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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4-3: 이이벽의 유교적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학화 이해 (권성찬, GBT)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8 17:31:40]  HIT : 616  

이이벽의 유교적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학화 이해

권성찬, GBT

 

한스 큉은 경직된 본질주의를 반대한다. 그는 “지속적인 본질은 오직 변화하는 것 속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머물러 있으면 본질과 형태가 섞이면서 본질의 파악이 어렵지만 그것이 다른 문화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형태와 만날 때 무엇이 본질인지가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민 사네가 여러 문화에 걸쳐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근거로 번역가능성 (Translatability)을 언급한 것이나 , 앤드류 월스가 기독교는 주변 문화로 이동함으로 오히려 살아남았다고 한 것은  모두 이러한 변화 속에서의 본질 발견 혹은 본질 회복에 대한 통찰력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문화가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과정을 앤드류 월스는 3가지의 단계로 설명했는데 첫 번째는 선교사 단계 (missionary stage)로 바울과 같이 새로운 문화에 열린 외부인이 새로운 문화 방식과 새로운 언어의 표현 방식으로 전달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새로운 문화로 깊이 들어가도 정체성의 문제를 겪지는 않는다. 두 번째 단계는 회심 단계 (convert stage)인데 내부자가 복음을 만나며 일어나는 단계이다. 저스틴의 경우 헬라 지성인으로 철학의 궁극적 목표인 신을 보는 것을 추구하다가 헬라 철학에서 보지 못하는 신을 복음을 통해 만나, 성경의 내용을 헬라 철학적 담론으로 담아내었다. 그가 겪은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기존 문화인 헬라 문화 안에서 가진 지적 정체성과 새롭게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이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성경 말씀을 붙잡았으며 자신이 받은 헬라 유산을 성경 말씀으로 평가하고 교정하였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사도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의 의미보다 더 확장된 의미 (이성 포함)의 로고스 개념이 나오게 됨을 월스는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재형성 단계 (refiguration stage)로서 오리겐과 같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랐지만 동시에 기독교 이전 문화 유산을 물려 받은 세대를 말한다. 양쪽 문화 모두에게서 긴장을 느끼지 않기에 또 다른 의미에서 정체성의 문제를 겪지 않고 자신의 유산을 모두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단계이다. 

 

이런 앤드류 월스의 설명을 빌어 이벽을 파악해 본다면 두 번째 단계인 회심 단계와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며 마치 저스틴이 헬라 철학 안에서 궁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좌절하다가 그리스도안에서 헬라 철학의 궁극인 원형 로고스 (The Logos, logos sperimatikos)를 발견한 것과 같이 이벽 역시 유교가 추구하던 궁극으로서의 성(誠)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였다. 이벽이 유교적 유산과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정체성의 갈등을 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며 그런 가운데 복음의 유교적 표현을 한 것은 참으로 높이 살만한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벽의 자신학화 논의는 복음에 대한 유교적 표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머물기 보다 그렇게 유교적으로 표현될 때 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무엇이고 유교적 이해가 기독교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는 것이 자신학화 논의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벽이 이해한 기독교의 본질과 유교를 통한 확장 

공자 이전에는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늘” 개념이 있었는데 통치자들이 하늘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 빈번하여 공자는 인격적인 하늘보다 사람의 도리인 “인”(仁)을 강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발전하여 주자학에 이르면 윤리적 완성을 목표로 하고 예법이 강조된다. 조선의 유학은 바로 이 주자학이었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절대자로서의 하늘대신 비인격적 유물론적 하늘의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은 결국 공리공론에 빠지게 되고 과중한 부담을 주는 무의미한 예론(禮論)만 발전시킨다. 이벽은 이들을 바리사이 무리들이라고 욕하며 그 음역된 바리사이(法利賽) 글자에 입구(口)자를 적어 넣어 풍자한다. 이벽은 주자학에 머물지 않고 본래의 유학을 깊이 연구함으로 하늘의 도리와 인간의 도리가 합일되는 성(誠)을 추구하게 된다. 誠은 공자의 仁보다 더 고차원적인 개념으로 공자 자신도 誠을 소유한 인간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였다고 한다. 성은 “평범한 인간생활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를 뜻하는 데서부터 멀리는 지극히 높고 고귀한 절대자 하느님의 본성과 그 속성까지 연결이 닿는 개념이다.” 

 

유교의 핵심 개념인 誠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한 이벽의 기독교 본질 이해는 곧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다. 새로운 문화로 넘어갈 때 본질이 드러난다는 서론의 설명을 비추어 생각한다면 이벽이 가진 유교적 틀에서 이해한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다. “삼위 가운데 제2위이시고 인륜에 나시어 오륜에 머무시도다 (3장5-6).”라는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은 이벽이 이해한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는 말씀(言)의 완성(成)으로서 선재하신 그리스도 (High Christology)를 이해하면서도 그 그리스도가 단순히 세상에 오시었다는 개념을 넘어 오륜에 머무시는, 즉 완전한 인간의 길을 보여주시는 (Low Christology) 분으로 이해된다. 결국 이벽이 이해하는 기독교의 본질은 하늘 진리 혹은 하늘의 도리를 단순히 전해주는 자로서가 아닌 그 하늘 진리 혹은 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이 인간의 도리로 구현되는 계시 자체요 계시의 완성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전한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며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제 오륜은 인간 노력으로서의 정성이 아니라 완전한 하늘의 도리가 인간의 세상에서 완성되는 誠으로 이해됨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의 윤리적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는 가벼운 구원 이해로 삶의 진지함을 잃어버린 극단과 인간의 도리만을 강조하여 바리새적인 종교주의에 빠진 극단을 모두 극복하는 총체적이고 통합된 기독교 이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를 성(誠)의 준거틀로 이해한 이 유교적 이해는 하늘의 도리와 인간의 도리를 이분법적으로 나눈 서구적 기독교의 한계를 너머 통합적이고 더욱 진실한 기독교를 제시한다. 율법주의를 거부하시나 율법의 완성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아버지를 보신 유일한 자이면서 완전한 인자로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이해함에 있어 성(誠)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노력으로서의 정성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 혹은 하늘 진리의 구현으로서의 진실된 삶, 윤리적인 삶 등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극단적 구원주의에 식상한 오늘날 기독교가 선교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윤리의 가치를 재고하고 있는 이 때에 유교적 준거틀로 그리스도의 본질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가능성을 보여 준 이벽의 자신학화 과정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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