to assist church planters and Muslim background believers to ascertain which type of Christ-centered communities may draw the most people from the target group to Christ and best fit in a given context. All of these six types are presently found in some part of the Muslim world. 

 

무슬림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Christ-centered Communities)는 공동체가 모임시 사용하는 언어, 문화, 예배형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는 자유의 정도, 그리고 종교적 정체성 등에 따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모든 유형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복음의 핵심요소를 공유한다. 그러나 대상 무슬림 종족의 이슬람에 대한 충성도, 문화적 결속 정도, 복음에 대한 적대감 정도, 그리고 사역자들의 선교전략 등에 의해 다양성이 나타나게 된다. C1부터 C6에 이르는 모임의 유형은 아래와 같다. 

 

(첨부파일 참조)

 

그런데 존 트레비스는 내부자 운동을 C5 공동체 설립을 지향하는 운동과 동일시한다. 이슬람 내부에 생존하여 무슬림 공동체 복음화를 지향하는 여타 무슬림 선교전략과 내부자 운동으로서 C5 전략을 구별한다.  

 

C. 내부자 개념에 대한 공정한 적용

선교에 있어서 “내부자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John Travis가 주장하듯이, 이슬람 상황에서의 내부자 운동이란 개념을 C5 무슬림 신자 공동체 설립 운동과 같은 특정 전략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내부자 운동이란, 초대교회 선교운동이나 기독교 선교역사 속에서 줄곧 견지되어 온 성경적 개념으로 건강한 선교운동의 한 기준이 되어왔다. 그러므로 이 개념을 C-5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 (Christ-Centered Community) 설립 전략에 국한하여 사용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개념은, 피선교대상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 관계, 문화적 토양을 떠나지 않고, 복음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신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네트워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흘러가게 하며, 믿는 자들의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는 모든 운동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슬람 상황에서 진행되는 상황화된 대부분의 무슬림 선교전략 (C-3에서 C5에 이르는)이 내부자 운동으로 지칭되는 것이 옳다.  C-3 공동체와 C-4 공동체도 이슬람의 신앙고백에 기초한 정체성은 거부하지만, 이를 제외한 문화적, 사회적 영역, 그리고 일부 성경적으로 용납 가능한 이슬람 신앙형태 등을 유지한다.  이슬람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제한적으로) 상황을 수용하여, 여전히 이슬람 사회의 내부자로 남아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운동이므로 내부자 운동으로 불리우는 것이 마땅하다.. 

 

내부자 운동의 이론가인 Rebecca Lewis도 내부자 운동을 좀 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내부자 운동”이라는 용어가 신자들이 그들 본래의 종교적인 환경에 머무는 종족들에게 제한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 사회, 종교 내에 머물고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이러한 그리스도를 향한 운동을 적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스도를 향한 운동이 사람들을 기존 네트워크에서 빼내서 새로운 네트워크(상황화가 얼마나 되었든지 관계 없이. 예: 메시아적인 모스크)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 네트워크 내에 머문다면 그것은 “내부자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또 이슬람 사회 내에서 믿는 자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운동 촉발자로서 내부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한 지역에 다양한 내부자들에 의한 복음화 운동, 믿는 공동체 형성 (교회개척) 운동이 병행하여 일어날 수 있고, 때로는 한 그룹 안에서 다양한 국면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부자 운동이란 용어는, 상황화를 적극 수용하여 피선교대상/종족의 내부자로 남아 복음화와 교회개척 (믿는자들의 공동체 형성)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III. 이슬람 상황에서 C5 형태의 내부자 운동이 제기하는 신학적 쟁점들

 

1. 내부자 개념의 기준으로서 “무슬림 정체성”의 모호성 

John Travis는 내부자 운동을, C5 공동체를 지향하는 전략으로 이해한다. C5의 기준점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C5 전략에서 무슬림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섯 기중 중의 하나인, 신앙고백 (샤하다)이다. C4 전략을 따르는 공동체들은, 샤하다 형태는 받아들이되, 신앙고백의 후반부인 “무함맛은 하나님의 선지자(Rasul)이다” 부분은 거부한다. 대신 성경적 고백으로 대체해 사용한다. 

