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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4-2: 유교와 그리스도교 (권성찬, GBT)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8 17:29:16]  HIT : 775  

유교와 그리스도교 

(이성배 신부님과의 만남-2012년 9월 7일, 대구 만촌1동 성당-과 책을 중심으로)

권성찬, GBT

 

9월 7일 설악포럼 위원회원 전원을 포함한 몇몇 사역자들이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저자이신 이성배 신부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대구 만촌1동 성당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왜 이러한 “자신학화”논의를 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고 각자를 소개한 후 이성배 신부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와 책을 중심으로 간략히 요약한다.

 

서론: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된 배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천주교의 미사를 라틴어로 드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혁이 일어나고 이성배 신부는 신학교 시절에 이러한 개혁을 맞이하면서 인간적인 가치, 초대교회의 호교론, 그리고 초대교회 당시 이스라엘의 유대교 가치 위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졌지만 그 이 후 로마로 복음이 전파되면서 유대교의 관습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던 것 등에 대해 반추하며 신학교 시절 폭 넓게 배우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성균관 대학교 유승국(유교) 교수의 2달 특강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공자 이전의 天의 사상, 공자의 仁의 사상, 그리고 주자학에서는 誠의 사상. 그리고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도 誠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天仁誠 등 참된 진리와 바른 삶을 동양에서 이미 가르쳐 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중용에서 정성 誠자를 찾아보고 그것이 사용된 문맥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가 誠임을 보게 되었다. 이성배 신부는 잠시 책의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책 뒷면에 있는 십자가도 誠자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음을 표현하였고 문양에 나타난 용은 유교에서(공자 자신도) 높고 신비로운 인물을 용에 비유하며 이벽도 예수님을 용으로 표현하였기에 용 그림을 넣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계시를 서양의 철학의 바탕에서 발전시킨 것이 서양 신학이라면 하나님의 계시를 한국 혹은 동양 철학 (사상)의 바탕에서 발전시킨 신학을 해 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파리 가톨릭 대학에서 수학하게 되었는데 루터 권위자인 다니엘 올리비에 교수가 지도 교수가 되었다. 한국가톨릭사의 옹위라는 책을 쓴 주재용 신부(1895-1975)는 그 책에서 이벽이 쓴 성교요지가 있는데 자신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이벽의 천주 공경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하성래 교수의 천주 공경가 해설이 있었다. 당시 이미 이벽의 위치는 교회사에서 확실하였기 때문에 그 분의 글이 있었다면 그것은 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양선 교수(1907-1970, 숭전대 박물관장)가 6.25 동란 후에 고서점에서 만천유고라는 책을 발견하고 후에 숭전(숭실)대학교에 기증하였는데 그 만천유고에 성교요지가 실려 있었다.

 

성교요지는 한문으로 쓰였는데 유학 시절 같이 불어 어학 공부하던 중국 친구에게 성교요지에서 알아보지 못한 그 중국 글을 써 달라고 하였고 이옥 교수 (파리의 한국한 교수)를 찾아 가니 자신도 자신이 없다며 이계선 신부 (계성 중고의 교장 신부를 하신 분, 벨기에 유학)를 소개하여 주었다. 이계선 신부는 자신이 돕던 여자들이 북으로 가면서 오해를 받아 귀국을 하지 못하고 유럽에 남아 공부만 한 분으로 후에 논문 지도 교수 역할도 하였다. 이 연구는 단순히 동서양의 비교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국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고 이 공동체를 태어나게 한 것이 이벽과 그 외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 이벽의 글이 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1장은 당시의 역사를 요약하였고

 

제1장 : 이벽과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 및 발전 

1. 유학자들을 통한 그리스도교의 발견

1583년 10월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를 시작한 이래 많은 교회 서적이 한문으로 출판되고 북경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 유입되었다. 실학을 일으킨 유학자들에게 전해지고 피상적인 비판이 있었다. 18세기 말에 본격적인 기독교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이벽이 있다. 

 

2. 이벽 - 그 인물과 시대 상황

광암 이벽은 세례명이 세례 요한이다. 175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무관 집안이나 이벽은 학문의 깊이가 깊었다. 이벽의 누나가 정약용의 큰형인 정약현과 혼인관계를 맺어 약전, 약종, 약용 형제들과 가까지 지냈다. 

 

3.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와「천주공경가」 

1777년(혹은 1779년) 당대 제일의 유학자 권철신이 제자들과 강학회를 열고 여주 주어사와 천진암을 오가며 반추하는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벽을 이들에게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눈덮인 산을 넘어 그들을 찾아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하며 서학에 대한 토론도 하였다. 강학회를 끝내며 이벽은 한글로 기록한 “천주공경가”를 지었다. 

 

4.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된 이승훈 (정약용 매형)에게 이벽은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성물을 가져 오도록 요청한다. 이벽은 이미 서적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훈은 1784년 2월 북경에서 프랑스 선교사 그람몽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여러 서적과 성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5. 최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1) 이벽의 회개 

이승훈에게 받은 책을 가지고 깊이 연구한 끝에 기독교에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 하기 시작하였다.

2) 최초의 복음전파 시도 

이벽은 우선 가까운 지인들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중인 계급에도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에 의해 최초로 입교한 사람들은 최창현, 최인 길, 김범우, 김종교 등이었다. 

