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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포럼 2013-3: 설악포럼 토론 정리 프린트   
류재중  Email [2016-12-08 17:24:45]  HIT : 670  

설악포럼 토론 정리

 

설악포럼 운영위원들이 모여서 선교의 자신학과 과정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논의들이 나와서 옮깁니다.

 

 1. 이벽은 당시 유교 사회가 가지는 고상한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그것을 기독교와 연결할 수 있었다(유교와 그리스도교/이성배지음).

 

2. 이벽이 중국을 통해서 서구 신학을 받아들였지만 헬라적 사고보다는 히브리적 사고를 했다. 유교의 가치 중 성(誠)에 대한 개념을 유교 안에서는 실천자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모습을 본 것처럼, 신학의 구현(삶으로 표헌하는 일)이 이벽의 신학 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었다고 본다. 이것이 초대교회 리더들이 가지고 있었던 틀이다. 선포는 propaganda 혹은 compromise 하는 것이 아니라 integrity를 가지는 것이고 이것이 성(誠)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 때문에 예수를 만났을 때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선하고 착한자들이었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사도행전에 고넬료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진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삶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던 처럼 이런 부분들이 초기 한국교회 리더들에게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이런 진정성을 가진 평화의 사람(Man of Peace)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교회 역사 속에서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4.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자의 진정성이 충분히 그리스도인 안에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이 미국형 복음주의자들의 왜곡된 영향이다.

 

5. 리더는 공동체의 산물이기 때문에 공동체 자체가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연 한국 교회와 사회는 그런가? 

 

6. 각 나라 안에서 자생적으로 복음이 그들의 문화의 진정성 안에서 복음을 들어내게 하는데 방해한 사람이 선교사일 수 있다. 선교사가 들어온 순간부터 선교와 교회와 그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왜곡이 있었다.

 

7. 서구에서 이미 150년 전에 독일에서 홍체의학이 발전되었는데, 감염의학이 나오면서 모든 의학이 각론 중심으로 가게 되었다<내 눈 속에 한의학 혁명: 박성일>. 그 결과 홍체의학이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요즘 다시 연구해 보니 감염의학과 같은 화학적 접근으로 오늘의 병을 고칠 수 없고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한 사람을 전 인격적으로 보고 그 사람의 환경, 공동체, 체질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동서양의학이 시너지를 내는 시대에 와 있다. 선교도 같은 방향을 가야 한다. 즉 분야가 다르지만 이러한 원리들이 선교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선교도 서구 신학이 들어오면서 증상만을 치료하거나 획일적인 답을 전다하는 감염신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일체화하는 것이 문제이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다양하다. 그러나 복음을 어떤 하나의 formula를 만들어 놓고 접근했다. 이미 한 가지 방법으로 복음 안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다 왔다. 예수님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했다. John Hick이 옥스퍼드 IVF에서 지성적 고민을 할 때, 그것을 획일한 formular로 접근했고(간사들이) 그 결과 그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고 다원주의자가 되었다. 만일 누군가가 Hick에게 그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8. 최근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이어령교수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과정을 보고 있는데, 그분이 신앙을 어떻게 내면화하는 지 잘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어령씨가 충분히 자기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하는데, 너무 단순한 영성으로 밀어 붙인 것은 아닌가? 이어령씨교수가 적절한 기독 지성을 만나 스스로 복음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만일 이 내면화 작업이 본인에게서 일어나지 않을 경우 혹 이어령씨는 자신이 동의한 복음을 거부하게 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예수님이 우물가 여인을 만나서 대화할 때 예수님이 그 여인을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 정답을 그 여인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도우셨다.

 

9. 북한 선교에서 두려운 것은 통일 후 남한의 목사들이 다 가서 그들의 영성을 대치해 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이미 북한 안에서 오랫동안 고난 받았던 이들이 해방된 북한 교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남한 교회 리더들이 가서 북한 교회의 지도력을 발휘하겠다고 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10. 상식적인 정보와 토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들이 내리는 결론은 항상 동일한 것은 왜 그럴까?

 

복음이 특정한 문화 안에 들어가면 자신학화는 가만 나두면 일어난다. 오히려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이 자신학화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아닌가?

 

11. 서양 기독교가 헬라문화 안에서 완전히 자신학화 했다고 보다는 christendom의 패러다임으로 복음화 되었기 때문에, 서구는 여전히 헬라문화 안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힘을 읽었을 때 헬라문화 전통의 서구가 기독교를 배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최근 급속히 쇄퇴하는 것도 같은 패러다임을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

 

12. 선교중국이 되는데 한국 선교사가 영향을 미치는 것의 문제와 그들이 스스로 선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의 문제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한국 선교사가 self-theologizing(자신학화) 혹은 self-missiologizing(자선교화)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Doer만 해 왔던 한국선교사들이 중국교회가 자신화학하는 과정을 facilitator을 할 수 있는가? 지금 선교사들의 오늘날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경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중국의 교회는 한국의 교회보다 더 초대교회적이다.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할 과제가 있는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한국교회 선교사들이 중국교회를 초대교회를 닮은 선교한국 교회로 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최근 중국교회가 한국교회를 통해서 중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배우려고 한다고 말하고 또 한국교회가 그런 중국교회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88. 설악포럼 2014-1: 자신학화 논의 배경에 대해서 (한철호, 미션파트너스)
     86. 설악포럼 2013-2: 한국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이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