 

그런데 J. Travis는, “무함맛은 알라의 선지자”라는 샤하다 후반부의 고백이 수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C5 전략의 기준인 무슬림 정체성 기준 중 하나는, 이 신앙고백의 후반부를 포함한 샤하다 전체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Travis는 무함맛은 다신교 우상숭배 사회를 알라에 대한 유일신 신앙으로 돌이킨 사람이므로 선지자로 고백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릭 브라운도 그의 글 “내부자 운동: 대화의 연속, 성서적 무슬림”에서 샤하다의 수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현했다. 

 

(3) 만일 성경적인 무슬림들이 그들이 믿기에 성경에 부합한 의미로 무함마드의 사명을 해석하여 신실하게 샤하다를 외운다면 그들이 결코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 개인적으로 나는 샤하다의 후반부는 최대한 읊는 것을 피해야 하며 어쩔수 없는 경우에는 성경적인 해석하에서만 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외부인이며 이렇다 하게 단언하기에는 그들의 상황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많은 경건하고 성경적이며 24년에서 42년의 오랜 사역을 한 무슬림들은 샤하다를 읊는 것이 그다지 그릇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복음에 대한 적대성이 강한 이슬람 상황에서 샤하다의 거부는, 내부자로서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타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 부분은 혼합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 선지자(라술)의 의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존재를 의미하며, 이는 꾸란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성경적 핵심 신앙고백 내용을 명백하게 부정하는 꾸란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무슬림 정체성 유지”는 C5 공동체 전략에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정체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이는 C5를 내부자 운동으로 규정하고 C5 운동의 이론화 신학화를 주도하는 두 학자의 “내부자” 개념 정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내부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론가인 Rebecca Lewis 는 “내부자 운동’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An insider movement is any movement to faith in Christ where (a) the gospel flows through pre-existing communities and social networks, and where (b) believing families, as valid expressions of the Body of Christ, remain inside their socio-religious communities, retaining their identity as members of that community while living under the Lordship of Jesus Christ and the authority of the Bible.  

 

Lewis는, 내부자 운동은 피선교지에 서구의 기독교를 심는 (implanting)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내부자 운동은, 첫째, 기존의 사회 문화적 네트워크를 유지한 채, 그 관계를 따라 복음이 증거되며, 기존 공동체 (pre-existing communities)의 틀 안에 새로운 신앙고백이 담겨지는 형태의 교회로 발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내부자 운동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후에도 기존의 사회-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retaining their socio-religious identity) 것을 지지한다. 

 

그런데 Lewis의 내부자 운동에 대한 정의는, C4와 C5 공동체 모두를 포괄하는 것처럼 보인다. Lewis 는 내부자를 “retaining their identity as members of that community while living under the Lordship of Jesus Christ and the authority of the Bible” 로 정의하고 있다. 피선교 대상의 신앙(고백)적 정체성이라 하지 않고, identity as members of that community로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에 따르면 내부자 운동은 C4, C5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C4도 문화적 면 뿐 아니라, 옛 종교의 외형적인 면 중에서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한) 상당부분을 수용함으로써 무슬림 공동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내부자 운동의 이론가인 Kevin Higgins 는 내부자 운동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A growing number of families, individuals, clans, and/or friendship-webs becoming faithful disciples of Jesus within the culture of their people group, including their religious culture. This faithful discipleship will express itself in culturally appropriate communities of believers who will also continue to live within as much of their culture, including the religious life of the culture, as is biblically faithful. The Holy Spirit, through the Word and through His people will also begin to transform His people and their culture, religious life and worldview.  

 

Higgins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내부자 운동의 성격을 설명한다. 기존 사회적, 종교적 영역을 유지한 채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공동체의 문화적, 종교적 틀이, 외부에서 유입된 기독교적 문화, 종교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과 성경 말씀의 인도 아래 내부자 신자들에 의해 선택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Higgins는 무슬림의 정체성을 “within their religious culture” 또는 “including the religious life of their culture”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무슬림 정체성을 외적인 종교의식에 참여함으로서 정립되는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신앙고백을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만약 C5 공동체를 규정하는 “무슬림 정체성”이 단순히 외적인 예배형식, 종교적 의무만을 의미한다면, C4 공동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C4 공동체 전략도 문화적, 사회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도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한) 이슬람적 예배와 종교의식을 받아들임으로서 무슬림 공동체 내에 생존해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기 때문이다. 만약 C5 공동체의 “무슬림 정체성”이 샤하다 (신앙고백) 전체의 수용, 꾸란의 하나님 계시성 등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내부자 운동은 혼합주의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C5를 C4와 구별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이슬람 (또는 무슬림)의 정체성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샤하다 (이슬람 신앙고백) 전체를 수용, 무함맛과 꾸란에 대한 긍정적 태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신앙고백적 면을 제외하면, C5 공동체의 무슬림 정체성은, 기존 기독교 세계와의 단절이라든지 자신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무슬림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무슬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C5 내부자 운동 이론가들이 이 부분에 대한 설득력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C5 공동체 전략은 C4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 Timothy Tennent의 견해가 더 설득력이을 갖게 될 것이다.  