3) 이벽이 다산 정약용에게 미친 영향 

이벽은 특히 8살 아래인 정약용과 가까지 지내며 학문을 나누었는데 정조대왕이 중용에 관한 70조목의 문제에 대해 정약용이 답한 내용은 이벽의 도움이 컸다. 특 별히 중용에 대한 이벽의 이해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중용에 대한 다산 정약용의 이해는 이벽의 사상을 알 수 있는 단초가 된다.  

4) 교회의 설립 

1784년 이벽은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선구자 답게 세례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택했다. 수표교 이벽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모이다 후에 공동체가 커져 1785년 명례 방 (명동)에 사는 중인인 김범우의 집으로 옮겼다. 

 

6. 반대하는 사람들 

여러 유학자들이 이벽의 마음을 돌이키려 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설득 당하였다. 하지만 후에 서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이 일어나게 된다.

 

7. 박해 

1785년 3월 김범우 집에서 있던 집회가 발각나 (을사추조적발사건) 양반의 자제들은 풀려났으나 중인인 김범우는 옥에 갇히고 2년 동안 고문당하고 귀양 끝에 죽으니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다. 

 

8. 순교자냐 배교자냐 

가문의 체면이 손상되자 이벽의 부친은 자살을 하려하고 이를  본 이벽은 부친에게 양보하고 광에 갇혀 있다가 1786년 33세로 끝내 죽음을 맞았다. 이에 대해 프랑스 달레는 이벽을 배교자로 해석하였으나 이성배 교수는 그러한 해석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로 해석하고 재평가한다. 

 

9. 이벽 이후 이승훈의 활동 

이벽 사후 이승훈이 모임을 인도하고 여러 사람에게 신품(성직 권한)을 주지만 곧 중지하고 북경 주교인 구베아 주교에게 적합여부를 물었으나 심한 꾸짖음을 듣게 된다. 특히 제사 문제로 인해 심한 박해의 빌미가 된다. 1794년 4000명의 신자들이 있었으며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몰래 입국하였고 5년 후인 1800년경에는 1만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10. 박해를 통한 시련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 

이후 조선 교회에는 1801년 큰 박해가 일어나 주문모 신부, 이승훈, 권철신이 처형되고 정약용의 셋째 형 약종은 참수형, 그리고 정약용과 둘째 형 약전은 귀양을 가게 된다. 이 후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이 평신도 지도자로 나서 성직자를 조선에 모셔 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또 김대건, 최양업이 마카오로 보내져 최초의 한국인 사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1831년 조선 교구 설정, 이어 1835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고 성장의 계기가 마련되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다. 

 

11. 선교 자유와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 

19세기 말에 조선은 문호를 열게 되고 1886년 한불조약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외굑적인 보호아래 활동하게 된다. 한국천주교회는 뮤텔 주교 활동 기간에 험난한 시기임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레방에 명동 주교좌 성당 (1898)이 설립되었고 18,000 신자가 127,000명으로 숫적 성장이 있었다. 

 

제2장 : 이벽의 저서 (2장에서는 원문 텍스트를 소개하였다.)

서설 :『만천유고』 

무극관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엮은 책으로 이승훈의 시와 수필, 정약전, 이가환, 이벽 등의 노래와 잡기가 들어 있다. 거기에 이벽의 글인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가 들어 있다. 이 무극관인을 정약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1.「천주공경가」 - 본문 참조

 

2.「성교요지」 - 본문 참조

한자는 분과 석을 틀로 하는 서구적 틀과는 달리 많은 것을 내포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제3장 : 이벽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학 (3장은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내용만을 교리에서 택하고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사고방식인 인간과 자연 그리고 역사의 현실이란 구체적 내용 속에서 이 교리를 소화시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사람의 유학자가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애쓴 지성의 소산이다. “성교요지”는 가장 최초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저서란 점에서 대단히 풍부한 한국신학의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1. 유학적 바탕 

한문은 다양하게 해석되기에 한문 서적으로 전해진 그리스도교 역시 다양한 논란이 있었던 만큼 그 가운데 이벽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실천한 것은 명목적인 개종이 아니라 충분한 토론과 반성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1) 공자 이전의 "하늘" 개념 

이벽의 유학은 청조의 고증학에 영향을 받은 영, 정조의 실학과 방향을 같이하면서도 좀더 종교적인 차원을 심화시킨 것이기에 유학의 전반적 발전 과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자 이전의 책인 시경과 서경에 “하늘” 혹은 “상제”란 절대자의 개념이 있었고 이런 한 상고 시대의 절대자 개념이 이벽의 “상제” 사용에 포함되어 있다. 

 

2) 공자의 "인"仁 

공자는 종교 문제에 무관심 혹은 회의적인데 이는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하느님 상제와 절대 개념인 하늘에서 멋대로 자기 합리화를 시킨 봉건 영주들로 인해 인간본위 사상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가 강조한 인은 높은 덕 혹은 상호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행위의 규범인 “예”에 거슬리지 않고 따르는 것이 “인”이다. 공자는 “인”의 개념보다 더 고차원적인 “성”의 개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는데, 이 “성”을 소유한 인간은 온 세상의 인류를 모두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공자 이후의 유교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재천명하고 사랑과 정의인 인의 사상을 정립하였다. “성”의 개념도 유교 전통안에서 발견되는데 후에 성리학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4) 중세의 유학 : 성리학 

송대에 이르러 유학을 이치(理)에 바탕을 두고 체계화한 “이학”이 발전되고 주리주의적인 유학의 흐름에 따라 중용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의 개념이 더욱 부각된다. 주희(1130-1200)가 성리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송대 이후의 이학을 주자학이라 부르며 이 주자학이 이벽의 시대에 거의 모든 유학자들이 따르고 있던 조선사회의 유학이다. 

