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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포럼 2018-4: 풀뿌리 선교의 성경적 배경과 유형(손창남,OMF) 프린트   
정유미  Email [2019-01-17 17:55:38]  HIT : 1212  

 

풀뿌리 선교의 성경적 배경과 유형

손창남 (OMF 선교사)

 

들어가면서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선교의 모델을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기도하고 파송하는데서 찾아왔다. 윌리암 캐리의 그 유명한 이교도 선교 방법론에서 사도행전 13, 14장을 이방 세계에 대한 최초의 선교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유명한 성경 주석가들조차도 이 부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선교는 그 이전부터 이루어져 온 것을 볼 수 있다. 8장 초반에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증거 된 것, 그리고 1119절부터의 기록을 통해서 이들이 타문화 사역(cross-cultural mission)을 감당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13장에서부터 28장까지의 바울과 그 팀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의 이야기는 누가의 의도에 의해서 특별한 선교사역이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17세기 가톨릭 교회의 선교로부터 이어지는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서구 교회의 선교 모델은 바울과 같은 사도형의 선교를 모델로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바울이 우리가 하는 선교사역을 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그는 다른 언어를 배운 적도 없고 10, 20년 한 곳에 살면서 정착하는 선교를 하지도 않았다.

현재 한국교회의 선교 모델은 지난 2세기 동안 이루어 온 서구 선교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0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 온 국제단체들을 포함해서 그 후에 시작된 자생단체들의 경우도 결국 지난 날 서구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해 온 사역을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 글에서는 사도행전 8장에서부터 12장에 이르는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풀뿌리 선교 운동에 대해서 고찰하고 오늘날 이러한 풀뿌리 선교 운동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선교 정신인 동시에 따라야 할 모델임을 확인 하려고 한다. 또한 초대교회 당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이방에 전파되었던 사회적 상황을 살피면서 21세기에 합당한 선교사역의 유형에 대해서 살피고, 비서구 교회의 선교 모델로 삼을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사도행전의 선교 모델의 재발견

 

한국 교회가 첫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고, 지난 25년 동안 선교의 붐을 이룬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선교사가 얼마나 파송되었는가 하는 것으로 선교를 인식하려고 하고 있다. 흔히 한국이 2위 선교국가가 되었다는 표현은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로 이야기 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이 말 가운데는 은연중 선교란 전임 선교사 (career missionary)’들이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여기에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그런 전임 선교사를 중심으로 해서 파송교회, 선교단체, 후원자, 이들이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선교인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보내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프레임도 이런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기저에는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에 파송했다고 하는 사실을 선교의 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모종의 컨센서스에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선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한 것이 진정한 선교의 출발점인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본 발제에서는 선교란 타문화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라는 협의의 선교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전제 속에서 사도행전을 다시 본다면 선교는 13장에 나타나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

 

필자는 성경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사도행전 8장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핍박을 피해서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과 안디옥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선교라는 차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에서 8장과 11장에 나타나는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81: “........ 흩어지니라.”

1119: “..... 흩어진 사람들이

이들 모두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각지로 흩어진 것이다. 이들이 동일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일한 그룹에서 나왔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대상을 상대로 복음을 전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메시지

85절과 12절에서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빌립이라고 하는 일곱 명의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빌립이 이미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은 문화적으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입니까?”하고 질문한다. 그 여자가 그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사는 여자였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이해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1120절에서 안디옥의 헬라인에게 갔던 동일한 흩어진 사람들은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kyrios)’란 당시 헬라의 신들에게 사용되었던 경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 적절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매우 타문화적인 사람들이면 이런 면에서 이들이 선교를 했다고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좇았던 제자들, 즉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리었던 그룹의 사람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이라고 1장과 2장에 걸쳐 두 번이나 지칭되고 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유다를 대신해서 새로운 제자를 뽑을 때의 요건이 바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님을 따른 순수 유대인, 즉 갈릴리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즉시 타문화로 가지 않은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으로부터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부탁을 받은 제자들이 그 즉시 다른 민족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왜 선교운동이 8장과 11장처럼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까지 타문화에서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이 연기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가 가지는 타문화적 제약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갈릴리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태생적으로 타문화에 노출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주님께서 새로운 그룹을 통해서 복음을 이방에 전하는 준비를 하셨다고 보인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룹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증거를 8장과 11장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814절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에 교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낸다. 아마도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권위있는 지도자요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교회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마리아와 유대의 문화적 거리는 사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서로 반목을 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타민족과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배타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제단을 사마리아에 따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다.