 

2. Christianity 대신 Kingdom of God을 주 개념으로 하고, 이슬람 정체성 유지하는 C5 공동체를 Kingdom of God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관점에 대해. 

 

Lewis는 Kingdom Circles 다이어그램을 통해 C5 전략, 즉 전통적인 교회, 기독교를 거치지 않고 무슬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자 공동체 형성 전략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초대교회 당시 이방인들이 유대교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무슬림들은 전통적인 서구 (크리스텐덤) 기독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기독교 개념을 하나님 나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흥미로운 신학적 쟁점들을 제기한다. 

 

A. Lewis는 내부자 운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로서 “Kingdom Circles” 모델을 제시한다. Kingdom Circles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기 위한 정체성을 다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영적 정체성 (spiritual identity)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종교적 정체성 (socio-religious identity )이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의해) 새로운 영적 정체성을 얻어야(거듭나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교 배경의 신자들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새로운 영적 정체성 (anew spiritual identity)를 얻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지만, 유대교적 율법과 예배형식 면에서는 기존의 사회-종교적 (Jewish socio-religious)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내부자 운동의 무슬림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새로운 영적(spiritual) 정체성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지만, 사회-종교적 (socio-religious) 정체성은 여전히 무슬림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Over the centuries, “Christianity” has become a socio-religious system encompassing much more than simply faith in Christ. It involves various cultural traditions, religious forms, and ethnic or political associations. While many people who call themselves Christians have truly believed in Christ and entered the Kingdom of God (F), others have not, though they may attend church (G). The Acts 15 question is still relevant today: Must people with a distinctly non-Christian (especially non-Western) identity “go through” the socio-religious systems of “Christianity” in order to become part of God’s Kingdom (H)? Or can they enter the Kingdom of God through faith in the Lord Jesus Christ alone and gain a new spiritual identity while retaining their own community and socioreligious identity (I)?   

 

Lewis의 “Kingdom Circles” 모델 통한 설명은, 무슬림 선교의 핵심은, 그들의 사회적-종교적 정체성 (socio-religious identity)의 변화가 아니라 영적 정체성 (spiritual identity)의 변화에 있음을 일깨워주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Brad Gill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의 회복은 C5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고 평가한다. 즉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기존 기독교회와 단절된, 새로운 형태의 C5 신자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 수용의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평가한다. 

 

우리가 “나라(kingdom)” 라고 할 때에 그것은 의미에 있어서 넓은 영역의 셈어적 국면을 통합하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신학적 용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교회나 교회론, 그리고 크리스텐덤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C-5 운동을 고려하는 그 틀로서 기독교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허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해석학과 함께 사고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라는 프리즘은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 경험을 통하여 만들어 내었던 문화적 부착물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다. 우리가 간과하였던 하나님 나라 신학의 국면들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와 종교적 프런티어의 교차적 만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심도있게 조명할 수 있게 되고 자유해진 점이다. 

 