 

5) 한국의 유학(주자학) 

한국에서 유학이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은 고려 때 송대 성리학 계통의 유학인 주자학이 들어나서 부터이다. 주자학은 윤리적 완성을 통해서 나아가는 바른 도리로서 조선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후에는 예법주의자와 파렴치한 정치가를 양성하고 공리공론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 유학의 원천을 연구하여 참다운 인간의 도리를 밝혀내고 실제 생활에서 유용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 학풍을 일으킨 것이 실학이다. 이벽은 이런 실학파들과 교제하였다. 공자 자신도 스스로 자신의 인격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한 “성”의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는 것을 보고 “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신” 그 이루어진 말씀의 신비, 하늘의 도리와 인간의 도리가 합일되는 이치를 깨달았다. 

 

2. 그리스도교 교리의 새싹 

1)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이벽은 세상 사람들보다 하느님이 먼저 계셨다는 말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존재를 이야기하지 그 하느님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규명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란 의미 속에서 쉽게 하느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천주성자의 강생과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동양사상의 요소와 섞어서 설명한다. 하느님의 속성과 그 속성을 깨닫는 방법에 대해서 이벽은 대자연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갖가지 현상과 사물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낸다. 

 

2) 인간 문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고 그렇게 하여 하느님의 의미와 인간 실존에 대한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느님과 인간을 소개하고 창12장 부터의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세상과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여 다루어 나간다.

 

3) 예수 그리스도 사건 

예수 그리스도는 성교요지의 본질적 내용으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한국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설명한다. 인물, 가정, 환경, 준비기간, 활동, 성취 등의 순서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 즉 인을 실현하는 성인군자를 생각나게 한다. 특히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가르침을 자신의 인격 안에서 성취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의 가르침을 몸소 실현하신 것으로 말의 구조상 말씀(言)이 이루어졌다(成)는 의미를 성(誠)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을 연상케 한다. 

 

4) 교회. 선교. 성사. 심판 등 

이벽에게 교회는 성교(聖敎)로서 하느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서의 교회보다 그 가르침의 진실성이 중요한 요소며 그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교회의 본질적 요소가 선교라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사명을 “성교요지”에 한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선교사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한다. 제사와 미사성제를 연결하는 의도가 보이며 심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이는 올바른 길을 걷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3. 신학적 고찰 

그리스도교 신학이 서구에서 발전된 것은 역사의 우연이며 다른 곳에서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학문적 관용과 아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벽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유교의 가장 좋고 이상적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그것을 발전시켜 그리스도교와 연결시킨 것이다. 성교요지는 호교론적 교리서 겸 윤리서이다. (선교와 윤리) 호교론적 입장에서 유학의 선비들이 믿고 있는 바탕에 그리스도교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유학의 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유학의 올바른 인생길에 대한 온전한 가르침을 그리스도교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에는 세 가지의 기본 개념 즉, “하늘”의 개념과 인간성을 밝히는 군자의 도리로서 “인”의 개념, 또 참다은 생활의 진리로서 깊고 심오한 마음과 행동의 성실성을 드러내는 “성”의 개념이다. (天, 仁, 誠)

 

제4장 : "하늘"天 (4장에서는  천인성을 다룬다. 물론 도교, 불교 등의 영향이 있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것은 유교이다. 따라서 유교의 天仁誠을 근간으로 하였다. 3경 (시경, 서경, 역경) 중에서도 주로 서경에서의 하늘(天) 사상 연구 (이가원의 책 참고)하였다. 천주실의를 저술한 마테오 리치는 마카오에서 미리 한자 1만자를 익혔다고 한다. 처음에 승복을 입었다가 후에 유생 복장을 하니 백성들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의미라는 뜻에서 그의 책 제목을 천주실의라고 하였다. 이벽은 완전히 자신의 생활을 바탕으로 천주실의 등을 통해 얻은 천주에 관한 지식을 승화시켰다.)

 

하느님 혹은 천주님은 “하늘”이란 구체적이고도 현상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여 점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천”의 개념과 그 위격적 표현인 고대 경전의 “상제”란 말에서 나왔다. 

 

1. 중국의 그리스도교 선교와 한문 그리스도교 서적의 한국 수입(16~18세기) 

유교를 종교하기 보다는 국가의 훌륭한 통치를 위한 학문으로 이해한 마테오 리치 신부는 유교의 선비들이 유학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의 선교 결실로 천주실의와 같은 책들이 기록되고 그것이 조선에 유입되었다. 유교의 타락으로 형식에 치우치던 환경에서 이벽은 서학을 연구하였다. 

 

2. 이벽 이전의 주자학자들에 의한 그리스도교와 하느님에 대한 재판 

1) 개관 - 사후 상벌 교리(일반적 관점과 천당. 지옥설) 

천주교에서 천주를 흠숭하는 이유가 죽고 나서 천당 영복을 얻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군자의 도리와는 어긋난다고 비판하였다. 

