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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퍼스펙티브스)과 틀(패러다임)을 위해 프린트   
서대한  Email [2022-12-09 16:40:35]  HIT : 1751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퍼스펙티브스)과 틀(패러다임)을 위해


한철호선교사(미션파트너스)

 

최근 <계속되는 도전: 늘어나는 비제도권 교회> (정재영 저. SFC출판), <겸직 목회: 목회와 또 다른 소명을 논하다> (영현표, 이박행 편저, 솔로몬), 그리고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입니다> (임재원 저, 이래서원) 등이 출판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와 목회 논의가 가열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수면 밑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되어 왔던 문제인데, 최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COVID-19 상황을 겪으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실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제도권 교회의 등장은 역사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계속 존재해 왔던 것이지만, 서구의 경우 후기 기기독교 사회에 들어가면서 제도권 교회가 새로운 시대에서 그 형식과 내용이 거부되자 대안과 교회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로부터 가속화되었습니다. 한편 선교지였던 비서구에서는 서구로부터 복제된 교회가 아니라 자신의 문화에 맞는 토착화된 교회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부 진영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한국교회에서 더욱 확대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빠른 세속화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으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둘째, 유교문화와 기독교문화가 섞이면서 제도권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경직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 구성원들의 영적인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도시화된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된 교회를 시작하는 것을 상당한 비용이 지불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 운영방식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에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10년 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 논의 입니다. 교회는 어떤 제도와 형태를 가지고 있던 본질적으로 미셔널(missional) 한 공동체 입니다. 미셔널(missional) 을 선교적이라고 번역해서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를 선교적교회라는 말로 일반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혼선이 있습니다.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 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는 의도는 단지 해외선교하는 교회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미셔널이라는 영문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 흐름은 네슬리 뉴비긴이라는 영국의 선교신학자의 생각을 미국교회 회복에 적용하면서 만들어진 GOCN(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따라서 서구 교회에서 복음과 교회가 문화의 주변부로 물러나있는 현실에서 복음이 다시 그 문화 안에 그 핵심가치로 적절하게 소개되고 이해되고 받아드려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한편 비제도권교회의 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에서 논의가 시간 된 것은 기존 목회자들의 겸직(이중직)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논의도 위에서 언급한 같은 이유로 그 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겸직 목회가 서구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민감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구조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이원론적 사고구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목회자의 겸직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문화에서 목사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실제 통계에 의하면 현재 한국 목사의 80%가 이미 겸직목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논의는 성도들 삶의 현장 이해등 여러 가지 이상적인 근거들이 있지만 실제 최근 논의는 목회자들의 생계 문제가 그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코로나 이후 세계는 새로운 삶의 방식(new normal)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선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이 본질을 담아내지 않으면 그 형식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구조가 복음의 본질을 담아내고 있지 못한다면 그 구조가 어떤 것이고 어떤 전통을 가진 것이라도 새로운 구조에 담겨야 합니다. 최근 4년마다 열리는 한국선교전략회의(NCOWE) 프로그램을 논의하다가 낙망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선교방식과 전략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논의되기 시작한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아주 본질적인 선교 원리마저도 한국 선교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를 보는 시각(퍼스펙티브스)과 틀(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새 포도주(즙)는 새부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벗어나는 2023년에 새로운 시각(퍼스펙티브스)과 틀(패러다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길 기대해 봅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관점과 틀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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