B. 그런데, “하나님 나라 신학의 프리즘”이 C5 공동체 문제를 좀 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Gill의 주장은, 선교현장 사역자들에게 다양한 신학적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혼합주의 문제 등 교회론적으로 여러 쟁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1) C 5 공동체에 대한 토론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가시적 교회에 대한 토론이다. 그런데 교회론, 특히 가시적인 교회 공동체에 대한 토론을, 추상적인 하나님 나라 관점과 결합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비추어 C5 공동체의 교회론적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은 쟁점을 모호하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복음을 통해 새로운 영적 정체성(spiritual identity)을 얻게 될 때,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영적 정체성은, 새로운 사회적-종교적 정체성으로 구체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고 여러 실제적인 고려가 수반되는 과정이다. 초대교회와 기독교 역사는, 복음으로 주어진 새로운 영적 정체성 역사적 과정을 통해 어떻게 가시적인 교회 공동체로 형성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공의회 (행 15장) 논의, 고넬료 가족의 집단개종, 사마리아 마을의 집단개종 등은, 과거의 비복음적 고백에 기초한 공동체와 구별되는 새로운 고백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졌다. 기존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한 경우(유대교 배경의 믿는 자 공동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종교 정체성과 구별되는 새로운 (고백) 공동체로 발전했다. 성경적 교회관 (특히 서신서에 나타난 교회관)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산물이다. 오늘날 기독교 (Christianity)의 정체성은 바로 이 과정의 결과이다. 한편 기독교의 역사적 정체성은 Global church로의 발전을 통해, 전세계가 공유하는 기독교 정체성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다이어그램 (figure 3)에서 Christianity를 유대교와 Hellenism과 같은 수준에 놓고 설명하는 Lewis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Christianity는, 유대주의, 이방종교 등을 극복하면서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복음적 공동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Christianity를 서구문화에 기초한 Christendom으로 이해하는 Lewis의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3) 한편, (복음에 상충되는 신앙고백이 중심이 되는) 타종교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Kingdom of God 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양립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개인의 경우와 공동체의 경우를 구별해야 한다. 즉, 개인적 차원에서 타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Kingdom of God 정체성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신자들의) 공동체 차원에서, 복음의 핵심적 고백을 부정하는 타종교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복음적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공동체 차원에서 항구적으로 타종교 정체성 유지하면서 Kingdom of God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라 보기 어렵다. 

 

4) Lewis의 Kingdom Circles 모델은, Global church 로 발전된 오늘날의 상황속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Global church는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교회들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하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C5 공동체는, 기독교 세계와의 단절이 아니라, Global church의 일원으로서 기독교 본질을 공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C5 내부자 운동 공동체가 Globalized 기독교와의 연관성까지 부정할 것인가? 라고 질문해야 한다. 

 

5) Philip Jenkins 는 그의 책 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 (2002)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서구 기독교로 정의될 수 없으며 전세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교회들로 이뤄진 Global Christianity 시대가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세계적인 관점들의 대두는, “기독교가 무엇을 믿는지” 또는 “교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묻기 전에 우리가 좀더 진지하게 숙고하길 요구하고 있다. … 우리 생애 동안 서구중심의 기독교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으며, 2/3세계 기독교 (Southern Christianity) 시대에 들어섰다. 이 변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며 계속 진행될 상황이다. 지난 밀레니엄 을 끝맺음하면서 소란을 피웠던 모든 미디어에서 이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기념비적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서구 사회는 세속주의 물결 속에서 크리스텐덤의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다. 서구 중심의 크리스텐덤 기독교 논의는 무의미하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Christianity) 정체성을 논하려면, 2/3세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에 의한 기독교 정체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2/3세계 “Majority Church”는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있으며, 이는 서구 중심의 크리스텐덤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서구 중심의 Christendom Christianity (기독교)의 관점이 아니라 Global church 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규정했을 때도, C5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가 기존 기독교회들과 단절한 상태에서 이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가? 만약 (C5) 신자 공동체가, Kingdom of God에는 속하지만 Global church와는 단절을 주장한다면, 과연 이 공동체는 복음적 고백을 담는 새로운 영적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가? 이슬람 정체성을 유지한채 복음적 영적 정체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C5 공동체는 Global Christianity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3. 기독교적 정체성의 연속성 문제: C5 공동체는 보편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가?

C5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가, 사회-종교적 정체성의 면에서는 Global church와의 불연속성을 지향하되, 영적 정체성이란 면에서는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불연속성과 연속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영적 정체성 차원에서의 연속성은 유지하되 사회-종교적 정체성 차원에서는 불연속성을 고수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내부자 운동 토론이 제기하는 흥미로운 쟁점 중의 하나는 “Christian Identity”에 관한 토론이다. 과연 그리스도인 또는 기독교회의 정체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 정체성은 교회가 위치한 토착문화와 어떤 연계성을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신약학자인 William S. Campbell은 신약성경 연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그의 책, Paul and the Creation of Christian Identity (T&T Clark, 2008)에서 초기 기독교회 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바울 사도가 갖고 있는 관점을 중심으로 대한 자신의 연구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Brad Gill은, Campbell 이 이해하는 (기독교적 정체성에 관한) 바울 사도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Over a couple of chapters he gives a masterful recasting of the book of Romans. In doing so, he does not permit post-Reformation theological 