2)『천주실의』에 대한 유학자들의 비판 

공리공론에 젖은 유학자들은 피상적으로 천주교를 이해하고 유교 경전 그 자체의 정신에서 멀어진 시각을 가지고 비판을 가하였다.  

 

3.『서경』에 나타난 "하늘"의 의미 

공자 이전의 경전인 “시경”, “서경”, “역경” 모두에게서 하늘에 대한 인격적 주체가 모두 나타나지만 중국 고대 왕국인 하, 은, 주 시대의 역사적 문헌을 모아 참다운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고 역사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서경” 특히 만물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인격적 최고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닌 “상제”가 30번 이상 나온다. 

 

1) 창조주 하늘 

“서경”의 ‘하늘’이나 ‘상제’가 성경의 창조주와 명백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창조주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 하늘의 섭리 

천지창조가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책으로서 서경은 황제나 천자 위에 모든 존재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 있음을 암시한다.

3) 하늘의 심판 

“서경”에서 하늘은 호의적인 의미의 섭리와 덕과 악을 판단하는 심판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4) 하늘의 속성 

“서경”속에 인간이 사용하는 친밀하고 신비스러운 존재로서의 “하늘”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의지와 뜻을 가진 위격으로서 나타나며 호의와 분노, 바람과 연민의 정을 지닌다. 또한 명령하고 판단하며 지시하고 옹호하고 다스리며 양육한다. 

 

4. 이벽 - 하늘의 의미에서 참 하느님을 드러내기까지 

주자학에서는 하늘의 종교적인 의미는 거의 사라졌는데 조선은 이 주자학을 통치철학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벽 시대에 주자학자들도 “서경”을 비롯한 유교 경전에서 심오한 의미를 추구하였으며 특히 벼슬을 멀리한 일부 선비들은 공자의 정신에 따라 성실한 인간의 길을 찾고자 하여 유학경전의 본래적인 의미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산의 삼천 사상을 중심으로 하늘의 개념을 살펴본다.  

 

1) 자연천 

자연천으로서의 하늘은 땅 위의 모든 공간과 공기 및 모든 천체가 머물러 있는 자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해와 달로부터 나온 음양의 원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자립하는 존재일 수 없고 창조주 일 수 없으며 무로부터 만물을 만들어내는 생성자가 될 수 없다. 이벽은 이러한 자연천을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의 업적으로 보고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늘의 오묘한 변화를 말한다. “성교요지” 3편은 이 자연천의 개념과 연결하여 모든 자연 현상을 서술하고 그것을 올바른 인간의 생활과 나아가 하느님의 속성 및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라고 권한다.  

2) 상제천 

자연천의 의미가 발전하여 저연 현상에서 영적인 힘을 인식하는 범신론을 넘어 상제천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자연물신론적 사상이 중국에서는 제천사상으로 진전한 것이다. 하느님 상제에게 바치는 제사에 조상의 제사가 첨부된 것은 조상을 절대자인 신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덕을 기억하는 후손들의 정성된 효도의 표시로서 하느님 상제와 함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천주교의 성인 공경이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듯 유교의 제사는 가족이라는 혈연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상제는 “하늘”로도 불리지만 위격적 존재인 하느님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하느님 상제와 인간의 상호 관계를 밝히고 가르치는 모든 것이 교(敎, religion)이다. 이벽과 정약용 등의 저서는 상제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일치시킨 선교사들의 주장에 대해 많은 유학자들처럼 이의를 표명하기 보다 그리스도교를 통해 알게 된 참 하느님의 속성과 의미를 가지고 전통적인 하늘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고 절대자 하느님의 의미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3) 역리천 

하늘이 역리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특히 주자의 성리학 안에서 그러하다. 정다산은 옛 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느님을 섬겼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늘을 한갓 이(理)로만 알고 있다며 비판했다. 성리학은 본래 하늘의 의미에서 벗어난 역리의 하늘(역리천)만을 강조하였고 이것이 조선의 유학이었다. 주희는 이와 기의 원리를 유학의 체계 안에 끌어들여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이런 복잡한 철학 원리는 이벽으로 하여금 스콜라 신학의 그리스도교 교리 내용을 성경 내용과 더불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준비를 시켜 주었다. 

4) 이벽의 하느님 

공경하고 두려워 하며 그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절대자로서의 하늘대신 비인격적 유물론적 하늘의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은 결국 공리공론에 빠지게 되고 과중한 부담을 주는 무의미한 예론(禮論)만 발전시킨다. 이벽은 이들을 바리사이 무리들이라고 욕하며 그 음역된 바리사이(法利賽) 글자에 입구(口)자를 적어 넣어 풍자한다. 그는 상제라는 말로써 유교 경전에서 가리키는 의미와 연결시키면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말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벽은 상제 하느님을 소개하고 나서 하느님의 계시로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준 다음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잡이로서 유교의 근본사상을 통한 구원의 길을 말하는 가운데 “성”의 개념이 등장한다. “하느님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추상적 설명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지시하는 살아있는 말, 온전히 새롭고도 힘에 넘치는 방법으로 응답하고 있다.

 

제5장 : "인"仁 (5장에서는 공자의 ‘仁’을 다루었다.)