문제는 1122절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는 대신 바나바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안디옥의 헬라인들은 유대인과도 달랐고 물론 사마리아 인들과도 달랐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도 않았고,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고,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갔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사도행전 10장과 111절부터 18절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고넬료 가정 방문 이야기는 예루살렘 교회의 이방인에 대한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강조하면서 가기를 주저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부정한 동물들을 보여주면서 먹으라고 하는 환상을 보이지 않으셨다면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사도행전 1028절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도 원래는 유대인으로 이방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위법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은 철저한 유대인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에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중요한 재정 출납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헬라파들이 가지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사도행전의 타문화 사역에 중요한 계기가 된다. 갈릴리로부터 시작된 유대 문화의 옷을 입은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마치 계주의 새로운 주자에게 바톤이 이어지는 것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헬라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 헬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는데,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흩어진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바나바와 사울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 1122절에 나타나는 바나바의 파송이다. 바나바는 사도행전 436절의 기록대로라면 구브로에서 태어난 유대인 디아스포라다.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고백한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헬라인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선교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갔었더라면 그런 보고가 달리 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는 안디옥에 새로운 사역의 기회들이 생겼을 때 자신을 파송한 예루살렘 교회에 추가로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다소 출신의 디아스포라 사울을 데려다가 사역을 함께 하게 된다.

이러한 흔적은 사도행전 11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풀뿌리 선교사역을 담당했던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20장에 가이사랴에서 계속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빌립 집사, 21장의 오래된 제자 나손,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삼관까지 나왔던 다른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고 있다.

실제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풀뿌리 사역은 사도 바울의 사역지보다 더 넓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음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네모 박스 안에 있는 지역들이 사도 바울이 다니며 복음을 전한 곳인데, 나머지 지역에 이미 복음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지 전에 쓴 로마서에만 해도 이미 로마에 교회가 전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2) 사도바울의 선교 사역의 특징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사역은 풀뿌리 사역과 어떻게 차별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이 흩어진 자들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915절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다메석에서 예수님을 만나 후 앞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바울에게 안수하도록 하신다. 그 때에 바울이 장차 할 일을 이야기 하는데, “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하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열거 된 세 그룹이 통일성을 가지는 그룹이 아님은 매우 명백하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종족적으로 말한 것이지만 임금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21장에서 바울이 체포되면서부터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가이사를 포함해서 당시의 총독과 분봉왕들 앞에서 왜 자신이 죄수의 신분이 되었으면 가이사에게 상소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두 번이나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이야기 하는데,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풀뿌리 선교가 아닌 특별한 선교를 위한 조건으로 이해된다. (16:37 22:25 )

사도행전 1921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로마에 가려고 하는 것이 그곳에 처음으로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로마서에서도 그는 그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사도행전 28장에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의 형제들이 아삐아 저자와 삼관까기 마중을 나온 것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 오기 전에 이미 복음은 전파되고 형제들의 공동체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간 것이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닦은 터 위에 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가이사에게 전하려고 했다는 것과 궁극적으로 서바나까지 가고 싶었는데 그 중간 기점으로 로마를 지나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흩어진 사람들에 의한 풀뿌리 선교 운동과 바나바와 바울에 의해서 시작된

선교운동을 아래의 표를 통해서 살펴보면 보다 극명하게 대조를 느낄 수 있다.

 

2. 두 모델의 비교

위에서 언급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필자는 풀뿌리 선교 모델이라고 하고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바-(바울과 바나바의 이름 따서 필자가 붙여 본 것임) 선교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표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풀뿌리 선교

-바 팀 선교

선교의 주체

모든 성도 (사도 이외)

사도

선교의 목표

모든 사람들

(임금들)

선교지역

모든 지역

제한된 지역의 전략적 선택

조직

자유로움

팀 형태

재정 후원

후원이 필요 없음

후원이 필요함

성취

많은 지역에서 복음화를 이룸

제한적인 성취

파송교회

없음

안디옥 교회

선교전략

자유로움

팀에서 세움

현지의 수용성

비교적 반발이 적음

반발이 많음

 

 

우선 선교의 주체를 보면 풀뿌리 선교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선교를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한 핍박이 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사도 외에는 모두 흩어져갔는데 그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이와 비교해서 바-바 모델에서는 레위족 출신인 바나바처럼 타문화를 잘 이해하고 헬라어를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파송을 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선교사 선발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지금의 터키 반도 남부에 있는 다소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나 헬라 문화에 매우 익숙했거니와 예루살렘에 와서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 아래서 공부를 한 특수한 사람이었다.

풀뿌리 선교모델과 바-바 선교모델은 목표도 다르다. 풀뿌리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한편 바-바 모델에서는 조금 더 전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장차 사울이 복음을 전하게 될 세 그룹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언급된 세 그룹 가운데 이방인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해가 되지만 중간에 끼어있는 임금들이라고 하는 그룹이 조금 낯선 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 22장 이후를 보면서 이 주문의 의미가 무엇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결국 죄수의 몸으로 가이사의 법정에 서게 되고 로마까지 호송되어 가면서 아그립바 왕이나 벨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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