priorities, nor his own original assumptions, nor the imported themes of other epistles, to cloud the unique contextual challenge Paul faced in this Roman context. The Judaizing-infested context of Galatians cannot be assumed here in Rome. Campbell’s interpretation of Romans, therefore, reverses the typical reading of Paul as absolutely negative to Jewish law, circumcision and synagogue. Romans, Campbell contends, is actually Paul’s first defense of the Jewish way of life amidst the dominance of a gentile Christian movement in that city. So, Paul’s idea of conversion does not require an obliteration of a distinctly Jewish past. In Campbell’s hands, Romans is a testimony that both Jew and Gentile were able to accept their own ethnic particularity as they submitted to that transforming process we know as conversion. 

 

바울은, 초대교회 기독교적 정체성을 정립한 사도였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정서와는 반대로,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반-유대(문화)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로마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유대주의를 변호하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초대교회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다고 Campbell은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Campbell은, 초대교회 기독교적 정체성은 복음이 뿌리내리고 믿는 자의 공동체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에 언급된 로마 교회는 배타적으로 유대 문화를 보전하면서 그 위에 복음이 얹혀진 형태로 기독교적 정체성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로마 상황, 이방인 문화, 그리고 유대교적 전통과 상호작용하면서, (기존문화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이 세워질 수 있도록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로마서는, 로마교회가 유대교적 종교/문화적 전통이 더 많이 수용된 예루살렘교회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지만, 동시에 (초기 기독교 정체성의 텃밭이었던) 유대교적 전통과도 연계되면서 새로운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웠음을 보여준다. . 

 

Campbell의 논의는, 이슬람 상황에서 이슬람 문화/종교적 전통을 수용하면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세워가는, 이슬람 상황에서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C5 운동에 신약성경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의 논의가 (이슬람의 신앙고백 수용까지 주장하는) C5 방향성을 지지하는 것인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4. 이슬람 내부자 운동에서 선교사의 역할: 주도자인가? 동반자인가? 

A. 이현모 교수의 주장- “존 트라비스의 ‘내부자 운동에 있어서 동반자의 7가지 역할: 최근의 실례 및 성경적 고찰’에 대한 논찬의 글” 에서 이현모 교수는, 전통적 교회와의 불연속성 (단절) 속에서 복음적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C-5 내부자 운동의 경우, 동반자로서 선교사의 역할이 간과되는 면이 있었음에 동의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이현모 교수는 C-5 내부자 운동에서의 선교사 역할을 동반자(Alongsider)로 규정한 트라비스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동반자의 의미를 제시한다. 트라비스는 동반자의 의미를 “예수 신앙의 여정에 있는 내부자들과 함께 동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다른 문화 및 지역에서 온) 외부자들” 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동반자란 두 종류의 사역자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이슬람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시에 이슬람 사회 내부에 생존가능한 공동체 형성에 협력, 동역하는 (외국인) 선교사이며, 다른 하나는, 동일한 태도를 갖고 사역하는 인접 문화에 속한 현지인 무슬림 사역자를 의미한다. 

내부자 운동에 있어서 외부인으로서 선교사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C-1, C-2 공동체를 지향하는 무슬림 선교사들은, 설사 그들이 무슬림 전도와 무슬림 배경의 믿는 자 공동체 설립에 관여하더라도 외부인 사역자라 할 수 있다. C-3부터 C-5가 지향하는 믿는 자의 공동체 설립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은, 내부자 운동에 참여하는 사역자들로서, 중간자로서 동반자적 성격을 갖는다. 

 

C-3부터 C-5 공동체 설립에 관여하는 선교사 중에서도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C-3 공동체 설립에 참여하는 선교사는, 전통적인 기독교회의 터 위에서 이슬람 상황에 생존 가능한 믿는 자의 공동체를 세우려 하는 반면, C-4 공동체 설립에 참여하는 선교사는, 무슬림 정체성을 거부하지만 동시에 전통적 교회체제와의 동일화에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이사를 따르는 자”들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C-4 공동체 설립 지향하는 운동은 장기적으로는 전통적인 교회와의 연속성, 무슬림 (신앙) 공동체와의 불연속성으로 귀결된다고 봐야 한다. 선교사의 동반자로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이 방향으로 영향을 준다고 봐야 한다. 