이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물로 보고 유학의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그리스도를 해석한 인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하늘 개념은 공자 이후 인본주의가 되면서 인간의 궁극적 도리인 “인”, 그것을 실현하는 인인(仁人) 혹은 인자(仁者)가 된다. 주자학자들은 이 인을 그 내용, 즉 “인간관계”안에서 고찰하지 않고 교묘한 이론을 내세웠다. 

 

1. 인간 실존으로서의 "인" 

인간 실존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관계적인데 그 관계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인”의 실천이 중요하다. 이 관계는 사회의 다양한 구조에서 다양한 관계 (군신, 부자, 사제, 부부, 장유, 붕우 등)로 맺어지는데 이러한 관계적 실존을 서술한 것이 공자의 “인”이다. 인간 상호간의 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선과 악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선한 관계에서 “덕”이 나타나고 악한 관계에서 “악습”이 생겨난다.

 

2. "인"의 길 : 인간이 인간으로서 걸어야 하는 길 

“仁”이란 글자는 두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호 소통에서의 윤리적 절차를 규정한다. 인은 인간의 상호관계로서 상제와 인간의 관계처럼 종교적 신앙의 관계는 아니다. 그 속에 상제 하느님을 흠숭하고 본능적 욕구를 극복해야 하는 점을 함축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인간 고유의 길이다. 

 

3. 공자의 덕 : 덕과 중용, 효도와 자비 

“인”이란 인간관계에서 실현된 덕인데 혈연적이고 가정적인 효도와 우애의 실천을 강조하며 그 안에서 구체화된다. 인간 관계의 길이란 관점에서의 “인”은 상황과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나타난다. 효제충신경의 등등. 때와 장소에 딱 들어맞는 정확성(時中)이 인간 행위의 일반적 규범이며 인간의 완전한 길을 가르치는 책인 “중용”은 그 글자의 의미가 ‘정확하게 알맞아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4. "인"의 성취로서의 사랑 

“인”은 사랑도 될 수 있다. “인”이라는 관점에서의 사랑은 단순한 동기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문제나 심리적 사실만이 아니라 결과의 문제,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효과적이고 결실이 풍부한 사랑의 행위와 선업을 의미한다. “인”이란 가까이는 나의 “인”이요 멀리는 온 세상에까지 확대되는 “인”인다. 주자의 인은 하나의 원리이지만 공자의 인의 의미를 회복한 다산의 인은 실천과 타인에 대한 사랑에 충실함으로써 덕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이다. 

 

5. "인의 사람"과 성취된 사랑의 길 

공자는 충실한 사랑, 즉 “서”(恕)야말로 사람이 일생을 통해 실천해야 하는 인간행위의 규범이라고 하였다. 충서의 소극적인 면은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며 적극적인 면은 ‘네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행해주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용’이나 ‘대학’은 이 사랑이란 ‘서’에 대한 설명이고 ‘논어’나 ‘맹자’는 이 사랑에 대한 주석이다. 인간의 도리로서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과 실천하는 사랑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다산과 이벽의 사랑은 실천하는 사랑의 의미를 지향한다. 

 

6. 이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이벽은 인간 상호관계의 장벽이 되고 동시에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온갖 죄악들을 원죄의 결과로 설명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한 사람 의인에 의해 온 사회를 구원하는 이야기로 노아를 등장시키며 결국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성교요지 1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인군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이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천주 성삼위 제2위로서 인간 세계에 들어오시며 다섯 가지 기본적 원리를 성취한다고 하는데 이는 윤리적 오륜 또는 우주론적 오륜을 완전히 갖추신 분이라는 뜻으로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두 가지 본성을 가지신 것에 대한 가장 멋있는 동양적 표현이다. “삼위 가운데 제2위이시고 인륜에 나시어 오륜에 머무시도다 (3장5-6).” 예수 그리스도는 이상적인 성인군자로서의 성왕이며 이치와 법도에 모름이 없는 완전한 지식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예수의 덕행을 소개함으로 예수의 인격을 보여준다. 예수 시험의 이야기를 통하여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것임을 밝힌다. “보내신 자를 존경하여 그 뜻을 따를 뿐인데 네 어찌 감히 나를 유혹하려느냐? (8장 9-19).”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동양 사상에 바탕을 두고 이해해 나가는 사이에 이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중용의 “성”이란 신비로운 “완성”의 개념을 식별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될 때 그의 눈에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유교의 모든 애매한 점을 분명히 밝혀주고 무한한 거리에서부터 인간세계에 빛을 던져주는 찬란한 진리의 광명을 본다.  

 

공자가 왜 仁을 강조했는가? 일반적으로 공자는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공자는 天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였다. 천을 경외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천의 개념을 버리고 인에 천착하였는가? 당시 독재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천을 강조하여 백성을 억압하였기 때문에 공자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인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벽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신 仁의 예수님을 이해하였다. 그는 仁人을 말하면서 “인륜에 나시어 오륜에 머무시다”라고 하였다.

 

제6장 : "성"誠 : 강생하신 말씀 (6장에서는 誠에 대해 다루었다.)  

