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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설악포럼 2020-3: 발제 응답 - 김동화 프린트   
송주명  Email [2020-11-12 18:52:46]  HIT : 892  

Response to Chong Kim

2020년 6월 29일
김동화

 이 글은 Chong Kim의 글에 대한 response라기보다는 그 글을 읽은 후의 reflection입니다.

Motivation for missions가 죄책감에서 순종(obedience)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변해왔다(progressed)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의 경우 이것은 Christian Distinctive에 대한 깨달음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Ruler)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 그리고 창조와 다스리시는 일도 아버지(a kind and loving Father)로서 하시는 것이며 그 아들을 기뻐하시며 생명을 주시는(life-giving)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 우리 인간이 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distinctive입니다. 그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지요.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The Story of Men and Women Under Pressure, Langdon Gilkey, 새물결플러스 2013

Effectiveness의 추구는 계몽주의(Enlightenment)와 개발(Development)의 함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몽주의는 기본적으로 힘의 논리(power game)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 모든 일에 합리적으로 질서를 세우고(organize) 통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을 잘 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며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되는(disorganized) 조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정결 의식이나 기타 제도에 있어서 가장 앞서 있었으며, 로마제국의 제도와 법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겠지요. 예수님은 결코 더 뛰어난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려 하시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실제적인 모습은 오늘날 서구 교회의 선교보다도 더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습니다. 이번의 재난이 일단 그러한 힘을 많이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는 한국 교회의 선교가 올바른 방향으로의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합리주의와 통제의 질서(MacDonaldization)는 더욱 강력해지고 정교해질 것입니다. AI의 출현이 이를 예고하고 있으며 COVID-19라는 엄청난 재난은 이를 가속화 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이러한 세계관에 맞서서 대안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COVID-19 상황은 우리들이 얼마나 연약하며 동시에 상호 연결되어 있는가를 절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개인주의적 영성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국제 관계에 있어 고립주의와 각자도생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참된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서로 떨어져서 각 개인이 혼자서 일하고 생활하며 홀로 지내는 것이 더욱 조장되는 상황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영적, 정서적 피폐함이 더욱 확산되고 심화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비롯되는 성경적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절박한 시대적 사명입니다. 복음의 진보는 훌륭한 신자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기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증거(‘보라 저들이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COVID-19 상황은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우리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국제관계나 세계 질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각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대면(contact)활동의 축소가 다양한 삶의 영역에 나타날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고립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COVID-19 상황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은 큰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요즈음 많이 쓰이는 contact와 untact라는 말과 아울러 intact라는 말이 있습니다. integrity라는 말도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integral(필수불가결한)’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intact를 가지고 우리의 삶이 부서지는 것을 삶의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ertainty가 믿음의 적이라고 지적한 Chong Kim의 말처럼 믿음은 이러한 혼란과 불안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Parker Palmer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실수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은총, 용서, 가족과 친구에 대한 무조건인 사랑,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우리 각자의 외로운 싸움에서 외로움을 덜어준 사람들의 개방성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 것이 생각납니다. 세상은 언제나 엉클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 짜 맞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적인 삶을 이 세상에서의 구질구질하고 구차스러운 현실 속으로 들어가 분투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넘어 비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참된 영적인 삶은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존재의 토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여(engage, have a life)하는 끝없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종차별(racism)은 타자성(otherness)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생겨나는 폭력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가 속한 보수적 복음주의 신자들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가장 개방성이 부족하고 배타적인 집단이 된 것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양한 이웃을 무시무시한 ‘타자’로 여기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지상명령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모순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미국에서 ‘복음주의자’들이 가장 인종차별을 당연시하는 집단이며,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도 그 점에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선교지를 정함에 있어서 많은 경우에 어떤 나라나 지역에 복음이 얼마나 증거되었는가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우리보다 못사는(따라서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나라인가를 기준으로 하였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요? 국내에서도 우리는 또 사람을 그 피부색깔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르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인종간의 분쟁으로 살육이 벌어졌을 때 많은 교회들이 보여준 무자비한 배타성도 그렇습니다. COVID-19 상황이 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서로 다른 점으로 인해 배타적이 되기보다는 상호 공통점을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한다고 믿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차별적 확산은 우리가 ‘타자성’이 주는 긴장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우리들은 모두 인종과 신분과 관계없이 연약(vulnerable)하다는 ‘연결성(connectedness)’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과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서로 상기시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COVID-19로 인한 상황은 우리에게 큰 박탈감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것이 제거되었습니다. 아주 심하게 일상이 박탈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Langdon Gilkey는 그의 ‘산동 수용소(Shantung Compound)’라는 책을 통해 그가 2차 대전 중에 중국에서 일본군의 수용소에 갇혀서 삶의 많은 것이 박탈당한 채 살던 때에 함께 지낸 사람들(선교사, 수도사, 장사꾼, 법률가, 의사 등)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많은 것을 박탈당하였을 때 사람들은 엄청나게 창조적이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어느 때 보다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도덕적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도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선교사들 중에서도 편협함과 이기적이고 몰인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앞으로 더 힘들고 팍팍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더 나아가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까(삶과 복음 증거가 분리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를 생각해 봅니다. 이 점에서 Gilkey가 산둥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과 비도덕성은 우리 생명의 가장 심오한 영적 중심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기억하게 됩니다. 아마도 우리가 COVID-19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계획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작고 큰 다양한 공동체에 속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On the Bringk of Everything), Parker Palmer, 글 항아리 2018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The Story of Men and Women Under Pressure, Langdon Gilkey, 새물결플러스 2013​

 

     201. 방콕설악포럼 2020-4: 발제 By 손창남
     199. 방콕설악포럼 2020-2: 발제 By Chong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