 

이에 반해, C-5 공동체 설립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은, 복음에 적대적인 이슬람 사회, (종교) 공동체와의 연속성을 유지하려하기 때문에, 전통적 기독교와의 연속성을 부정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불확실하지만 , 내부자들의 자신학화 능력을 믿고 곁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내부자 스스로, 이슬람 사회의 용납을 이끌어내고,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적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교회론을 정립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반자로서 선교사의 역할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비록 중간자로서 내부자 스스로 교회론을 신학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는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영향이 내부자 운동의 방향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성경해석의 안내자인 역사적, 신학적 배경이 없는 내부자들이, 스스로 성경해석만으로 교회론과 신학적 관점들을 정립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때문에 이들의 자신학화 과정은, 중간자이며 동반자인 선교사들의 관점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선교사가 내부자 주도를 위해, 이슬람 세계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내부자들에 의한 자신학화 과정을 일체 관여하지 않게 되면, 이들의 성경해석과 신학화 과정은 혼합주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과연 이렇게 형성된 C5내부자 공동체가 여러 세대가 지난 후에도 이슬람 공동체 전체를 향한 복음적 영향력을 바로 세워나가는 공동체로 지속될 수 있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B. 귀납법적 성경공부 통한 내부자 주도의 새로운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신학 형성의 가능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C5 (공동체) 전략은, 기존 전통적 기독교와의 연속성을 부정하면서, 내부자 스스로에 의한 자신학화 활동을 통해 이슬람 문화에 기초한 성경적 교회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의 틀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C5 내부자 공동체 전략은,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의 본질을 세워감에 있어서 기존의 신학과 전통의 안내를 거부한다. 성령의 인도에 의존하는 귀납법적 성경연구가 새로운 공동체의 신학을 위한 주요 도구가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인식론적으로 설득력 없다. 기존의 신학과 전통의 안내를 거부한 채, 내부자들 스스로 성경연구 통해 성경적인 교회관 (교회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해석행위는 인간의식에 내재해 있는 선이해 (pre-understanding)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적 검증을 통해 정립된 기독교 신학, 교회론의 안내 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내부자의 성경연구만으로 이슬람 사회에 생존 가능한 교회론을 정립할 수 있다는 믿음은 naïve하다. 이 시도는 다음 두 가지 극단으로 흘러갈 위험을 내포한다. 하나는, 이 운동을 촉발하고 안내하는 외부인 선교사들의 신학, 관점이, 편견없는 성경적 지식이란 이름으로 (백지상태의) 내부자 세계관을 조종할 수 있다. 다른 위험은 전통적 기독교와 단절된 내부자는, 자신의 사고를 뿌리깊게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 세계관에 의해 성경해석과 교회 틀을 세우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이는 혼합주의로 흘러갈 위험을 포함한다. 

 

중간자로서 선교사는, 전통적인 교회와 신학의 안내 없이 내부자들이, 역사적 교회의 2천년 시행착오를 뛰어넘어 편견없는 신학, 교회론을 세울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오히려 정직하게, 역사적 전통적 신학과 교회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동시에 이슬람 신앙과 세계관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분석을 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슬람의 왜곡된 신앙관을 극복하고 동시에 전통적 기독교가 세운 편견의 벽을 허물면서, 이슬람 상황에 적합한 상황화된 제3의 형태의 교회관, 교회론을 세워가야 한다.  

 

5. 내부자 운동에 대한 성경적 근거: 행 15장의 쟁점을 중심으로.  

