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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한  Email [2023-11-26 16:51:56]  HIT : 1553  

 

 

선교적 교회에 대한 이해와 오해

한철호 선교사 (미션파트너스)

 

작년에 이어서한국교회 트렌드 2024(규장)”가 출간되었습니다. 열 가지 중에어시스턴트 포비아’(부교역자들 문제)선교적 교회가 눈에 뜁니다. ‘선교적 교회는 이미 오래된 주제이지만 코로나 기간 중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로 다시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미래 교회의 중요한 방향으로 많이 공유되는 것 같아 기대됩니다. 동시에 딱 떨어지는 개념을 전달되지 않는선교적 교회라는 단어 이해에 혼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적 교회 이해

선교적 교회라는 말은 1998년에 데럴 구더(Darrel Guder) 등이 출간한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라는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고 후에 한국에 소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이 개념이 등장하는데, 촉진자의 역할을 했던 사람은 레슬리 뉴비긴 이라는 인도선교사로 갔던 영국 신학자였습니다. 오랫동안 인도에서 선교하고 영국으로 돌어온 레슬리 뉴비긴이 발견한 것은 영국교회가 세속화와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것입니다. 뉴비긴은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 세상 문화 속에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이 이해되고 확산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고민을 시작한 미국의 신학자들이 뉴비긴의 생각을 이어가면서복음과 문화 네트웍’(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을 만들어, 이 시대 안에서 복음과 교회의 본질과 세상 모든 영역 안에서의 확장을 탐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논의와 실제적인 대안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런 생각과 대안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국에까지 전달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깊은 묵상 없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흐름이 전달됩니다. 그래도 잘 적용되는 한국교회입니다. 그런데 선교적교회 개념이 한국에서 혼돈을 가져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missional)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처럼 내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예수님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부르시고 하신 언약(12:1-3)과도 연결됩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상 가운데 보내어 하나님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목적으로 들어내길 원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선교적(missional)이어야 하는 것은 옳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설명하는데선교’(mission)이란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오는 혼선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 ‘보내심을 받은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만선교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선교라는 단어는 1590년경 처음 교회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당시 서구 교회는 국가와 교회가 통합된 시대였습니다. 당시 서구 국가들은 항해술이 열리면서 비서구를 점령하기 시작하는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군대를 파견하고 그 뒤를 따라 캐토릭 예수회 수사를 보내면서 그들이 점령한 비서구 국가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이때 수사들을 보낸다는 의미로 라틴어의 미토(mitto)에서 미션(mission)이란 단어가 만들어졌고 후에 개신교에서도 선교사(missionary)를 보내면서 이후 미션(mission) 이란 단어는 해외 혹은 타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행위 혹은 그와 관련된 일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단어는 생각의 집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쓸 때 의사소통이 가능 하려면 그 단어에 대한 생각이 같아야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컵을 보여주지 않고 컵을 가져다 주세요라고 말하면 컵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이 대부분 유사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종이컵이던 유리컵이던 물을 먹고 마시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가져다 줍니다.

 

따라서 데럴 구더 등 첫 선교적교회(missional church)운동을 시작한 학자들이 선교적(missional)  개념을 사용할 때는 단지 타문화권 혹은 해외선교를 국한해서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개념과 총체적인 목적과 그리고 참여해야 할 사역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교회는 타 문화권 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보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는 단어와 교회가 감당해야 할 다양한 역할 중 타문화권 사역을 설명하는 단어를 동일한 선교(mission)으로 표시함으로 사람들에게 혼돈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의 본질과 총체적 사역을 선교적(missional)이란 단어로 표현하려면 타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영역은 다른 언어로 표기해야 합니다. 혹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전통적으로 표기했던 것처럼 교회의 타문화 복음 전파 사역을 선교(mission) 이라고 기술하고, 교회의 본질과 총체적 사역은 제자도(Discipleship)라고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펜데믹 많은 한국 교회가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은 그 교회가 타 문화권 선교에 전념하겠다는 의미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존재로서의 본질을 찾아가고 그 일을 하는 교회로 전환되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라는 말 대신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혹은제자의 삶을 살아내는 교회등으로 그 개념을 설명해야 혼돈이 없을 것입니다. 영국에서는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 of church)운동과 같은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선교적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전달하려는 내용을 담아내는 적절한 표현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선교적교회’(missional church)라고 표기하므로 생기는 오해나 불필요한 논쟁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냥 미셔널(missional) 이라고 쓰자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단어를 쓸 것인가는 좀 더 논의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냥 미국에서 미셔널 처치(Missional Church)라고 사용했다고 그대로 사용하면 혼돈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혼돈을 막기 위해 교회의 타문화권 전도사역을 의미할 때 선교사교회(missionary church)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좀 어색합니다.

 

맺으면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가정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보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타문화권 전도도 포함됩니다. 이것을 총체적 복음 혹은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처럼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 of Jesus Christ)을 인정하는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세상 모든 영역에 복음의 가치와 소식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런 총체적 복음의 내용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복음이 전달되어 그들이 복음의 총체성 혹은 주되심을 실현해 낼 기회를 주는 일은 성경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사명이 되어야 입니다. 이 가치를 실현해 내는 선교적 교회가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들어내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특별활동 신청(아래 링크 참고)
https://forms.gle/FcbqBQJz2x2TmdA69

     453. 축 성탄! 성탄절은 기적이 일어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451. 기도는 현상에 대한 반역입니다.(니제르를 위해 기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