유학자들은 공자가 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을 논했다고 본다. 개신교의 윤성범 교수가 한국적 신학에서 ‘성의 신학’을 논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성의 일반적 의미는 온전한 성실성이나 정성으로서 인간생활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 일종의 희생을 수반하며 인간이나 사물의 완성으로 인도하고 신의 영역에까지 스며들어갈 수 있는 진실성을 가리킨다. 지성감천이란 말처럼 정성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다. 성의 사람이 곧 誠인이며 공자 자신도 이러한 誠인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벽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誠인을 보았다.

 

1. "성" 이라는 글자 - 이루어진 말씀 

誠은 말씀 言과 이룰 成이 결합된 글자로서 이 말씀은 소리가 아닐 참된 말씀을 지시한다. 진정한 말은 사실에 부합되어야 하며 공자 이전 고대 중국 경전에서는 ‘하늘의 명령’(天命), 후대 성리학에 이르러서는 천리(天理)에 맞는 것이어야 했다. ‘성’이란 말은 언제나 지극한 정성을 필요로 하며 항상 그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말씀의 실현을 의미한다. 성은 진실무망으로 유교에서 윤리적 개념이기 보다 존재론적 개념이다. 정약용도 천주교회의 신앙 대상은 바로 강생하신 말씀인 ‘성’이라 하고 일생 동안 ‘성’이란 말과 의미를 묵상하며 살았다고 한다. 정약용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친 이벽은 ‘성’이란 말 아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과 인격을 집중시키며 이 말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나타낸다고 봄으로서 최초로 ‘성’의 개념을 그리스도론 적으로 보았다. 

 

2. 『중용』에서의 "성" 

1) "성"의 원천은 천명 

중용은 먼저 하늘의 뜻에 대해 말한다. “하늘이 명한 것, 이를 性이라 부른다. 性에 따르는 것, 이를 道라고 부른다. 도를 닦는 것, 이를 敎라고 부른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 안에 천명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2) 신과 지성 

중용은 지극한 정성으로 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음을 암시하여 신과 지성을 연결한다. 그래서 ‘성’이란 말은 중용 16장에서 귀신에 관한 문제, 즉 ‘신’과 영적 존재에 관한 문제와 결부되어 나타난다. 중용에서 ‘성’이란 말의 의미는 상당히 발달하여 심지어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란 개념에까지 연결될 수 있을 정도였다. 중용은 제20장부터 ‘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하는데 정치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한다. 정치는 사람에 달려 있기 때문에 ‘군자는 몸을 닦지 않을 수 없다. 몸을 닦으려고 생각한다면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가 없고 어버이를 섬기려고 생각한다면 사람을 알지 않을 수가 없으며 사람을 알려고 생각한다면 하늘을 알지 않을 수가 없다.’

 

3) "성"은 인간의 길 

위에서 말한 공자의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정치적 기술이 아니라 군주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 정치란 자기 스스로 덕을 닦고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수기치인의 도리이다. 인의예지신은 인간이 군자가 될 수 있고 목자가 될 수 있게 인간의 길을 실현시키는 ‘인’을 이루어준다. 이벽은 그리스도가 오륜 가운데 오셨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인’의 성취로 본다. 성인군자의 모든 덕은 ‘인’의 바탕이 되는 효에서 시작하는데 부모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온 세상의 창조주이고 인간과 모든 인륜관계의 주가 되는 하늘을 알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유교의 참다운 전통은 모든 존재의 주재 되시는 위격적인 하느님을 인정했다.

 

4) 인간의 길은 "성" 안에서 하늘의 길을 제시한다.

오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3덕 (智仁勇)이 필요한데 오륜을 알게 하는 것은 ‘지’이고 구체적으로 습득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은 ‘인’이며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용’이라 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덕을 지탱해 주는 근본적인 것은 ‘성’이다. 중용은 말하기를 ‘지와 인과 용의 셋은 천하의 달덕이니 이를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誠)이니라.’ ‘성’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인 그리스도께로 귀의하여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는 그리스도의 ‘성’에 참여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만사는 ‘성’을 간직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도 나타날 수도 없다고 한다.

 

5) "성"의 실현, 말씀이 이루어짐, "도" 

‘도’란 말과 일과 행동의 세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도는 반드시 ‘성’에 기초를 두고 있을 때 성취된다. 성 자체는 하늘의 도리이고 성실해 지고자 생각과 노력을 다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人道)이다. 

 

6) 인도와 천도의 결합과 그 결과 

‘성’은 그 자신을 이루기 위해서 또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을 논하는 중용의 도리는 모든 존재의 기원과 치를 설명하는데 ‘성’은 시작이 되기도 하고 마침이 되기도 한다. 

 

7) "성"의 초월적 특성 - 진리 

‘성’이란 천리인가 하면 구체적 인간 생활, 인간 본성인가 하면 윤리원칙, 귀신에게 제사드리는 정성된 마음인가 하면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최선을 다하는 지극한 성실성이다. 가까이는 평범한 인간 생활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를 뜻하는 데서부터 멀리는 지극히 높고 고귀한 절대자 하느님의 본성과 그 속성에까지 연결이 닿는 개념이다. 성을 이해하는 데는 천인성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참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경’에서 하늘은 절대적 존재인 하느님 상제로 이해될 수 있으며 공자는 ‘인’의 개념에서 절대자보다는 구체적인 인간관계에서 그 가치를 찾고자 했고 주자학자들은 ‘성’이란 말을 유물론적 방향으로만 해석하였다. 하지만 이벽이나 정약용 등은 ‘중용’의 ‘성’이란 말 안에서 하느님의 참 말씀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것이다. 