내부자 운동 (C4 와 C5를 막론하고)을 평가함에 있어서 성경적 근거에 대한 토론 역시 중요하다. Kevin Higgins와 Timothy Tennent가 행한 사도행전 15장의 의미에 대한 토론은 내부자 운동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 중요한 의미을 갖는다.  이 토론의 의미를, 이현모 교수는 그의 글, “ ‘내부자 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내부자 운동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Higgins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특히 20절에서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의 의식과 표현(대표적으로 율법과 할례 요구)도 지킬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신의 사회적 직조물 내부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주께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부자 운동’의 근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Tennent는, Higgins의 견해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분명히 한다. Tennent는 사도행전 15장의 논의 핵심은, 기존의 종교적 정체성 (유대교적 정체성과 이방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으라는 결론이다.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새롭게 형성되는 기독교 공동체 (교회)는 유대교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네가지 가장 단순한 금지 규정을 제시함으로써 이방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함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이 토론에 대해 이현모 교수는, Higgins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두 사람의 토론에 대해 자신의 결론을 제시한다. 현 시점에서 연구자의 비평을 제시하여 본다면 사도행전 15장의 해석은 히긴스의 주장대로 어느 정도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평한다. 15장 진입부의 질문은 문화적 영향을 얼마나 인정하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았느냐 라는 신학적 질문이다. … 할례나 율법은 유대교 배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문화적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이 구원받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이들의 종교적 정체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보아야 한다. 테넌트는 20절의 요구를 이방 종교의 핵심을 떠나라는 종교적 정체성의 결별이라고 보았지만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근거한 문화적인 것이며 음행은 윤리적인 것이라고 보이지 이방 종교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상의 더러운 것을 피하라는 것이 유일한 신학적 요구로 보이는데 이것도 8-11절의 베드로의 주장에 연관시켜 보았을 때 구원과 관련된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유대교회와의 최소한의 공통 요소를 제시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더 비중을 가질 수 있다. 즉 유대 배경의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구원의 핵심 요인을 제외하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존 기독교(유대교 배경)의 어떠한 형식이나 의식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현모 교수는, 사도행전 15장의 쟁점이 구원의 문제, 즉 믿는 자들의 영적 정체성 (spiritual identity)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현모 교수의 결론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사도행전 15장 토론 참가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길임을 동의하고 있다. Lewis의 Kingdom Circles 모델을 적용한다면, 사도행전 15장 토론에서 영적 정체성(spiritual identity)의 문제에 대한 갈등은 없었다. 단지, 유대주의 문화적-종교적 형태의 수용 여부, 즉 유대주의 문화-종교적 정체성 (cultural-religious identity)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영적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가 여부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 토론은, 구원론에 대한 토론이라기보다는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의 형태, 즉 교회론에 대한 토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 이현모 교수의 견해는, 사도행전 15장 회의가, 이 회의 후 전개된 초기 교회론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논의된, 할례와 율법 준수 등은, 신앙 고백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고백을 담는 종교행위에 대한 토론이므로, (구원론보다는) 교회론적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때문에, 사도행전 15장 토론의 결론은, 이후 구원론 논의보다는 새롭게 형성될 교회의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지침으로 적용되었다. 내부자 운동에 대한 쟁점 역시, 예수 그리스도 주되심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이 고백을 담는, 가시적이고 역사적인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15장 토론은, 새로운 영적 정체성을 담아낼 교회가, 유대교 율법과 할례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와야 할 뿐아니라, 동시에 이방문화에 대한 불연속성이 함께 강조되었다. 이 회의가 금한 네 가지 조항,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 하는 것” 등이 유대교와의 연관되어 주어진 것이란 이현모 교수의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대주의자들은 위 사항들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강조하여 금할 필요가 없었다. 위 금지사항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위 사항들을 행하고 있는 이방인들을 향한 조항이라 봐야 한다. 즉, 이방인들의 문화-종교적 정체성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함을 강조한 결정이라 봐야 한다.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는, 유대교 전통과 이방문화-종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복음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실제 이후 초대교회의 발전과정이나 바울 서신서에 나타난 교회관은 사도행전 15장 결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이슬람 상황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내부자) 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늘날 무슬림 선교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IV. 맺는 말: 이슬람 상황에서의 내부자 운동에 대한 한국교회적 자신학화를 위한 제안 

 

1. 세계복음화 위해 이슬람 사회 내부에 생존가능하며 동시에 자민족 복음화의 촉진자로서 내부자 운동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러나 내부자 운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이슬람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면 수용에서부터, 이슬람 신앙형태, 더 나아가서 신앙고백의 수용을 주장하는 다양한 내부자 지향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슬람 선교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자신학화 토론이 가능하려면, 위의 스펙트럼을 적용하는 다양한 상황화 교회개척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 설립) 시도들을 허용하고 그 경험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2. 필자는 개인적으로 C4 내부자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러나 사역지 상황에 따라 C3 내부자 운동과 C5 내부자 운동이 병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과 기독교회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지역에서는, 과도기적 형태로서 C5 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다. 실제로 무슬림 배경 개종자/신자들에게 있어 C 스펙트럼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상황에서의 내부자 운동은 궁극적으로 C4 내부자 공동체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이 현실적인 결론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C4를 이슬람 상황에서, 건강한 상황화된 교회 (신자들의 공동체)로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이다. 

 

A. C5 내부자 공동체는, 융통성있게 허용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와 함께 가기 힘들어 보인다. 이단 논쟁이 강한 한국교회 상황을 고려할 때, 이슬람 정체성 유지를 주장하는 C5 내부자 전략을, 한국교회가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 가늠해 봐야 한다. 한인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파송을 받은 존재이므로 상황화 정도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와 함께 가야 한다. 

 

B. 기존의 다양한 토론들의 결과가 C4 내부자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본다. 전통적 무슬림 선교 전략은, 자문화 우월주의, 빼내오기식 전도전략 등으로 인해 비효율적임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복음에 적대적인 이슬람 사회 내에 생존가능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이슬람 문화,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한) 예배의식, 신앙형태 등을 수용하는 적극적인 상황화가 고려되어야 한다. C5 내부자 공동체는 혼합주의의 문제, 장기적인 이슬람 복음화의 효율성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전통적 무슬림 선교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하며 동시에 이슬람 혼합주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C4가 현실적인 무슬림 선교전략이다. 이슬람 내부자 공동체 설립 통한 이슬람 선교 자신학화 과정은 C4 내부자 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C. 선교현장에서의 경험 – 삶의 전 영역과 세계관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복음에 적대적인 이슬람 상황 하에서, 기독교적 전통을 배제한 채 성령과 성경의 안내만 의지하여, 이슬람 정체성을 유지하면도 동시에 복음적 고백의 공동체를 세워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2000년 동안, 성령과 성경의 인도 아래 형성되어 온 기독교 공동체를 부정하고, 이슬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머물면서, 건강한 내부자 (신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Global church를 통해 형성되고 있는 초문화적 해석학적 공동체 (international hermeneutic community)를 인정하고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슬람 상황에서의 자신학화 과정을 나누고, 동시에 다른 문화, 종교적 배경 자신학화 과정들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C5 내부자 운동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기독교 신학전통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인 발전이다. C5 내부자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전통적 기독교 세계와의 단절을 통한 이슬람 정체성의 유지를 지향하는 운동이지만, 적극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테두리 내로 들어와 전통적인 교회 (크리스텐덤 서구 교회든지, 아니면 Global Church든지)의 인정과 공존을 모색하는 상황은 긍정적이다. 

 

D. 마지막으로, 이슬람 세계의 미래에 대한 토론이다.  이슬람의 미래가, 근본주의 이슬람의 득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개혁주의적이며 포스트모던 세계관과의 공존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양한 예측이 있지만, 필자는 후자의 방향으로 이슬람 사회, 이슬람 문명이 흘러갈 것이라 예측한다. 만약 후자로 이슬람 문명이 변화가 이뤄진다면 C5 내부자 운동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오히려, (성경적으로 용납 가능한, 이슬람의 문화적, 종교적 면을 수용하여 개종자 공동체의 이슬람 사회 내 생존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되) 정직하게 기독교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진리대결의 형태로 이슬람 신앙과 직면하는 것이 정당한 선교적 표현이 될 것이며 이것이 더 효과적인 무슬림 선교전략이 될 것이라 믿는다. 

 

3. 무슬림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은 크게 세 형태로 구분될 수 있다. 전통적인 선교방법론 지향하는 선교사, C5 내부자 운동 지향하는 선교사, C3 또는 C4 방향성을 갖고 무슬림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사 등.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 상황에서의 자신학화 토론을 위해서는, 무슬림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이 자신의 선교전략적 관점을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열린 토론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방법 즉 이슬람 사회로부터 무슬림 배경 신자들을 빼내와 기존 전통적 교회에 합류시키는 방법을 고집하기보다는, 개종자들이 내부자로 남아 자민족 복음화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상황화 전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동시에, 무슬림 선교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를 갖고 C5 내부자 전략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토론의 장을 통해 균형잡힌 전략을 세워갈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 상황에서의 자신학화 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실험적인 선교 방법론에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실험이 계속되며, 그 결과들이 열린 토론의 장에서 나눠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95. 설악포럼 2014-8: 기독교 영성에 기초한, 이슬람과의 대화 (문상철, 한국선교연구원)
     93. 설악포럼 2014-6: 로잔의 무슬림 선교 방향-옥스포드 컨설테이션에 참여하고서 (정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