 

3. 조선 왕국의 "성" - 변질된 진리 

조선왕조에서 후기로 갈수록 권력에 취한 자들의 학문은 “성”의 학문이 아니라 백성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공리공론의 예론(禮論)에 불과했다. ‘인’과 ‘성’을 주축으로 하는 유교의 참다운 의미를 깊이 추구하기는 커녕 복잡한 ‘예’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벽이 시대에는 이런 상황이 더욱 극심하였고 이에 이벽은 관료생활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선교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희생해 가면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학의 가르침이 말하는 어진 사람 (仁人), 완전한 지성의 사람(誠人)으로 나타났다.  

 

4. 이벽의 "성" : "성"의 해석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이며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이벽은 예수님 안에서 誠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풀이하려고 애를 썼다. 성교요지 안에서 ‘성’은 중요하게 나타나는데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正道), 그의 행위 안에서(德), 그이 인격 자체 안에서 (사랑의 희생제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이벽의 성교요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 공경에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드는 중심이다. 중용에서는 하늘의 도인 ‘성’ 그 자체(誠者)와 인간의 도인 ‘성’을 생각하고 가까이 가는 자(思誠者)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벽은 사성자를 그리스도인에게 국한하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본며 이벽에게는 실천생활이 더욱 중요했다. 그는 성교요지 2편을 이러한 성을 실천하는 성의 일꾼들, 즉 선교사로 맺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은 ‘중용’에서 말하는 갖가지 신적 요소를 지닌 성 자체(誠者)로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성’다운 요소(思誠者) 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들인다. 

 

제7장 : 하느님의 계시로서의 인간 현실의 신학 (7장에서는 인간 현실의 신학적인 면을 정리하고 결론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벽의 신한적 해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결부되는 ‘성’의 해석학으로 나아간다. 오늘날의 신학은 인간 실존의 구원을 위한 학문이 되고자 지향하고 있으며 ‘말’과 ‘행동’,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시키지 않는 구체적 인간 현실 속에 머무르고자 하는데 이벽의 신학이 바로 그 인간의 구체적 현실문제에 그리스도의 해답을 주는 해석학적 설명을 한다. 이벽은 해석학적 원리를 인간의 완성 개념인 ‘성’ 안에서 자기 신학에 적용시켜 계시와 역사, 말씀과 행동, 초월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1. "성"의 해석학과 현대 신학 

이벽의 해석은 근본적으로  인간 실존이 문제이지 사변적인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벽의 신학은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조선 주자학자들의 바리사이적인 공리공론으로 초래된 마찬가지의 고통스러운 상황 안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벽의 신학은 조직신학이나 교의신학, 복음신학, 심미신학, 기초 신학 등등과 같이 관점과 방법론에 따라 갖가지로 구분되고 있는 서구신학의 어떤 하나의 특정한 범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모든 요소들이 다 발견된다. 현대 서구 신학으로 이벽의 신학을 논하기 어려우며 이해되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2. 윤리신학과 기초신학을 위한 유학의 가치 

한국 문화에 맞추어 그리스도교를 표현하기 위해 이벽은 유학의 원리들을 사용했다. 유학은 극동 아시아의 기초신학을 놓는데 중요한 틀이다. 이러한 시도 중에 마태오 리치의 접근이 두드러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하늘’과 ‘상제’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연결하긴 하였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온 ‘천’, ‘인’, ‘성’의 충분한 상호관계를 밝히지 못했다. 천주실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벽은 ‘인’과 ‘성’의 개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 가르침을 전했다. 마테오 리치의 방법은 충분하지 않지만 유교의 원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인해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 후 토착화 신학의 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 된다. 그 공의회 이전에는 서구의 그리스 철학만이 그리스도교의 계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졌었다. 

 

3. 세계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성과 단일성 

다양한 문화의 철학원리들에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성과 단일성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동서양의 이론 전개과정은 서로 다른데 하나는 추출된 원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연역법을 쓰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자연현상에서 원리를 찾아나가서 적용하는 귀납법을 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단일성과 보편성은 철학적 논리전개의 방법과 형태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계시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4. 계시 앞에 선 태도 - 성심과 독단적 궤변 

이론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벽과 다른 유학자들 사이에 차이점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이론을 대하는 정신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과 인간에 다하여 자기가 이미 알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 것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성심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 데 반하여, 다른 하나는 자기가 이미 구축한 절대적 가치와 인간에 대하여 알고 실천하는 바를 여하한 이유로든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기 위한 궤변의 사고방식으로 그리스도교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받아들이게 만든 것은 오직 끊임없이 완성을 추구하는 정성된 마음이다. 

 

5. "현실적" 신학을 향하여 

전통신학이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신학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하나의 문화가 올바르고 적극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서 완성으로 향해 나간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진리에로 인도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새로운 방향에서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는 먼저 각 문화에서 하느님 계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역사의 하느님), 성서에 계시된 항상 함께 하시면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관한 것 (성서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예수의 하느님), 그리고 인간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 등이다. 현실적 신학은 인간 실존 그 자체의 진실성 안에서 나타난다. 

 

결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안에서 인간성과 신성, 인간의 길과 하늘의 길을 결합시키는 ‘이루어진 말씀’의 ‘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표본이 되는 성실한 마음 또는 인간의 완전성 안에서 스스로 계시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를 우리 안에 실현시키는 것 그것이 또한 ‘성’이다.

 

이러한 한국의 신학 내용이 가톨릭 신학의 내용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으며 한국적 신학이라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기초 신학분야의 논문으로서 보통 사람들의 관점과 논리에서 그리스도를 해석하는 일종의 변증학이며 분류도 기초신학 분야의 논문 혹은 호교론적 논문이라고 본다. 1978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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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1) 서양 신학은 서양 철학과의 대화, 동양은 동양 철학이 아니라 동양적 사상틀, 즉 이야기 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 제사 문제 

예수회 선교사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중국의 제사를 효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고 알았다. 그 후에 공부하지 않은 선교사들이 시골에서 제사 드리며 조상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우상숭배로 정죄해 버렸다. 그리고 교황청에 보고하였고 제사 금지를 선포하게 되었다. 그 후 예수회에서 다시 자료로 보고하니 다시 통과되었다. 이러한 결정의 번복이 반복되었다. 또한 당시 통신의 문제로 인해 문제가 이미 해결된 후 이전 명령이 내려오기도 하였다. 예수회 출신의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배척받아 해산 되고 따라서 예수회 해산으로 말미암아 제사 문제가 금지되고 강화되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제사 문제가 한국에서 허락되면서(1938-9년) 축문, 지방 등은 쓰지 않는 범위에서 제사가 허용되었다. 

 

3. 이벽과 정약용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정약용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인간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에 천착하면 인내천 사상이 됨.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역사의 하나님을 벗어나면 안된다. 

 

4. 유교와 단절된 오늘날의 대화 틀은?

동시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 없다. (서양 철학의 핵심, 모순율), 인과율.

모순율과 인과율이 서양 철학의 기본이 되는데 이것은 내가 보기에 동서양과 관계없이 기본이라고 본다. 분과 석으로 모든 것의 위치를 찾아 주고 체계화 시키려는 것. substance

존재론이 절대적이었는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현실을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은 논리의 바탕이 없으니 학문이 있는가? 라고 질문을 받게 된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현실이었다. 

자연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지성이 정확히 만날때 idea가 생긴다. 컨셉트는 바로 이런 잉태를 말한다. 동서양이 함께 공감하는 그런 철학적인 바탕을 만들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가장 기초적인 모순율과 인과율,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알맹이와 나의 알맹이가 만나는 것이 있게 될 것이다. 

제자 백가 , 소피스트 같은 시대에 현실의 실제 바탕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5. 교수님이 공부하고 왔을 때 가톨릭의 반응은? 후학은 있는지?

우리에게 감동이 되는 것은 서양 사람에게도 감동적이다. 불어의 세데라는 단어는 양보라는 단어인데 그 이후에 배교자로 몰고 있다. 이벽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나타나 있지 않고 (양보하는 말을 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예를 들어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하나님도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도 아버지로 하면서 아버지는 자신이 편리한 대로 해석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6. 현재까지의 발전

동양철학연구소에서 성교요지를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수원교구에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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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1. 논문에 의하면 天仁誠의 논의에서 誠은 공자이전의 天에서 공자시대에 仁으로 지나치게 옮겨져 버리고 조선시대의 주자학에서 그것을 정치적인 탁상공론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天과 仁을 연결하는 중요한 단초로 이벽이 이해했다고 증명하고 있다. 선교를 포함한 오늘날의 기독교는 오히려 치우침이 있다면 어디에 치우쳐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성의 신학이 그렇게 치우친 오늘의 기독교에 그리고 통합적 선교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다고 보는가?

 

2. 헬라의 logos 그리고 유학의 誠이 기독교 진리를 자신들의 Frame속에서 이해하는 해석학적 틀이라면 오늘날 선교에서 외부 선교사가 발견하여 이용하는 준거틀 (Frame of Reference)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이며 어떤 면에서 한계가 있는가?

 

3. 자신학화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소화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든 다음 그 교리를 자신[한국]의 문화 유산에 바탕을 두고 다시 표현”한다고 할 때 그 그리스도의 메시지 소화는 한 문화를 깊이 이해한 선교사들의 노력 (마테오 리치와 같이 중국 문화로 복음을 표현한 선교사)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이(轉移) 과정에서 선교사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내부자 운동을 어떻게 평가 할 수 있는가?

 

4. 그 동안 자신학화의 문제가 선교에 있어 중요한 논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선교의 시대를 지내왔는데 오늘날에 와서 새롭게 이 논의가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선교의 변화와 연결하여 이 논의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5. 자신학화와 언어 그리고 성경번역과의 상관관계를 논하라.

 

6.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선교는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통합적 선교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라잇은 그런 가운데 선교의 윤리를 말한다. 이벽이 말한 성의 신학이 오늘날 천도만 강조하고 인도를 저버린 기형적 기독교에 인도를 회복하는 신학의 가능성을 열수 있지 않을까? 성의 신학과 선교의 상관성을 논하라. 

     90. 설악포럼 2014-3: 이이벽의 유교적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학화 이해 (권성찬, GBT)
     88. 설악포럼 2014-1: 자신학화 논의 배경에 대해서 (한철호, 미션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